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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Dream] 한화 이글스 정은원

대단한미디어 입력 2019.02.13.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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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스는 원해~ 정은원해!

2018시즌 KBO리그에는 ‘육성 바람’이 불었다. 그리고 기다리기라도 한 듯 2000년생의 한 어린 선수가 자신의 기량을 빠르게 증명해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자신은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또 감사하다는 말이 입에서 떠나지 않았다. 정은원은 그런 사람이었다. 마냥 아이 같은 생김새와 달리 어쩌면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큰마음을 지닌 사람. 그래서 앞으로의 날갯짓이 기대되는 독수리 군단의 현재이자 미래였다. 그가 내디딜 2년차의 첫 보폭이 지난해보다 넓기를, 안정되기를, 꽃길이기를. 한국 야구를 사랑하는 한 명의 팬으로서 정은원의 포근한 비상을 응원한다.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소경화 Location 원스 선수 트레이닝 센터



말솜씨가 좋다고 들었다. 오늘 인터뷰도 기대할 만한 것인가.

좋은지 잘 모르겠지만 최대한 열심히 답변하겠다. (웃음)

어떻게 지내고 있나. 근황을 알려 달라.

아침에 늦잠을 푹 자고 오후에 훈련장에 나와 운동하고 있다.

훈련 시 가장 중점적으로 두고 있는 것은?

웨이트 트레이닝 위주로 하고 있다. 또 2월에 캠프가 시작하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 가볍게 방망이를 치거나 캐치볼을 한다.

인천 토박이의 대전 생활은 어떤가.

처음 1군에 올라왔을 때는 대전에 아는 사람도 없고 형들과 덜 친할 때라 조금 힘들었는데 계속 지내다 보니 친구들도 생기고 적응돼 지금은 매우 좋다.

이곳에 오면 정은원을 만날 수 있다 하는 곳을 팬들에게 살짝 얘기해 달라.

대전에서는 야구장에 오시면 되고, 인천은 집이 구월동이다 보니 가끔 나간다.

휴식일에는 무얼 하며 보내나.

취미가 딱 하나만 있진 않다. 남들 하는 건 다 하는 편이라 지금은 운동선수가 아닌 일반인의 생활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보통은 친구들 만나거나 시간이 나면 여행을 다녀오곤 한다.

최근에 다녀온 곳이 있나.

서울 여행을 다녀왔다. 맛집 탐방을 했는데 괜찮은 곳이 많다.

요즘 최대 고민은 무엇인가.

딱히 없다. 요즘은 합류가 얼마 남지 않아 운동에 치우쳐져 있는데 12월에는 그동안 못 가본 곳도 다녀오고 해서 스트레스가 풀렸다. 비시즌을 알차게 보내고 있다. (낙천적인가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항상 노력한다.

야구 말고 잘하는 것은?

축구도 잘한다. 웬만한 운동은 평균 이상 한다.



98경기 50안타 4홈런. 누구보다 알찬 일 년을 보냈다. 본인에게 2018시즌은 어떤 해인가.

생각지도 못한 기회를 받은 한 해였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아쉬운 부분이 많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아쉬운가.

초반에는 타격 페이스가 좋았는데 중간에 밑으로 가라앉았다. 그 기복의 차가 너무 컸다. ‘좀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는 생각이 계속 든다.

징크스도 있는가.

학교 다닐 때는 있었다. 1번 타자를 주로 쳤는데 내가 첫 타석에 살아나가면 팀이 이긴다는 징크스가 있어 늘 긴장하고 시작했다. 근데 프로에서는 아직 1번 타자를 못 쳐 징크스가 사라졌다.

1번 타자에 욕심이 있는 것인가.

나중에 성장해서 기회가 된다면 꼭 치고 싶다.

수비 연습을 할 때 어린아이들이 쓰는 특수 글러브를 사용한다고 들었다. 효과가 어떤가.

작은 글러브를 쓰다 보니 잡을 때 더 집중하게 된다. 큰 글러브를 쓸 때는 평범한 타구가 오면 안일하게 생각하곤 했는데 그런 게 없어졌다. 집중력도 올라가고 자세가 낮아진다는 점에서 매우 만족스럽다.

스타트가 약하다면서 도루도 곧잘 하더라. 투수 습관을 다 파악했다는 말인데, 포근한 겉보기와 달리 은근 독종인가 보다.

욕심이 많다. 지금까지 운동이나 모든 면에서 만족이 없었다. 남들이 잘했다고 해도 나는 항상 아쉬워서 더 악착같이 물고 늘어진 면이 그렇게 보이지 않았나 싶다.

도루왕 욕심도 있나.

아직까지 도루는 정말 부족하다. 지난 시즌에 스스로 도루를 한 게 없었다. 그저 운이 좋았다.



운도 운이지만 실력까지 받쳐준 날이 있다. 2018년 5월 8일, 어떤 날인가.

‘정은원’이라는 야구 선수가 쭉 1군에 있을 수 있게끔 해준 고마운 날이다. 실력보단 해내고자 하는 마음에 운이 따랐다.

프로 1호 홈런이자 KBO리그 2000년생 최초 홈런 그리고 야구 인생 첫 번째 홈런을 때려냈다. 제대로 된 어버이날 효도 선물이었다.

부모님께서 이런 좋은 선물을 줘서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당시에는 계속 얼떨떨해서 숙소에 들어가서도 정신을 못 차렸다. 잠들기 전까지 계속 ‘내가 한 게 맞나?’라는 생각만 했다.

역대 KBO리그 만 18세 선수 중 최다 타석, 안타, 홈런, 타점, 볼넷 기록을 새롭게 썼다. 사실 프로 입단 전 안정적인 수비를 자랑하긴 했지만, 대형 타자는 아니었기에 하루하루가 실감 나지 않을 것 같다.

정말 그렇다. 구단에서 좋게 봐주신 덕분이다. 프로 입단 후의 시간을 되돌려 보면 5월 8일 그날처럼 한 시즌 자체가 꿈처럼 느껴진다.

가족 외에 고마운 사람이 있다면 마음을 전해보자.

한 명에게만 얘기할 수 없다. 팀 선배님들과 코치님들 모두에게 전하고 싶다. 늘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옆에서 북돋아 주셨다. 프로에 와서 지켜야 할 사소한 것들도 잘 알려주셔서 큰 힘이 됐다.

어떻게 보면 시기를 잘 탔다. 젊은 선수 육성 기조를 내세우며, 믿음으로 어린 선수들을 중용하는 구단의 최근 추세가 정은원의 화려한 프로 데뷔에 한몫했다.

정확한 말이다. 만약 다른 팀이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다. 운 좋게 팀이 육성 방향으로 가려고 할 때 입단했고, 덕분에 큰 기회를 받았다.

2007시즌 이후 11년 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을 확정지었다. 한화의 복덩이다.

나 때문만은 아니다. 팀 전체가 단합이 잘 됐고, 한마음으로 열심히 달려갔기 때문에 이룬 성과다.



하지만 아쉽게도 포스트시즌에서 뼈아픈 송구 실책과 득점권 침묵이 있었다. 그때를 회상해본다면?

확실히 정규시즌 때보다 분위기가 웅장해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득점권 기회에서 약한 모습을 보인 건 그냥 내가 부족했던 거다. 타격 부분을 더 보완해 앞으로 다가올 포스트시즌 때는 좋은 활약으로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

야구는 언제 처음 시작했나.

초등학교 3학년에서 4학년 올라가는 겨울 방학 때 시작했다. 부모님이 야구를 좋아하셔서 자연스럽게 접했고, 주말이면 동네 친구들과 모여 야구를 하곤 했다. 결정적으로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보고 ‘나도 국가대표 선수가 되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어 시작했다.

그때 그린 꿈대로 잘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꾸준히 성장하다 보면 언젠가 내게도 국가대표라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겨울이 가고 다시 또 봄이 온다. 2019시즌의 목표는 무엇인가.

뚜렷한 목표가 없던 내가 작년에 과분한 기록을 남겼다. 올해 역시 목표를 정해두고 싶진 않다. 다만 어느 누가 봐도 성장했다고 느낄 수 있도록 발전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이제 막 2년 차 선수에게 어울리지 않는 질문일 수도 있겠지만 희망찬 미래를 꿈꿔보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다. 야구 선수 정은원의 은퇴를 미리 그려본다면?

유명한 레전드 선수는 다 야구장에서 은퇴식을 하지 않는가. 나도 진짜 잘해서 한화의 레전드로 남고 싶고, 대전야구장에서 은퇴식을 하는 게 꿈이다.

최종적으로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가.

팀에 없으면 안 되는 선수? 은퇴한다고 해도 팬들이 ‘너 없으면 안 된다’라고 은퇴를 말리는 정도가 되면 정말 뿌듯하겠다.



훈훈한 외모만큼 성격도 서글서글해 보인다. 학창 시절 인기가 많았을 것 같다.

남중 남고를 나왔다. 전혀 없었다. (단호)

그래도 지금은 ‘대전 아이돌’이나 다름없다. 기분도 색다르겠다.

그렇게 불러주시는데 ‘대전 아이돌’이 맞는지 사실 잘 모르겠다. 야구장 근처에 있으면 조금 알아봐 주시는 분들도 있긴 한데 아직까진 대전에서도 크게 유명하지 않다. 다른 형들처럼 팬이 몰리고 이런 건 아니다. 그 별명이 붙을 정도의 인지도는 아니다. (이 정도 인기로는 부족하다?) 부족한 게 아니라 아직 때가 아닌 것 같다는 말이다. (웃음)

그만큼 유혹도 많을 때다. 슬럼프나 방황을 한 시기는 없었나.

작년에 있었다. 초반에 잘하다가 중간에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시합에 못 나가고 백업을 했는데 그때 많이 안일해졌다. 초심을 잃었다고 해야 하나. 처음 시합을 뛸 때 느낀 소중함이 조금 사라졌다. 계속 못 나가니까 스스로 기분이 내려앉고 좋지 않은 길로 가려고 할 때 주변에서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셨다. 듣다 보니 모두 맞는 말이라 정신을 다잡았다. 참 고마운 사람이 많다.

만약 야구를 안 했다면 뭘 했겠나.

(확신) 공부다. (어떤 쪽 공부에 관심이 있나.) 원래는 체육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체육 시간에 선생님이 공을 주면서 축구 하라고 말하는데 그게 되게 좋아보였다. 그 기억이 인상 깊어서 ‘나중에 야구를 하다 안 되면 체육 선생님을 해야지’라고 생각했다. (벌써 안 될 생각을 하는 건가.) 그럴 리가! 그냥 제2의 장래희망을 정해놓은 것뿐이다.

이글스TV에서 야놀자 댄스를 잘 봤다. 춤과 노래에 소질이 있어 보이는데 <더그아웃 매거진> 독자를 위해 응원가를 불러줄 수 있나.

꼭 해야 하는 건가? 정말 민망하다. 딱 한 소절만 하겠다. (완창 성공! 영상은 더그아웃 매거진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거 다 하는 거 맞나? (그렇다. 앞으로 다 할 거다.) 아 앞으로? 당한 것 같다. (한숨)

곧 생일이다. 계획이 있는가.

집에서 부모님과 밥도 먹고 친한 사람들과 놀러갈 계획이다.



본인 별명을 알고 있는가.

포근이. 제일 마음에 든다. 어릴 때는 딱히 불리는 게 없었는데 참 기분 좋은 별명이다.

선배 하주석은 ‘질문왕’이라 하더라. 대체 얼마나 질문을 하는 것인가.

그 정도는 아니다. (억울) 초반에는 (하)주석이 형한테 의지를 많이 했다. 시합 분위기를 몰라 혹시라도 실수할까봐 옆에서 종종 물어보곤 했는데 그게 그렇게 느껴졌나 보다.

가장 편한 선배는?

편한 선배는 없다. 주석이 형이나 (강)경학이 형 같은 내야 형들이랑 자주 어울리다 보니 친해지긴 했지만 편한 건 아니다.

아직까진 어색한, 친해지고 싶은 선수는?

최재훈 선배님이다. 선배님이 워낙 잘 챙겨주신다. 원정 가면 밥도 사주시고 야식 먹을 때 불러주셔서 같이 먹곤 하는데 나이 터울이 있다 보니 조금 어렵다. 더 가까워지고 싶다.

그렇다면 최재훈 선배에게 편지를 남겨보자.

선배님 비시즌은 잘 보내고 계십니까? 추운 날씨에 운동하느라 고생이 많으십니다. 못 본 지 오래돼서 많이 보고 싶은데 제가 대전 내려가서 꼭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맛있는 밥 사주십시오.

이제 후배가 생긴다. 막내 탈출이 아쉽진 않은가.

전혀 아쉽지 않다. 얼른 나이를 먹고 싶다. (왜 나이를 먹고 싶은가.) 그냥 세월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 어린 건 좋은데 사람들이 어리게 보는 게 싫다. 어른스러워 보이고 싶은데 아무리 노력해도 나이가 어리면 결국 어린애로 보더라. 그래서 서너 살이라도 먹고 싶다. 너무 많이는 말고 이십 대 중반까지만. (그때 꼭 인터뷰를 다시 해야겠다. 분명 지금 한 얘기를 후회할 거다.)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다. (웃음)

평소에는 생글생글 잘 웃는 것 같은데 팬들이랑 찍은 사진을 보면 유독 입을 앙다문 모습이다.

마음을 표현하는데 익숙하지 않다. 고맙다고 표현하고 싶은데 그게 생각처럼 안 된다. 본심은 아니다. 팬들에게 항상 고맙다.

그 사진들을 보며 또 놀란 게 있다. 옷을 굉장히 잘 입더라. 옐로 비니, 핑크 맨투맨, 그린 카디건까지 평소 야구 선수의 사복 패션에서 보기 힘든 컬러다.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은가.

원래는 관심이 많지 않았는데 처음 대전에서 생활할 때 아는 사람도 없고 할 게 없어 쇼핑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즌 초반에 옷을 참 많이 샀다. 외로워서 그랬다. (웃음)



본인이 생각하는 매력 포인트는?

어렵다. 팬들이 나를 왜 좋아할까? 아! 어떤 분이 나이에 맞지 않게 조금… 아니다. 내 입으로 도저히 못 말하겠다. 민망하다.

끝으로 심심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부족한 저를 좋게 봐주시고 예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 시즌에는 더 발전해서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몸 만들고 준비하겠습니다.

***

영화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디언’ 속 황혼의 나이를 바라보는 남자 버트는 협심증이 있음에도 200마일을 달리겠다는 목표 하나로 시속 54마일인 1920년산 오토바이를 수십 년간 개조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오토바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매년 경주에 출전해 기록을 갈아치웠다. 단 5분을 위해 평생을 달린 그의 열정은 어려운 금전 형편과 지독한 화상도 막을 수 없었다. 가야 할 때 가지 않으면 가려 할 때 갈 수 없다고 말하는 그는 영화의 주인공이기 전 실존 인물이었다.

달릴 수 있을 때 달려야 한다. 남들보다 빨리 기회가 온 만큼 전속력으로 돌진해야 한다. 물론 고된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은원의 뒤에는 든든한 형들과 사랑으로 보듬어주는 팬들이 있다. 그의 영화는 이제 막 크랭크인에 돌입했고,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릴 것이다. 관객의 믿음에 보답하는 별 다섯 개짜리 영화를 완성하길 애정으로 바라본다.


더그아웃 매거진 94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9년 94호(2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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