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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민 인터뷰①] "히딩크 아닌 국내감독이었다면 제가 월드컵 가능했을까요"

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입력 2019.02.16.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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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벌써 일 년이다. 한국 축구사에 가장 찬란하게 빛난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룬 2002 한일월드컵 23인 멤버 중 가장 마지막으로 은퇴한 현영민(40)이 그라운드를 떠난지.

은퇴 후 더 바쁜 선수들이 있는데 현영민이 딱 그랬다. 은퇴하자마자 방송가에서 그를 찾았고 선수들 사이에서는 재치 있는 입담으로 유명했던 그는 단숨에 해설위원으로 인정받았다. 러시아 현지까지가 월드컵 중계도 했고 이외에도 방송출연, 프로축구연맹과 신인선수 교육 등 많은 일을 도맡고 있다.

아직 한파가 가시지 않은 2월 경기도 하남에서 현영민을 만나 선수시절에 대한 회상, 축구선수로써 도전의 가치, 은퇴 후 삶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연령별 대표도 못했던 현영민, 대학교에서 눈을 뜨다

경희중-경희고 시절까지 현영민은 그리 눈에 띄는 선수가 아니었다. 연령별 대표 한번 해보지 못했고 대학 입학도 쉽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건국대 입학 후 현영민은 눈을 떴다. 현영민하면 떠오르는 일명 ‘경운기 드리블’, ‘롱스로인’, ‘정확한 킥’은 모두 대학교 때의 부단한 노력으로 완성됐다.

“대학교 1학년 때 남들보다 스로인이 멀리 나가기에 재미를 붙였어요. 그래서 허리와 어깨 보강 운동을 따로 하면서 근육도 키웠죠. 측면 수비수가 스로인을 전담하는데 유용하겠다 싶어 많이 연습했죠. 그리고 드리블은 제 대학교 선배이자 룸메이트였던 이영표 형에게 많이 배웠어요. 형에게 헛다리 페인팅을 물어보며 배웠고 형도 많이 알려주셨죠. 그리고 킥도 대학교 선배들이 차는걸 보며 따라해 보고 했죠. 지금 보면 대학교 때 매일같이 연습했던 것들이 제 특기로 남게 됐더라고요.”

고등학교까지 체력만 좋지 체격은 왜소했다는 현영민은 대학교 입학 후 키도, 체구도 커지면서 남다른 노력까지 더해져 축구에 눈을 떴다. “제 또래는 박동혁, 설기현, 이동국, 송종국 같은 선수들이었는데 저는 그들이 청소년 대표에 뽑혀갈 때 그저 바라보기만 했죠. 솔직히 ‘저 선수들은 저렇게 잘하는데 나는 프로에나 갈수 있을까’하고 생각하기도 했었죠”라며 쉽지 않았던 당시를 떠올렸다.

▶주말 반납한 끊임없는 노력, 히딩크 감독이 알아봤다

또래들에게 뒤처지고 대학교까진 갔어도 프로 진출도 힘들 수 있던 상황에서 현영민이 택한 것은 ‘맹훈련’뿐이었다. “전 제 또래들이 잘나갈 때 ‘내가 부족한걸 메우면 언젠간 기회가 오지 않을까’하며 훈련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남들은 다 주말에 여자친구 만나고 고향집에 가도 혼자 남아 죽어라 훈련만 했죠”라며 회상했다.

대학교때 흔하디흔한 연애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주말은 쉬는날이 아니라 현영민에게 부족한 부분을 더 훈련하는 나날들이었다.

“솔직히 힘들었죠. 하지만 ‘무조건 성공해야지’, ‘프로 가는 계약금 받아서 부모님 집 사드려야지’라는 생각만 가지고 훈련했어요. 물론 저도 국가대표도 되고 은퇴식도 치르는 멋진 선수가 되는 상상을 그때도 했죠. 하지만 그건 불확실한 미래고 그저 ‘꿈’이었어요. 그 속에서 할 수 있는건 훈련밖에 없었어요.”

현영민이 택한건 축구의 본질을 꿰뚫어본 훈련이었다. “축구는 결국 많이 뛰어야하는 스포츠예요. 그래서 활동량과 체력을 기를 수 있는 훈련을 많이 했죠. 결국 그게 거스 히딩크 감독님 눈에도 들었었나봐요”라고 비결을 털어놨다.

ⓒAFPBBNews = News1

그의 노력은 단숨에 2002 한일월드컵을 준비하던 거스 히딩크 국가대표팀 감독의 눈에 든다. 노력이 조금씩 빛을 발했지만 그래봤자 대학무대였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대학무대에서도 재능을 찾았고 현영민을 봤다. 그리고 테스트 기회를 줬고 현영민은 이 악물고 축구대표팀의 고강도 훈련을 버텨냈다. 이름값 있는 많은 선수들이 떨어져나갔지만 현영민은 계속 대표팀에서 살아남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과연 국내 감독님이었다면 2002 한일월드컵에 제가 발탁될 수 있었을까 싶어요. 전 커리어도 없는 대학선수였잖아요. 대표팀에 바로 뛸 레벨이 아니었죠. 그런데도 테스트 기회를 주셨고 이름값 있는 선수들과 편견 없이 봐주셨어요. 저와 차두리가 그렇게 발탁된 선수였고 대학교 선수로 월드컵까지 간 마지막 사례로 남아있죠.”

▶히딩크-베어벡-박항서, 최고의 지도자와 함께하다

현영민에게 2002 한일 월드컵은 비록 출전은 하지 못했더라도 최고의 지도자와 함께한 인생 최고의 순간 중 하나다.

“지금 보면 히딩크 감독님에 얼마전 은퇴하신 핌 베어백 당시 코치님, 박항서 코치님 등 훌륭한 지도자분들이 많으시잖아요. 그런 분들의 지도를 모두 받아봤다는 것만으로 아직 대학생이었던 저는 정말 큰 자산이었고 향후 프로 커리어를 성공적으로 이어가는데 큰 영향을 받았죠.”

우스갯소리로 ‘양아버지’라고 부른다는 히딩크 감독, 항상 온화하게 선수들을 감싸주던 베어벡, 인간승리의 표본을 보여준 박항서 감독 등에게 많은 것을 배운 현영민에게도 아쉬움은 있다. 23인의 선수 중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딱 5명(윤정환, 최성용, 현영민, 김병지, 최은성) 중 한명이었다는 것. 하지만 현영민은 “지극히 개인적인 아쉬움이지 모두 뛰어난 선배들이었고 누구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아요. 그저 영광의 순간을 함께했다는 것만으로 자부심이 크죠”라며 웃었다.

최근 현영민 등 2002 한일월드컵 멤버들은 박항서 감독과 한국에서 저녁식사를 하며 회포를 풀었다. “박 감독님은 항상 한국에 오시면 후배들을 찾아서 식사자리를 만드세요. 소탈하게 소주 한잔 하시면서 예전 이야기를 하며 즐거워하시죠”라며 웃은 현영민은 박항서 감독에게 미안한 마음도 털어놨다.

“사실 2002 월드컵이 끝나고 열린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박항서 감독님이 당시 최강희 코치님과 함께 팀을 이끄셨는데 제가 더 잘해야 했는데 4강에서 탈락한 것에 지금도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 얘기를 하니 박 감독님은 ‘괜찮다’며 웃으시는데 당시 박 감독님께 아시안게임은 중요한 커리어였거든요. 이후 박 감독님이 베트남에서 국민영웅이 되신걸 보면서 정말 존경스러운 마음이 절로 들어요.”

ⓒAFPBBNews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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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이재호 기자 jay12@sportshank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