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만큼 농구 잘하는 허웅·허훈 형제

박린 2019. 2. 19.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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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대통령 2세 올시즌 활약
첫 공식 대결선 형이 완승
28일 원주서 두번째 맞대결
허재 "형제 대결도 양보는 없다"
‘농구 대통령’ 허재 전 대표팀 감독의 2세 허웅(왼쪽)과 허훈(오른쪽) 형제. 두 사람은 중저음 목소리는 물론 농구 실력까지 아버지를 빼닮았다. 형제는 28일 원주에서 두번째 맞대결을 벌인다. [임현동 기자]
“강아지 이름이 ‘코코’에요. ‘허씨 삼부자’ 모두 코가 커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어요.”

말티즈 종 강아지를 안고 나타난 프로농구 원주 DB 허웅(26)과 부산 KT 허훈(24)이 “허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허웅·허훈 형제는 ‘농구 대통령’ 허재(56) 전 대표팀 감독의 아들이다. ‘허씨 삼부자’는 큰 코와 중저음의 목소리는 물론 농구 실력까지 빼닮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허웅이 애완견 코코를 안고 있다. 허재 삼부자 모두 코가 커서 이름을 코코로 지었다. 허웅은 어머니가 집에서 홀로 외로울까봐 강아지를 선물했다. 임현동 기자.
프로농구는 농구 월드컵 예선과 맞물려 18일부터 열흘간 휴식에 들어갔다. 이틀간 짧은 휴가를 받은 허웅과 허훈은 18일 서울 중구의 자택에 모였다. 형제는 우애가 깊다. 허웅은 “다른 형제들이 우리를 보면 신기해한다. 매일 연락하고 비시즌에는 영화도 함께 보고, 쇼핑도 같이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프로농구에서 승부는 양보할 수 없다. 형제는 지난 13일 원주 종합체육관에서 치열한 맞대결을 펼쳤다. 두 사람이 공식 경기에서 정식으로 맞대결을 펼친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두살 터울인 형제는 삼광초-용산중-용산고-연세대를 나란히 다녔다. 대학을 졸업한 뒤 형 허웅은 2014년 프로농구 DB에 입단했다. 동생 허훈은 2017년 프로에 입단했지만, DB에서 뛰던 허웅이 상무에 입대하면서 맞대결이 늦춰졌다.

그런데 지난달 허웅이 전역하면서 형제는 공식 경기에서 처음으로 맞붙었다. 허웅은 “어릴 적부터 1대1 대결은 몇천번은 한 것 같다. 10점 내기를 하는데 승률은 50대50 정도였다. 그런데 진 사람이 꼭 ‘다시 하자’ 고 해서 결국 한 판이 열 판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DB와 KT의 경기. 허훈의 슛을 형 허웅이 막고 있다. [연합뉴스]
형제의 첫 공식 대결에서는 형이 웃었다. DB의 슈팅가드 허웅은 24점·6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팀의 80-53 대승을 이끌었다. 3점 슛 5개 중 4개를 성공했다. 반면 KT의 포인트가드 허훈은 이날 5점에 그쳤다.

허웅은 “경기를 앞두고 아버지가 ‘동생한테 1점도 주지 말라’라고 농담을 하셨다. 아버지 말씀대로 제가 털어버렸다”며 활짝 웃었다.

형제는 맞대결을 펼친날 똑같은 농구화(나이키 하이퍼어택)를 신었다. 허훈은 “형 제대 기념으로 내가 농구화를 사줬다. 형이 군에 있는 동안 30만~40만원씩 용돈을 주다 보니 빈털터리가 될 뻔했다”며 “대학 시절에는 (먼저 프로에 진출한) 형이 용돈을 많이 줬다”고 말했다.

‘농구 대통령’ 허재 전 대표팀 감독의 2세 허웅(왼쪽)과 허훈(오른쪽) 형제. 두 사람은 중저음 목소리는 물론 농구 실력까지 아버지를 빼닮았다. 형제는 28일 원주에서 두번째 맞대결을 벌인다. [임현동 기자]
허웅은 군에 다녀온 뒤 농구 실력이 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10일 SK전에서도 3점 슛 5개를 포함해 26점을 몰아넣었다.

프로농구연맹(KBL) 관계자는 “허웅이 상무에서 제대를 앞두고 마지막 8개월간 새벽과 야간에 집중적으로 개인훈련을 하더니 실력이 훨씬 좋아졌다”고 전했다. 허웅은 “군 생활을 하는 동안 ‘어떻게 하면 경쟁력을 갖추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각을 많이 했다. 군대에서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면 농구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훈이도 군대에 가는 게 좋다”며 웃었다.

허훈은 맞대결에서 형에게 진 뒤 정신을 바짝 차렸다. 허훈은 지난 17일 SK전에서 3쿼터에만 17점을 기록하는 등 개인 최다인 25점을 올렸다. 동생의 경기를 모두 챙겨본다는 허웅은 “수비하는 입장에서 포인트가드 훈이를 막기 힘들다. 일대일 능력이 뛰어난 데다 드리블 돌파도 좋다”며 “훈이가 대표팀에서 함께 힘든 시기를 겪은 뒤 부쩍 성장한 것 같다”고 말했다.

허웅과 허훈 형제는 지난해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당시 나란히 태극마크를 달면서 ‘혈연농구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농구대표팀을 이끌었던 허재 감독이 두 아들을 뽑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농구 대표팀은 동메달에 그쳤고, 결국 허재 감독은 지난해 9월 사의를 표명했다.

허웅은 “삼부자가 대표팀에 뽑힌 건 큰 영광이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 아쉬웠다. 팬들에게 인정을 못 받았다는 걸 알고 있다”면서 “나와 훈이는 자만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앞으로 잘한다면 팬들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허훈도 “농구공을 잡는 순간부터 ‘허재 아들’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팬들의 비난과 질타가 없었다면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련이 우리 형제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아버지 허재 감독은 대표팀에서 물러난 뒤 야인 생활을 하고 있다. 허 감독은 “두 아들이 아버지 그늘에 가려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텐데 스스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다”면서 “또 맞대결을 펼칠 텐데 형제라도 양보란 없다. 죽기 살기로 할 수밖에 없다”며 허허 웃었다.
13일 강원 원주종합체육관에서 열린 2018~2019 프로농구 원주 DB 프로미와 부산 KT 소닉붐의 경기가 DB의 승리로 마친 뒤 DB 허웅과 KT 허훈이 서로 스쳐 지나가고 있다. 두 선수는 형제 사이로 이날 경기에서 첫 맞대결을 펼쳤다. [연합뉴스]

형제는 28일 원주에서 두 번째 맞대결을 펼친다. 허훈의 소속팀 KT는 4위(23승22패), 허웅이 몸담은 DB는 7위(22승24패)를 달리고 있다. 3위부터 7위까지 승차가 2.5경기에 불과할 만큼 6강 플레이오프 경쟁이 치열하다. 허훈은 “제가 0점에 그치더라도 팀이 이길 수 있도록 몸을 던지겠다”고 다짐했다. 허웅은 “팬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실력으로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형제가 맞대결을 펼칠 원주 종합체육관에는 아버지 허재 감독의 백넘버(9번)가 새겨진 유니폼이 걸려있다. 허웅은 “인연이란 게 신기하다. 영구결번된 아버지의 백넘버가 적힌 유니폼이 걸려있는 코트에서 형제가 맞대결을 펼친다. 은퇴할 때 아버지 유니폼 옆에 내 유니폼이 걸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형제가 모두 이번 대표팀에서 탈락했지만, 열심히 해서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싶다. 팬분들에게 인정받을 때까지 뛰겠다”고 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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