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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ISP] 김용일 트레이닝 코치

조회수 2019. 2. 20.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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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트레이닝 코치의 개척자, 세계의 무대로

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근대 과학의 아버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있다면 한국 프로야구 트레이닝 코치의 아버지는 이 인물이 생각난다. 강산이 3번 변하는 기나긴 시간 동안 오로지 선수들의 건강을 위해 꾸준히 한 길을 걸어왔다. 수많은 후배 트레이너에게 “선수들을 마치 아들처럼 여겨라, 그라운드에서 그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오래도록 야구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당연한 것처럼…”이라는 말을 달고 살지만 정작 본인의 두 아들에게는 늘 미안한 아버지다. 가족을 향한 애틋함을 가슴 한편에 묻은 채 그라운드에서는 언제나 선수들을 위한 아버지가 돼줬다. 2003년 한국 최초로 트레이닝 코치라는 직함을 달고 최초를 넘어 최고의 트레이닝 코치라는 타이틀을 이어나가고 있는 김용일 코치. 올해로 54세, 100세 인생에서 절반이 조금 넘은 지천명의 나이에 LA 다저스 류현진의 전담 트레이너로서 2019년 메이저리그에 새로운 둥지를 틀게 됐다. 세계무대를 밟게 된 ‘training coach Kim’ 출국을 단 이틀 앞둔 그와 진솔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박서휘 Location 잠실야구장




<더그아웃 매거진>과 첫 인연이다. 인사 부탁한다.

전 LG 트윈스 트레이닝 코치이자 2019년부터 류현진 선수의 개인 트레이너를 맡은 김용일입니다. 반갑습니다.

새해부터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소감이 어떤가?

30년간 트레이너 일을 하면서 메이저리그라는 큰 무대에 꼭 가보고 싶었다. 최고의 선수들이 하는 운동과 관리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는데 꿈을 이룸과 동시에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게 돼 무척 영광이다. 다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인 류현진 선수와 반드시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크다. 그동안 잔 부상이 많았는데 올 시즌에 그의 옆에서 함께 최선을 다해 도움이 되고 싶다.

류현진 선수의 전담 트레이너로 함께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지난 2016년 11월 류현진 선수와 재활 운동을 맡게 됐다. 그 후에도 2년간 트레이닝을 맡았는데 선수 본인이 결과에 만족한 것 같다. 그가 나에게 함께 하자고 요청했을 때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어 결정하게 됐다.

개인 트레이너 제안을 받았을 때 처음 든 생각은?

고민이 많았다. 기존에 있던 팀에도 계속 도움이 되고 싶었고 한편으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곳에서의 배움에 대한 갈망이 생겼다. 하지만 오랜 기간 국내에서 트레이너 생활을 해온 만큼 도전을 택하는 것에 대해 섣불리 결정할 수는 없었다.

고민되고 망설여진 주된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가장 먼저 가족 생각이 나더라. 30년간 트레이너 생활을 하면서 가족에 대한 미안함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 아내가 마음고생이 많았고 아이들도 매우 힘들었다. 처음 류현진 선수에게 연락을 받았을 때는 모든 게 결정 난 것도 아니었다. 본인에게 개인 트레이너를 해주면 좋겠다는 의사를 들은 것이지 구단 자체에서 결정된 바는 없었다. 구단 측에서 허락해주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걱정이 많았다.




만감이 교차했겠다. 말한 대로 류현진 선수와 여러 차례 훈련 파트너로 만난 적이 있는데 첫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2016년 11월 7일이다. 류현진 선수가 수술을 마치고 귀국하기 전 재활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구단에 양해를 구하고 운동을 시작했다. 2015년도에 어깨 수술을 했고 이듬해에 팔꿈치 수술까지 한 터라 본인도 부족함을 느끼는 부분이 있었고 내가 볼 때도 문제점이 많은 상태였다. 그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11월부터 2월까지 애리조나 캠프에서 트레이닝을 했다. 운동을 어떻게 시키는지도 중요하지만, 선수가 그 운동에 대해서 얼마만큼 받아들일 수 있고 나 또한 그 선수의 운동 습관에 대해 얼마만큼 이해하고 있는지가 관건이었다. 그런 부분에 있어 커뮤니케이션이 잘된 점이 고무적이었고 본인도 효과를 느끼게 됐다고 한다.

다저스 구단과 얘기는 어떻게 이뤄졌나.

처음에는 다저스에서 취업비자가 나올 확률이 70%밖에 안 된다고 들어 고민이었다. 팀 계약이나 다음 시즌에 대한 계획이 12월에는 끝나야 하는데 그때까지 결정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머지 30%의 확률로 잘못됐을 때 현재 가진 직업에도 위험성이 있었다. 다행히도 12월 15일에 다저스에서 최종적으로 취업비자가 가능하다고 연락이 왔다.

해결돼서 다행이다. 최고의 투수와 트레이너, 앞으로 둘의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건 비시즌이다. 경주용 자동차도 레이스를 하고 나면 정비를 하고 좋은 기름을 넣는 것처럼 비시즌이 선수들에게 바로 그런 기간이다. 시즌 동안 몸을 많이 썼기에 말썽인 부분을 치료하고 강화해서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 한다. 그동안 류현진 선수는 트레이닝 보다 재활 위주로 준비했다. 지난 시즌 중에 내전근 부상이 있었지만, 다행히 시즌이 끝날 무렵 회복을 한 상태이기 때문에 바로 근력 운동을 하는 쪽으로 맞췄다. 그런 부분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상당히 만족스럽다. 부상이라는 게 막는다고 막을 순 없다. 하지만 옆에서 꼼꼼하게 챙겨서 최대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시즌을 탄탄히 준비하려고 한다.

‘개인 트레이너’라는 것이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이례적인 만큼 어깨가 무거울 법도 하다.

그렇다. 프로야구에는 27명의 엔트리 선수가 있고 미국도 정해진 엔트리 인원이 있는데 트레이너의 역할은 그 엔트리 안에서 선수를 관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체 선수를 상세하게 개개인에 맞춰 돌봐주기란 쉽지 않다. 그런 아쉬운 점을 채우기 위해 있는 역할이 개인 트레이너고 선수에게 맞는 개별 시스템을 구축하면 좋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마쓰자카 다이스케나 다나카 마사히로 같은 대부분의 A급 선수는 개인 트레이너를 동반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처음 전담 트레이너의 길을 걷게 됐기 때문에 그만큼 부담이 뒤따른다. 책임감을 느끼고 그동안 쌓은 노하우에 메이저리그 스태프의 도움을 곁들여 열심히 해내고 싶다.




# 한국 프로야구 최초 트레이닝 코치

1989년부터 지금까지 꽤 오랜 시간 트레이너로 지내왔다.

만 30년, 참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나 역시 운동을 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허리를 다쳐 대학교 1학년 때 운동을 그만두게 됐다. 막상 할 수 있는 직업도 없고 미래에 뭘 할지 막막하더라. 막연하게 새로운 일을 찾다가 이 직업을 만났다. 그 후 단 한 번도 이 선택에 대해 후회한 적이 없다. 선수가 건강하게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사명감과 만족감을 느낀다. 이 마음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 같다.

진심과 실력이 통했던가. 2003년 현대 유니콘스 시절 국내 최초로 트레이닝 코치라는 직함을 달았다. 그 순간이 기억나는가?

뚜렷이 기억한다. 한때는 트레이너라는 직업에 대해 선수, 코치진, 그리고 구단에서 상당히 낮게 평가하는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점점 트레이너의 중요성을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치진과의 미팅을 비롯해 선수단에 문제가 생겼을 때 목소리 낼 수 있도록 코치라는 직함을 달아줬다. 정말 그때는 잊을 수 없을 만큼 감격스러웠다. 물론 직함을 달았다고 해서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어김없이 선수들을 위해 일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 1호 트레이닝 코치로 오랜 기간 한국 프로야구를 맡아오면서 아쉬운 점이 있다고.

아쉬운 점은 선수들이 FA(Free Agent, 자유계약선수)가 되면 100억 이상의 상당히 높은 금액이 책정되지 않나. 전체로 따지면 총 1000억 이상의 값어치가 되는 선수들을 한 팀에서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귀한 선수들을 관리하는 트레이너 파트는 국내에서 여전히 소극적이라 안타깝다. 대부분 팀 성적이 떨어지면 선수의 부상이 원인이라고 말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서는 트레이너의 역할이 필요하다.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트레이너의 위치나 업무적인 부분이 개선되길 바란다.




재활 트레이닝의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여러 곳을 방문했다. 어떤 점을 배우게 됐는가?

1990년 시즌이 끝나고부터 일본을 시작으로 미국 교육리그와 독일에 갔다. 그때마다 매번 느낀 것은 결국 선수가 ‘주’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개개인의 능력이 우선돼 협동에 있어 다소 부족한데, 선수가 건강해지려면 우리도 일본이나 미국처럼 꼼꼼한 시스템을 갖춘 후 구단과 코치진이 모두 하나 돼야 한다.

현대에 있던 당시 스프링 캠프 장소였던 브래이든턴 훈련장을 피치버그 선수들과 사용하며 미국식 트레이닝 배웠다고 들었다. 우리나라와 어떤 부분이 다르던가?

2000년에 처음 갔는데 첫해에는 밖에서만 볼 수 있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올 시간이 되면 우리는 다른 쪽으로 이동해야 하므로 메디컬 테스트를 먼발치에서 지켜볼 뿐이었다. 아쉬움이 컸던지라 다음 해에는 아내가 남대문에서 사다 준 우리나라 전통 액세서리와 인형 등의 선물을 가져갔다. 그 선물을 트레이너들에게 주면서 부탁했다. “우리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짧은 시간에 다 보고 기억해내기 힘들어서 비디오나 사진을 찍고 싶다”라고 얘기하면서 말이다. 그때 선물과 진심이 통해 허락을 받고 사진과 영상을 찍을 수 있었다. 그 자료를 지금까지 유익하게 활용하고 있다. 당시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한 건 바로 파일 정리다. 메이저리그는 선수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또 그 선수가 그동안 어떻게 준비를 해왔는지에 대해 꾸준히 기록한다. 선수를 디테일하게 관리하려면 빠짐없이 모든 자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좋은 경험이었다. 그 후부터 쭉 선수들의 개별 파일을 정리하고 있다.

꾸준하게 기록하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수십 년간 파일을 기록했다니 대단하다. 본인만의 파일 기록 비법이 있는가?

2000년도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데일리 레코드를 작성한다. 어떤 선수가 오늘 어떤 보강 운동을 했고 안 했는지. 누가 선발, 중간, 마무리로 던졌는지. 문제가 생기면 그것에 대해서도 세세하게 기록한다. 어느 날은 ‘어떤 선수에게 술 냄새가 났다’라는 내용까지 적혀있다.




#류현진의 수호신

2017년 류현진 선수의 재기를 위해 어떤 트레이닝을 했는가.

류현진 선수가 왔을 때는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정상적인 트레이닝이 이뤄지지 않았다 보니 어깨의 불균형과 등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 이는 투수가 공을 던지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근육 불균형 해결과 유연성 강화를 위해 집중적으로 트레이닝 했다.

그의 성공적인 재기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의사를 비롯해 트레이너 대부분이 당시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나조차도 직접 그와 운동해보지 않았다면 부정적으로 얘기했을 것이다. 투수에게 어깨 슬랩 수술에 이어 팔꿈치 부상이 오는 것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보통 수술을 한 후 가장 큰 문제는 구속 저하인데 그렇게 되면 사실상 메이저리그 강타자를 상대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재기를 긍정적으로 얘기한 건 그가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4개월 동안 함께 운동하며 ‘역시 이 선수는 타고난 능력이 있구나’를 느꼈고 분명히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믿음에 부응하듯 성공적인 재기를 보여줬다. 지난 시즌에 맹활약하던 류현진 선수가 내전근 을 다쳤을 때도 도와줬다고.

류현진 선수가 복귀한 후부터는 한 경기도 빠짐없이 챙겨봤다. 내전근이 다칠 때도 경기를 보고 있었는데 보는 순간 일반적인 근육 부상이 아니라 근육이 뼈에 붙는 부착 부분인 건이 손상됐다는 걸 알았다. 바로 연락이 왔고 그를 돕기 위해 여러 운동 방식이 담긴 영상을 찍어 보내줬다. 그동안 함께 재활하며 쌓은 서로 간의 신뢰가 있었기에 도움을 요청했다고 생각한다.




#김용일이라 쓰고 ‘레전드’라 읽는다

다시 본인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처음 트레이너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중학교 1학년 때 양궁을 시작했고 선수 체전 우승을 하게 되면서 경북체육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체육고등학교는 모든 운동 종목으로 시험을 치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 텀블링 시험을 준비하다가 허리를 다쳤다. 회복을 위해 병원을 수도 없이 다녔지만 완치가 어려워 그만두게 됐다. 그 후 나처럼 부상으로 인해 운동을 그만두는 선수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다양한 준비를 했다. 적십자 응급처치 강사, 운동 처방, 마사지, 교정, 하다못해 레크리에이션 지도자 자격증까지 당시 딸 수 있는 자격증은 다 따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다. 수많은 경험을 하다 보니 결국 내게는 오직 트레이너라는 직업밖에 없다고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됐다.

많은 스포츠 중 야구 트레이너로 시작하게 된 계기는?

대학생 때는 축구 선수들을 따라다니면서 봉사 활동도 하고 직업을 구하려고 다양하게 찾아다녔다. 취업을 위해 이력서를 넣다가 마침 MBC 청룡이 트레이너를 모집한다고 해서 지원했는데 합격했고 야구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그렇게 운명처럼 시작된 야구와의 인연. 국내 트레이너 중 최고로 인정받으며 여러 국제 경기에서 국가대표팀 트레이너로 활약하게 됐다.

1998년까지 LG에 있다가 1999년 처음 국가대표 전담 트레이너를 맡았다. 그때부터 10년 동안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등 각종 국제 대회에서 트레이너를 담당하고 있다.

10년 동안 태극마크를 단 트레이너가 선수들을 관리하는 노하우가 있다면?

나는 사실 선수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꼭 해야 하는 부분에 있어 절대 타협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별명도 ‘벽’이라고 하더라. (웃음) 하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바뀐 부분이 있다. 이제는 강제적으로 시키는 운동이 아니라 선수들에게 왜 이 운동이 필요한지 설명하고, 그런데도 선수들이 원치 않는다면 억지로 시키지 않으려 한다. 스스로 하려고 해야 좋은 결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시대에 맞게 바뀌어 나가는 트레이너라니, 인상적이다. 트레이닝 코치의 개척자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많은 사람에게 선수들이 당신의 아들이라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내 아들이 야구를 한다면 그가 건강하게 오랫동안 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당연히 부모가 할 일 아니겠나. 우리 선수들은 아마추어에서 너무 많이 다치고 온다. 아마추어에서 무리하게 시킨다는 게 아니라 아직까지 선수들을 체계적으로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있지 않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적은 수요로 건강한 야구를 오랫동안 이끌고 나가기 위해선 구단과 스태프가 함께 좋은 체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국제 대회에서도 압도적으로 싸울 수 있는 좋은 선수들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본다.




#Happy MLB Year 2019

미국 생활을 앞두고 있는데 기대되는 점은?

가장 기대되는 건 메이저리그 선수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관리법을 하나하나 배워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클레이튼 커쇼 같은 선수가 어떤 운동을 하고 식습관은 어떻게 하는지 매우 궁금하다.

김용일 코치의 메이저리그 첫 시즌을 응원하겠다. 그 외에 2019년의 희망하는 바가 있다면?

첫 번째는 류현진 선수가 내 도움으로 인해 좀 더 많은 이닝을 던졌으면 한다. 두 번째는 항상 미안한 아내와 두 아들이 내가 없는 동안 건강하게 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용일에게 트레이닝이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큰 부분이다. 트레이닝이 참 어려운 것이 결과도 결과지만 그 준비과정이 중요하다. 결국, 선수가 최고의 퍼포먼스를 발휘하기 위한 것이지 않나. 기초적이고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챙겨서 완벽한 컨디션을 만들고 그들이 그라운드에서 건강하고 멋있는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든 과정이 트레이닝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야구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부분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다저스 및 류현진 선수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류현진 선수를 사랑하는 팬 여러분, 제가 올 시즌 류현진 선수와 동행하게 됐습니다. 여태까지 30년을 해오면서 항상 소신껏 제 직업에 최선을 다했는데, 앞으로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열심히 응원해주세요. 감사합니다.


더그아웃 매거진 94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9년 94호(2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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