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의 축구일기] 고마운 사람, 그의 이름은 팀 발터 (Tim Walter)

조회수 2019. 2. 22.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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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발터 (Tim Walter). 그는 제가 꿈꿔 온 유럽 무대에 첫 발을 내딛게 해준사람이자 현재 홀스타인 킬의 감독입니다.

(독일어에서는 W가 ‘붸’로 발음되기 때문에 왈터가 아닌 발터라고 읽는답니다.)

출처: 게티이미지 코리아

발터 감독님과의 첫 만남은 핸드폰 속 영상통화에 비친 얼굴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나요. 2018년 7월10일 저녁, 울산에 위치한 어느 호텔 웨딩홀에서 처음 영상통화를 하게 됐죠. 당시 저의 상황은 러시아 월드컵을 다녀온 직후였고, 그 어느 때보다 유럽진출에 목말라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유럽진출을 위해서 몇년간 다방면으로 알아보고 노력했는데, 막상 내가 가게 될 지도 모르는 유럽팀 감독님과 영상통화를 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무척이나 떨리고 긴장됐습니다. 저의 친형이 옆에서 영상통화 내용을 통역해주었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휴대폰 화면을 통해 보이는 감독님의 첫 인상, 저를 보며 밝게 웃는 모습이 너무 좋았고, ‘아..이 사람이 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구나..!’ 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하지만 감독님의 밝은 미소와 반대로, 저는 영상통화 내내 유럽에서 플레이하게 될 제 모습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계속해서 내가 유럽에 가서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긴장과 걱정 섞인 질문만 반복했던 기억이 나요. 그렇게 오랜시간 준비하고 기다려왔던 유럽진출이 임박한 순간, 솔직히 전 기대보다 걱정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첫 영상통화 후, 2주동안 정말 많은 고민을 했어요. 당시 독일팀 외 덴마크 팀에서도 제안이 온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는 덴마크와 독일, 독일과 덴마크를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갈 정도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죠. 결국 다들 알고계시듯이 제 선택은 독일이었습니다.

발터 감독님과 두 번째 영상통화를 하기 전에 독일행을 결심했지만, 그 순간에도 저는 스스로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과연 낯선 무대에서 잘 해낼 수 있을까.. 이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까..’ 이런 걱정과 고민의 연속이었죠. 그런 제 심정이 휴대폰 너머 독일까지 전달되었는지 감독님은 계속해서 “너는 분명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 “너를 10번 선수로 성장시켜보고 싶다.”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감독님의 그런 자신감과 저에 대한 믿음을 확인하게 되자, ‘아.. 이 감독님이 정말 나에 대한 확신이 강하구나..’ 라고 느꼈고, 무엇보다 내가 독일에서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감독님 만큼은 나를 지켜줄 것 같다는 믿음으로 독일행을 확실하게 결정짓게 됐습니다.


2018.07.26 독일에 처음 온 날.

인천을 떠나 두바이를 경유해 함부르크에 도착하고 다시 킬까지 이동하는 약 20시간의 긴 여정이였지만 새로운 환경에 대한 설레임과 긴장감을 즐기며 독일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곧바로 팀 매니저를 만나고 메디컬 테스트를 받은 뒤 구단 클럽하우스에서 드디어 감독님을 만났죠. 발터 감독님은 영상통화를 통해 절대 예상하지 못했던 큰 덩치를 가진 남자였어요. 감독님은 저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안아준 뒤 킬 지역에서 가장 좋은경치의 레스토랑에 데려가 주셨는데, 레스토랑 이름이 ’SEE BAR’ 였습니다.

아름답고 이국적인 레스토랑 SEE BAR의 전경

그곳에서 감독님께 전해 들은 이야기는 “내일 뮌헨으로 연습경기를 떠나는데 LEE(이재성)도 함께 간다!” 였어요. 처음에는 믿지 않았죠. 저는 장거리 비행과 이동을 마치고 오늘 막 새로운 팀에 합류했으니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비현실적인 일정 같았지만 그만큼 감독님이 제 플레이를 직접 확인하고 싶어한다고 생각하니 또 다른 긴장감과 의욕이 생겼습니다.

독일 도착 다음날 원정 경기를 위해 뮌헨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다음날, 처음 만난 동료들과 함께 곧바로 뮌헨으로 떠나는 원정 비행기에 탑승했고, 세상에 정말 놀랍게도 저는 그 경기에서 교체 투입되며 첫 출전을 했죠.

독일 도착 다음 날, 첫 경기 교체 출전 직전의 모습


사랑스러운 나의 첫 팬들과의 만남

그러고 며칠 뒤, 지역 마트에서 팀 사인회가 열렸어요. 그때 감독님 아이들이 왔는데 그 중에 막내 아들이 킬 선수들 중 저를 가장 좋아한다고 하더라구요. 실제로 제 이름이 마킹 된 유니폼을 입고와서 사인을 해달라고 왔는데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한국에 있는 조카들과 전북 시절 응원해주시던 어린 팬들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팀 사인회에 참석한 이재성 선수 (출처: 이재성 선수 제공)

자연스레 감독님 아들과 장난도 치면서 잘 놀아주었는데 그 이후로 아이들이 저를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았어요. 감독님도 제가 아이들이랑 잘 놀아준게 고마웠는지 독일에서 맞이한 저의 첫 생일 날 아이들에게 직접 생일노래까지 부르게 하고 본인이 직접 영상을 찍어서 보내주셨는데 타지에서 서양인에게서 느낀 그 따듯한 정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그 고마움에 보답하고자 크리스마스 선물로 아이들에게 한국에서 사온 잠옷을 선물해줬더니, 감독님은 또 아이들이 그 옷을 입은 인증샷까지 직접 찍어주셨어요. 정말 재미있고 정이 넘치는 감독님이죠?

감독님이 직접 찍어 보내준 아이들 잠옷 인증샷 (출처: 이재성 선수 제공) 

이렇게 감독님 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저를 좋아하고 아껴주니 저도 그 믿음과 기대에 꼭 부응하고 싶은 마음이 큽니다. 물론 저 스스로, 그리고 팀원들, 감독님 모두 아직은 낯선 점이 있고, 당분간은 서로에게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지금 이 마음가짐으로 킬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이번 시즌이 끝날 때 서로 안아주면서 서로에게 고맙다고, 즐거운 한 시즌이었다고 진심으로 인사를 주고받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날이 벌써 기다려지네요 ^^ 


이재성의 축구일기를 관심 갖고 읽어주시는 팬 여러분 감사합니다! 경기 일정 때문에 자주 쓰진 못하지만, 독일에서 생활하며 틈날 때마다 정리해놓은 이야기를 편하게 쓰려고 노력할게요! 이번 주말 이청용 선수와 코리안더비가 예정되어 있는데, 가능하면 다음주에 코리안리거 이야기로 3편을 써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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