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배틀그라운드에서 데이터 분석은 어떻게 다뤄질까

윤민섭 기자 2019. 3. 2.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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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지지 윤정환 분석가가 지난 22일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를 마친 뒤 사옥 앞에서 포즈를 취한 윤 분석가.

오피지지(OP.GG)는 국내외 게이머들 사이에서 높은 인지도를 보유한 사이트다. 리그 오브 레전드와 배틀그라운드 등 인기 게임과 관련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며, 전적 통계 등 대부분 서비스가 데이터에 기반을 둔다.

국민일보는 서울 대치동 오피지지 사옥에서 오피지지 윤정환 분석가와 만났다. 지난해 입사한 윤 분석가는 현재 배틀그라운드와 포트나이트 종목의 데이터 분석을 맡고 있다. 배틀그라운드에서 데이터 분석이 어떤 식으로 활용되는지를 물었다.

-게임과 e스포츠 시장에서 데이터 분석가라는 직업은 생소하다. 본인 소개를 해달라.

“흔히들 아시는 데이터 분석가 역할과 같다. 받은 데이터를 목적에 맞춰 가공하고, 이를 시각화하거나 ‘인사이트’를 찾아내는 일을 한다. 다만 저는 데이터의 도메인이 게임일 뿐이다. 세부 종목으로는 배틀그라운드와 포트나이트를 담당하고 있다.

e스포츠 쪽에서는 선수를 지도하는 데 필요한 데이터를 가공하고, 이를 코치진에게 전달하는 일을 한다. 또 선수들의 스탯(통계자료)을 제공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게임단이 선수의 가치를 평가하고, 이적 시장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배틀그라운드라는 게임에서 데이터 분석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용되나.

“배틀그라운드는 불확실성이 곧 규칙인 게임이다.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주는 사항 중 유저가 확신할 수 있는 점이 없으며, 직접 선택 가능한 건 낙하 위치뿐이다. 가령 내가 AK-47을 좋아한다고 했을 때, 끝내 이 총기류를 얻지 못하고서 그대로 게임이 끝나는 예도 있다.

하지만 지난 1만~10만 번의 게임 데이터를 활용해 AK-47이 가장 많이 나오는 지역이 어디인지를 도출할 수는 있다. 오피지지는 이런 데이터를 유저에게 지도 형태로 제공, 유저들이 직접 판단하고 이동 동선을 짤 수 있게끔 하는 서비스를 지향한다.

현재 오피지지 홈페이지 내 ‘맵 정보’ 페이지에서는 차량·보트의 주요 리젠 지역과 유저 착륙 분포도를 제공하고 있다. 곧 리뉴얼을 통해 총기류와 자기장 정보를 추가할 예정이다. 가령 ‘요즘 포친키에서 차량 리스폰이 드문 것 같다’는 의문이 들면 이 맵 정보를 통해 사실인지, 착각인지를 알 수 있다.”

-데이터가 e스포츠에서도 활용될 수 있는지.

“총기 스폰 정보는 이미 OP 게이밍 선수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선수들은 이를 기반으로 이동 동선을 짠다. 최근 1만 번의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야스나야 폴라냐의 맨 오른쪽 아랫집에서는 단 한 차례도 A 총기가 나오지 않았다. A 총기를 선호하는 선수는 파밍 과정에서 이 집을 생략하는 게 효율적이다.

OP 게이밍 헌터스 소속 프로게이머 ‘벤츠’ 김태효.

선수들은 정해진 시간에 작전대로 움직인다. 특정 시간대까지 파밍을 끝내야만 이후 훈련 내용대로 이동할 수 있다. 만약 매번 강남에서 선호하는 총기류를 얻고 출발했는데, 이게 안 나오기 시작하면 동선도 꼬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데이터 기반으로 움직이면 이럴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

- 선수 기량 향상을 위해서도 이러한 데이터가 활용되나.

“물론이다. 다만 선수한테는 조금 더 직관적인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A 선수의 사격 정확도가 전체 시장에서 상위 10%에 해당한다고 했을 때, ‘9%가 되도록 노력해봐’라고 하는 건 분석가 입장에서 할 말이 아니다. 9%로 향상할 방법을 얘기하는 게 저의 역할이다.

선수들이 게임 내에서 어디를 쐈는지 분석할 수가 있다. 격발 순서대로 상대에게 얼마만큼의 데미지를 입혔는지, 어느 부위를 맞췄는지, 예를 들면 머리→가슴→골반 순으로 맞췄는지와 같은 정보가 순서대로 나온다. 이 순서를 통해 선수의 사격 습관을 파악할 수 있다.

A 선수는 상대를 쐈을 때 에임이 가슴에서 시작해 머리→골반→가슴 순으로 이동했다. 반면 B선수는 가슴에서 시작한 에임이 머리까지 올라가지만, 골반까지 내려가진 않았다. 이러면 B 선수가 더 상하반동을 잘 잡는다는 결론을 낼 수 있다.

이는 실제로 지난 1월 마카오에서 열렸던 ‘PUBG 아시아 인비테이셔널(PAI) 2019’ 당시 나왔던 데이터다. 이때 A 선수에게 이 데이터를 보여주며 ‘오늘 경기에서 에임이 너무 밑으로 내려가고 있는 것 같아. 이 부분을 조금만 신경 쓰면서 조준해봐’라고 조언했다.

100% 이 조언 덕분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A 선수는 실제로 다음날 경기에서 향상된 조준 실력을 보여줬다. 선수가 직감만으로 ‘오늘 에임이 안 좋은데’라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신의 컨디션이나 습관을 파악하는 건 분명 다르다.”

- 선수 영입이 이뤄지는 이적 시장에서도 데이터가 쓰인다고 했는데.

“선수 평가에도 이런 데이터가 유용하게 쓰인다. 우리는 1월 이적 시장 때 PKL 참가 선수 전원을 대상으로 한 선수 평가 테이블을 만들었다. 200여 개의 스탯을 기반으로 해 선수를 보다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끔 했다.

선수 가치 평가는 크게 4가지 틀로 나눴다. ▲운영 ▲생존 ▲사격 ▲교전이다. 운영은 이동거리, 부스트·치료제, 투척 아이템 등을 세부적으로 나눠 수치화한다. 생존에서는 DBNO(기절 상태에서 팀원의 도움을 받아 살아난 경우), 부활, 기절 등 분야를 점수로 매긴다.

팬들 사이에서의 유명세와는 별개로 코칭스태프들이 잘 쏜다고 생각하는 선수들은 실제로도 이 차트 순위가 높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선수를 평가하는 기준과 코치님들이 실제로 보고 느끼는 기준과 비슷해졌다는 얘기다. 분석가는 숫자놀이만 한다는 편견이 없어지는 과정이다.

OP 게이밍이 영입한 ‘DG98’ 황대권은 실력보다 인지도가 낮았던 경우인데, 실제로 차트에서 교전 관련 수치가 매우 높게 나왔다. 배틀그라운드 종목 특성상 중계에 잘 잡히지 않는 팀이 있기 마련이다. 그중에 황대권처럼 방송 노출이 안 돼 인정받지 못하는 선수들도 있다.

다만 데이터를 코치님들에게 보여줄 때 그냥 ‘보세요’하고 드리지 않는다. 꼭 설명을 덧붙여야 한다. 데이터상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는 케이스가 있기 때문이다. A 선수의 이동 거리 관련 점수가 유독 높은 건 자기장을 크게 도는 전략을 선호해서다. 장거리 교전을 즐겨 사격 관련 점수도 특정 구간 명중률이 높다. 이런 데이터 편향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피 게이밍 레인저스 출신 프로게이머 ‘에스카’ 김인재.

- 오피지지와 윤 분석가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지.

“e스포츠는 활약상을 짐작할 만한 지표를 만들기가 어렵다. 야구에서는 ‘이 선수 타율이 2할대다’라고 했을 때 선수의 활약상을 어림짐작할 수 있다. e스포츠는 그런 게 상대적으로 적다. 게임 종목을 불문하고 그렇다. 표준이 될 만한 데이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선의의 경쟁 구도를 만들고 싶다. 현재 오피지지에 데이터 분석가가 있다는 걸 업계 대부분이 안다. 모든 경기를 눈으로 보지 않고도 각 팀의 동선을 뽑을 수 있다는 걸 안다. 제가 다른 팀의 게임단주라면 ‘우리도 분석가를 뽑자’고 할 것 같은데, 지금은 오히려 데이터 분석을 꺼리는 분위기다. 데이터 분석이 활성화됐으면 좋겠다. 경쟁자가 있어야 저도 성장한다.

중국 LoL 프로 리그(LPL)에는 이미 많은 분석가가 있다고 들었다. 라인별로 5명씩 있다고도 하더라. 현재 국내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에서는 저 혼자이다 보니 놓치는 부분이 많다. e스포츠가 아닌 게임 서비스도 함께 담당하고 있어 일의 우선순위를 따지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다 같이 성장했으면 한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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