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 잡은 110위 "인공지능이 오늘의 나를 키웠다"
'AI 버그 잡는 귀신'으로 소문나 "초반 약점 메워 누구도 해 볼만"
서른두 살 노장인 그는 한국 랭킹 110위였던 올해 초 1위 박정환(26)을, 103위로 올라간 2월엔 4위(당시) 신민준(20)을 연거푸 눕혔다. 한국 바둑 사상 처음 있는 사건이다. 그 결과 이호승은 GS칼텍스배서 예선 포함, 7연승하며 현재 8강전 대기 중이다. 프로 생활 7년간 32강에 딱 두 번 올라봤던 그의 3월 랭킹은 93위로 뛰었다. 그의 도약을 이끈 '비급'의 정체는 대체 무엇일까.
역시 인공지능(AI)이었다. 요즘 AI 끼고 살지 않는 프로가 있나? 그가 답했다. "막상 스물여섯 살에 프로가 되니 암담했다. 살아남으려고 열심히 독학했지만 모르는 것투성이였다. 누구에게 물어볼 곳도 없었다. 그러다 본격 AI 세상이 열리더라. 그때부터 모든 의문을 기계가 풀어주기 시작했다. 초일류들을 만나도 너희가 AI보다 더 세겠느냐는 생각으로 싸운다. 이젠 하나도 무섭지 않다."
국가대표 멤버들만 공유하던 최신 포석을 외부 기사들도 AI를 통해 접하는 시대가 됐다. 엘리트 전유물이던 초반 이점이 사라진 것이다. 중·후반부터는 누구 못지않은 힘바둑을 구사하지만 초반이 약해 멈칫거려온 이호승이 '물 만난 고기'가 된 배경이다. 그는 "앞으로 정상권은 중·후반이 강한 사람들끼리의 싸움터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호승은 AI 다루는 능력이 탁월한 기사로도 유명하다. 3년 전 일본이 딥젠고를 오픈한 직후 그는 이 프로그램이 지닌 버그를 귀신같이 잡아냈다. 최상위권 프로들이 쩔쩔맬 때 100위권 밖의 이호승이 연승을 거듭하자 '딥젠고 킬러'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딥젠고 은퇴 후 그의 'AI 스승'은 엘프고와 릴라제로로 바뀌었다. "이들에게서도 버그가 보인다. 그걸 공략하면 지금도 승률을 높일 수 있지만 그래선 공부가 안 돼 피하고 있다."
아마추어 시절 10여 회나 우승을 휩쓸면서도 입단 대회만 나가면 낙방해 '새가슴'으로 통했다. 20번 넘는 도전 끝에 늦깎이 프로가 됐다. 그나마 2015~2016년 공익근무요원 근무로 2년간 한 판의 공식 대국도 없었다. 그는 윤준상 이영구 홍성지 등과 동갑이다. 동료들이 잔치를 마치고 하산(下山)을 준비하는 나이에 이호승은 어떤 꿈을 갖고 있을까.
"큰 욕심 없다. 2년간 쉬면서 바둑이 그리웠고, 인공지능 덕으로 더 재미있어졌다. 30대 이상에게도 찬스가 왔으니 공부란 생각 안 하고 즐기며 두려 한다. 이제는 새가슴도 아니다." 그는 승부를 위해 제대 후 술·담배·커피 3가지를 멀리한다. GS배 4강, 세계 대회 본선 진출, 그리고 바둑리그 진입이 구체적 목표다.
체중 110㎏의 거구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유도나 씨름 선수로 착각할 만하다. "GS배 4강에 오를 경우 스튜디오에서 '봄여름가을겨울'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 한 소절을 부르기로 했어요. 바둑보다 노래 연습하러 가야겠습니다. 하하."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