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DUGOUT Story] 한화 이글스 이태양

대단한미디어 입력 2019.04.03.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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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스를 밝힌 강렬한 빛

사람은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길 원한다. 그것이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론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그 일의 기간이 짧을 수도 어쩌면 끝을 알 수 없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지금 주어진 임무가 곧 우리의 책임이기에 맡은 바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2018시즌 선발 투수에서 셋업맨으로 자리를 옮긴 한화 이글스의 태양, 이태양도 마찬가지다. 선발과 불펜 어디든 보직은 중요하지 않다. 그가 마운드에 오르는 순간이 진짜 시작이다.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표권향 Location 고친다구장



#다시 떠오른 태양

2018년 2월 23일, 일본 오키나와 요미탄 구장에서 열린 한화와 주니치 드래건스의 연습경기. 선발 윤규진이 동점을 허용해 4-4로 팽팽하게 맞붙은 상황에서 이태양이 마운드에 올랐다. 당시 그의 몸 상태가 완전하지 않아 무리한 등판이 아닌가 싶었다. “스트라이크!” 이날 이태양의 최종 성적은 2이닝 2피안타 무실점 2탈삼진. 우려와 달리 그의 투구는 완벽했다. ‘에이스’ 이태양이 돌아왔다.

스프링캠프에서 시즌 준비를 잘 마치고 귀국한 그에게 구단은 많은 기대를 걸었다. 그 역시 오랜만에 복귀한 1군 마운드의 흙냄새가 좋았다. 하지만 선발투수 명단에서 그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선발투수에서 불펜투수로 자리를 옮긴 이태양, 캠프에서 보여준 화려한 부활과는 사뭇 다른 발표였다.

큰 기대감이 실망이 돼 돌아온 탓일까. 정규리그에 앞서 진행된 시범경기에서 이태양은 등판마다 참담한 결과를 보였다. 그를 등판시켰다는 이유로 한용덕 감독은 한화팬들에게 원성을 들었다. 시작부터 꼬인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스스로 분했는지 서산에서 이를 악물고 몸을 만드는데 열을 올렸다. 완벽한 몸 상태를 만들어야 싸워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쟁자들을 넘어 나와의 싸움에서도 이겨야 한다는 각오로 훈련에 매진했다.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3월 30일 심수창이 말소되면서 부름을 받았다. 이날 한화는 SK 와이번스에 초반부터 승기를 내주며 가망이 없는 상황이었다. 승부의 추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모두가 낙담하고 있을 때, 이태양은 마운드에 올라 4.1이닝 동안 탈삼진 7개를 기록, 무실점 호투를 선보였다. ‘진짜’ 이태양이 돌아왔음을 팬들과 상대 팀에게 선포한 괴력투였다. 이후 그의 공은 매섭게 포수 미트를 찔렀다. 140km/h대 초중반이던 구속이 최고 구속 149km/h까지 오르면서 전성기의 그를 떠올리게 했다.

예측할 수 없는 야구에서 그는 늘 준비돼 있었다. 불펜 인터폰이 울리면 어김없이 이태양이 등장했다. 한화팬들은 승리를 확신하듯 그를 향해 믿음의 환호를 보냈다. 이태양, 그는 희망의 상징이 된 것이다.



지난해 마운드에서 허리 역할을 톡톡히 했다. 변화구를 개선한 것이 큰 작용을 한 것 같다.

변화구도 변화구인데, 직구의 구위가 좋아지다 보니 변화구가 배로 잘 통했다.

지난해 개인 성적이 훌륭했다. 평균자책점, 피안타율,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등이 높은 순위에 자리매김했다. 여러 기록 중 가장 만족하는 혹은 스스로 칭찬하고 싶은 성적은 어느 부문인가.

평균자책점과 WHIP(이닝당 주자 출루율)가 낮은 게 제일 마음에 든다.

시즌 도중 송진우 코치에게 꾸지람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의 상황과 들은 조언을 이야기해줄 수 있는가.

시즌 초반, 자리가 확실히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 1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야 계속 있을 수 있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때 시합이 끝나고 코치님한테 크게 혼이 났다. 코치님께서 “언제까지 이렇게 할 거냐? 변화된 모습을 보여야 살아남지! 지금처럼 하면 1군에서 버티기 힘들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이후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

결과적으로 본인이 극복했다고 생각한다. 고난과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프로에 처음 올 때부터 특출한 선수가 아니었다. 나름대로 꾸준히 노력해 여기까지 왔다. 아직 멀었지만… 계속 노력해 더 좋은 모습을 모여드리고 싶다.



#화려한 부활을 도운 셋업맨

지난해 대전은 말 그대로 축제의 도시였다. 이기면 이기는 대로, 지면 지는 대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짜릿한 뒤집기와 끝내기 승리가 어깨춤을 추게 했고, 경기에서 지더라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투지를 보며 서로를 위로했다. 그 결과 한화는 ‘만년 꼴찌’란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떼고 11년 만에 당당히 포스트시즌에 입성했다.

개막 전 한화의 가을야구를 예상하는 이는 적었다. 보살팬들에게는 그저 매년 반복되는 희망 고문이었다. 이러한 편견을 한화 선수단 스스로가 깼다. 무엇보다 어떤 강타선을 만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마운드의 힘이 컸다.

이들 가운데 이태양의 활약은 독보적이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마이웨이’ 투구로 상대 타자를 기선 제압했다. 그는 지난 시즌 9이닝 당 탈삼진 9.64개를 잡았는데, 이는 전성기였던 2014시즌보다 무려 3.99개 높은 수치였다. 선발과 불펜의 차이를 고려해도 대단한 성장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WHIP 1.12, 피안타율 0.224로 리그 구원투수 가운데 가장 낮았으며, WAR는 2.63으로 팀 내 3위를 기록했다. 이는 선발투수로 전성기를 보낸 2014시즌의 2.20을 넘어선 것으로 누구도 그의 활약을 부정할 수 없었다. 명예 회복에 성공한 이태양은 리그 최정상 계투요원으로 2018시즌을 마쳤다.

무서울 것이 없는 불꽃투를 보며 대중은 자연스레 그의 선발 복귀를 기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용덕 감독은 이 질문에 “No”를 외쳤다. 이번 스프링캠프에서도 천명인 듯 “아니오”라고 대답했다.

겉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투수라면 누구나 선발 마운드를 원하고 있다. 경기의 시작이 선발투수의 1구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선발 ‘기대주’였다가 불펜의 ‘빛’이 된 이태양의 진심은 어떨까?



사실 지난 시즌이 개막하기 전까지 한화의 마운드가 강하다고 말하는 이는 적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본인이 생각할 때 예전과 지금의 한화 마운드는 어떻게 다른가.

감독님과 코치님들께서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주신다. 투수 한 명에게 치우치는 것이 아닌, 여러 투수를 골고루 챙겨주시고, 투수들도 스스로 관리하다 보니 성적이 좋아졌다.

투수들과의 케미도 무시할 수 없다. 투수조 미팅 때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가.

작년에 팀 불펜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했다. 불펜투수끼리 서로 자부심을 느끼며 던진 것이 시너지 효과를 불러왔다. 대기하면서 “더 힘내자”라는 말을 많이 했다.

한용덕 감독은 올 시즌도 이태양이 불펜에서 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본인은 선발에 대한 욕심이 날 법하다.

당연하다. 그런 욕심 없이 야구를 하는 건 선수로서 좋지 못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욕심은 당연히 있는 거고, 그것에 맞게 준비하면 된다. 그러나 보직은 감독님께서 정해주시는 거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선발로 복귀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선발에 대한 간절함이 느껴진다.

야구를 시작할 때부터 선발투수를 꿈꿔왔다. 그렇다고 불펜을 하다가 일회성으로 선발 마운드에 오르고 싶지는 않다. 꾸준히 선발로 등판하길 원하고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내일을 위해 조심해야 할 것

이태양은 지난 1월 류현진, 장민재, 윤지웅 그리고 윤석민과 개인 훈련을 위해 오키나와로 향했다. 팔꿈치 부상을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땀을 흘렸다. 대신 보강훈련에 집중했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안 다쳐본 이는 없다. 단순 타박상처럼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부상도 있지만 심할 경우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축구나 농구처럼 쉴 새 없이 뛰지 않아 야구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편한 스포츠로 오해를 받곤 한다. 하지만 야구는 온 근육과 각 뼈마디를 전부 사용하고 민첩성과 순발력, 지구력까지 필요하다. 여기에 동료와의 단합, 상대의 플레이를 간파하는 빠른 두뇌까지 겸비해야 한다. 말 그대로 힘든 스포츠다.

본론으로 돌아와, 이태양은 2010년 한화에 입단할 당시 큰 키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체격만 봐서는 강속구를 뿌릴 것 같지만 그의 평균 구속은 140km/h 초중반이었다. 가끔 최고 구속이 150km/h대를 찍기도 했지만 한 경기에 2개 이상 던지는 투수는 아니었다. 대신 포크볼,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브, 스플리터 등 다양한 변화구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주 무기인 포크볼은 낙폭이 커서 속구와 섞어 사용해 상대 타자를 돌려세웠다.

천천히 자리를 찾아가며 탄탄대로를 달리던 이태양은 2014년 한화의 기대주로 입지를 굳혔다. 스트라이크 존에 그림을 그리듯 그의 공은 원하는 위치에 생각한 대로 꽂혔다. 그리고 그는 그해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선출됐다. 중국과의 준결승전에서 2-2로 팽팽하게 맞선 5회 말 두 번째 투수로 나가 4이닝 동안 1피안타 5탈삼진 무실점 쾌투를 펼쳤다. 이날 완벽한 투구로 승리투수의 영광과 함께 결승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승전에서 대만을 꺾고 금메달의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1000구의 저주’였을까. 2015년 스프링캠프부터 이어진 무리한 훈련이 그를 지치게 했다. 개막을 앞두고 서산으로 내려간 이태양은 한화생명이글스파크의 마운드가 아닌 수술대에 올랐다. 오른쪽 팔꿈치 인대에 이상이 생겨 토미 존 수술을 받았다. 그렇게 마운드에 서보지도 못하고 2015시즌이 물거품으로 끝났다.

수술 여파는 길었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팔도, 감각도 고장 난 것처럼 느껴졌다. 수술 후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않은 것이 화를 불러왔다. 불운은 계속됐다. 2017시즌 도중 팔꿈치 뼛조각으로 인한 통증을 호소했고 결국 수술 부위가 악화돼 1군에서 말소됐다. 그렇게 다시 수술대에 누웠고 시즌을 접어야 했다. 어떻게 보면 부상으로 인해 세 시즌을 날려버린 셈이다. 밝고 활발했던 이태양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진 모습을 기억한다. 개인 기록보다 선수로서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올해로 서른이 된 이태양. 40세가 넘어도 자기관리만 잘하면 선수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프로야구지만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그만큼 부상 위험이 크다. 그는 이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예민할 수밖에 없다.



비시즌 동안 류현진과 함께 개인훈련차 오키나와에 방문했다. 그리고 다시 찾은 오키나와다. 기분이 어떤가.

매번 오는 곳이라 그런지 편안하고 집 같다. 올해는 날씨가 좋아서 다른 때보다 훈련을 잘할 수 있었다.

2년 연속 류현진과 훈련했는데, 어떻게 같이 오게 됐는가.

(류)현진이 형이 매년 개인훈련을 오키나와로 오고 있다. 나와 (장)민재도 이곳으로 왔다. 모두 같은 팀에 있었고 지금도 친하게 지내고 있어 함께 훈련하게 됐다.

류현진과 훈련하면서 배운 점이 있는가.

역시 메이저리거다! 우리나라에서 같은 프로야구를 하고 있다고 해서 모두 똑같은 건 아니다. 한국에서의 운동 방식과 미국 스타일이 따로 있다.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아가며 내게 맞는 훈련을 찾을 수 있었다.

지난겨울 류현진에게 성공적으로 재활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 질문했다고 들었다. 재활에 대한 스트레스가 상당했나 보다.

프로에 와서 팔꿈치 수술만 2번 했다. 현진이 형은 팔꿈치보다 더 힘든 어깨 재활을 이겨냈다. 그 어려운 걸 극복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 조언을 얻으려고 했다.

류현진이 “시간 싸움”이라며 “조금 아프더라도 처음에는 참고했으면 좋겠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형 말처럼 재활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순조롭게 진행되다가도 또 아프면 멈추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런 부분이 정말 힘들다. 앞으로는 절대 아프고 싶지 않다. 남은 선수 생활 동안 건강하게 야구를 하고 싶다.



#‘마리한화’ 가을야구에 빠지다

2018시즌 정규리그를 3위로 마감하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한화. 비록 준플레이오프로 만족해야 했지만, 그들만의 가을야구를 원 없이 즐긴 10월이었다. 한화 선수단에 물어보면 열이면 열 모두 가을맛을 보니 또 해보고 싶다고 대답한다. 예전에는 옆집 이야기처럼 들렸던 꿈같은 일을 직접 경험해보니 재미와 도전 의식이 생긴 것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바뀐다고 하는데, 11년이다. 오랜만에 가을바람 제대로 쐰 한화팬들 역시 선수단과 같은 마음이다. 보살팬들의 한(恨)을 녹여준 가을 점퍼를 다시 꺼내고 싶은 소망이 간절하다.

또 한 번의 가을야구를 위해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독수리 군단. 미세먼지와 그라운드의 흙먼지를 동시에 마시는 고통보다 가을야구에 대한 열망이 더 크기에 올 시즌도 가을을 향해 전진할 것을 약속했다.

지난해 11년 만에 가을야구를 해 올해 기대가 자연스레 높아졌다. 본인도 느끼는가.

경험해보니까 상당히 재밌더라. 작년보다 한 단계 높은 곳을 바라보며 열심히 하고 있다.

이제 더는 한화팬을 ‘보살팬’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는 선수들이 이뤄낸 결과다. 지금부터 ‘마리한화’의 열정적인 응원이 더욱 불꽃을 피울 텐데, 올 시즌 각오와 팬들에게 인사 부탁한다.

작년에 가을야구에 올라간 만큼 올해도 열심히 해서 꼭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다. 더 높은 정상을 향해 준비하고 있으니 올해도 변함없는 응원 부탁드린다.

***

올더스 헉슬리는 “경험은 배울 줄 아는 사람만 가르친다”라고 말했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는 이마저도 배울 준비가 돼 있는 선수였다. 고난과 시련을 극복해낸 이태양은 이제 스스로 성장하는 법을 터득해 정상을 바라보고 있다.


더그아웃 매거진 96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9년 96호(4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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