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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r Story >박미희 "여성 지도자는 부드럽다? 위기때 팀 잡아줄 강인한 힘 있어"

허종호 기자 입력 2019.04.17. 11:50 수정 2019.04.1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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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희 흥국생명 감독이 15일 강원 태백시 국민체육센터에서 태백산배 전국남녀중고배구대회 출전 선수들을 살펴보다 잠시 짬을 내 카메라를 보며 활짝 웃고 있다. 태백=김동훈 기자 dhk@

여자프로배구 통합우승 ‘유리천장’ 깬 박미희 감독

흥국생명 감독 5년차에 쾌거

다음 시즌 위해 바로 태백行

고교생 유망주 발굴 ‘열공’

“우승 이끈 감독중 한명일뿐

女지도자 특별하단 생각안해

그간 女감독 너무 적었던것”

현역땐 단신 핸디캡 만회하려

상대 장단점 연구하고 또 연구

1980년대 아시아 슈퍼스타로

9년간 배구해설위원 현장지켜

시야 넓어져 감독생활 큰도움

“등반가처럼 새길 개척이 목표”

박미희(56) 흥국생명 감독은 현역 시절 아시아의 슈퍼스타였다. 광주여상 시절 청소년대표팀 에이스로 활약하며 1980년 아시아청소년배구선수권대회와 1981년 멕시코 세계청소년선수권 우승에 앞장섰다. 국가대표로 1990 베이징아시안게임 은메달을 이끌었다. 1974 테헤란아시안게임(2위) 이후 16년 만에 거둔 최고 성적이었다.

박 감독은 지도자로도 성공적인 길을 걷고 있다. 2014년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은 박 감독은 여자프로배구 2016∼2017시즌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고 2018∼2019시즌엔 정규리그 1위에 이어 챔피언결정전에서 정상에 올라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통합우승을 이룬 첫 여성 사령탑. 박 감독은 스포츠계의 ‘유리천장’을 깼기에 더욱 주목을 끈다.

시즌을 화려하게 마감했지만, 박 감독은 쉴 틈이 없다. 박 감독은 태백산배 전국남녀중고배구대회를 지켜보기 위해 강원 태백시 국민체육센터로 달려갔다. 신인드래프트에서 ‘오차’ 없이 지명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다.

지난 15일 태백에서 박 감독을 만났다. 박 감독은 통합우승이란 빛나는 성적표를 손에 쥐었지만, 휴가를 포기하고 ‘출장 근무’ 중이다. 시즌보다 비시즌이 더 바쁜 법. 시험에 대비, 공부를 하기 때문이다. 신인드래프트,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공개 선발 드래프트)을 위해 ‘열공’ 중이다.

“시즌 중엔 (시즌이 끝나는) 꽃 피는 봄이 어서 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막상 시즌이 끝나면 새 시즌을 준비하기 위해 더 바쁘죠. 올 시즌엔 우승했기에 다른 때보다 더 심합니다. (최하위에 머물렀던) 지난 시즌과 달리 다음 시즌 신인드래프트(오는 9월 예정) 상위 순번을 뽑을 가능성이 매우 작아요. 그래서 고교 선수들을 더욱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오는 5월 1일부터 3일까지 캐나다 토론토에서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이 열립니다. 외국인선수 후보들의 기량을 영상으로만 확인했기에 아직은 확실하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머리가 아프죠.”

연구, 분석은 현역 시절부터 박 감독의 ‘장기’였다. 높이가 중요한 센터이지만 신장이 174㎝에 그쳤던 박 감독은 자신의 단점을 철저한 분석으로 만회했다. 빠른 판단으로 상대의 블로킹을 회피, 스파이크를 꽂아넣는 게 주특기였다. 그래서 ‘코트의 여우’로 불렸다. 박 감독은 운동신경이 뛰어났기에 세터도 맡는 등 전천후 플레이어였다.

“저에겐 배구선수에게 필요한 장점이 없습니다. 현역 시절 키는 중간 정도였죠. 키가 크지 않은 데다 힘도 세지 않았고, 그래서 꾀만 늘어났습니다. 게다가 내성적이었죠. 제가 감독이 됐을 때 선배들로부터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성격 때문에 감독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을 들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제 장단점, 그리고 상대의 장단점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그래서 별명이 여우가 됐죠.”

엄청난 학구열을 자랑했던 박 감독은 1989년 한양대 체육학과에 입학했다. 체육특기생이 아닌 일반 학생이었기에 박 감독은 훈련과 학업을 병행했다. 1991년 현역에서 은퇴한 후 본격적으로 학업에 매진했다. 한양대 대학원에서 체육학 석사 학위를 받은 박 감독은 2003년 중국으로 건너가 2년간 옌볜과학기술대 체육학과 부교수를 지냈다.

“공부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아까웠습니다. 아버지께서도 학업을 재개하길 원하셨죠. 그래서 선수 생활과 공부를 병행했습니다. 고교를 졸업하고 7년 지났고, 선수였기에 시간도 부족했습니다. 학점이 좋지 않아 간신히 졸업했죠. 은퇴한 뒤엔 달랐죠. 우선 시간이 보장되니 마음 놓고 공부에 매달릴 수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가르친 건 남편 덕분입니다. 언론사에 재직 중이던 남편의 연수로 중국으로 건너갔고, 옌볜과학기술대의 제의를 받아 강의하게 됐습니다.”

박 감독은 2006년 교직을 마치고 귀국한 뒤 KBS N 스포츠 해설위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9년간 ‘장수’했다. 감칠맛 나면서도 정확한 해설로 시청자의 귀를 사로잡았다. 박 감독은 특히 여자 선수 출신으로서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선수들의 심리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호평을 받았다. 코치 경험이 없지만, 9년간 ‘현장’을 지켰기에 흐름을 파악하고 선수 개개인의 장단점을 훤히 꿸 수 있었다. 특히 해설위원이기에 6개 구단을 ‘사심’ 없이 바라볼 수 있었다. 객관적으로 6개 구단의 플레이를 꾸준하게 관찰한 건 박 감독에겐 소중한 ‘밑천’이 됐다.

“오랫동안 배구 해설을 하면서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특정 팀에 소속돼 있다면 여러 팀의 여러 경기를 자세하게 살피는 게 쉽지 않거든요. 선수도 마찬가지입니다. 해설위원 박미희가 감독 박미희에게 무척 큰,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해설위원으로 오랫동안 여자배구를 관찰했기에 박 감독은 빠르게 적응했다. 부임 직전 시즌 6개 구단 중 최하위에 머물렀던 흥국생명을 데뷔 시즌 4위로 이끈 박 감독은 3년 차인 2016∼2017시즌 정규리그 1위, 5년 차인 2018∼2019시즌 통합우승을 차지했다.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 여성 감독 유리천장을 시원하게 깬 그는 여성 지도자들의 롤모델이 됐다.

“여성 감독이 특별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기에 흥국생명의 우승이 이렇게 큰 관심을 끌지 미처 몰랐습니다. 그저 시즌마다 나오는 우승이고 저는 우승팀을 지도한 수많은 감독 중 한 명이니까요. 단지 그동안 여성 감독이 매우 적었고 정상에 오르지 못했기에 주목받는 겁니다. 여성 지도자들이 늘어난다면 여성 감독의 우승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겠죠. 다른 종목에서 여성 지도자가 늘어나면 서로 의지가 될 겁니다. 사령탑으로서 어려운 점을 공유하고 서로 격려도 하겠죠.”

국내 스포츠계에선 여성 지도자에 대한 편견이 여전하다. 부드럽지만 약하다, 여자 선수와 친밀하게 지낼 수 있지만 카리스마가 부족하기에 팀을 완벽하게 사로잡을 수 없다고 여긴다. 박 감독은 그래서 ‘강인한 엄마’를 강조한다.

“여성 감독은 부드럽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겁니다. 너무 약한 이미지 아닌가요. 여성 감독도 충분히 강인합니다. 고비도 잘 극복합니다. 여자가 더 독한 경우가 많잖아요. 엄마들을 보더라도 항상 포근한 건 아닙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강한 엄마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여자 선수들은 특히 어려운 상황에서 감독의 표정을 살핍니다. 그럴 때 감독이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됩니다. 위기가 닥쳐도 감독은 아직,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는 신호를 보내야 합니다. 감독이 흔들리면 팀이 흔들리게 되니 어떤 상황에서든 동요하지 않고, 선수들에게 힘을 전해야 합니다.”

정상에 올랐지만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은 더 어렵다. 2005∼2006, 2006∼2007시즌 흥국생명이 2연패를 차지한 뒤 2회 연속 우승은 자취를 감췄다. 전력 평준화가 진행됐기에 ‘독주’를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흥국생명은 이제 여자프로배구 5개 구단의 ‘공적’이 됐다.

“당연한 것이 목표가 돼선 안 됩니다. 지도자와 선수는 당연히 우승을 겨냥합니다. 2연패, 3연패를 달성해 좋은 감독이라는 평가를 듣는 건 누구나 원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성적을 목표로 삼고 싶진 않아요. 그저 계속 새로운 길을 걷고 싶습니다. 히말라야 등반을 마친 산악인이 또다시 산에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굳이 목표를 정하자면 ‘지도자 생활을 끝낼 때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자’가 될 겁니다. 그래서 전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태백=허종호 기자 sportsher@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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