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전 지바탁구 단일팀 '코리아'..결승서 왜 리분희 뺐냐고요?"

입력 2019. 4. 24. 03:06 수정 2019. 4. 24. 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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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대회 때 만나면 반가운 마음에 사탕만 줘도 '독이 들었다'고 의심하며 안 받았던 북한 선수단과 몇 개월새 한가족이 됐으니 감개무량했죠."

1991년 4월 일본 지바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 단일팀을 이끈 '코리아 단일팀 1세대'의 주역 이유성(62) 대한항공 스포츠단 단장은 28년 전 추억을 평생 잊지 못한다.

이 단장은 "지바에서 남북 스포츠 발전의 초석이 깔렸다면 최근엔 고 조양호 대한탁구협회 회장의 노력으로 단일팀이 성사되고 내년 부산 세계탁구대회도 유치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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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가 만난 사람] 이유성 대한항공 스포츠단장
세계 제패한 '1세대 단일팀' 주역
오는 29일 지바 대회 우승 28주년

1991년 지바탁구 단일팀 코치로
리분희·현정화·류순복 등 이끌며
만리장성 넘어 여자 단체전 우승

탁구는 이미 통일된 종목
내년 4월 부산세계선수권대회
'제2의 지바' 단일팀 우승 희망

서울·평양 오가며 합동훈련하고
남북 모두 참가한 선발전으로
탁구 남북단일팀이 1991년 4월29일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단체전에서 중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뒤 시상대 맨 위에 섰다. 왼쪽부터 이유성 코치(남), 조남풍 코치(북), 홍차옥(남), 류순복(북), 현정화(남), 리분희(북). 이유성 단장 제공

“국제대회 때 만나면 반가운 마음에 사탕만 줘도 ‘독이 들었다’고 의심하며 안 받았던 북한 선수단과 몇 개월새 한가족이 됐으니 감개무량했죠.”

1991년 4월 일본 지바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북 단일팀을 이끈 ‘코리아 단일팀 1세대’의 주역 이유성(62) 대한항공 스포츠단 단장은 28년 전 추억을 평생 잊지 못한다. 그는 당시 리분희, 현정화, 류순복, 홍차옥 등으로 구성된 여자팀 코치를 맡아 만리장성 중국을 넘어 감격의 우승을 차지했다.

남북한 탁구는 88 서울올림픽 이후 2년간 중국에 이어 치열한 2위 다툼을 벌였다. 그런데 지바 대회를 앞두고 “상상도 못 하던” 단일팀이 성사됐다. 이 단장은 “남이나 북이나 남북 대결을 피했다는 점에서 안도했고, 중국한테는 져도 본전이었으니 심리적으로 너무 편했다”고 회고했다.

지바세계탁구대회 당시 이유성 코치와 리분희. 이유성 단장 제공

남녀 선수단 14명(선수 10명·코치 4명)으로 구성된 단일팀 코리아는 대회 기간(1991년 4.24~5.6)을 포함해 45일간 함께 울고 웃었다. 이 단장은 “처음엔 남북 정보기관이 자꾸 따라붙었다. 그래서 ‘선수들이 빨리 친해져야 하니 이동하는 버스만큼은 남북 선수들이 함께 타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며 “그 이후 선수들 뿐 아니라 남북한 임원들도 급속도록 가까워졌다”고 했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남북 관계는 수뇌부가 마음을 비우고 하나가 돼야 한다”며 “선수들 지원만 생각해야지 거기서 다른 계산을 하면 밑으로 오는 여파는 엄청 크다”고 지적했다.

이 단장은 1991년 4월29일 열린 중국과의 결승전에서 리분희 대신 류순복을 주전으로 기용한 비화도 털어놨다. “리분희가 알고보니 간염 때문에 쉽게 지쳤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해 내가 초밥을 사다주곤 했다. 리분희가 준결승까지 치르고 너무 지쳐서 류순복을 기용했다.”

여자 단일팀 이유성 코치(남)와 조남풍 코치(북). 이유성 단장 제공.

그런데 대박이 났다. 4단식 1복식으로 치러지는 단체전에서 류순복이 ‘마녀’로 불리던 세계랭킹 1위 덩야핑과 2위 가오준을 연거푸 물리쳐 코리아가 중국에 3-2 승리를 거두는데 결정적인 수훈을 세웠다. 관중석에선 분단 이후 처음으로 민단과 총련이 합동응원단을 결성해 열정적으로 응원했다. 지바의 ‘작은 통일’이었다.

극적인 장면은 이산가족 상봉으로 이어졌다. 남쪽 탁구 담당기자의 주선으로 한국전쟁 때 누이들과 헤어진 김희진 당시 북한탁구협회 서기장이 대회 폐막 다음날인 1991년 5월7일 충북 청주에 사는 작은 누나 김화진(당시 66살)씨와 극적으로 상봉했다. 이 단장은 “나중에 김 서기장은 기자회견장에서 공식적으로 그 기자에게 고마움을 표했지만 나한테는 몇 년이 지나도 ‘그 기자가 정말 안기부 요원이 아니냐’고 가끔 물어 체제의 깊은 골을 새삼 느끼곤했다”고 회상했다.

한국전쟁 때 누이들과 헤어진 김희진(왼쪽 넷째) 당시 북한탁구협회 서기장이 지바 탁구선수권대회 폐막 다음날인 1991년 5월7일 충북 청주에 사는 작은 누나 김화진씨(당시 66살·오른쪽 넷째)와 극적으로 상봉한 뒤 기념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윤길중 남자 코치(남), 작고한 큰 누나의 며느리와 아들, 김 서기장, 김씨, 채라우 남자 코치(북), 조남풍 여자 코치(북), 이유성 여자 코치(남). 이유성 단장 제공.

탁구는 지난해 5월 스웨덴세계대회에서 전격적으로 여자 단일팀이 결성돼 동메달을 땄고, 7월 대전에서 열린 코리아오픈에서도 복식 단일팀이 결성돼 혼합복식의 장우진(남)-차효심(북) 조가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이 단장은 “지바에서 남북 스포츠 발전의 초석이 깔렸다면 최근엔 고 조양호 대한탁구협회 회장의 노력으로 단일팀이 성사되고 내년 부산 세계탁구대회도 유치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세계탁구대회는 북한, 중국, 일본에서도 열렸지만 한국에서는 내년 부산이 처음”이라며 “부산에서 29년 만에 ‘지바의 영광’을 재현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이유성 단장.

이 단장은 “탁구는 이미 통일이 됐고, 다른 종목보다 한 차원 높은 단일팀을 구성해야 한다”며 “내년 부산 대회 단일팀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합동훈련을 하고, 남북 선수가 모두 참가하는 선발전을 치러 ‘강한 단일팀’을 만드는 구상을 남북이 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동훈 스포츠부장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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