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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미희 감독과 이재영 서로가 바라본 함께한 5년

이형석 입력 2019.04.25. 06:01 수정 2019.04.2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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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이형석]

2014년, 박미희(56) 감독과 이재영(23)은 흥국생명에서 함께 첫걸음을 내딛었다. '여성 감독'과 '에이스'로 기쁨과 좌절을 모두 맛본 두 사람은 결국 통합 우승을 합작했다.

박 감독은 이재영과 만남을 '운명'으로 여긴다. 흥국생명은 2013~2014시즌 최하위에 그치차, 2014년 5월 마이크를 잡고 있던 박미희 해설위원에게 감독을 제안했다. 이전에 몇 차례 사령탑 제안을 고사한 박 감독은 이번에는 지휘봉을 맡기로 결정했다.

4개월 이후 열린 2014 신인 드래프트. 전년도 최하위 성적으로 흥국생명이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었다. 당시 세터 고민이 크지 않았던 박 감독은 주저 없이 이재영을 전체 1순위로 지목했다. 당시 전체 2순위가 이재영의 쌍동이 동생 이다영(현대건설)이었다. 박 감독은 "우리팀에 공격수가 더 필요했다"면서 "1라운드 1순위는 전년도 팀 성적이 가장 떨어진 팀에 뽑히지 않나.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지 않았나 싶다"고 회상했다.

신인왕을 수상하며 떡잎부터 달랐던 이재영은 곧바로 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고, 흥국생명은 2016~2017시즌 우승을 차지했다. 박 감독은 프로스포츠 여성 감독 최초로 정규 시즌 우승을 거머쥐었고, 이재영은 3년 차에 MVP를 차지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챔피언결정전에서 IBK기업은행에 1승3패로 져 우승 트로피를 뺏겼고, 2017~2018시즌에는 전년도 정규 시즌 우승 팀이 꼴찌로 떨어지는 굴욕을 맛봤다.

설욕과 자존심 회복을 다짐한 2018~2019시즌, 박 감독과 이재영은 우승을 합작했다. 박 감독은 '강한 엄마 리더십'을 발휘하며 흥국생명을 12년 만의 통합 우승이자 팀의 4번째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끌었다. 정규 시즌과 포스트시즌을 통틀어 단 한 번도 연패가 없었던 만큼 지도력과 장기 레이스 운영이 돋보였다. 이재영은 정규 시즌 득점 2위(624점)에 올랐고, 챔피언결정전에서도 뜨거운 투혼을 불살랐다. 믿고 보는 해결사였고, 감독과 동료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늘 그를 찾았다.

- 우승한 지 한 달이 다가온다. 우승의 여운 혹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박미희 감독(이하 박)= "우승 기쁨의 유효기간은 끝났다. 2019~2020시즌 고민이 시작됐다. 외국인 선수 트라이아웃을 어떻게 준비하고 잘 마치느냐가 중요하다."

이재영(이하 이)= "여운이 조금 남아 있다. 사람들이 나를 좀 더 알아본다. 일주일 전에 이태원에 갔는데, 남성 팬들이 다가와 배구팬이라고 알아보더라. 그런데 함께 간 도로공사 정선화에게 '예쁘다'고 하던데 나한테는 'MVP 축하한다'고만 하더라.(웃음)"

- 도로공사와 챔피언결정전 3차전, 5세트 12-9에서 긴 랠리 순간 어땠나. 이= "어떻게든 점수를 뽑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여기도 때려 보고, 저기도 때렸는데, 다 상대 수비가 걷어 올리더라. 마지막 순간 조금 더 예리하게 때렸는데 그게 통했다. 정말 힘들었지만 짜릿했다."

박= "정말 명장면이다. 다시 봐도 재영이에게 토스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재영이는 힘든 상황을 즐길 줄 안다. 포인트를 올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어떤 분이 우스갯소리로 '이재영에게 어서 일어나 빨리 공을 때려야지' 하는 것 같다고 하더라. 사실 그 순간에 나 역시 선수와 같이 코트에서 뛰는 심정이었다."

- '유리천장'을 깨트렸다는 평가가 많다. 박= "이제 '그만 깨라'는 이야기가 있더라.(웃음) 사실 힘들었을 때 계속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여성 지도자로 책임감이 있었다. '최소한 후배들의 길을 막아선 안 되지 않나'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여러 조건이 딱 맞아떨어져 운 좋게 우승했다. 여성 감독이어서 (내게) 더 관심이 쏠리지만, '유리천장을 깼느냐'가 아니라 다음 시즌에도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 "내가 은퇴하고 지휘봉을 잡을 때 계속 그런 얘기를 들으면 속상하지 않을까 싶긴 했다. 아직 '감독은 무조건 남자가 맡아야 한다'는 인식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 좋은 여성 지도자가 많이 나오면 그런 얘기가 사라질 것이다."

- 정규 시즌 시상식에서 이재영이 수상 소감을 말하지 눈물을 글썽이는 것 같았다. 박= "내가 부임하자마자 드래프트에서 데려왔다. 운명이지 않나 싶다. 선배들이 많고 경기력이 좋은 팀에 갔다면 덜 고생했을 텐데. 우리팀이 1순위 지명권을 얻어 뽑을 수 있었다. 그동안 에이스로 고생을 많이 했다. 어린 선수가 짊어지기엔 무거운 짐이었다. 그걸 잘 이겨 냈다."

- 반대로 이재영에게 감독님은. 이= "감독님이 정이 많다. 2017~2018시즌에는 나도, 감독님도 정말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인지 2년 전 MVP를 수상할 때와 느낌과 떨림이 달랐다. 감정이 북받쳤다. '여기까지 다시 어떻게 올라왔나' 싶더라. 선수는 팀과 감독을 잘 만나야 한다고 하더라. 나는 (지도자가) 꾸짖기보다 믿고 맡겨 주면 더 힘을 얻는다. 감독님은 뭔가 지적할 때 '왜 그렇게 못해'라고 하기보다 '이렇게 하면 더 잘했을 것 같아' '한번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라고 해 주신다. 감독님과 은퇴할 때까지 같이 배구를 하고 싶다."

- 엄마 리더십 얘기가 많다(1남 1녀를 둔 박 감독 딸은 조송화와 같은 스물여섯 살이다). 이= "'분리수거 똑바로 해라' '밥 많이 먹어라' '양말 신고 다녀라' 등 잔소리를 많이 한다.(웃음) 반팔 차림으로 돌아다니면 감기 걸릴까 봐 '외투 입고 다녀라'고 한다. 늘 선수들을 먼저 이해하려고 하고, 대화에 애쓰신다."

박= "모두 내 딸처럼 여긴다. 사실 이 시기에는 부모 밑에서 영향받고 지낼 나이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숙소 생활을 하며 가족과 떨어져 지내니 안쓰럽다. 힘든 점도 많을 것이다. 가끔 철없는 생각이 엿보여도 이해하려고 한다."

- 가족의 응원을 많이 받을 텐데. 박= "자녀를 둔 어머니라면 어쩔 수 없이 가족의 힘이 필요하다. 빨래·분리수거·청소·설거지 등 각자 역할을 분담해 정말 잘한다. 그래서 일에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이= "경기장에 가족이 찾아오면 마음이 안정된다. 가족이 지켜보면 경기가 끝날 때 아무리 힘들더라도 힘이 난다."

- 일부러 이재영에게는 칭찬을 안 했다고 밝혔는데, 섭섭하지 않았나. 박= "재영이가 배구를 시작한 뒤 아마도 지난해 가장 많이 혼났을 것이다."

이= "(웃음) 2016~2017시즌 우승 이후 약간 나태해졌다. 지난해 감독님께 진짜 크게 한번 혼난 적이 있다. 배구를 더 사랑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해 꼴등을 한 게 개인적으로 크게 깨닫고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

박= "지난해 경험이 큰 약이 된 것 같았다. 사실 재영이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재영이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많이 칭찬한다. '이재영'이라는 선수에 대해 잘못하고 있는 부분을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칭찬해 주고 싶을 때가 많지만 나름대로 절제했다."

이= "칭찬을 거의 받지 못해 조금 섭섭했던 적도 있다. 지금은 이해한다. 어머니가 '감독님 선수 시절 때는 에이스라서 더 챙겨 주고, 특별 대우를 해 주는 게 없었다'고 하시더라."

박= "이재영은 어느 지도자라도 팀에 데리고 있고 싶은 선수다. 누구를 만나도 잘할 것이다. 본인이 워낙 배구를 좋아하고, 좋은 유전적 영향을 받은 가운데 노력도 많이 한다. 방향만 제시하면 습득력이 빠르다. 열정이 넘치고 지치지도 않고, 항상 긍적적인 선수다. 멘틀이 갑이다."

이= "꾀 부리면 성적으로 드러난다. 아픈 것을 제외하면 몸 생각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겠다."

- 다음 시즌 목표는. 박= "2연속·3연속 우승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겠다."

이= "내년에 또 한 번 우승하고 MVP를 받고 싶다."

이형석 기자 lee.hyeongseok@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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