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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People] NC 다이노스 양의지

대단한미디어 입력 2019.05.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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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의 앞길에 돌을 던지랴

당연한 건 없었다. 두산 베어스의 안방마님 양의지가 당연하지 않았듯, NC 다이노스의 꾸준한 상위권 성적이 당연하지 않았듯, 그간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이 우리의 예상을 빗나가는 것은 생각보다 흔한 일이었다. 2018년 12월 11일,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최대어로 꼽힌 양의지가 NC와 최종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에 야구판이 떠들썩했다. 한쪽은 웃었고, 어느 한쪽은 울었다. 당사자는 말을 아꼈다. 그리고 행동으로 보여줬다. 매사에 무관심한 표정으로 ‘무뚝뚝한 선수’라 정평이 나 있던 그가 새로 만난 동료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생소했지만 그의 진심을 전하기에는 충분했다. 팬들은 감격했고, 동료들은 성적으로 보답했다. 어쩌면 양의지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여우’일지 모른다.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소경화 Location 창원NC파크


#이제는 친정팀 두산

포수. 흔히 안방마님, 그라운드의 사령관, 팀 최후의 수비수라 불릴 만큼 야구에서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다. 잘 키운 포수 한 명은 열 투수 안 부럽다는 말이 있을 정도. 1982년 프로야구 원년부터 포수 사관학교라 불린 두산은 포수를 잘 육성하는 구단으로 꼽혔다. 늘 자원이 풍족했고, 정상급 포수를 다수 배출했다.

이러한 ‘포수 왕국’의 명성을 이어오는 데는 양의지의 공이 컸다. 현역 최고의 포수로 통하는 양의지는 경험과 안정감은 물론, 공수에서 전에 없던 활약을 펼치며 두산을 리그를 압도하는 강팀으로 만들었다. 그렇기에 그의 이적은 팬들에게 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곰의 탈을 쓴 여우’라는 별명 값을 제대로 했다.

<더그아웃 매거진>과 두 번째 만남이다. 4년 전에는 두산의 유니폼을 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그때 두산 유니폼과 슈트를 입고 촬영했다. 당시 사진이 인터넷에 계속 돌아다니는데 볼 때마다 어색하다. 슈트보단 유니폼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가만히 있어도 우승이 가까이 있고, 눈빛만 봐도 아는 오랜 동료들이 있었다. 그런데도 2018 정규리그 우승팀에서 꼴찌팀으로 이적을 택했다. 지나고 보니 참으로 양의지다운 선택이었다.

정든 팀을 떠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NC라는 팀에서 나라는 선수를 더 원한다고 느꼈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이적하게 됐다.

양의지가 FA 시장에 나온 후 야구판에 일어난 일은 굉장히 이례적이었다. ‘얼쥬양(얼마를 쥬야 해요 양의지)’ 노래도 나왔고, 양의지를 잡아달라고 팬들이 만든 짤도 셀 수 없이 다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당시 본인은 어떤 생각을 했는가.

그때를 생각하면 팬분들께 정말 감사하고 죄송하단 말밖에는 드릴 게 없다. 안 좋게 보는 분도 있겠지만, 격려해주는 분도 계셔서 힘이 된다.

<더그아웃 매거진> 95호에서 옛 동료 함덕주가 타석에 양의지가 서면 더 세게 던질 자신이 있다며 압도적으로 이기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맞받아친다면?

맞받아치고 싶지 않다. (함)덕주는 워낙 좋은 투수다. 후배 기 살려줘야 하니까 내가 잘 못 쳐야겠다는 마음뿐이다. 덕주가 잘 던지면 좋겠다.

캠프 때 닉 에반스와 마이클 보우덴을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 무슨 얘기를 나눴는가.

잘 돼서 축하한다고 말해줬다. 나 역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그들에게 축하한다고 그랬고, 오랜만에 만난 만큼 긴 얘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평소 과묵한 성격에도 불구하고 더스틴 니퍼트를 포함한 여러 외국인 선수와 오래도록 친분을 유지하는 모습이다.

처음부터 친했던 건 아니다. 오랜 시간 팀 동료로 지내며 점점 외국인 선수가 아닌 우리나라 선수와 같이 느껴져 더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


#양의지 효과? Yes or No

NC가 양의지를 영입하며 내건 조건은 마운드 안정이었다. 젊은 투수 유망주들을 성장시켜 달라는 의미였다. 기다렸다는 듯 ‘양의지 효과’는 2019시즌 개막전부터 기대 이상이었다. 투수 리드와 수비에서 빈틈이 없었고, 타선에 짜임새가 생겼다. 그가 앉아있기만 해도 안정감이 생긴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정규리그 꼴찌팀의 분위기는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No”라고 말한다. “선수들 스스로 잘한 거고 나만 더 잘하면 된다”라며 동료들을 추켜세웠다. 그리고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모두가 인정하는 KBO리그 최고의 포수임에도 불구하고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설령 기존 성향과 정반대의 행동을 해야 할지라도 새로운 나의 팀을 위해서라면 거침이 없었다.

스프링캠프 출국 전 NC의 모든 선수와 친해지는 게 목표라고 했다.

아직 못 본 선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선수와 친해졌다. 처음에는 내가 먼저 다가갔다. 지금은 함께 호흡을 몇 번 맞췄기 때문에 어색한 게 없어져서 먼저 다가오는 선수도 있다.

개막 3주 차에 접어들었다. 최근 NC의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이탈해 부담이 크겠다. (4월 4일 인터뷰)

그렇긴 하지만 남은 선수들이 다행히 잘 해내고 있다. 매 경기 몸이 부서져라 달리고, 어떻게 해서든 이기려고 노력해 좋은 시너지를 내고 있다. 빠진 선수들이 돌아오면 지금보다 높은 성적을 내지 않을까 생각한다. 팀으로서는 어린 선수들이 기회를 잡는 게 좋은 방향이다.

안방마님이 볼 때 타 팀과 차별화된 NC 투수진의 강점이 있다면?

젊은 게 장점이다. 앞으로 더 기량을 낼 수 있고 좋은 투수로 성장할 수 있는 선수가 많아서 그 점이 가장 기대된다. (외람된 말일 수 있겠지만 키우는 맛이 있을 법도 하다.) 키우는 건 잘 모르겠다. (웃음) 솔직히 자기가 잘 던져서 스스로 빛을 보면 좋겠다. 내 덕을 보기보다는 본인들이 잘해서 좋은 선수가 되길 바란다.

투수들의 데이터를 입력 중일 텐데 어떻게 다 외우는지 신기하다.

아직까진 몇 경기 안 치른 상황이라 모르는 투수가 있다. 점점 경기하며 알아 가면 더 좋아질 거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기억력이 좋은 편인가.) 아니다. 데이터 분석팀에서 워낙 준비를 잘 해주시는 덕분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어쩌면 본인보다 팬과 후배들이 더 양의지라는 선수를 믿는 것 같다.

감사할 뿐이다. 그들은 내게 더 잘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들게 한다. 한 게임 한 게임 결승전이라고 생각하고 뛰고 있다.

NC에서 본인과 가장 케미가 좋은 선수나 코치를 꼽자면?

용덕한 코치님! 선수는 누구 하나 꼽을 것 없이 다 잘 맞는다. (두산 때는 오재원, 오재일 선수와 주로 얘기했다고.) 지금은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한 (이)원석이 형을 포함해 세 명의 형과 늘 함께 지냈다. 야구를 하는 데 있어 도움 되는 점이 많아 형들한테 의지하곤 했다. 우리끼리 추억이 참 많다.

고향인 광주에서 19년을 살았고, 이후에는 서울팀에서 쭉 생활했다. 창원에 와서 좋은 점을 꼽자면?

공기가 맑고 차도 덜 밀린다. (지나가던 관계자: 너무 억지로 붙인 거 아냐?) 왜! (억울) 공기가 맑잖아. 미세먼지도 적고 얼마나 좋아. (아기 키우기 좋겠다.) 아니다. 그건 서울로 가야 한다. (웃음)

이번 시즌 30홈런이 목표라고 했는데 창원NC파크가 넓어서 불만일 법도 하다.

구단에서 그만한 투자를 해주셨는데 그 정도는 달성해야 하지 않겠나. 잘 맞으면 넘어가기 때문에 보답하겠다는 마음으로 높게 잡았다.

이왕 높게 잡은 거 30홈런 공약을 걸어본다면?

어떤 공약이 좋을지 모르겠다. (‘야놀자’ 댄스를 잘 추던데.) (한숨) 거기서 하는 거 이제 안 할 거다. 했던 건 안 하고. (다시 한번 <더그아웃 매거진> 표지를 하는 건 어떤가.) 좋다. 그때 한 번 더 인터뷰하겠다.


#아빠가 된 소년

약체로 평가받던 광주 진흥고의 한 어린 포수는 2006년 신인 드래프트 당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스카우트들은 더 좋은 선수를 찾는 데 혈안이었고, 소년은 초조하게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두산이 양의지의 이름을 불렀고, 2차 8라운드 전체 59순위로 겨우 프로 유니폼을 받아들었다. 그보다 먼저 뽑힌 포수는 무려 8명이었다.

학창시절 내내 특출나지 않았던 소년의 야구 인생은 경찰 야구단 제대 후 꽃 피기 시작했다. 복귀하자마자 단숨에 1군에 합류했고 신인왕을 움켜쥐었다. 포수로서는 김동수, 홍성흔에 이어 세 번째였다. 그는 더욱 승승장구했고 2014년에는 마침내 포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그리고 그 해, 7년간 연애를 이어온 지금의 아내와 결혼식을 올렸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20년째 야구를 하고 있다. 고비가 있었는가.

정말 많았다. 어릴 때는 뚜렷하게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 진로에 대한 걱정이 컸다. 김태형 감독님께서 좋게 보고 뽑아주신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프로에 와서 좋은 지도를 받아 잘된 케이스라 감사한 분이 많다.

드래프트 당시 대학 입학을 추천하는 구단도 있었다.

무조건 프로에 가겠다는 생각이 컸다. 야구를 하면서 프로 선수가 되겠다는 것 하나만 목표로 잡았기 때문에 내겐 프로 입단이 가장 중요했다. 다른 길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시간이 참 빠르다. 신인상을 받던 때가 어제 일처럼 선명한데, 지난겨울에는 FA 최대어로 스포츠 뉴스를 뜨겁게 달궜다. 프로 생활 13년을 떠올리면 어떤 게 먼저 떠오르는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서울에 와서 프로 유니폼을 받았을 때가 기억에 남는다. ‘나도 이제 진짜 프로 선수가 되는구나’라는 감동이 있었다.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 그때의 감동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지금 양의지라는 사람이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으로서는 건강이다. 좋은 몸으로 오래 야구를 하며 팬분들께 좋은 야구를 보여드리고 싶다.

야구가 안 될 때 벗어나는 비법이 있다면?

빨리 야구장을 떠나 야구가 안 보이는 곳으로 피해야 한다. 그 후 휴식을 취하는 게 최고다. (주로 어디로 떠나는가.) 집에 가거나 친구들을 만난다. 야구가 안 된다고 더 파고들면 생각만 복잡해지더라.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얼른 야구장에서 떠나는 편이다. (딸을 보면서 힐링할 것 같은데.) 아우. 힘들다. (웃음) 힐링은 아니다.

딸 소율 양이 한창 말하는 데 재미 들릴 나이다. 사투리도 섞어 쓰는가.

아직 4살이라 말을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다. 아기가 자고 있을 때 나가서 시즌 중에는 잘 못 본다.

‘가정의 달’ 5월 호의 표지를 장식한다. 양의지에게 가족이란 울타리는 어떤 의미인가.

내가 야구를 하는 힘.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 (웃음) 부모님과 아내가 있기에 내가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거고, 그게 야구를 하는 데 크게 작용한다.


#의지의 ‘의지’

겨우내 얼마나 많은 기대와 이목이 양의지에게 쏠렸는지는 야구팬이라면 모두가 알 것이다. 관심이 부담될 법도 한데 그는 내색 없이 시즌을 착실히 준비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여유로 나타났다.

말이 늘었고 웃음이 잦아졌다. 특유의 뚱한 표정 뒤에 숨겨온 능글맞은 매력이 사람들을 웃게 했다. 이적생 양의지의 새로운 야구 인생이 시작됨을 알리는 긍정적인 변화였다. 구단과 팬들을 실망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단숨에 그를 변화시킨 것이다. 하지만 그는 더 배우고자 하는 의지로 또 다른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포수는 특유의 포구 자세 때문에 노쇠화가 빠른 포지션이다. 어릴 때부터 포수만 했기에 몸에 성한 데가 없겠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포수가 힘들게 하고 있다. 아픈 건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준비를 잘하면 충분히 오래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웨이트 트레이닝과 휴식의 균형을 맞추며 체력을 기르고, 나중을 대비하고 있다.

역시 영리하다. ‘곰의 탈을 쓴 여우’ 이젠 ‘공룡의 탈을 쓴 여우’겠지만 그 별명이 딱 어울린다.

운이 좋아 붙은 별명이다. 좋은 투수들을 만난 덕분이지 나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다. 우리나라 포수 중에서는 (강)민호 형이 제일 잘한다. 나는 아직 배우고 따라가야 하는 단계라고 생각한다.

바로 내일, 잠실에서 친정팀과 2019시즌 첫 경기가 열린다.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떨릴 것 같다.

정말 정말 긴장된다. 우선 팬분들께 빨리 인사드리고 싶고 동료들도 보고 싶다. 사장님, 단장님, 팀장님께도 인사드리러 갈 예정이다. (오늘 잠은 잘 오겠는가.) 사실 어제부터 잠이 안 오더라. 예민해서 일찍부터 걱정 중이다.

두산 선수들에게 전화가 왔을 법도 하다.

내일 경기 끝나면 (오)재일이 형과 저녁을 먹기로 했다. (경기에서 이긴 사람이 사는 건가.) 아니다. 내가 사야 한다. 나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웃음) 그 형이 단백질을 좋아해서 소고기를 대접할 예정이다.


두산팬들이 이를 갈고 있을 텐데 각오는 돼 있는가.

야유를 받을 거라고도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10년 넘게 손뼉 쳐주고 응원해주신 분들이니 그것마저도 감사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오히려 내가 나가고 더 잘하는 것 같다. 원래도 잘했지만 역시 두산은 강팀이다. (양의지가 두산 전력의 반이라는 얘기도 있었는데.) 전력의 반도 아니었던 것 같다. 한 1% 정도? (웃음)

마지막으로 ‘은퇴 전에 이것만큼은 이루고 싶다’ 하는 게 있다면?

우승. 2년 동안 준우승을 할 때 정말 눈물 나고 가슴 아팠는데 한 번 더 우승을 하고 야구를 그만두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 더 열심히 뛰어다녀서 NC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그간 ‘한량’의 이미지가 강했던 그다. 매사에 설렁설렁, 타석에 서면 표정 변화도 없고 스윙에도 힘을 들이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대충한다는 생각이 들 만큼 양의지라는 사람은 늘 무덤덤했다. 그의 화려한 성적은 ‘천재형’이기에 가능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의 자리를 얻기 위해 누구보다 부단히 정진한 노력파 선수였다. 양의지의 이름에 어울리는 당연한 성적 뒤에는 당연하지 않은 굳건한 의지와 피나는 연습이 존재했다. 세상에 어느 하나 당연한 건 없다. 지금 1등 포수일지라도 언제나 1등일 리는 없다. 양의지는 이를 알기에 도전한 것이다. 그러니 그의 도전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더그아웃 매거진 97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9년 97호(5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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