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이 말하는 손흥민 "이젠 무에서 유를 만드는 선수" [단독인터뷰]

이지은 2019. 5. 2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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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오른쪽) 전 대표팀 감독이 지난해 5월21일 서울광장에서 진행된 대한민국 2018 러시아 월드컵 축구대표팀 출정식에 참석해 손흥민을 격려하고있다.  김도훈기자 dica@sportsseoul.com

[스포츠서울 이지은기자]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이죠.”

‘한국 축구의 영웅’ 차범근 감독은 손흥민(27·토트넘)의 위협이 흐뭇하다. 이번 시즌 소속팀 일정으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만을 남겨둔 손흥민은 29일 현재 유럽무대에서 총 116골(함부르크 2부리그 1골 제외)을 기록했다. 차 감독이 보유한 한국인 유럽 무대 최다골(121골)과 불과 5골 차다. 다음 시즌에는 무난히 역대 최고 기록을 다시 쓸 수 있다.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만난 차 감독은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것”이라며 오히려 반색했다. “젊은 흥민이가 잘해서 늙은 나를 자꾸 불러내 주니 고마울 뿐”이라며 뿌듯해했다.

◇ “손흥민, 이젠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선수”
차 감독은 손흥민의 성장을 누구보다 유심히 지켜봤다. 독일 무대를 발판으로 삼은 자원이기 때문이다. 차 감독은 1980년대 독일 분데스리가가 유럽 축구를 호령하던 시절 프랑크푸르트와 레버쿠젠의 주축 선수로 활약하며 변방의 신화를 썼다. 동북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독일로 떠난 손흥민 역시 분데스리가의 함부르크를 거쳐 레버쿠젠에서 활약하며 월드 클래스 선수로 커나갔다. 잉글랜드에 입성한 뒤에는 전성기를 열어젖혔다. 토트넘의 간판스타로 자리잡으며 한국을 ‘손흥민의 나라’로 만들고 있다.

올 시즌 손흥민이 치른 경기를 보며 차 감독은 “성숙해졌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타이틀’이 걸린 큰 경기들을 치르는 모습에서 이전과 다른 모습이 눈에 띄었다. “레버쿠젠에서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많이 성장한 것 같다. 지금은 유럽 사람들이 ‘손’이라고 하면 해리 케인, 크리스티안 에릭센, 델레 알리와 함께 팀 내 최상위급 선수로 생각한다. 군 문제까지 해결하면서 더 큰 선수가 되기 위한 최상의 조건을 확보했다”고 바라봤다.

주축 선수 중에서도 팀을 이끄는 리더 그룹으로 한 단계 뛰어올랐다는 평가다. 차 감독은 “팀의 주요 자원 중에서도 성적을 책임지는 그룹이 있다. 그 영역에 들어가려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기회가 오는 걸 매듭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백지상태에서 자신이 기회를 만들고 그것을 해결해 마무리를 지을 수 있어야 인정받는다”며 “이전에 흥민이는 찾아온 기회를 안 놓치는 정도였다면 이젠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를 제치며 한 방을 날려줄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차 감독은 지난달 9일 맨체스터 시티(맨시티)와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을 예로 들었다. 아웃될 것 같은 볼을 손흥민이 끝까지 쫓아가 골라인 위에서 살려내더니 상대 수비수 한 명을 제치고 벼락 같은 왼발 터닝슛을 꽂아넣었다. 토트넘은 이 골에 힘입어 1-0으로 이겼다.

손흥민(왼쪽)이 2014년 7월30일 서울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과 바이엘 04 레버쿠젠의 친선경기에 앞서 레버쿠젠의 손흥민(왼쪽)이 차범근 해설위원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박진업기자 upandup@sportsseoul.com
◇ 분데스리가 레전드가 경험한 유럽 최정상 자리
유럽 최정상 클럽의 영예는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는다. 챔피언스리그 결승이 ‘꿈의 무대’라 불리는 이유다. 차 감독은 유럽 최정상의 영광도 두 번이나 누렸다. 1980년 프랑크푸르트 소속으로 UEFA컵 우승에 이바지했고 이적한 레버쿠젠에서 8년 만에 챔프 자리에 올랐다. 지금 챔피언스리그의 전신인 유러피언컵은 각국 우승팀만 출전했기 때문에 오히려 경쟁이 약했다. 빅리그의 경우 2~5위팀들이 한꺼번에 나선 UEFA컵이 더 치열했다. UEFA컵 2회 우승에 대한 차 감독의 자부심이 큰 이유다. 그는 “지금 챔피언스리그는 당시 유러피언컵과 UEFA컵을 합친 것 같다”고 했다.

당시를 돌이키던 차 감독은 “처음에는 사실 그게 그렇게 큰 대회인 줄 몰랐다. 내게는 미지의 세계라 실감할 수 없었다. 가자마자 겁없이 했다”고 웃었다. 진짜 무게감을 느낀 건 1988년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 올렸을 때였다. “다시 우승하고 난 후에야 이게 그렇게도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독일에서도 두 번 우승한 선수가 흔치 않더라. 평생 축구를 하면서 한 번을 할까 말까 한 일이었다”며 “그때 레버쿠젠이 1차전에서 패배한 이후 2차전을 승부차기 끝에 이겼다. 이번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극적인 승부가 많이 나오더라. 보면서 예전 생각이 많이 났다. 축구가 이렇게 재밌는 스포츠라는 걸 새삼 느꼈다”고 회상했다.

차범근 감독이 지난 26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강시민공원에서 열린 차범근축구교실 페스티벌 도중 포즈를 위하고 있다.  김현기기자 silva@sportsseoul.com
◇ 토트넘 vs 리버풀, 차범근의 선택은?
토트넘의 결승전 상대 리버풀은 ‘명장’ 위르겐 클롭 감독 휘하에서 계속해서 상승세를 탔다. 차 감독은 “차두리가 마인츠에 가던 때만 해도 감독으로 막 이름이 알려지던 시기였는데 도르트문트에서 ‘게겐프레싱(극단적인 전방 압박 전술)’으로 자신만의 색깔을 내며 유명해지기 시작했다”고 클롭 감독을 기억했다. 이어 “그런 방식의 축구가 영국에서도 통할까 궁금했다. 초반에는 분명 어려움을 겪는 모습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소화해내더라. 젊은 선수들의 마음도 사로잡을 줄 아는 유능한 감독”이라고 평가했다. 독일 출신의 이 사령탑은 2015년 도르트문트의 지휘봉을 내려놓은 뒤 2016~2017시즌 리버풀에 부임해 팀을 유럽에서 손꼽히는 강호로 재탄생시켰다.

그러나 손흥민이 있는 이상 차 감독의 팔은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유는 단순히 승패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 축구의 역사를 조망해온 지도자로서 그리는 미래의 큰 그림이다. 차 감독은 “스포츠의 인기가 폭발하는 데는 스타의 탄생이라는 계기가 필요하다. 손흥민의 활약은 한국 축구가 부활하는 데 큰 구실을 했다. 정말 기특하고 감사하다”며 “2002년 한·일 월드컵으로 한국 축구가 부흥의 계기를 마련했지만 이를 잘 이어나가지 못했다. 한 번 실수했던 만큼 다시 찾아온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손흥민이 앞으로도 좋은 영향을 더 줄 것 같다”고 기대했다.
number23togo@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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