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식의 야구노트] 강타자에 '114km 커브' 류현진 배짱이 빛났다

김식 입력 2019. 6. 12.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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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이닝 1실점, 불펜 탓 10승 실패
컨디션 나쁠 때 극복방법 보여줘
느린 공으로 강타자 트라웃 잡아
"1선발 여유, 위기서도 어깨 힘빼"
LA 에인절스전에서 6이닝 1실점 했지만 10승 달성에 실패한 류현진. [USA투데이=연합뉴스]
류현진(32·LA 다저스)이 11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 에인절스타디움에서 열린 LA 에인절스와의 메이저리그 인터리그 경기에서 잘 던지고도 승리를 따내지 못했다. 6이닝 1실점했지만, 불펜 난조로 9승1패를 그대로 유지했다. 평균자책점도 메이저리그 전체 1위(1.36)를 지켰다.

류현진은 평소보다 땀을 많이 흘렸다. 1, 2회에는 스트라이크존 가운데로 향하는 실투도 많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듯 안타 7개에 몸맞는공 1개를 허용했다. 그래도 노련미로 6회까지 3-1 리드를 지켰다. 2회 콜 칼훈에게 높은 체인지업을 던져 솔로 홈런(비거리 122m)을 맞은 게 유일한 실점이었다. 다저스는 불펜 난조로 3-5로 역전패했다. 류현진은 10승 고지에 오르지 못했지만, 컨디션이 나쁠 때 어떻게 이겨내는지,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는지를 보여줬다.

이날 류현진은 느린 커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에인절스 타선에서 가장 까다로운 타자 2번 마이크 트라웃을 1회 처음 상대했을 때도 느린 커브(시속 124㎞)를 초구로 선택했다. 이후 체인지업과 패스트볼을 섞어 타이밍을 흔들었고, 2볼-2스트라이크에서 포심패스트볼(148㎞)을 던져 좌익수 플라이로 잡아냈다. 가운데에서 약간 빠진, 위험한 공이었지만 앞서 트라웃의 타이밍을 흩뜨린 덕에 장타가 되지 않았다.

류현진은 3번 알버트 푸홀스(39)에게도 초구 커브(116㎞)를 던졌다. 2구째 컷패스트볼이 가운데로 몰려 우전안타를 맞았지만, 이름만으로도 공포감을 주는 두 타자에게 가장 느린 구종을 먼저 선택한 건 대단한 용기였다.

류현진은 4회 선두타자로 푸홀스를 다시 상대했다. 이번에도 초구는 커브였다. 이날 가장 느린 공(114㎞)이 스트라이크 바깥쪽에 살짝 걸쳤다. 이 공은 타자의 범타를 이끌어내는 유인구와 다른 성질의 투구였다. ‘현혹구(眩惑球)’라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았다.

메이저리그 현역 최다 홈런(644개) 기록을 갖고 있는 푸홀스는 두 타석 연속으로 느린 커브부터 봤다. 류현진이 유명한 커브볼러가 아닌데도 그랬다. 타자의 심리를 흔드는, 동시에 배팅 타이밍을 늦게 만들려는 전략이다. 류현진은 몸쪽 높은 포심패스트볼-몸쪽 낮은 컷패스트볼-바깥쪽 체인지업을 차례로 던져 푸홀스를 우익수 플라이로 잡아냈다.

류현진은 5회 연속 안타를 맞고 무사 1·2루에 몰렸다. 가장 큰 위기에서 9번 루이스 렝기포에게 던진 초구도 높은 커브였다. 이어 몸쪽 패스트볼-낮은 커브 조합으로 3구 삼진을 잡았다. 이렇게 보여준 커브를 1번 토미 라 스텔라(2루 땅볼), 2번 트라웃(헛스윙 삼진)에게는 하나도 쓰지 않고 잡아냈다.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던 류현진은 타선과 수비 도움도 받지 못했다. 그런데도 1실점으로 막은 건 뛰어난 제구와 속도 조절 덕분이었다. 주 무기인 체인지업이 이날 잘 들어가지 않자 커브로 타자들을 현혹했다. 99개의 투구 가운데 커브가 13개(13.1%)였다. 커브 구사율이 평소(10.1%)보다 높았을 뿐만 아니라, 타자와의 승부를 시작하는 초구에 집중했다.

지난달 31일 뉴욕 메츠전에서 류현진은 느린 커브로 1회를 시작했다. 메츠 1번 타자 아메드 로사리오가 혀를 내밀며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김선우 해설위원은 “메츠가 류현진을 공략하기 위한 준비한 데이터와 다른 공배합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초구 커브가 항상 정답은 아니다. 류현진은 4월 21일 밀워키 브루어스전에서 6회 크리스티안 옐리치에게 초구 커브를 던졌다가 공이 가운데로 몰려 홈런을 맞기도 했다. 그래도 류현진은 배짱 좋게 커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류현진은 경기를 마친 뒤 “제구의 중요성을 또 느꼈다. ‘안 보여준 공’의 제구가 잘 됐다”고 말했다. 이날 결정구는 주로 포심패스트볼과 컷패스트볼이었다. 진짜 무기를 아끼려고 커브와 체인지업을 많이 던졌다는 뜻이다. 이날 6차례의 득점권 위기를 모두 벗어난 류현진의 득점권 피안타율은 0.038까지 떨어졌다.

정민철 해설위원은 “모두가 주목할 때 투수들은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1선발이 되거나, 위기에 몰리면 본능적으로 그렇게 된다”면서 “그러나 류현진은 반대다. 선발 경쟁을 할 때는 전력 피칭을 했지만, 다저스 1선발이 된 지금은 여유가 넘친다”고 분석했다.

김식 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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