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의 막춤, 클럽같은 라커룸, 한국축구 동력이 바뀌고 있다 [U-20 월드컵]

루블린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입력 2019. 6. 12. 14:41 수정 2019. 6. 1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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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결승 진출에 기뻐하는 정정용의 아이들 | 대한축구협회 제공

선수들은 감독에게도 물을 뿌렸다. 노래하며 환호했다. 감독은 춤을 췄다. 리듬·박자 모두 무시한 ‘아저씨 춤’이었지만, 잠시라도 어린 선수 앞에서 무게 잡느라 끌어오르는 감정을 감추거나 포장하지 않았다. 불과 90분 전만 해도 전술을 이야기하던 딱딱한 공간은, 젊은이들이 함성으로 동작으로 소통하는 ‘클럽’처럼 바뀌고 있었다.

정정용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감독(50)은 12일 폴란드 루블린에서 열린 U-20 월드컵 4강전 에콰도르와의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한 뒤 라커룸에 모인 선수들이 일제히 자신의 이름을 외치자 골반을 흔드는 막춤으로 화답했다. 결승골의 주인공인 수비수 최준(20·연세대)은 취재진과 만나 “우리 감독님은 나처럼 춤을 못 추지만, 10점 만점에 6점은 주고 싶다. 오늘은 특별하니까”라고 활짝 웃었다.

이날 외부로 공개된 감독과 선수들의 결승행 세리머니는 한국 축구가 새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을 알리는 예고편 같기도 했다. 승리를 위해 죽기 살기로 싸우고, 또 집중력과 진지함으로 무장해야한다는 한국 축구의 오랜 전통과 오버랩됐다.

1999년생이 주축인 이번 세대는 큰 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쏟아지는 부담에 웅크리기보다는 축제를 즐기는 태도로 어깨를 펴고 마음껏 뛰놀고 있다. 예컨대 라커룸과 그라운드에선 심장이 흔드는 흥겨운 음악 속에 몸을 풀고, 경기가 시작되면 그 누구보다 무서운 집중력으로 뛴다. 정 감독은 “외부에서 볼 때는 어색할 수도 있지만 난 문제가 없다고 본다”며 “그저 자기들끼리 (흥을) 표출하는 것이다. 그래도 자율 속에 지키는 규칙은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스스로를 옥죄는 긴장이 없기에 세계적인 강호들을 만나도 위축되는 일이 없다. 포르투갈과의 첫 경기에서 0-1로 패배했지만, 낙심하지 않았다. 이후 3경기를 거짓말처럼 승리하며 8강에 올랐다. 운명과도 같았던 세네갈과의 8강전에서 전반 37분 선제골을 내준 뒤에도 고개를 숙이는 대신 다 같이 모여 뒤집기를 다짐했다. 선수들은 그간 가장 많이 훈련했고 또 자신있어도 했던 역습과 절묘한 세트피스로 그 다짐을 지켜냈다. 잔혹한 승부차기에선 1~2번 키커가 잇달아 실축하는 어려운 상황에 휩싸였지만 남은 선수들의 승부사 같은 대담한 코스 선정과 춤추듯 몸을 날린 골키퍼 이광연(20·강원)의 선방쇼로 어느새 결과를 바꿔놨다.

이광연은 골문에서 누구보다 유연한 표정과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과거 성인 월드컵에서도 결정적 순간, 몸이 굳은듯 실수했던 골키퍼들과 달리 ‘슈퍼 세이브’를 시리즈로 펼쳐내고 있다. 에콰도르와 준결승에서도 결정적인 순간 몸이 ‘거미손’의 명성을 입증했다. 한국은 전반 39분에 터진 최준(연세대)의 선제골로 1-0 리드를 잡았지만 후반 들어 에콰도르의 공세에 시달렸다. 이광연은 후반 26분 팔라시오스 에스피노사의 미사일 슛을 몸을 던져 막아내더니 후반 추가시간 4분여가 흐른 무렵에는 왼쪽에 날아온 크로스를 받은 레오나르도 캄파니가 헤딩이 골문 구석을 향하자 몸을 날려 손으로 쳐냈다.

루블린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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