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DUGOUT Talk]두산 베어스 배영수

대단한미디어 입력 2019.06.17.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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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끝을 준비하는 에이스

배영수의 야구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2014년. 이를 기점으로 많은 게 변했다. 상징과도 같은 푸른 유니폼을 벗었고,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에이스에서 이제는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중간 계투로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18.44m의 거리에서 한결같이 힘찬 공을 던진다. 투구할 때마다 긴장감을 느낄 수 있어 그저 행복할 뿐이라는 배영수. 이제는 평생 함께 했던 야구와 아름다운 마지막을 꿈꾸고 있다.

에디터 신철민 사진 두산 베어스


배영수 (5월 9일 인터뷰)

출생 1981년 5월 4일대구광역시184cm 몸무게 90kg

별명 배열사, 배영구, 배포크, 푸피에, 영쑤

어느덧 프로 데뷔 20년째다. 시간을 돌아보니 어떤가?

후배들하고 이야기하다보면 세월 정말 빠르다는 것을 느낀다. 입단 당시 20살이었는데 벌써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현역 최다승(137승) 투수다. 에이스라는 이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라고 생각하는데?

에이스나 현역 최다승 투수나 크게 의미 없다. 프로에 입단하며 여러 가지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제는 열심히 운동하고 팀에 융화되는 것, 팀에서 필요로 하는 역할을 찾아서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어떤 게 가장 스트레스였는가?

준비를 남들보다 일찍 해야 하는 스타일이었다. 스프링 캠프에 가기 전부터 시즌이 끝날 때까지 누구보다 치열하게 했다. 물론 지금도 똑같지만 이전보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마지막을 즐기려 한다.

작년 시즌이 끝난 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팀이 바뀐 게 가장 크다. 어느덧 세 번째 팀이다. 방출되고 두 달 동안 힘들기보다는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당시 두산 베어스를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팀에서 나를 선택해주신 거다. 두산에 감사하다. KBO리그 최고 인기 구단에서 나를 찾아줬다는 게 기뻤고 선수로서 아직 경쟁력이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해줬다.




#베테랑의 품격

5년 만에 등번호 25번을 다시 달았다.

선수들은 백넘버에 대한 로망이 있다. 나 역시 신인 시절부터 줄곧 사용하던 번호였던 만큼 애착이 강했는데 다시 달 수 있어서 좋다. 한편으로는 책임감도 느낀다. 원래 두산의 25번은 양의지가 아닌가. 나도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25번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25살까지 무조건 성공한다는 마음으로 달았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영수라는 이름과 ‘25’라는 숫자가 잘 어울리는 거 같다. (웃음)

두산 유니폼을 입고 올라선 잠실 마운드는 어땠는가?

오랜만에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다. 너무 좋았다. 아직까지 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중간계투로 던지는 모습이 낯설다. 본인은 어떤가?

후배들의 고충도 알게 됐고 내가 선발투수였을 때 ‘중간계투들이 많이 힘들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프로야구에서 중요하지 않은 자리는 단 하나도 없고, 그 누구도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는다는 것도 새삼 느꼈다.

불펜에서 준비과정이 어려울 거 같다.

매일 컨디션이 다르다. 그 부분을 어떻게 준비할지 고민했는데 후배들과 코치님이 많이 도와주셨다.

말 그대로 베테랑이다. 클럽하우스 내에서 한화 이글스에 있을 때랑 또 다른 역할을 해야 한다.

특별한 역할은 없다. (웃음) 후배들이랑 장난도 치고 엄하게 하기도 한다. 워낙 열심히 해서 오히려 내가 배운다. 왜 강팀인지 알게 됐다. (두산만의 장점이 있다면?) 연습할 때 눈치를 보지 않는다. 해야 할 것을 스스로 찾아서 한다. 잘할 수밖에 없다.

후배들에게 조언을 많이 해주는가?

조언은 아니고 한 번씩 툭 던진다. 20년 동안 야구를 하며 김한수 감독님, 김기태 감독님, 이강철 감독님, 박동희 선배님, 김상진 선배님, 임창용 선배님 등 많은 분을 모셨다. 그 분들이 내게 하셨던 말씀, 야구를 오래해서 좋았던 부분들을 후배들에게 말해준다. 특히 이천에서 한 달 동안 함께한 친구들에게 눈길이 간다. 프로 선수들의 실력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걸 극복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본인이 생각하는 베테랑이란 무엇인가?

코치님이나 감독님께서 못하시는 말씀을 대신하는 거다. 다만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게 아쉽다. 베테랑이 많다고 팀 분위기를 해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한다. 이제야 왜 선배들이 그렇게 힘들어하셨는지 이해가 된다.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데 나이가 많다고 은퇴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그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선수들이 있는 거다. (어려운 부분이 많은 거 같다.) 당연하다. 줄어든 기회 속에서 결과를 내야하고 후배들도 이끌며 팀 분위기도 신경 써야 한다. 그래도 베테랑을 아껴주시고 소중히 생각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큰 힘이 된다. 특히 지금 감독님과 구단이 배려해주셔서 감사하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말이 있다. 야구선수로서 후배들이 간직했으면 하는 정신이 있는가?

20살부터 자부심을 갖고 야구를 했다. 지금까지 나를 뛰게 한 원동력이다. 팀이 여러 번 바뀌면서도 항상 (팀 마크를 가리키며) 이 마크에 대한 긍지를 느끼지 않은 적이 없다. 이게 프로 정신이다.

구체적인 수치의 목표는 크게 의미가 없을 거 같다. 그래도 ‘이것만큼은 이루고 싶다’ 하는 목표가 있는가?

한국시리즈 챔피언이다. 지금까지 7번 샴페인을 터트렸다. 우승할 때마다 눈물을 흘렸지만 이번에 한다면 더 뜨거운 눈물을 흘릴 거 같다.




#시간은 흐른다

사구 후에 한 인사가 큰 화두로 떠올랐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연히 인사는 해야 한다. 하지만 과하지 않게 목례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2006 WBC에서 스즈키 이치로에게 던진 사구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중에 질롱 코리아 구대성 감독이 지시한 것이라고 알려졌는데,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가?

기싸움은 어딜 가나 존재한다. 특히 옛날에는 이 부분을 중요하게 여겼다. 당시엔 내가 막내여서 그 역할을 했을 뿐이다. (웃음)

KBO 전체적인 부분에서 변화가 있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어떻게 달라졌다고 생각하는가?

비디오판독이 생기면서 억울한 판정이 줄었다. 프로야구가 계속 트렌드를 강조하며 새로운 것을 찾고 있다. 덕분에 편해진 것도 있고 정확하게 하려다보니 아쉬운 점도 공존한다. 사람이 하는 만큼 약간의 실수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야구 역사가 100년이 지났고 우리나라도 30년이 넘었다. 하지만 마운드에서부터 홈플레이트까지의 18.44m와 홈런으로 인정되는 거리는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150km/h를 넘는 강속구 투수였다. 투구 스타일을 바꾸면서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들었다.

강속구 투수가 기교파 투수로 변한 사례가 거의 없었다. 3년 동안 좌절도 했지만 그 와중에 배울 점도 있었다. 그 시련이 있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그때 만약 포기했다면 선수 생활을 이어가지 못했을 거다.

당시에 도움이 됐던 사람이 누구였는가?

선동열 감독님, 오치아이 에이지 코치님, 김태한 코치님, 양일환 코치님 등 삼성 라이온즈의 모든 관계자 분이 신경을 써주셨다. 이름을 거론하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처음이다. 정말 감사드린다. 팔을 다쳐 원망도 했다. 우승에 대한 대가가 너무 혹독했다. 특히 2006년도는…견디기엔 너무 힘든 역경이었다. (2006년으로 돌아간다면 그때처럼 다시 던질 수 있겠는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그때는 불구덩이 속에 뛰어들 정도로 혈기왕성했고 파이팅이 넘쳤다. 두산에서 어린 친구들이 관리 받는 모습을 보고 조금만 냉정했다면 이렇게까지 고생하지 않았을 거란 아쉬움이 남는다.

영원히 푸른 유니폼을 입을 줄 알았던 배영수가 타 팀으로 이적했다.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힘들었을 거 같다.

오해가 많았고 감정이 앞섰기도 했다. 팀을 나오는 과정에서 말이 있었지만 팬분들께서 너무 잘해주셨다.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야구하면서 가장 자존심도 상했고… (침묵) 그만두려고도 했다. 정말 힘들었다.

이 자리에서 오해에 대해 이야기 해줄 수 있는가?

선발을 고집했다는 말이 있는데 전혀 아니다. 과하게 요구했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지금 회상해도 가슴 아픈 해였다. 방황도 했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겼다. 신문광고도 해줬는데 배신감을 느끼셨을 거다. 하지만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누구를 원망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팬분들이 지금이라도 오해를 푸셨으면 좋겠다.

주제를 바꿔보자. 작년 ‘이승엽 유소년 야구캠프 with 대구광역시' 행사에 참가했다. 초등학생들과의 만남은 어땠는가?

쉽지 않았다. (웃음) 펠릭스 호세 이야기도 했다. (호세 이야기를?) 무섭다고 말했다. (웃음) 그래도 덕분에 야구를 잘할 수 있었다. 어쨌든 오랜만에 초등학생들을 만나 즐거웠다.




#가족, 그리고 꿈

2010년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지 10년이 됐다.

첫째 은채는 초등학교 1학년인데 말을 너무 잘하고 둘째 채민이는 내년에 학교를 간다. (웃음) 막둥이 아들 은준이는 맨날 사고만 친다. 집에 가면 애들 돌보느라 바쁘다. 와이프와 장모님께 죄송하다. 그래도 애들 크는 맛에 열심히 야구한다. 어린이날에 아이들을 야구장에 데리고 왔는데 좋아했다. 이 큰 잠실야구장에서 아빠가 아직 뛰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 자리를 빌려 아내와 자식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

미안하고 항상 고맙다. 힘들 때 옆에서 든든하게 곁을 지켜줬다. 자식들을 ‘새끼’라고 표현하는데 우리 새끼들 보면 항상 힘나고 그런 부분에서 좋은 아빠, 좋은 가장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와이프님 고맙습니다. (웃음)

‘사위 삼아도 될 거 같다!’ 하는 선수가 있는가?

없다. (웃음) 야구 선수만의 히스테리가 있어 되게 힘들다. 절대. (단호) (그래도 딸이 결혼하고 싶다고 하면?) (고민) 그래도 안 된다.

아들은 야구를 시킬 생각이 있는가?

몸이 너무 좋다. (웃음) 예전에는 안 시키려고 했는데 요즘은 운동선수도 괜찮아 보인다.

이제는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와 닿을 거 같다.

불태운다는 것보다 연소한다고 표현하고 싶다. 마지막까지 천천히 잘 마무리하고 싶다. 은퇴 후 진로는 아직 고민해본 적이 없다. 일단은 쉴 거 같다. 시즌이 끝나도 다시 몸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많이 먹고 잠도 늦게까지 자고 싶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길 바라는가?

삼성, 한화, 두산 팬분들까지 과분한 사랑을 받아왔다. 일일이 찾아뵙지는 못하지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배영수라는 이름을 떠올렸을 때 정말 열심히 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다. 불꽃처럼 과감한, 그리고 시원했던 선수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더그아웃 매거진 98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9년 98호(6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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