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축구장에서 전범기 끌어내린 한국인들 이야기 [한만성의 주간 MLS]

한만성 2019. 6. 2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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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FC 코리안 서포터즈 그룹 TSG

▲MLS 포틀랜드 팬 그룹, 전범기 문양 깃발로 논란
▲LAFC 코리안 서포터즈 그룹, 구단에 공식 항의
▲미국 축구장에 휘날린 개조된 전범기, 전면 금지됐다

[골닷컴, 미국 LA] 한만성 기자 = 북미프로축구 메이저리그사커(MLS)는 최근 들어 김기희(29), 황인범(22)이 연이어 진출하며 국내 축구 팬들에게 익숙해지고 있는 무대다.

단, MLS 무대를 누비는 한국인은 비단 김기희와 황인범뿐만이 아니다. 뉴욕에 본사를 둔 MLS 사무국에서는 신승호(미국명 찰리 신) 부사장이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리그 전체의 마케팅 업무를 이끌고 있다. 이 외에도 콜로라도 라피즈에는 김현중 전력분석관, 미네소타 유나이티드에는 조호동 스포츠 사이언티스트가 각각 소속 구단의 코칭스태프(technical staff), 혹은 운영스태프(operation staff)에서 활동 중이다. 또한, 수많은 한국 선수들이 현재 MLS 각 구단의 유스 아카데미에서 프로 진출을 꿈꾸고 있다.

매주 MLS 경기장의 관중석에서도 한국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창단 2년 만에 MLS의 강팀으로 떠오른 LAFC는 작년 리그 역사상 최초로 코리안 서포터즈 그룹을 결성했다. LAFC 코리안 서포터즈 그룹의 공식 명칭은 TSG(타이거즈 서포터즈 그룹)다. 타이거즈는 한국 축구의 상징 호랑이를 뜻하는 TSG의 마스코트다. TSG는 미국 LA에 거주하는 약 50명 이상의 한국인 축구 팬으로 결성됐다.

평소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리치 오로스코 LAFC 부사장이 작년 구단 창단을 앞두고 서포터즈 그룹 결성을 추진하며 거주민 대다수가 전 세계 각국 이민자로 구성된 LA의 지역사회가 홈구장 관중석에 반영됐으면 한다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LA 지역 한국인 이민자 인구는 11만 명이 넘는다. 마침 LAFC 브랜딩 부서 직원이 LA 지역 출신 한국인 2세 패션 코디네이터 지세훈(Ben Chi) 씨인 만큼 구단 차원에서도 한국인 축구 팬들에게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었다.

골닷컴 코리아 LAFC 부사장 리치 오로스코 단독 인터뷰:
https://bit.ly/2KrXL8d

'골닷컴 코리아'가 최근 TSG를 만난 이유는 MLS 서포터즈 문화에 한국 축구 팬을 배려해 만들어진 기념비적인 규정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건은 작년 5월 LAFC 홈구장 뱅크 오브 캘리포니아 스타디움에서 시작됐다. 당시 TSG 멤버로 활동 중인 한국인 2세 이명섭(미국명 조쉬) 씨와 샘 고(Sam Ko) 씨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US오픈컵(미국 컵대회)에서 포틀랜드 팀버스와 격돌한 LAFC의 홈 경기를 찾았다. 두 사람을 비롯한 TSG 멤버들은 이날 경기 도중 포틀랜드 원정 팬들이 들어 올린 응원용 깃발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초록색과 노란색으로 그려진 이 깃발은 누가 봐도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전범기를 연상케 했다. LA 코리아타운 인근에 위치한, 최다수용인원이 2만2716명에 달하는 공공장소에서 전범기가 올라오는 모습을 목격한 한국인 축구 팬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포틀랜드 구단의 공식 서포터즈 그룹 팀버스 아미는 홈 경기에서는 매번 킥오프를 앞두고 이보다 더 큰 전범기 무늬를 담은 깃발로 관중석을 뒤덮었고, 원정 경기에서도 팀이 득점하면 크기만 조금 더 작은 깃발을 꺼내 흔드는 '전통'이 있다는 사실이 파악됐다.

팀버스 아미가 공식 응원 도구로 전범기 문양의 깃발을 사용한 이유는 대략 이렇다. 포틀랜드의 공식 마스코트로 활동하는 중년 남성 짐 세릴의 딸 해나 세릴은 지난 2004년 차 사고를 당해 사망했다. 이에 포틀랜드 팬들은 지미 데이비스와 찰스 미첼의 명곡 '유 아 마이 선샤인'을 응원가이자 딸을 잃은 짐 세릴 씨를 위로하는 노래로 불렀다. 그러면서 팀버스 아미는 말 그대로 '선샤인(햇빛)'을 상징하는 의미로 전범기의 태양을 포틀랜드 구단의 공식 컬러인 초록색과 노란색으로 바꿔 응원 도구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TSG는 포틀랜드 공식 서포터즈 그룹 팀버스 아미는 물론 LAFC 구단과 대화 창구를 열었다. TSG는 지난 1년간 팀버스 아미와 LAFC 구단 측에 전범기 문양이 한국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했다. 이에 LAFC는 우선 뱅크 오브 캘리포니아 스타디움에서 만큼은 전범기는 물론 이와 비슷한 문양이 그려진 응원도구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겠다는 방침을 내렸다. 이후 팀버스 아미 측도 지난 시즌이 끝난 뒤, "2019년 6월까지는 홈 경기가 없다. 우선 원정 경기에서는 문제가 된 깃발을 사용하지 않겠다"며 협조의 뜻을 밝혔다.

포틀랜드는 지난 3월 올 시즌이 개막한 후 초반 석 달 연속으로 홈 경기를 치르지 않았다. 신축 홈구장 개장 경기가 지난 2일에나 열렸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포틀랜드의 홈 개장 경기 상대는 LAFC였다. 이 덕분(?)에 TSG는 직접 원정 응원단을 꾸려 포틀랜드에 방문해 프로비던스 파크 관중석에서 전범기 문양의 깃발이 금지됐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확인 결과 작년까지 미국 축구장에서 펄럭인 전범기를 연상케 하는 팀버스 아미의 대형 깃발을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골닷컴 코리아'는 최근 TSG 멤버로 활동 중인 샘 고, 이명섭 씨와 직접 만나 코리안 서포터즈 그룹이 어떻게 미국 축구장에서 응원도구처럼 사용된 전범기를 끌어내렸는지 구체적인 설명을 들어볼 수 있었다. 또한, '골닷컴 코리아'는 MLS 최초의 코리안 서포터즈 그룹이 탄생한 뒷배경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눴다.

[사진] LAFC 코리안 서포터즈 그룹, 오른쪽이 샘 고(Sam Ko) 씨, 왼쪽이 이명섭(Joshua) 씨.

작년 5월 포틀랜드 팀버스와의 홈 경기 중 일어난 전범기 사건부터 얘기해보자. 어떻게 일어난 사건인가?
명섭: 포틀랜드는 열광적인 서포터즈 그룹 팀버스 아미(Timbers Army)를 앞세워 MLS 응원 문화의 기준을 높인 팀이다. 그들을 환영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와의 경기 도중 그들만의 루틴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은 포틀랜드가 골을 넣을 때마다 대형 깃발로 관중석 한 섹션을 전부 다 뒤덮었다. 우리와의 경기에서 포틀랜드가 골을 넣자 그들이 이 깃발을 꺼내서 펼치기 시작했는데,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문양이 빨간색과 흰색이 아닌 녹색과 노란색으로 색깔만 다른 모습으로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 홈구장 뱅크 오브 캘리포니아 스타디움은 코리아타운에서 단 5km 떨어진 곳에 있다. 그런 곳에서 전범기를 펼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바로 내 옆에 있던 멕시코 친구에게, "너 저 깃발이 무슨 뜻인지 알아?"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친구가 "모르겠는데, 포틀랜드가 골을 넣으면 항상 저 친구들이 꺼내는 깃발이야"라고 답하더라. 그래서 저 문양은 한국인, 중국인 등 동아시아인들에게 혐오의 상징(symbol of hate)이라고 말해줬다. 유대인에게는 나치 스와스티카, 미국의 흑인에게는 남부연합기가 혐오를 상징하듯, 한국인에게 전범기는 과거의 아픔을 되살리는 도구라고 말해줬다. 누구도 이를 잘 모르고 있었다.

전범기의 의미를 타이거 서포터즈 그룹을 제외하면 LAFC 팬들조차 잘 몰랐다면, 어떻게 공식적으로 항의까지 하게 됐나?
명섭: 우선 공식 인스타그램 포스트에 팀버스 아미가 들어올린 전범기 사진을 업로드했다. 사진 설명에는 "일제강점기 시절 목숨을 잃거나 무차별한 폭력의 희생양이 된 수많은 한국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는 고통을 뜻하는 깃발이 우리 경기장에서 펼쳐졌다"고 적었다. 이후 우리는 팀버스 아미 측에 더는 어느 경기장에서도 전범기를 꺼내지 말아 달라고 공식 요청했다. 이후 우리는 팀버스 아미가 포틀랜드 홈경기에서는 아예 더 큰 전범기를 흔든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경기장 큰 스탠드 전체를 가리는 대형 깃발은 누가 봐도 전범기 문양이었고, 그저 가운데 포틀랜드 팀버스의 상징인 망치 하나를 그려놓았을 뿐이었다.

항의한 후에도 바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나?
명섭: "우리의 의도는 전범기 문양을 펼쳐보이는 게 아니다. 게다가 우리 깃발은 일본 제국주의와 무관하다. 이 문양이 팀버스 아미의 유산이자 역사"라는 게 포틀랜드 쪽에서 우리에게 보낸 답이었다. 이후 그들과 우리 사이에는 다툼도 있었다. 결국, 팀버스 아미의 입장은 "이 문제는 우리의 우선순위가 아니다. 한국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우리 서포터즈 문화를 상징하는 깃발을 없앨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들이 제안한 절충안은 원정 경기에서는 전범기를 꺼내지 않겠지만, 홈구장에서 어떤 응원 도구를 쓰는지는 '알아서 하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어이가 없어서 그들에게 "포틀랜드 경기장에서 우리가 스와스티카, 혹은 남부연합기를 꺼내 흔들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건 곤란하다"는 게 그들의 답이었다. 그래서 "그렇다면 우리도 양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우리사 직접 전범기를 보고도 모른 척하는 건, 우리나라가 겪은 아픔을 지워버리는 행위나 다름없으니까. 이후 LAFC 구단과 공식 서포터즈 그룹은 우리에게 "원하는 답을 얻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돕겠다"며 힘을 실어줬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시비를 걸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단, 전범기를 내려달라는 우리의 요구가 진심으로 그것을 보고 있는 게 고통스럽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어떻게 팀버스 아미를 설득하게 됐나?
명섭: 계속 대화가 오간 끝에 그들이 "새로운 문양의 깃발을 제작하겠다"고 말해 큰 문제는 일단락됐다. 해가 떠오르는 장면을 연상케 하는 문양을 피하겠다는 게 그들의 답변이었다. 또한, 새 깃발 디자인이 완성되면 우리에게 이를 보여주고 'OK'를 받은 후 사용하겠다고 약속했다. 팀버스 아미가 약속을 해준 만큼 우리도 더는 그들을 적대시할 필요가 없었다. 앞으로는 친구사이가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그들에게 전달했다. 포틀랜드 팬들은 MLS 응원 문화의 중요한 일원들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계 미국인, 혹은 한국인 2세들이 전범기를 끌어내리기 위해 이 정도로 노력했다는 사실이 신선하다.
명섭: 나 또한 전범기 문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는 몰랐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 도산 안창호, 의사 안중근 등의 인생에 대해 알게 됐다. 특히 안창호 선생이 과거 어떻게, 왜 LA에 오게 됐는지를 알게 되며 내가 태어나기 전 미국으로 온 우리 가족도 우리나라의 역사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실제로 LA에 자리를 잡게 된 1세대 한국 이민자들은 일제 강점기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게 사실이다. 이런 역사의식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또한, 이런 역사의식은 우리에게만 중요한 게 아니라 모두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떻게 이런 아픔과 맞서 싸웠고, 어떻게 이겨냈는지를 알아야 오늘의 우리나라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축구를 통해 이런 문화와 역사 교류를 할 수 있는 창구가 되기를 원한다.

타이거즈 서포터즈 그룹을 만든 계기부터 설명해줄 수 있나?
: LA는 한국을 제외하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LAFC가 창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리치(오로스코 부사장)이 서포터즈 그룹 안에 코리안 서포터즈 소모임을 만들고 싶다는 의견을 냈다고 들었다. 리치가 예전부터 4년마다 한 번씩 월드컵이 열리면 LA 코리아타운에서 열린 길거리 응원을 즐겨 찾았다고 한다.

리치가 LAFC 창단을 준비하면서 벤을 만났고, "축구를 즐기는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많던데 월드컵만 끝나면 다 어디로 가는 거야?"라며 던진 질문이 출발점이 됐다고 들었다. 벤과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친한 친구였다. 함께 박지성이 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응원하면서 자랐다. 벤의 제안을 받은 나와 총 다섯 명도가 2017년에 처음 모여서 코리안 서포터즈 그룹을 시작했던 것 같다. 알고 보니 LA에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구단 첼시 서포터즈 그룹이 있는데, 그 모임의 회장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모여서 코리안 서포터즈 그룹을 만들게 됐다.

명섭: 어릴 때부터 축구를 좋아해서 한국 대표팀을 응원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월드컵 때마다 같이 한국을 응원한 친구들은 대회가 끝나면 바로 축구에 대한 관심을 껐다. 분명히 길거리 응원을 나가면 몇천 명에 달하는 한국 사람이 있었는데, 월드컵이 끝나면 매번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라고 생각했다. 같이 계속 한국축구를 팔로잉하고, 한국축구에 대해 얘기할 한국인 친구가 없는 게 아쉬웠다. LAFC에 타이거즈 서포터즈 그룹을 만든다는 얘기를 친구에게 듣고 바로 함께하기로 했다. 타이거즈 서포터즈 그룹의 미션은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면서도, 우리가 사는 LA 지역 축구팀을 응원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LAFC가 구단 차원에서 한국인 팬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움직였다.

LAFC는 진심으로 축구를 통해 LA 지역을 대표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LA에 사는 멕시코, 엘살바도르 이민자들도 한국인 이민자 사회가 이 지역에서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우리가 답해야 했던 질문은 "어떻게 하면 4년마다 한 번씩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는 한국 사람들이 매일매일 축구를 통해 힘을 얻게 할 수 있을까?"였다. 그러나 이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코리안 서포터즈 그룹이 생긴 만큼 우리에게 이런 장을 마련해준 LAFC 구단에도 축구를 통해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우리는 LA 코리아타운을 대표하는 LAFC 서포터즈 그룹이다. 축구를 통해 모두가 한국을 사랑하게 만드는 게 우리가 가진 가장 큰 목표다.

LAFC는 이제 창단 2년 차에 불과한 '어린 구단'이다. 반면 LA 갤럭시는 LAFC처럼 LA를 연고로 하면서도 역사가 훨씬 더 길다. 굳이 LAFC를 응원하는 이유는?
명섭: 쉽게 설명하면 갤럭시는 헐리우드를 떠올리게 만드는 LA의 화려함을 대표하는 구단이다. 다들 알다시피 '진짜 LA'는 그렇게 화려하기만 한 곳이 아니다. 오히려 대다수가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노동자에 더 가깝다(웃음). LAFC는 LA의 그런 사람들이 모일 수 있게 해주는 팀이다. LAFC는 축구를 통해 이런 LA의 행복을 중시하는 팀이다. 우리는 코리아타운에 사는 한국인이며 이곳의 한국인 이민자 커뮤니티, 어린 세대의 부흥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LAFC는 창단 2년 만에 그런 우리가 축구를 통해 힘을 모을 수 있게 장을 마련해줬다. 반면 갤럭시는 20년 가까이 존재했지만, 그런 방식으로 팬들을 대하지 않는다.

: LAFC가 축구 그 이상을 추구하는 구단이라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가 경기가 끝나고 한참이 지난 후에도 관중석에 남아 쫓겨나기 전까지 미친 사람들처럼 노래를 부르는 이유가 있다.

명섭: LAFC 매치데이는 정말 파티 같은 분위기다. 킥오프 몇 시간 전부터 경기장 앞 길거리에서 먹고, 마시고, 서로 준비해온 음식을 먹여주면서 논다. 누구도 경기 시간에 맞춰서 도착하거나, 경기가 끝난 후 바로 떠나지 않는다. 마치 매주 즐거운 가족 모임에 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코리아타운을 대표하는 타이거즈 서포터즈 그룹 일원으로 활동하며 가장 보람을 느끼는 부분이 있다면?
: 한국인들은 전통적으로 끼리끼리 모여서 노는 걸 좋아하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과 뒤섞이는 데는 어색함이 있다. 우리는 어느 한국인이든 우리와 함께 서포터즈 활동을 하며 그런 장벽 없이 마음껏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 말 그대로 거창한 목표보다는 그저 서로 모여서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 우리에게 축구와 타이거즈 서포터즈 그룹이 없었다면 절대 지금처럼 멕시코, 엘살바도르 친구들과 친해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게 우리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일인 것 같다. 우리는 축구를 통해 한국인들과 외국인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유리벽을 부숴버리는 중이다.

명섭: 가끔은 경기가 없어도 LAFC의 모든 서포터즈 그룹이 모여서 놀곤 한다. 한번은 코리아타운의 한국식 고깃집에서 다같이 모인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한 멕시코 친구가 우리에게 "운전을 하거나 걸어가면서 이 식당을 수천번이나 봤지만, 늘 한국인들만 드나드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절대 이곳에 들어올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희들 덕분에 늘 궁금했던 이곳에 직접 들어와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됐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처럼 우리는 축구를 통해 LA의 모든 사람들에게 코리아타운 가이드와 같은 역할을 해주고 싶다. LAFC가 축구를 통해 우리를 환영해준 것처럼, 우리도 LA의 모든 사람들이 한국 문화에 익숙해지고 우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돕고 싶은 마음이 있다.

혹자는 월드컵 때만 모이는 한국인들을 보면서 그들이 축구에는 관심이 없고 그냥 4년에 한 번 모여서 먹고, 놀고, 소리지르는 데만 혈안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축구를 통해 그런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전략적으로 잘 접근하면 충분히 4년에 한 번씩 불 타오르는 이 열정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 역할을 하고 싶다. 축구의 가장 큰 매력은 '문화 교류'의 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축구의 힘은 엄청나다. 우리는 한국이 축구를 통해 이뤄지는 세계의 문화 교류에서 빠지지 않았으면 한다. 온 세상에 한국도 축구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그렇게 다섯 명이 시작한 타이거즈 서포터즈 그룹은 약 2년이 지난 지금 회원만 50명 이상이라고 들었는데. 계속 회원수는 늘고 있다고 들었다.
: LA 시간으로 새벽 4시에 열리는 한국 대표팀의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경기 단체 응원전을 하면서 사람을 모았다. 문을 열 만한 식당을 찾아서 사람들에게 알리면 총 15명 정도가 모였다. 이 중 절반은 할머니, 할아버지다. 그런 식으로 함께 모여야 할 이유를 만들었다. 작은 계기가 쌓이면서 성장하게 됐다.

명섭: 월드컵의 덕도 컸다. 당연히 코리아타운에서 열린 길거리 응원에 타이거즈 서포터즈 그룹도 참여했다. 우리가 독일을 이겼을 때, 아버지와 통화하면서 울었고 옆에 있던 친구와 끌어안고 한 번 더 울었다. 계속 우는 나를 본 모르는 사람들도 내게 "그 마음 이해한다"며 같이 기뻐했다. 그렇게 직접 사람들과 만나 교감했다.

대부분 한국 축구 팬들은 축구의 본고장 유럽도 아닌 미국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서포터즈 그룹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전하고 싶은 말이 있나?
명섭: 아주 오래 전 LA는 우리나라에서 고통을 받아야 했던 조상들이 자유를 꿈꾸며 찾은 곳이다. 우리가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으니 문화적으로, 정서적으로 한국에 계신 분들과는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래도 우리는 우리 역사를 잊지 않는다. 우리도 스스로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는 한국 사람이다. 우리의 자유를 위해, 또 우리가 미국에서 태어나 자랄 수 있도록 해준 게 우리나라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곳 LA에서 한국인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 퍼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LAFC를 통해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LA에서 새벽 4시에 한국 대표팀 경기를 보고 싶은 분들이 계신다면, 언제든 우리를 찾아주시면 된다.

: 우리가 한국에 사는 한국인은 아닐 수 있어도, 한국인만의 스피릿은 어디로 가지 않는다. 우리는 축구를 통해 한국인들이 모일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플랫폼을 만들고 있다. 한국인의 힘은 파워풀하다. 우리는 늘 이곳에 있을 것이다.

인터뷰/글=한만성 기자
사진=Tigers Supporters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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