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DUGOUT People] 두산 베어스 조쉬 린드블럼

대단한미디어 입력 2019.07.0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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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프로의 자세

프로야구 선수란 비단 실력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자신의 퍼포먼스에 열광하는 팬들에게 그라운드 안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공인다운 모습을 보여줬을 때 진정한 프로라 할 수 있다. 두산 베어스 조쉬 린드블럼은 이 점에서 많은 선수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야구선수로서의 재능이 본인을 위한 것만이 아니라는 린드블럼. 열정적인 팬과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베풀 수 있는 환경이 있기에 프로야구 선수로서 사명감을 갖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최윤식 Location 잠실야구장




만나서 반갑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반갑습니다. (한국말로) 한국에 온 지도 5년이 흘렀다. 부인과 아이들도 모두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 두 번째 고향으로 생각할 정도다.

오랜 시간을 보낸 만큼 심리적으로도 안정감이 생길 것 같다.

매우 편안하다. 서울은 가족을 위한 미국 음식점도 많고 주변에 놀 곳도 다양하다. 아이들은 외국인 학교에 잘 다니고 있다. 특히 길을 돌아다니면 서울 시민들이 친절하게 대해줘서 행복하다.

#에이스, 그리고 5년 차 베테랑

2018시즌을 앞두고 두산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장수 외국인 투수이자 오랜 시간 팀의 에이스로 군림했던 ‘니느님’ 더스틴 니퍼트의 이적이었다. 그리고 그를 대신해 두산이 선택한 카드는 린드블럼이었다. 팀의 간판 투수가 떠난 빈자리, 우려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린드블럼은 성적으로 이 모든 걸 극복해냈다. 두산에 완전히 융화된 2019시즌, 그는 이제 마운드에서는 상대팀을 떨게 만드는 1선발로, 더그아웃에서는 외국인 선수들을 이끄는 베테랑으로 활약하고 있다.

올 시즌 출발이 좋다. 지난해와 달라진 점이 있나?

작년이랑 크게 바뀐 점은 없다. 지난 시즌 좋은 성적을 바탕으로 얻은 자신감이 지금까지 이어져 호성적을 내고 있다. 좋은 팀원과 훌륭한 야수진이 뒤에 있다는 믿음 또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

지난 시즌에 비해 평균 구속이 조금 떨어졌는데 출발은 오히려 더 좋다. 비결이 있는가?

구속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아웃을 잡아내는 과정이 중요하다. 타자들의 배트를 어떻게 하면 나오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

5월 15일 삼성 라이온즈전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퍼펙트게임을 이어오다 아쉽게 무산됐다.

기록을 떠나 정말 신나는 하루였다. 퍼펙트게임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팀은 결국 이기지 않았나. 정말 기분 좋았던 것은 경기 종료 후 TV로 하이라이트를 봤을 때다. 아들이 내 공 하나하나에 기뻐하고 안타까워하더라. 그 장면이 개인적으로 경기의 하이라이트였던 것 같다. (웃음) (이유가 궁금하다.) 야구장에서 맨날 뛰어만 다니는팔머가경기 때만큼은 얼마나 집중하고 보는지 알게 돼서 뿌듯했다. 내게는 어떤 것보다 그게 가장 가치 있었다.

인터뷰를 통해 기록을 의식했다고 들었다. 욕심이 있었는지?

의식을 안 할 순 없더라. 그렇다고 기록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지 않은가. 항상 하던 대로 매 경기 하나씩 하다 보면 좋은 기록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 시즌이 반 정도 남았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좋은 성과가 따라올 거라고 믿는다.

팀 분위기도 투구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 함께하고 있는 두산은 어떤 팀인가?

그렇다. 팀 케미스트리는 경기에서 정말 큰 요소다. 팀원 모두 승리를 하는 방법에 대해 잘 알고 있어 모든 야수를 믿고 마운드에 오른다. 모든 선수가 서로를 믿으며 경기장에서 플레이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이런 모습이 두산을 강팀으로 만들었다고 본다.




외국인 선수 가운데 최고참이다.

나를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하하) 5년 동안 쌓은 경험을 토대로 선수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 생활하는 데 있어 중요시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과 미국을 비교해서 안 된다. 전혀 다른 별개로 생각해야 한다. 문화, 야구에 대해 미국과 비교하는 선수들이 있다. 그럴 때마다 다름을 인정하라고 말한다. 좋고 나쁨을 떠나서 엄연히 모든 게 다르다. 차이를 인지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적응도 수월하게 할 수 있다.

니퍼트의 자리를 대신해 두산에 입단했다. 그리고 지난 시즌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해 구단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이제 엄연한 베어스의 에이스다.

더스틴은 한국에 처음에 왔을 때부터 우러러봤던 선수다. 항상 그를 따라가고 싶었다. 그가 두산에서 이뤄놓고 떠난 것이 많기 때문에 처음에는 부담이 됐다. 그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이미 위대한 선수고 전설이다. 경쟁심보다 니퍼트가 다져놓은 길을 따라가며 나만의 야구를 만들어가고 싶다.

에이스는 위기에 강하다. 올 시즌 본인이 그렇다. 잔루율이 리그 전체 1위다.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이 따로 있나?

운도 좋았다. (웃음) 보통은 위기 상황이 오면 지금 상황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음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실점으로 이어진다. 최대한 지금 앞에 펼쳐진 위험을 깨닫고 이를 극복하려는 거에 온 힘을 쏟고 있다.

평균 6.5이닝을 책임져 주고 있다. 선발투수로 이닝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편인가?

선발투수로서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이다. 선발의 임무는 이닝을 길게 끌고 가서 팀이 이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내 일을 했을 뿐이다.




#인연

린드블럼은 아마 시절 인디애나주를 대표하는 톱 유망주였다. 해리슨 고등학교 시니어 때는 8승 2패 평균자책점 2.30을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상위 라운드 지명이 유력해보였다. 하지만 그는 대학 진학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국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소년 린드블럼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어떤 아이였나?

TV를 켜서 경기장에 있는 팔머를 봐라. 딱 내 어린 시절이다. (하하) 어릴 때부터 야구를 무척 사랑했다. 지금 기억나는 건 집에서 야구공을 던지다가 어머니께 자주 혼났다. 그래서 양말을 접어 소파에 던지곤 했다. 나가서 노는 걸 좋아하던 활발한 아이였다.

야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처음에는 티볼을 했다. 본격적으로 야구를 했을 때는 아버지의 권유로 나보다 나이도 많고 야구도 잘하는 선수들과 함께했다. 당시를 회상하면 중학교 때 고등학생들과 야구를 자주 했던 것 같다. 야구캠프에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10살에 불과했는데 15, 16살 형들과 야구를 했다. 물론 실력이 뒷받침 됐기에 가능했다.

재능이 있었나 보다. 고등학교 시절 인디애나주 톱 유망주였다.

지금 생각해도 굉장히 영광스럽다. 나를 포함해 좋은 투수가 인디애나주에 많았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오래 활약하다가 지금은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뛰고 있는 랜스 린, 필라델피아 필리스 토미 헌터 역시 인디애나주를 대표하는 유망주였다.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고교 졸업 후 3라운드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부름을 받았다. 그런데도 대학 진학을 택했다. 이유가 궁금하다.

아직은 실력이 프로야구 선수가 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대학에서 좀 더 경험을 쌓아 다시 드래프트에 도전하려고 했다. 돌이켜보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대학도 한 차례 옮긴 이력이 있다. 테네시대학에서 퍼듀대학으로 옮긴 이유가 무엇인가?

테네시는 나와 맞지 않았다. 퍼듀는 고향에 있어 안정감도 생기고 야구에 있어서도 잘 맞았다.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게 캠퍼스에 한국 학생들이 많았다. 그들과 한국 식당도 자주 다녔다. 캠퍼스에 가게 되면 지금도 감사하게 많은 교민이 알아봐준다.




그때는 한국행을 했을 거라고 상상도 못 했겠다.

절대! (웃음) 그때는 드래프트를 통해 메이저리그 팀에 입단해 좋은 커리어를 쌓고 은퇴를 하는 것을 꿈꿨다.

그렇게 퍼듀대학을 거쳐 LA 다저스 유니폼을 입게 됐다.

다저스라는 명문 구단에 입단할 수 있어 정말 좋았다. 다저스에 있으면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당시 함께 지명됐던 동료들과 같이 메이저리그에 콜업이 돼서 다저스타디움을 함께 밟았을 때다.

하지만 콜업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선발투수에서 불펜투수로 전환도 하고 꽤 힘들었을 것 같다.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일 뿐이었다. 만일 내가 그때 선발투수를 고집했더라면 빅리그를 밟아 보지도 못하고 마이너리그에서 내 커리어가 끝났을지도 모른다.

린드블럼의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이야기하면 단연 2011시즌이 최고였다. 이후에도 불펜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셋업맨으로서 지금 MLB 최고의 마무리투수 중 한 명인 캔리 잰슨 앞에서 던졌다. 다음 시즌에는 필라델피아로 트레이드가 돼 조나단 파펠본의 등판 전에 마운드를 지켰다. 그때는 긴박한 상황에 올라가는 것을 상당히 즐겼다. 파펠본과는 재밌는 에피소드도 있다. (웃음)

어떤 에피소드인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시카고에서 경기를 본 적이 있다. 그때 불펜에서 파펠본이 몸을 풀었고 나는 그걸 사진으로 담았다. 내가 그와 팀메이트가 됐을 때 부인이 그의 아내에게 사진을 보여줬고 덕분에 더 친해졌다.

MLB를 뒤로하고 KBO리그에 합류했다.

에이전트한테 48시간 안에 한국에 갈 생각이 있는지 결정해야 한다고 전화가 왔다. 그때 아들이 태어났고, 큰 고민 없이 ‘한국에 가자’라고 결심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나?

당연히 있었다. 처음 가는 나라고 여행을 와 본 적도 없기에 조금은 두려웠다. 하지만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야구선수로서 많은 갈림길이 있었고 그때마다 선택을 해야 했다. 그 중 이건 정말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첫 번째는 고등학교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하지 않은 거다. 그리고 두 번째는 KBO리그 도전을 결심한 것이다. 덕분에 많은 경험과 좋은 것들을 누리고 있다. 나한테도 그렇고 가족한테도 좋은 결정이었다.




#가족과 모두를 위한 삶

두산의 홈경기, 잠실야구장에 가면 그라운드를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는 삼남매를 볼 수 있다. 바로 리틀 린드블럼! 프레슬리, 팔머, 먼로다. 비글미 넘치는 세 자녀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의 육아 고난이 훤하지만 린드블럼은 오히려 자녀들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이 긍정의 힘을 많은 이에게 전파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경기장에 늘 가족이 함께한다. 이유가 궁금하다.

세 명 다 야구장에 오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아들은 아침에 일어나 “우리 오늘 야구장에 가는 거야?”라고 제일 먼저 물어본다. 나 역시 사랑하는 야구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전달해 줄 수 있어 좋다.

자녀들을 보면 늘 흥이 넘친다. 아이들의 즐거운 모습은 늘 기쁘지만 힘들 때도 있을 것 같다.

I know. (웃음)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피곤할 때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의 에너지가 내게도 전달돼 나를 더 강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아이들이 야구장에서든, 다른 곳에서든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어서 부모로서 뿌듯하다.

혹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있나?

팔머는 김재환의 엄청난 팬이다. (서운) 나도 더 좋은 선수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웃음)

아들 팔머는 아버지와 늘 그라운드에서 야구 놀이를 하던데 야구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

좋아하는 게 있다면 무엇이든 지원해줄 생각이다. 지금은 야구선수가 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아들이 원하는 걸 했으면 좋겠다.

삼남매처럼 본인 역시 더그아웃에서 파이팅 넘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합 날은 집중하느라 조용한데 다른 날은 일부러 장난도 치고 춤도 춘다. (웃음) (그렇게 하는 이유는?) 좋은 팀메이트가 되기 위해서다. 내가 던질 때도 많은 선수가 도와주는 만큼 등판하지 않을 날에는 더그아웃 분위기를 좋게 만들어 동료들을 응원하고 싶다.

린드블럼에게 가족이란 어떤 존재인가?

나의 전부다. 특히 부인이 정말 많은 희생을 하고 있다. 먼 나라에 와서 아이 셋을 키우고 내 뒷바라지까지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다. 늘 감사하고 고맙다. 그리고 먼로가 몸이 좋지 않아 한국에서 같이 생활하기 힘들 줄 알았는데 건강을 회복해 다시 같이 살 수 있어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본인 이름의 재단이 있다. 설립 배경이 궁금하다.

나는 운이 좋아서 풍족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시작하게 됐다. 모두가 행복한 인생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야구선수가 되기 전에도 봉사나 사회 공헌에 관심이 많았나?

그렇다. 메이저리거가 되니까 힘이 생기고 봉사를 통해 내가 전하고 싶은 마음을 더 강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특히 LA에서는 고맙게도 많은 사람이 활동에 힘을 실어줬다.

프로야구 선수로서 사명감이 느껴진다.

신이 야구를 잘할 수 있는 능력을 준 것은 오직 나만을 위함이 아니다. 내 경기를 보고 다른 사람이 힘을 얻을 수도, 야구를 통해서 얻은 것을 베풀 수도 있다. 모두를 위한 하늘의 선물이다.

한국에서도 많은 아이에게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심장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초청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딸의 심장 수술을 두 차례 경험하면서 같은 질환을 겪고 있는 이이들을 생각하게 됐고 즐거운 경험을 통해 긍정적인 힘을 주고 싶어 시작했다. 야구장에서 이들이 즐기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에너지를 받고 있다.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사회공헌 활동이 있나?

먼로의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요르단과 이스라엘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는데 시즌이 끝나면 나와 와이프 역시 그곳에 참가할 예정이다.




#에이스의 바람

지난해 한국시리즈, 두산은 2017시즌에 이어 정상의 문턱에서 아쉬운 고배를 마셨다. 두 번의 진한 아쉬움 속에 곰들은 더욱 강해졌다. 팀의 에이스, 린드블럼 역시 인터뷰 마지막에 우승 트로피를 가리키며 2019년 마지막에는 팀과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KBO리그 장수 외국인 투수로서 목표가 무엇인가?

항상 한국시리즈를 바라왔다. 작년에 문턱까지 갔다가 아쉽게 우승이 좌절됐다. 올해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기에 다시 한번 정상에 도전하고 싶다.

지난 시즌 정규 시즌에 비해 한국시리즈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각오가 남다를 것 같다.

시즌 내내 잘해도 프로는 결국 마지막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끝까지 최선을 다해 한국시리즈 트로피를 들어 올리겠다.

린드블럼에게 야구란 무엇인가?

야구는 최고의 게임이다. 성공을 할 수도 있고 실패를 경험하기도 한다. 오늘 경기를 망쳤을지라도 다음날 우리는 다시 새로운 게임을 시작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인생이랑도 닮은 점이 많은 것 같다.

린드블럼을 향해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는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한다.

팬 여러분 사랑합니다. 저와 저희 가족에게 많은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처럼 계속 좋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더그아웃 매거진 99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9년 99호(7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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