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정정용 감독 "훈련장서 음악·핸드폰 왜 안 되나..눈높이 맞추면 성적은 따라온다" [인터뷰&]

양승남 기자 ysn93@kyunghyang.com 2019. 7. 11.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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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0 월드컵 축구대표팀 정정용 감독이 경향신문과 만나 월드컵 성과를 돌아보고 향후 거취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7경기 매순간 순간이 아직도 머릿 속에 생생하다고 했다. 짜릿하고 통쾌했던 한일전, 아쉬웠던 우승 도전이 걸린 결승전. 경기마다 항상 치열했기에 어느 순간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정정용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 감독(50)이 10일 스포츠경향과 만나 폴란드의 추억을 풀어놨다. 한국 축구의 역사가 된 U-20 팀을 맡아 준비했던 2년 전부터 준우승까지의 여정을 담담히 털어놨다. 한 달 가까이 지나 한 발짝 조금은 더 떨어져서 바라본 지난 월드컵과 자신의 축구 인생도 찬찬히 돌아봤다. 그리고 한국 축구의 튼튼한 뿌리가 될 유소년 축구의 발전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짜릿한 한일전 아쉬웠던 결승

조별리그 첫판, 강호 포르투갈을 만나 0-1로 패하며 시작된 월드컵 여정은 치열함의 연속이었다. 정정용 감독은 “매 경기 힘들었고 그때마다 전술 변화 등을 적극 활용했다”면서 “그래서 결과까지 나왔기에 모든 순간들이 다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대표팀은 첫판 포르투갈전에서 아쉬운 패배 이후 남아공과 아르헨티나를 물리치고 조 1위로 16강에 올랐다. 가장 짜릿했던 순간은 역시 16강 한·일전이었다. 정 감독은 “아무래도 한·일전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오세훈의 골이 들어갔을 때 내 표정을 다시 봐도 가장 환했던 것 같다”며 웃었다. 아쉬웠던 경기는 결승전이었다. “결승이고 마지막이었고 상대가 우크라이나였다. 그 전에 강팀을 만나 잘 해왔기에 어쩌면 조금 자신감과 자만심이 있었던 것 같다. 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이기도 했고, 전술 운영도 좀더 지키는 쪽으로 갔어야 하는데…. 많은 팬들이 지켜봐 좀더 공격적으로 가려고 한 건데 아쉬웠다. 앞으로 지도자 생활하면서 큰 도움이 될 경기로 남게 됐다.”

정 감독은 대회 현장에서는 국내의 뜨거운 인기와 열기를 실감하진 못했다고 했다. 정 감독은 “경기 후 곧바로 상대를 분석하고 우리의 전술 준비를 해야하고 정신없이 준비하다보니 몰랐다”면서 “그런데 어느 순간 경기 후 메시지가 300개가 넘게 들어오면서 조금씩 느끼게 됐다”고 했다.

정 감독은 준우승을 이루고 돌아온 뒤 청와대 만찬 초청 등 많은 환영 행사를 치렀다. 뒤풀이 같은 행사들을 마친 뒤 7월 초부터 다시 U-18 대표팀을 맡을 준비를 하고 있다. 고교 및 대학 저학년들의 경기 현장을 누비고 있다. 정 감독은 “태백에서 열린 대학 대회에 갔는데 (1983년 4강 신화 주역인)신연호 단국대 감독님도 ‘이젠 1983년이 아닌 2019년이 한국 축구의 새역사’라고 말씀해주셨는데 정말 한국 축구사에 한줄을 새긴 것 같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들었다”고 말했다.

폴란드에서 열린 20세 이하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준우승을 차지한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지난달 17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환영행사에서 대회 중에 하지 못했던 정정용 감독의 헹가래를 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아이들과의 꿈같은 2년

이번 대표팀은 스무살의 재기 발랄함이 돋보였다. 과거 태극마크를 달면 언제나 엄숙했던, 그래서 약간은 짓눌리고 억압됐던 대표팀 분위기와는 달랐다. 감독과 선수단은 늘 친밀하게 소통했다. 정 감독은 수평적 리더십을 펼쳤다. 코치진을 존중했고, 선수들의 성향과 의견도 경청했다. 훈련장에는 흥겨운 댄스 음악이 흘렀다. 정 감독이 오랫동안 유소년 전임 지도자로 활동하며 느낀 경험과 노하우가 대표팀에 잘 녹아들었다. 정 감독은 “어린 선수들을 오래 지도하면서 감독이 되면 이 선수들 특성에 맞게 어떤건 해야하고 어떤건 안해야 할지 알게 됐다. 음악이나 핸드폰은 (주위에서) 안 된다고 했지만 대표팀에서 변화를 주지 않으면 다른 축구 현장에서는 따라올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시도했다. 물론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긴하다”며 웃었다. 정 감독은 어린 선수들의 성향에 맞는 눈높이 지도로 그들과 함께 숨쉬며 지난 2년간 부대꼈다. 정 감독은 “선수와 스태프 모두 2년 동안 월드컵 무대를 보고 달려오며 쌓인 게 그라운드에서 자연스레 나타났다. 힘든 순간에는 등만 두드려주면 선수들은 감독의 마음을 알았다. 이젠 구구절절 얘기 안해도 나도 알고 선수도 아는 단계다. 지난 2년간 함께 했던 시간이 대표팀을 이렇게 하나로 만들었다”고 했다.

화제가 됐던 ‘마법의 노트’도 선수들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정 감독의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이 노트는 월드컵 예선이었던 지난해 U-19 아시아챔피언십 대회 때 활용됐다. 정 감독은 “대회 준비 시간은 짧은데 어린 선수들이 빠르고 단순하게 전술을 숙지할 수 있게 최대한 간소한 패턴으로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수들은 이미 아시아 대회때 입력된 전술 노트 덕분에 월드컵 본선에서도 다양한 전술 변화를 빠르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이번 대회 정 감독의 상대 맞춤형 전술은 놀라울 정도로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정 감독은 “상대 분석도 중요한데 그걸 바탕으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우리 선수들을 잘 알고 믿었다. 경기 전 미팅 때 상대의 전술이 예상과 다를 경우 변화 가능성도 미리 얘기해줬고, 대기 선수들에게도 전술 포인트를 미리 개별적으로 얘기해준 게 잘 맞아 떨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U20 월드컵 축구대표팀 정정용 감독이 경향신문과 만나 월드컵 성과를 돌아보고 향후 거취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성공한 비주류,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이번 대회 준우승 후 정 감독은 ‘흙수저’ ‘비주류’의 성공으로 주목받았다. 현역 시절 프로와 대표팀 경력이 없는 정 감독은 “술을 안마셔 비주류이긴 한데”라며 멋쩍게 웃은 뒤 “당연히 대표 경력도 없어서 맞는 말이긴하다”고 했다. 그러나 “선수 생활 동안 최선을 다했다. 당시 실업 이랜드로 간건 향후 프로 전향이 될 예정이었다. 주장으로 돈도 받았고 유학도 보내준다는 조건도 있었다”면서 “당시 이랜드는 웬만한 프로한테 지지 않았다. 비록 IMF 이후 해체됐지만 당시 생활엔 자긍심이 있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29살때 상대 선수의 팔꿈치에 맞아 코뼈가 부러지며 눈에도 심각한 부상을 입어 선수생활을 그만두게 됐다. 그는 “지도자로 변신해 성공하기 위해선 더 큰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공부에 매진했다”면서 “학생 때 책을 많이 본 습관이 도움이 됐던 것 같다”고 했다. 은퇴 후 석사 학위를 따고 박사과정까지 수료할 만큼 그의 학구열은 뜨거웠고, 이런 내공이 결국 그를 빼어난 전술가로 만들었다. 그는 “이번에 집에 내려가 옛날 성적표를 찾아봤는데 초등학교때 올 수였다”며 웃은 뒤 “공부를 싫어하지 않고 틈만 나면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은퇴 후 지도자로 변신한 그는 “여러팀을 해봤는데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금방 스폰지처럼 빨아들이며 성장하고 늘어나는 걸 보면서 큰 보람을 느꼈다”면서 “아이들을 잘 가르치면 향후 좋은 선수가 되겠다는 생각에 유소년에 매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정 감독의 향후 진로가 이제 초미의 관심사다. 이번 대표팀 선수들은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정 감독과 함께 하고 싶다는 얘기도 했고, 프로팀 등에서는 정 감독에게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정 감독은 “여러군데서 관심을 가져줘서 감사하게 생각한다”면서 “지금은 협회 전임지도자 신분이니 협회와 먼저 얘기를 해보는게 맞다. 협회의 장기 플랜이 궁금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그동안 처럼 어린 선수들을 성장시키고 육성하는게 사명감도 있고 보람된 일이라 협회의 얘기를 잘 들어볼 것”이라면서도 “물론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도 있다”면서 차분히 진로를 결정할 뜻을 나타냈다.

정 감독은 “지난 10여년간 골든 에이지 프로그램 등이 정착하면서 한국 유스 축구가 많이 정착됐다”면서 “앞으로 선수 수가 줄어드는 시대에 어떻게 질적으로 향상시켜 교육적으로 접근할지 더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이번 대회 최고 스타인 이강인(발렌시아)에 대한 믿음과 조언도 덧붙였다. 정 감독은 “강인이는 테크닉과 스킬을 모두 가졌다. 볼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면서 상대를 이용한다. 멘털도 다 갖춰져 있다. 다만 피지컬을 조금 더 만들어가면 충분히 어느 무대를 가도 원하는 것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3년 뒤 카타르 월드컵 활약을 기대하는 팬들의 시선에 대해서는 “그러기 위해선 실전에서 뛰는 게 가장 중요하다. 뛰지 않는 선수를 대표에 뽑을 수는 없다. 이번 대표 선수 모두 팀으로 돌아가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경기에 뛰어 한국 대표팀의 훌륭한 자산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양승남 기자 ysn9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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