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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Police] 경찰 야구단 유승안 감독

대단한미디어 입력 2019.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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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스의 대부 그리고 누군가의 아빠

“선수 때가 생각나더라고. 그때로 되돌아가는 건 어려워도 유니폼이나 한번 바꿔 입어보고 싶었지.” 올 시즌을 앞두고 한화 이글스 선수 시절 번호인 24번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유승안 감독. 11년간 경찰 야구단을 이끌며 수많은 스타 선수를 발굴해냈지만, 여전히 현장을 떠날 수 없는 그다. 제자들에게는 무서운 호랑이 감독, 팬들에게는 친근한 벽제 아저씨, 아들들에게는 존경받는 아빠로서 한국야구의 발전을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달린 그의 또 다른 꿈은 계속 야구를 하는 것. 아직 젊다. 그리고 할 일이 많다. 그렇기에 ‘유승안 야구’는 계속돼야 한다.

Editor 소경화 Location 서산전용연습구장




<더그아웃 매거진> 100호 스페셜 인터뷰이로 감독님을 만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저도 영광입니다.

좋은 소식으로 만났다면 더 좋았을 텐데 오늘은 이별을 얘기해야 해요.

이별이라고 생각하고 싶진 않아요. 경찰 야구단 유니폼과의 이별인 거지 야구계에서 어떤 일이든 할 거니까요.

폐지 확정 소식을 들을 당시 심정이 어땠나요?

한 2년 전이죠? 그때만 해도 ‘아냐 이거 잘하면 다시 취소될 수 있고, 연장할 수 있을 거야’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작년 시즌이 끝나고부터 갑자기 분위기가 폐지 쪽으로 돌아가더라고요. 저를 비롯한 많은 야구인이 노력했는데 정부 시책이 그런 거니까 큰 대세를 거스를 수가 있나요?

해체 수순이 갑작스럽게 이뤄진 경향이 있어요.

사실 올봄에 총재님이 취임하시자마자 저랑 간 데가 국회예요. 행정안전부와 야구단 관련 부서 국회의원들한테 가서 여러 노력을 했으나 제힘으로 안 되는 거더라고요.

경찰 야구단 출신 선수들이 청와대 앞에서 경찰청 선수 수급 중단 철회를 호소하기도 했어요.

당시 저도 함께 시위했습니다만 그때는 이미 정책이 확정된 이후라 돌이킬 여력이 없었어요. 어느 정도 경찰 야구단이 야구계에 순기능을 했고, 팬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줬기에 일말의 희망을 품었으나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일은 아니었어요.

2006년 창단 이후 14년의 역사를 이어온 경찰 야구단, 11년 전 감독직을 처음 제안받았을 때가 기억나나요?

KBO 운영기술위원으로 있는데 돌아가신 하일성 총장님께서 “너 현장 가서 경찰 야구단을 해보지 않겠니?”라고 하셔서 바로 “가겠습니다”라고 대답했어요. 한화 감독을 하다 나온 지 얼마 안 됐을 때거든요. 물론 행정도 중요하지만, 아직 젊고 일선에서 선수들과 부딪히는 게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뜻 기회를 잡았죠.

거창한 각오나 청사진이 있었을 법해요.

그때는 진짜 그랬어요. 상무 야구단이 같은 군팀인데 3년 동안 겨우 1번 이겼대요. 그 소리를 듣고 창피해서 선수들에게 “내가 감독을 하는 이상 지는 건 용납 안 한다”라고 말했어요. 그리고 KBO에 부탁했죠. 다음 시즌 첫 게임을 상무로 원정을 가겠다고요. 적진으로 들어간 후 첫 3연전에서 1승 1무 1패를 했어요. 그때부터 선수단이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해 그 시리즈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어떻게 그렇게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죠?

여기 오는 선수들은 팀에서 보내주는 선수잖아요. 그래서인지 ‘그냥 2년 때우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오는 선수들도 있었어요. 그런 사고방식을 확 바꾼 거죠. “너희들 여기 놀러 온 것도 아니고 군대 생활 편하게 해주려고 만든 팀도 아니다”, “놀고먹으며 쉽게 야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혜택 줄 생각 전혀 없다” 이런 얘기를 강하게 했어요. 멘탈부터 바뀌어야 하니까요. 선수들이 뒤에서 욕 많이 했을 거예요. (웃음)

해가 지나며 감독님 스스로 변화한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한화에서 감독할 때는 전쟁터고, 실전이니까 성적에 책임을 져야 했어요. 근데 여기는 마이너리그잖아요. 선수를 육성해 전쟁터로 보내는 예비 군단이죠. 그래서 양의지, 민병헌, 박건우처럼 선수들이 확 발전해서 나가는 걸 보는 게 큰 보람이었어요. 또 저는 자식들이 야구를 하잖아요. '아빠로서, 선배로서, 감독으로서 내가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구나'라는 걸 경찰 야구단 감독을 하면서 많이 느꼈어요.

홈구장이 있는 벽제가 어쩌면 집보다 익숙하겠어요.

벽제는 생전 처음 가본 곳이거든요. 가기 전까진 무섭기도 했는데 막상 야구장을 보니 느낌이 참 좋더라고요. 작고 아담하지만 아늑하게 다가왔어요. ‘그래 여기서 뭔가를 만들어보자’라는 다짐을 하게 됐어요. 근데 선수단을 만나보니 오합지졸만 있더라고요. 임의 탈퇴 선수도 많고 성적은 맨날 꼴찌고요. 그 선수 모두 어떤 식으로든 사람을 만들어야 하니까 처음에는 생각이 많았죠. 아쉽네요, 정말. 벽제야구장의 청량한 공기와 분위기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아요.

경찰 야구단 가족들과의 이별도 아쉽겠어요. 선수단 외에도 많은 스태프가 경찰 야구단을 함께 이루고 있었어요.

저의 손발이 돼준 사람들이에요. 모두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제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는 게 가장 안타까워요. 매니저는 KBO로 복귀할 거고, 이 부장이나 이런 사람들은 나름대로 길을 찾겠죠. 근데 코치진을 놓고 가는 게 마음이 쓰여요. 김수길 수석 코치는 워낙 다방면으로 유능하기 때문에 국가대표 쪽으로 편입할 기회가 있을 거예요. 어느 정도 KBO와 조율을 해놨어요. 다만 남은 3명의 코치는 제가 계속 오퍼를 넣고 있어요. 근데 잘 안 되네요. 제 밑에서 4~5년씩 일했고 충분히 자질을 갖춘 인재들인데 구단들이 데리고 가주면 좋겠어요.

애정이 느껴지네요. 그런데도 선수들에게는 매우 엄격했어요.

팬들한테는 매일 웃고 농담하고 그랬어도 선수들한테는 일절 없었어요. 요즘 시대적으로는 맞지 않지만 여기는 군대라는 특수 집단이잖아요. 군복 입고 있을 때 제대로 가르쳐야죠. 충분히 욕먹고 반성하고 발전해야 밖에 나가서 욕 안 먹어요. 그래서 선수들에게 “여기서 긴장한 시간이 앞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거다”라고 종종 말했어요. 밀당이라고 하죠? 의기소침한 애는 당겨주고, 건방진 애는 확 눌러주고. 그런 밀당이 중요한 거라고 생각해요.

밀당 덕분일까요? 경찰 야구단을 거친 선수들이 대표적으로 말한 변화가 멘탈이었어요.

고개 숙이고 도망가는 걸 제일 싫어했어요. 의도적으로 애들한테 부딪혀서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죠. 우리 심장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는 잘 몰라요. 근데 경찰 야구단을 거친 선수들의 심장은 2배로 키워서 내보내고 싶어요. 만루 찬스에 타자가 덜덜 떨면 치겠어요? 힘이 빠지면 내야 땅볼이 되잖아요. 힘이 있어야 빵 쳐서 희생 플라이가 되고 홈런이 되는 건데 멘탈 약한 애들은 절대 만루 찬스에서 안타 못 쳐요.




기량이 크게 발전한 선수도 많아요. 특별한 비결이 있나요?

원칙을 정해놔요. 피처는 무조건 5회 이상, 투구수 100개까지. 물론 5회까지 가는데 10점을 내주면 당연히 팬들도 있으니 바꿔야죠.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계속 그 선수를 담금질시켜요. 최근에 전용훈 투수를 일부러 9회까지 완투시켰어요. 당시 “용훈아, 네가 야구를 하면서 완투를 한 적이 있니?”라고 물어보니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한번 해보라고 했어요. 해봐야 그 기분과 기쁨을 아는 거니까요. 물론 마무리 투수가 마지막 이닝을 던져서 깨끗하게 끝내는 방법도 있죠. 그러나 어떤 한 명을 키우기 위해서는 다른 선수들이 기다려줘야 되는 부분도 있는 거예요. 타자 역시 삼진을 3개 먹더라도 최소 3타석은 놔뒀어요. 그리고 끝난 다음에 얘기하죠. 저는 그렇게 믿음으로 운영했어요. ‘아무리 못해도 감독님이 끝까지 기회를 줄 거다’라는 생각이 선수들을 변화하게 했죠. 이게 한국시리즈 마지막 게임이라고 하면 절대 이렇게 하면 안 되지만 우리는 1년 레이스를 하는 거니까 믿음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특히 포수 육성의 장인이에요. 양의지, 최재훈, 한승택까지.

포수는 갖춰야 할 자질이 정해져 있어요. 강한 어깨, 블로킹, 핸들링, 인사이드 워크. 그럼 그걸 계속 보면서 잘못할 때마다 잔소리하는 거예요. 그냥 놔두면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거든요. 바로 얘기하지 않으면 핑계를 대요. ‘나는 완벽하게 했는데 바운스가 나빴다’, ‘피처가 잘못했다’로 이어져요. 그럼 안 되거든요. 피처는 던지는 거로 끝난 거고 그다음부터는 캐처가 책임져야죠.

제자들이 야구 하는 걸 계속 볼 텐데, 아쉬운 점도 있나요?

최근 몇 년간 탱탱볼을 사용할 때는 타자들이 나가도 뛰지 않았어요. 9번 타자도 홈런을 치니까 뛸 이유가 없죠. 저는 그것 때문에 한국야구가 기술적으로 퇴보했다고 봐요. 메이저리그와 비교했을 때 KBO가 1년에 140게임을 한다고 하면 홈런왕은 40개 정도가 맞아요. 이승엽 같은 걸출한 타자가 50개를 넘기는 거지 우리나라 타자가 홈런을 50개씩 치는 건 제대로 된 게임이 아니에요. 근데 지금 50홈런에 육박하는 타자도 3할 타자도 여럿이잖아요. 그건 말이 안 돼요. 야구의 밸런스가 무너진 거죠. 그러면서 캐처의 기량이 퇴보했어요. 번트를 대고, 히트 앤드 런을 하고, 힘 좋은 4번 타자가 홈런을 치고 이런 게 정상적인 야구인데 러너가 안 뛰니까 캐처가 빨리할 필요 없이 척척 앉아버리는 거예요. 옛날에는 안 그랬거든요. 한국야구가 올림픽에서 우승하고 WBC를 할 때는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리그였어요. 도루를 50개씩 했으니까요. 근데 지금은 도루하는 사람이 별로 없죠. 그러니까 야구가 재미없어졌어요. 저는 아기자기한 야구를 좋아해요. 일방적인 승부는 보는 사람도 지루하고 하는 사람도 피곤해요. 최근에 언론을 보면 어느 팀 캐처의 블로킹이 나쁘다, 뭐가 나쁘다, 이런 나쁜 것만 나오잖아요. 그건 그 선수가 나쁜 게 아니라 한국야구가 그렇게 만든 거예요. 캐처가 안 움직여도 되게끔 했어요. 홈런만 치니까, 의미 없는 발사각도 얘기만 하니까요. 전체 기량 증가를 위해서는 러너가 뛰어다녀야 해요.

신선한 발상이네요.

한국야구가 왜 재미가 없어졌냐고 하면 일반 사람은 피처의 기량이 떨어졌다고 해요. 하지만 결국 타자 우선적인 볼의 영향 때문에 선수들의 기량이 떨어진 거예요. 조금만 힘 있으면 전부 발사각도 높여서 홈런만 치려고 하니까요. 이렇게 계속 홈런 욕심만 내면 한국야구는 산으로 갈 거예요. 저는 이 점을 부정적으로 생각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제자는 누구인가요? 잘한 선수보다는 아픈 손가락?

아픈 손가락은 많죠. 1군 못 가는 놈들은 다 아파요. 결국 우리 목적이 뭐겠어요, 1군 선수지. 경기하러 갔다 제자들 만나면 즐겁고 반가운데 한편으로는 2군에서 고전하고 있는 거니까 짠하고 안쓰러워요. 고생한 걸 아니까요.

퓨처스리그의 산증인으로서 현장에서 느끼는 보완점도 있을 것 같아요. (7월 9일 인터뷰)

더 다이내믹해져야 해요. 그라운드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냥 사고 없이 지나가면 그 게임이 잘된 게임이라고 말해요. 근데 천만의 말씀이거든요. ‘4:3으로 KT 위즈가 이겼으니 집에 가세요’ 이게 무슨 감동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어제 이강철 감독이 이영재 심판과 배치기한 게 너무 좋았어요. “그래 이 감독 잘했다!” 그랬어요. 사실 둘이 굉장히 친하거든요. 그저 기분이 나쁘니까 표현한다는 건데 그게 뭐가 나빠요. 시합하러 나온 사람들인데. 팀의 1년 예산이 400억씩 있어요. 그걸 알기에 편안하게 야구하고 아무 감동 없이 집에 가는 야구는 싫어요. 부딪혀야 해요. 심판, 감독, 선수 모두 억울하면 울고 어필하며 싸워야 해요. 그래야 근성이 생기고 투쟁 심리가 생기는 거지 이 넓은 운동장에 하지 말라는 게 뭐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어요. 선수들이 열심히 뛰어놀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야구가 그걸 억제하고 있어요. 난 그게 싫어요. 그렇다고 우리가 깡패처럼 싸우겠어요? 보는 사람들도 피가 끓는 걸 함께 느낄 수 있게 해줘야죠. 곧 이강철 감독에 대한 상벌위원회가 열린다는데 어떤 제재를 받을지 알 수 없으나 이따가 전화 한 번 할 거예요. 잘했다고 칭찬해주려고요.

또 다른 뜨거운 감자가 있죠. 오지환-박해민의 대표팀 합류로 많은 이야기가 있었어요.

사실 그건 같은 야구인으로서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예요. 성적이 되면 뽑아야죠. 물론 지금 상황에서 볼 때는 뽑힐 만큼의 성적이 된 거 같진 않아요. 다만 그 일로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았기에 조금 냉각기를 두는 게 좋다고 봐요. 하나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오지환과 박해민 때문에 경찰 야구단이 해체하는 건 아니에요. 그건 잘못된 판단이에요. 정확한 팩트는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잖아요. 분명 부정적인 면은 없어요. 근데 제가 아무리 긍정적인 면을 얘기해봤자 지금은 의심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나중에 조금 더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을 때 얘기하고 싶어요. (선수들 본인도 감독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당연히 알죠. 저는 그 선수들을 데리고 오려고 했고, 그 둘도 오려고 한 건 팩트예요. 그 후에 일어난 일은 기관도 껴있고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에 나중에 얘기해야 할 것 같아요.




사실 병역 특례라고만 보기에는 분명 경찰 야구단의 역할이 있었어요.

병역 특례라고 생각하지 못하게끔 선수들에게 혹독하게 했어요. 실제로 와서 보면 쟤들 경찰 야구단 가서 더 고생했다고 그럴 거예요. 물론 특성상 원정 경기에 가면 호텔에서 자고 그런 게 부정적으로 보일 순 있죠. 그건 한국야구의 틀 안에서 우리가 움직이는 거고, 선수들한테도 너희는 특례를 받으러 여기 온 게 아니고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온 거라고 분명 말했어요. 본인들도 잘 알고 있고, 대단한 권리를 누리려고 하는 선수는 없었어요. (확실한 철학이네요.) 경찰 야구단은 절대 특례가 아니에요. 그동안 제가 해온 걸 보면 지금 일반병들이 더 편한 것 같아요. 외출, 외박도 그쪽이 더 많은 것 같고요. 저는 그렇게 쉽게 외출, 외박을 주지 않았어요. 편하게 쉬고 노는 건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어요.

유승안 감독에게 경찰 야구단은 어떤 곳이었나요?

한 팀에서 가장 오래 한 곳이죠. 그래서 경찰 야구단은 ‘유승안 야구’라고 말하고 싶어요. 제가 여기 있는 동안 KBO와 경찰청에서 많은 권한을 받았어요. 야구단 운영에 최선을 다해달라는 부탁이었고, 그만큼 제가 하고 싶은 야구를 11년 동안 열심히 했어요. 고맙게도 선수들이 제 말에 잘 따라줬고 사고 한 건 없었어요. 성과가 있었기에 지난 11년이 참 행복했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경찰 야구단을 거쳐 간 제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파이팅. 선수들한테 할 얘기가 뭐 있겠어요. 파이팅하고 몸 건강하고.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합니다. 최근 해설에 대한 관심을 넌지시 내비쳤는데.

저 말 잘해요? 괜찮아요? 목소리 톤이 어때요? 서울 성북구 출신입니다. (웃음) 사실 은퇴하고 나면 제주에 한국 교육리그를 만들려고 했어요. 그래서 협의를 했는데 너무 급박하게 하는 바람에 운동장 인프라 재건 예산 문제로 올해는 못 하게 됐어요. 내년에는 꼭 만들려고요. 물론 현장에 있는 게 가장 좋죠. 근데 누가 불러줘야 가는 거고 지금 하고 싶은 건 해설이에요. (추구하는 해설 스타일이 있나요?) 그냥 유승안 스타일! 제가 허구연 선배를 따라가겠어요, 하일성 선배를 따라가겠어요. 하고 싶은 대로 하다 보면 저만의 스타일이 나오지 않을까요? 유승안이 풀어가는 야구는 이런 거라고 계속 얘기하면 새로운 야구가 떠오를 수 있는 거고요.

가족들의 반응도 궁금해요.

뭐 다 야구쟁이들이라서. 가족 중에 야구선수만 5명이 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야구복을 빨다가 야구복을 말리면 시간이 다 가는 집안이니까 야구 외에는 다른 걸 생각할 틈이 없죠. 근데 사실 아버지가 뭘 하든 말든 자기들이 잘해야 해요. 자기들이 못하는데. (웃음) 제자들 잘하는 거 바라듯 아들들도 잘하길 너무 원하고 있어요. 더 열심히 했으면 해요.

손녀 다온 양도 할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는지 알고 있나요?

봤어요, 다온이? 예쁘죠? 우리 집에 초롱이라고 강아지가 한 마리 있는데 저보고 초롱이 할아버지래요. 야구 할아버지가 아니고. (웃음) 요즘은 창원에 있어서 잘 못 봐요. (유)원상이가 NC 다이노스로 가서. 보고 싶어요.

차남 유민상 선수가 아버지의 구직을 매우 걱정하던데.

착하네. 아니 근데 구직은 자기가 해줄 것도 아니면서. (웃음) 열심히 한번 직업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저희가 선물로 작은아들의 영상 편지를 가져왔거든요.) 뭐야, 아들? 아들하고 요새 사이 안 좋은데?

(영상을 보고 난 후) 아들에게 답장해볼까요?

그래 나도 사랑한다! 철들었네? 아빠한테 사랑한다는 말 한 번도 안 했는데 처음이네. 왜 아빠를 글썽이게 만드는 거냐? 잘해! 내가 늙었나 봐. 옛날에는 전혀 안 그랬는데 내가 늙었어, 글쎄 야구선수 부자는 야구를 잘하면 즐겁고 행복한데 못하면 좀 별로야. 승부 세계가 그런 것 같아. 그래서 자식들이 야구를 잘해야 해. 그게 효도야. (어떤 아들인가요?) 유민상이라는 친구는 자기 역할을 하는 친구죠. 좀 시끄러워서 그렇지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아이예요. 남들한테 피해 안 주고 사회적인 동물이 된 거면 됐죠. 잘할 것 같아요.




경찰 야구단 감독으로서 야구계에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나요?

유승안 감독은 11년이지만 경찰 야구단은 14년 동안 한국야구에 지대한 공로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국방의 의무를 비롯해 각 구단의 육성 쪽에서 분명히 한몫했다고 봐요. 그러니까 경찰 야구단 잊어버리지 마시고 옛날에 경찰 야구단에 유승안 감독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기억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경찰 야구단을 응원해준 팬들에게 인사 부탁합니다.

글쎄요. 경찰 야구단이 어렵잖아요. 아이고, 창피해서 안 되겠네요. 은퇴하는 애들이 우는 이유를 알겠어요. 마지막이라고 그러니까 알겠네요. 팬들이 너무 잘해준 것 같아요. 와서 계속 잘해주니까 자기가 스타가 된 것처럼 구는 애들이 있을 정도로 팬들이 고맙게 잘해준 것 같아요. 근데 그만큼 젊은 분들이 야구가 좋고 경찰 야구단이 좋아서 오신다고 하니까 정말 고맙고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


더그아웃 매거진 100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9년 100호(8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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