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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Universe] 경남대학교 황성빈

대단한미디어 입력 2019. 08. 27.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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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황성빈은 최근 프로야구의 트렌드와는 거리가 멀다. 강한 타구를 만들어내고 장타를 생산해 내는 것 대신 장점인 콘택트와 주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그 결과 대학 최고의 주루능력과 콘택트능력을 뽐내며 대학 No.1 리드오프 자리에 올라섰다. 내외야 수비 또한 모두 소화할 수 있어 당장 프로에서 대수비와 대주자 요원으로도 손색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누구보다 빠른 발로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그다.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신철민 Location 경남대학교

황성빈

출생 1997년 12월 19일 신체조건 175cm 73kg 출신 학교 관산초-안산중-소래고-경남대 포지션 내야수 투타 우투좌타

2019년 성적 13경기 43타수 17안타 18도루 8타점 .395/.552/.581/ OPS 1.133




#바닥부터 올라서기

중학교 시절 황성빈은 또래보다 야구를 못했다. 가까스로 소래고등학교 창단멤버로 합류해 야구선수의 길을 이어 나갈 수 있을 때 그는 다짐했다. 남들에게 인정받는 선수가 되겠노라고. 부단히 노력한 끝에 3할 이상을 칠 수 있는 콘택트능력과 고교 최고의 주력을 갖추며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타 생산능력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3년간 장타는 단 2개. 3할 후반의 고타율을 기록하고도 그는 프로입단에 실패라는 좌절을 맛 봤다.

자기소개 부탁해요.

안녕하세요. 경남대에서 내야수를 맡고 있는 4학년 황성빈이라고 합니다. 처음이라 많이 어색하네요.

원래는 축구를 했다고 들었어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축구선수를 하다가 친동생을 따라서 야구를 하게 됐어요. (친동생이 먼저 야구를 했나요?) 저도 야구선수를 하고 싶었는데 처음에 부모님이 반대하시다가 결국에 허락해주셔서 지금까지 하게 됐어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제가 키가 작아서 야구선수로는 어려울 거 같다고 생각하셨대요. 근데 하도 졸라서 할 수 없이 시켜준 거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웃음)

그렇게까지 야구를 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나요?

축구는 골을 넣거나 슈퍼세이브를 할 때 말고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거의 없어요. 하지만 야구는 큰 점수 차라도 언제든지 뒤집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고 매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소래고등학교 창단 멤버였어요. 소래고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중학교까지 야구를 못해서 갈 수 있는 고등학교가 없었어요. 야구를 그만둘까도 생각했죠. 그 와중에 소래고등학교가 야구부를 창단한 거예요. 야구를 계속 하기 위해선 소래고에 입학하는 거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정말 운이 좋았어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목표가 있었을 거 같아요.

동기들보다 야구를 잘하는 거요. 중학교 때 동기들이 야구를 엄청 잘했거든요. 고등학교 3학년이 됐을 때 그 친구들보다 야구를 잘한다는 소리를 꼭 듣고 싶었어요.

고교 시절부터 빠른 발로 유명했죠?

키가 작다보니까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 게 필요했는데 그게 스피드였어요. 중학교 땐 저보다 빠른 선수가 팀에 3명이나 있었어요.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스피드만큼은 꼭 최고가 되고자 다짐하고 매일 훈련했죠. 그러면서 남들보다 빠른 발을 갖게 됐어요.




하지만 장타는 아쉬웠어요. 고등학교 3년 동안 장타가 단 2개에 그쳤어요.

신경이 많이 쓰였죠. 장타를 치면 득점권으로 쉽게 갈 수 있잖아요. 장타를 치고 싶은데 나오지 않더라고요. 그렇다고 의식하면 다른 게 무너지고…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장타가 나오지 않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당시엔 신체조건이 작고 파워가 부족했어요.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니까 공을 맞추는 거에 급급해서 제 스윙을 하지 못했던 거 같아요.

3할 후반의 타율을 기록하고도 프로에 가지 못했어요.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겠어요.

제가 2남 1녀 중 첫째라 성공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컸어요. 대학을 가서 계속 야구를 한다고 프로에 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없고 그때는 정말 관두려 했죠. 그러다가 진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대학에 가기로 결정했어요.

대학교도 어렵게 들어갔었죠?

대학교를 갈 때 고등학교 기록을 가지고 1차로 서류를 넣어요. 1차에 합격하면 2차로 면접이나 실기를 봐요. 고등학교 때 기록이 좋으니까 서울에 있는 대학교도 1차는 당연히 합격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6개의 학교 중에 경남대학교를 빼고 다 떨어진 거예요. 당시엔 아쉬웠지만 경남대에 입학한 건 행운이었어요. 저를 믿어주는 지도자를 만났으니까요.




#완벽한 테이블세터

경남대에 입학한 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입학 후 1년 만에 3개의 장타를 기록, 고교 3년간 기록을 넘어서며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였다. 그 뒤에는 황성빈의 재능을 알아본 경남대 김용위 감독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 1학년 때부터 과감하게 주전으로 기용했고 황성빈은 뛰어난 성적으로 믿음에 보답하며 김감독의 황태자로 군림했다. 완벽한 테이블세터로 거듭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맹활약했어요.

감독님이 믿고 써주신 덕분이에요. 입학하자마자 처음 하신 이야기가 “지금보다 더 잘 할 수 있다”라는 말이었어요. 자신감을 갖게 된 계기가 됐죠. 그러다 보니 좋은 결과로 이어졌어요. 타격 메커니즘도 조금 수정하고요. 감독님께 항상 감사해요.

고등학교 때 비해 장타가 비약적으로 증가했는데 어떤 부분이 달라진 건가요?

웨이트 트레이닝을 많이 했어요. 감독님과 타격 메커니즘에 관련해서도 많이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때마다 포인트를 정확하게 집어주신 게 도움이 됐어요.

고교에서는 맞추는데 급급하다는 느낌이었는데 대학에서는 많이 안정됐어요.

고등학교 때는 삼진을 당하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맞추려고만 했거든요. 하지만 대학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제 스윙을 하려고 했어요. 그러니까 좋은 타구가 나오더라고요. (대학 통산 100안타도 달성했어요.) 입학할 때 목표였는데 솔직히 할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없었거든요. 달성해서 기뻐요.




해를 거듭할수록 볼넷의 개수가 늘어나면서 순수출루율(출루율-타율)이 좋아졌어요. 스스로 의식한 결과일까요?

저학년 때부터 시합을 뛰다보니까 상대 팀에서 견제하는 게 느껴졌어요. 투수가 좋은 공을 주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예전보다 신중하게 타석에 임하면서 볼넷이 늘어난 거 같아요.

테이블세터로서 완벽해졌다고 볼 수 있겠네요.

과분한 이야기라 부끄럽지만 기분은 좋네요. (웃음) 아직 부족해요. 지금보다 더 좋은 테이블세터가 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세요!

두산 베어스의 조수행 선수와 많이 닮았어요.

조수행 선수도 대학에서 제일 빠른 발을 가지고 있던 선수였는데 실력을 인정받아 프로에 입단했잖아요. 아직은 부족하지만 나중에는 조수행 선수를 뛰어넘고 싶어요. ‘조수행 다음은 황성빈이다’가 아니라 ‘황성빈이 최고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면 좋겠어요.

작년부터 내야수를 보기 시작한 이유가 있나요?

원래 내야수였는데 고등학교 때 외야로 전향했어요. 대학교에 와서 다시 내야수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최근 프로야구 트렌드가 내․외야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선수를 선호하잖아요. 대학교에서 주목을 받기 위해서라면 뭐라도 해야 했어요. 프로 입단이 너무 간절했거든요.

승부욕이 워낙 강해서 그라운드에서 실수할 때도 있었죠?

예전엔 억울한 판정이 나오면 참지를 못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창피해요.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항의를 많이 했어요?) 심심치 않게 한 거 같아요. (웃음) 지금은 안 그래요! 혼도 많이 났거든요. 요즘엔 억울한 일이 있어도 그냥 조용히 넘어가요.

롤모델이 있나요?

스타일이 많이 다르긴 한데 LG 트윈스의 박용택 선수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된 모습이 멋있어요. 꾸준하게 3할을 치면서 KBO 최다안타기록을 세웠잖아요. 그리고 항상 팀을 먼저 생각하는 모습에서 감명을 받았어요. 특히 1번 타자로 활약하다가 벌크업을 하고 4번 타자를 맡았던 게 인상 깊어요.




#대도(大盜), 마음을 훔쳐라!

대학통산 79개의 도루를 기록. 자타공인 대학 최고의 대도(大盜)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진정한 대도의 반열에 오르기 위한 마지막 단계가 남았으니 바로 스카우트의 마음을 훔치는 일이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가진다한들 프로에 진출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당당히 실력을 인정받아 프로에 진출할 날을 기대하며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는 황성빈의 마지막 이야기다.

그동안 부모님이 고생을 많이 했을 거 같아요.

맞습니다. 비록 지금은 야구를 관뒀지만 동생과 저까지 두 명이나 뒷바라지 하시느라 정말 힘드셨어요. 꼭 프로에 가서 효도하겠습니다.

대학 생활 4년이 끝나가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요?

1학년 때 홈스틸을 했는데 아웃당한 일이요. 8회 2사 1, 3루였고 제가 3루 주자였는데 홈스틸을 시도했어요. 1루 주자가 도루하는 타이밍에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벤치로 들어가면서 완벽한 세이프다 생각했죠. 그런데 아웃판정이 나온 거예요. 너무 억울해서 항의를 하고 감독님도 나오셔서 항의 하셨어요. 시합이 끝난 후 감독님께 아무리 화가 나도 참아야 한다고 꾸지람을 들었어요. 마지막에 “세이프가 맞다” 하고 가시는데 그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요.

운동 외에 대학 생활은 어때요?

캠퍼스 커플을 해보고 싶었는데 입학하고 절대 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웃음) 서로 불편해지는 거 같더라고요. 교양 수업을 들으면서 새로운 사람들이랑 친해지는 게 즐거웠어요.




대학 통산 100도루를 성공하고 싶다고 누누이 말했는데 79개를 기록했어요. 100개를 달성할 수 있을까요? (6월 26일 인터뷰)

대회가 3개밖에 남지 않아서 솔직히 어려울 거 같아요. 10경기 정도만 더 뛸 수 있다면 자신 있는데 100개를 채우지 못하더라도 미련은 없어요. 솔직히 처음 목표를 세웠을 때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지금도 만족해요. 그래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서 최대한 많은 도루를 하고 대학 생활을 마무리하고 싶어요

인터뷰 내내 감독님에 대한 감사함이 느껴졌어요. 이 자리를 빌려서 감독님께 그 마음을 표현한다면?

부족한 제게 항상 자신감을 북돋아주시고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이렇게 야구를 잘하게 된 건 모두 감독님 덕분입니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감독님의 수많은 제자 중 가장 자랑스러운 제자로 기억될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프로에 간다면 어떤 선수가 되고 싶은가요?

다른 구단에서 뽑지 않은 걸 후회하는 선수요. 저를 뽑은 팀을 제외한 9개 팀이 황성빈이라는 선수를 뽑지 않은 걸 후회하게 만들 거예요. FA도 대박 나고 싶고요. 야망이 큽니다.

마지막으로 <더그아웃 매거진> 독자에게 인사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지금은 대학생 야구선수지만 인터뷰가 나갈 때쯤이면 지명을 받고 프로팀에 입단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팀을 가든지 그 팀의 팬들이 사랑하는 선수, 팀에 꼭 필요한 선수가 되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더그아웃 매거진 101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9년 101호(9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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