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DUGOUT Dream] SK 와이번스 하재훈

대단한미디어 입력 2019.09.03. 12:00 수정 2019.09.03.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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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않는 편안함

V4 달성으로 휘파람을 불며 2019년을 맞이한 비룡 군단에 특급 마무리가 떴다. 55경기 5승 3패 3홀드 33세이브 평균자책점 2.03. 마무리 전환 한 달 만에 10세이브 달성. 29개로 KBO리그 데뷔 시즌 최다 세이브 신기록 경신. 이 모든 걸 다섯 달 만에 해냈다. 그것도 투수 전향 첫해인 선수가 말이다. 두둑한 배짱으로 150km/h의 직구를 스트라이크존에 꽂으며 SK의 뒷문 걱정도 날려 버렸다. 요즘 KBO리그에서 가장 핫한 남자, 하재훈의 이야기다.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이혜정 Location 인천SK행복드림구장


아재 개그의 달인이라고 들었어요. 오늘 인터뷰에서도 볼 수 있는 건가요?

개그가 아니라 천성이 아재예요. 일부러 하려고 한 건 아닌데 말을 하면 듣는 사람들이 아재 개그라고 하니까 그렇게 굳어졌어요. (웃음)

2019시즌 정규리그 1위 팀의 더그아웃 분위기는 어때요?

딱 1위 팀 같아요. 이기고 있든 지고 있든 어떤 상황에서도 여유가 있어요.

#찾았다! 내 마무리

하재훈에게 주어진 첫 임무는 계투로 나와 마무리 투수에게 마운드를 무사히 넘겨주는 일이었다. 자신이 맡은 일을 착실히 수행하던 중 기회가 찾아왔다. 4월 26일 KT 위즈 경기에 염경엽 감독이 하재훈을 9회 말 마무리 투수로 올렸다. 특급 마무리의 첫발을 내디딘 순간이었다.

지금 등번호 13번을 달고 있는데 사연이 있다고 들었어요.

돌고 돌아 13번을 받게 됐어요. 처음 60번에서 21번이 될 뻔했다가 뺏으면 미안할 것 같아서 안 한다 했어요. 99번은 (강)지광이가 단다고 해서 양보하고 나니 13번이 남았어요. 이것도 원래 (김)창평이 번호였는데 창평이가 25번을 가져가서 제가 달게 됐죠.

4월 말 마무리로 보직 이동이 있었어요. 부담은 없었나요?

부담감은 없었어요. 오히려 시즌 초에 앞으로 어떡하지 고민이 많았죠.

9회에 하재훈이 등판하면 팬들은 안심이 된다고 해요. 하재훈의 9회는 어떤가요?

‘안심을 드려야겠다’라고 생각하며 올라가요. 그래서 편안하게 경기를 보시는 게 아닐까요?


명품 투구의 비결이 ‘기백’이라고 밝혔어요.

공이 아무리 좋아도 기백이 없으면 맞아요. 타자를 이겨야 하잖아요. 심리적으로 먼저 이기고 들어가야 더 좋은 피칭이 나와요.

구위도 훌륭해요. KBO리그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 것 같아요?

순위는 꼽을 수 없지만 필요할 때 언제든 제 구위로 타자를 누를 자신은 있어요.

지금까지 치른 경기 중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예요?

30경기 연속 무실점 기록이 깨졌을 때요. 기록이 깨져서가 아니라 희망더하기 캠페인 약속 때문에 기억에 남아요. 그날 정신이 없어서 저 혼자 ‘예지’ 이름이 새겨진 유니폼을 못 입었어요. 습관대로 제 유니폼을 입은 거죠. 경기가 끝날 때까지 몰랐던 게 미안해서 올스타전에 입고 나가 약속을 지켰어요.

올스타전 이후에도 예지 소식을 들었나요?

(박)종훈이가 대표로 가서 기부금을 전달했어요. 그때 올스타전에서 입어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답장으로 제가 던지는 모습을 보면서 힘내고 더 견뎌달라고 영상 편지를 따로 보냈습니다.

연속 무실점 기록은 깨졌지만, 단일 시즌 구단 최다 세이브 기록과 세이브왕 타이틀은 아직 남아있어요. 개인 기록에도 관심이 있나요?

있죠. 그런데 시즌 중에는 일부러 의미를 안 두려고 해요. 기록에 얽매여서 야구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끝판왕 이미지로 오승환과 종종 비교되는데 마침 오승환이 KBO리그로 돌아왔어요.

같은 리그에서 뛸 수 있어서 기쁘고 흥분돼요. 영광이기도 하고 같이 잘했으면 좋겠어요.


#하이리스크? 하이재훈!

작년 9월, SK가 2019 프로야구 2차 신인드래프트에서 투수 하재훈을 지명했을 때 ‘하이리스크-하이리턴’이라는 평이 따라붙었다. 그리고 정확히 1년이 흐른 지금, 구단의 결정은 신의 한 수가 됐다. 타고난 게 많은 이 선수는 단단한 준비와 노력으로 실력까지 입증했다. 팬들은 확실한 존재감으로 9회를 삭제하는 하재훈에게 박수를 아끼지 않는다.

드래프트 당시에는 우려가 컸어요. 하이리스크 픽이라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어요?

그때는 뽑히면 뽑힌 팀에 가서 열심히 하자고만 생각했지 다른 건 신경 안 썼어요.

지명 이후 프런트와 투수 전향 문제로 한 시간을 싸웠다고 들었어요.

한 시간은 무슨, 며칠이에요. 많이 싸웠죠. 원래 피지컬 테스트를 할 때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건데 안 한다고 거부했어요. ‘투수할 거면 사인 안 하겠다’, ‘왜 내가 투수를 해야 하냐’ 이런 식으로 세게 나갔는데 병원 지하층 골방에 갇혀서 설득당했어요. (웃음)

누가 설득했어요?

지금 스카우트 팀장이랑 전 팀장님 두 분이요.

마음을 바꾸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어요?

전 스카우트 팀장님이 제 학교 선배라서 오고 가면서 많이 뵀던 분이에요. 팀장님이 진심을 담아 학교 선배로서, 저를 아는 사람으로서 확신이 있다고 이야기하셔서 마음이 바뀌었어요.


진심이 통했네요. 투수로 나서기 위해 많은 준비를 했을 것 같아요. 스카우트가 공개한 독립리그 시절 투구 폼과 지금의 폼이 다르던데 어떻게 다듬은 거예요?

따로 만들진 않았어요. 폼을 체크하면서 던지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몸이 흘러가는 대로 맡겨요. ‘이걸 이렇게 해야지’, ‘저걸 저렇게 해야지’ 하는 것보다 공에 집중해요.

늦깎이 투수에게 주변에서 어떤 조언을 주나요?

조언보다 코치님들의 도움을 받고 있어요. 시즌 중에는 최대한 마음을 편하게 먹는 게 중요한데 필승조가 점수를 줘서 지더라도 눈치 보지 않게끔 신경 써 주시고 항상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세요.

SK 적응에 도움을 준 사람은 누구예요?

(김)태훈이랑 (서)진용이죠. 차도 태워주고 옆에서 많이 도와줘요. (김)광현이 형은 핵심적인 걸 꼬집어주고요.

아직 시즌이 남았지만 자신의 플레이를 평가한다면 몇 점을 주고 싶어요?

어휴, 만점이죠. (웃음) 아프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까지 건강한 것도 기특하고요. 솔직히 아예 안 아픈 건 아니에요. 참고하는 건데 그것도 기특해요. 잘 던지고 있는 점도 뿌듯해요.

부상 방지를 위해 특별히 하는 노력이 있어요?

투구 전후로 많은 시간을 투자해요. 특히 던지기 전에 준비할 때 공을 많이 안 던져도 어깨가 빨리 풀리게끔 만들어 놓는 게 제일 중요해요.


#서른이지만 시작입니다

그의 등장곡은 ‘The Resistance’다. 마치 하재훈이 걸어온 야구 인생을 표현하는 듯한 제목이다. 우여곡절의 지난 10년은 그에게 자양분이 됐다.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을 접고 간결한 투구로 타자를 상대하니 아웃 카운트와 세이브는 저절로 따라왔다.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버틴 그는 KBO리그에 당당하게 자기 이름 석 자를 새겨 나가고 있다.

서른이 돼 만난 KBO리그의 첫인상은 어땠어요?

하도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 보니까 별반 다를 건 없었던 것 같아요. 한국 스타일에 적응하는 게 낯설지 않고 포근했어요. 형들도 좋고 팀 분위기도 좋고요. 다른 팀은 안 가봐서 모르지만 SK는 확실히 좋았어요. ‘잘 맞는 팀이구나’라고 생각했죠.

한국, 일본, 미국 각 리그의 특징이 있나요?

색깔이 있어요. 일본은 지극히 개인주의예요.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고 개인 기록에 의존도가 높아요. 반대로 미국은 프리해요. 누가 잘하든 못하든 관여하지 않고 자기 할 일을 해요. 한국은 어떻게 하든 팀으로 이기기 위해 다 같이 돕는 게 좋았어요. 더그아웃에서 누가 못 하면 위로해주고 잘하라고 조언도 해주는 모습이 좋아요.

30살 이전의 하재훈도 궁금합니다. 야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큰아버지가 계신 알루미늄 공장에서 야구 방망이를 만들었어요. 방망이를 갖고 초등학교에서 노는데 거기 야구부가 있었던 거예요. 감독님이 오라 해서 갔더니 야구를 하고 있던 형이 아빠 회사 동료였어요. 그래서 아빠한테 말했죠. 아빠는 허락하고 엄마는 하지 말라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하게 됐어요.

어릴 적부터 소질이 있었나요?

그럼요. 야구부에 들어가자마자 몇 개월 만에 바로 시합 뛰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주전을 놓친 적이 없어요. (뿌듯)


학창 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어요?

개구쟁이였죠. 태풍 매미가 오고 있는데 강가에 올라가서 다이빙도 하고 그랬어요.

개구쟁이가 마산용마고 졸업 후 바로 미국으로 떠났어요. 생활은 어땠어요?

가혹했어요. 고등학생이 뭘 알았겠어요. 사회생활도 모르고 혼자 밥 사먹는 방법도 잘 모를 때였어요. 맨날 엄마가 차려 주는 밥만 먹다 갔으니까요. 영어도 a, b, c밖에 모르는데 미국에 가서 혼자 생활한다는 게…. 제가 졸업식 다음 날 비행기를 탔거든요. 어깨에 도우미 스티커 붙이고 LA 공항에 내려 도움받아 가고 그랬어요. 힘들었죠.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처음 2~3년은 힘들었어요. 나머지 2~3년은 외로웠고요.

혼자 있는 시간을 버틸 수 있었던 힘은요?

드라마요. 나오는 건 다 봤어요.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기니까 야구하는 시간, 자는 시간 빼고는 계속 드라마만 봤어요. 그 당시 방영 중인 거에 완결 난 드라마까지 이어서 봤죠. 혼자 있는 시간이 길면 잡생각이 생기니까 그걸 피하려고 더 봤어요.

그 시간을 이기고 트리플A까지 올라갔는데 부상에 발목이 잡혔어요.

죽을 것 같았어요. 야구 안 하려고 했어요. 더블A에서 트리플A까지 올라가는 타이밍에 딱 외야수가 없던 때였어요. 올라가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고 부상에서 복귀했더니 더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내야수가 외야수로 뛰는 불상사도 생겼어요. 그때를 떠올리면 너무 아쉬워요. 근데 지나간 걸 어떡하겠어요. 잊어야죠.

그렇게 메이저리그 도전을 접고 한국이 아니라 일본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생계요. 애가 둘인데 당장 야구를 안 하면 어떻게 애들을 키우겠어요. 그때로 돌아가 똑같은 제안이 온다면 1년을 포기하더라도 또 그렇게 했을 것 같아요.

타자를 포기한 것에 대해선 이제 아쉬움이 없나요?

제가 못하면 아쉬워했을 수도 있어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언젠가는 미련이 생길 수도 있고 언젠가는 바꾸고 싶을 때가 올 텐데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려고요.

2019년 투수 하재훈으로서 새로운 시작을 알렸어요.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

따로 없어요. 한 구 한 구 이 공을 어떻게 때릴지에 대한 구상과 타자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고민하는 그 순간이 제 목표입니다.


#파워 오브 러브

그라운드를 뜨겁게 달궜던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남은 열기는 머지않아 인천SK행복드림구장을 가득 채울 가을의 함성으로 바뀔 것이다. 가족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이 왔고, 팬들의 응원이 있어 오늘을 나눌 내일이 생겼다. 비룡 군단의 가을 DNA와 하재훈이 만나 낼 시너지가 어디까지 커질지 지켜보고 싶은 이유다.

데뷔 시즌에 올스타 베스트 12로 뽑힐 만큼 인기가 많아졌어요.

실감하고 있죠. 사인 요청도 자주 들어와요. 가끔 힘들 때도 있는데 응원해주시는 게 또 고마워요.

별명도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들어본 게 있나요?

‘파이널보스’, ‘회전갑’, ‘슼판왕’ 다 들어봤어요. ‘하남자’도 많이 들었고요. (김)강민이 형이 ‘하루강민’ 촬영을 할 때 “그 형은 상남자. 나는 하남자”라고 했다가 하남자가 됐어요. (본인은 상남자가 아닌가요?) 저는 되게 부드럽고 조용하고 감수성 풍부한 남자예요. 다정하고!

야구가 없는 날은 무엇을 해요?

놀러 가거나, 쇼핑하러 가거나, 애들 데리고 산책 가요. 어제는 태훈이랑 (노)수광이랑 시골 산에 올라가서 백숙이랑 닭볶음탕 먹고 같이 쇼핑도 했어요.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아서 이런 식으로 자주 놀려고요. 집에 있는 와이프도 세상 좋아하더라고요.

아내에 대한 애정을 자주 드러내던데 자랑을 해본다면?

키 크고, 예쁘고, 착한 건 아니지만 나한텐 착하겠지? 착했으면 좋겠고. (농담) 지금까지 버틴 게 대단하죠. 확신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이렇게 버티겠어요. 아이 둘 키우면서 미국에서 애 낳고, 둘째는 일본에서 낳을 뻔했는데 한국에서 낳았어요. 힘들었죠. 버틴 것만으로도 대단하고 모든 게 다 설명이 돼요. 정말 고마워요.


두 아들이 아빠를 쏙 닮았어요. 아들들에게 어떤 아빠인가요?

가장으로서 무게감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근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귀여우니까. (웃음) 살갑게 대해주고 싶어요.

아이들도 야구선수가 되고 싶어 하나요?

아직 모르겠어요. 둘째는 할 것 같은데 첫째는 성격이 조용하고 엄마 스타일이라 앉아서 하는 걸 좋아해요. (만약 야구를 하겠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밀어줄 건가요?) 잘하면 밀어주고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시작을 안 하려고요. 야구는 끼가 있어야 하거든요.

슬슬 마무리해볼게요. <더그아웃 매거진> 공식 질문입니다. 하재훈에게 야구란?

꿈이었고, 목표였고, 현실적인 생계 수단이기도 했어요. 여러 의미가 있어요. 야구라는 게 참 그때그때 달라서 매력적이에요. 모든 상황에서 항상 다른 걸 느끼게 해줘요. 그게 참 재밌는 것 같아요.

SK가 한국시리즈에 올라가는 건 기정사실이에요. 첫 포스트시즌 각오가 남다를 것 같아요.

각오는 지금처럼 하는 거예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처럼만! 올라가서 뭔가 바뀌거나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포스트시즌에 등판한 본인의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 있나요?

한 번씩 ‘올라가면 어떨까’라며 상상해보긴 했어요. 지금보다 중압감을 더 느낄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지금처럼만’이라고 말한 거예요.

한국시리즈 첫 세이브 상황에서 마무리로 등판을 한다면 초구로 뭘 던질지 얘기해줄 수 있어요?

초구는 기선제압이죠. 그거 알려주면 다 알고 칠 거 아니에요. 저한테 왜 그래요. 속구든 뭐든 그 타자한테 맞게 기선 제압할 수 있는 거로 던질 거예요.


SK팬들에게 어떤 선수가 되고 싶어요?

아직 첫해인데 벌써 얘기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음…. 역시 편안함을 주는 선수요. 투수로서는 최고의 찬사니까요.

그럼 조금 더 먼 미래를 봤을 때 하재훈의 꿈은 무엇인가요?

지금처럼 공을 던지며 오래 야구하는 게 꿈이에요. 이렇게 계속 유지되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한마디 부탁해요.

SK 와이번스 투수 하재훈입니다. <더그아웃 매거진>을 보고 계시는 분들이라면 아시겠지만 다양하고 재밌는 이야기가 많을 거예요. 앞으로도 애독해 주세요. 선수들도, 매거진 사람들도 다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응원 부탁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더그아웃 매거진 101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9년 101호(9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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