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훈이 대고참이라면 나는.." 예능 샛별된 농구대통령, 허재는 허재다

유재영기자 입력 2019. 9. 27. 17:11 수정 2019. 12. 12. 11:1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예능 샛별이라고 해주시는데, ‘그거슨(그것은) 아니지’. 하하. 아직은 ‘농구대통령’이 더 나은 것 같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별명이니까….”

최근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서 특유의 넉살과 끼를 발산하며 ‘예능인’으로 현역 시절 못지 않은 국민적 인기를 얻고 있는 허재 전 남자농구대표팀 감독(54). 23일 만난 그는 전날 긴 시간 야외 촬영으로 몸살 기운을 호소하며 식은땀까지 흘렸다. 방송을 시작하고 채용한 매니저도 다른 스케줄 협의 때문에 자리를 비워 혼자 택시를 타고 힘겹게 왔다. 그럼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180도 달라진 생활과 방송 재미, 농구에 대한 애정을 털어놨다.

● “서장훈이 대고참이라면 나는 말단 직원”

-‘예능인’ 허재에 서서히 적응이 된다.

“두 달 반 정도를 촬영장에서 보냈다. 이제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게 어색하지 않다. 주변사람들이 바빠졌다. 아내도 내 방송을 챙기고 둘째 아들 (허)훈이도 매니저 역할을 한다. 프로그램 모니터도 하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왜 이런 상황에서는 가만히 있냐’며 온갖 지적을 한다. 연봉 받을 때는 마음이 편했는데 출연료 받으면서도 편하게 하려 한다.”

-각 방송사의 ‘러브콜’이 대단하다. ‘예능 대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후배 장훈이도 챙겨야 하고, (현)주엽이 방송도 도워줘야 하고, 하여간 많은 인연 때문에 여기저기 나가고 있다. 대세라고 하는데 예능에선 장훈이가 대고참이고 난 말단 직원이지. 머리도 좋고, 말도 잘하고, 진행도 할 줄 알고…. 웃는 모습이 정해인(배우) 닮았다는데 ‘그거슨’ 아니지. 정해인 씨가 잘 생겼다. 닮지는 않은 것 같고 웃을 때 귀엽게 봐주시는 것 같다.”

● ‘버럭’도 ‘허당’도 인간 ‘허재’ 모습

-감독 시절 다혈질적 모습과는 다른 표정, 우스꽝스러운 행동에 호감을 보내는 팬들이 많아졌다.

“허재는 이중적인 인간이 아니지. 하하. 코트 승부의 세계에서는 승패에 몰두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욕을 하고 화를 낼 때가 많았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는 미소나 ‘허당끼’ 는 코트 밖에서 지인들하고 소주 한 잔 할 때 모습이다. 둘 다 허재다. 감독 시절엔 웃을 때도 참 많았는데 카메라가 안 잡아주더라. 코치를 거치지 않고 바로 감독이 되면서 잘해보고픈 마음에 선수들에게 화를 많이냈는데 잘못한 것 같다. 박빙 순간에 일어난 실수에 대해서 조금 더 칭찬으로 다가갔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해본다.”

-‘농구대통령’이 축구하는 모습에 난리가 났다.

“첫 촬영 때 다리가 아파 골키퍼를 했는데 급하니까 백패스를 손으로 잡았다. 재밌게 봐주셔서 다행이다. 정말 룰이 바뀐 줄 몰랐다. 체육관이 아닌 밖에서 운동을 한다는 자체가 적응이 안 된다. 스텝도 다르고.”

-현역 시절에는 다치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방송에서는 부상이 잦다.

“팬들이나 시청자들에게 미안한 부분이다. 은퇴하고 감독으로 지내면서 몸을 잘 만들어 놓을 걸 후회가 든다. 방송을 시작하면서 내 몸을 관리하고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방송 녹화 전날에는 무조건 술을 안 마신다.”

● 중국 기자에게 ‘사이다’ 욕, 지금도 후회 안 해

허 전 감독의 인기에는 자연스럽게 내던진 어록도 한 몫 한다. 방송을 통해 ‘그거슨 아니지’는 전국구 유행어가 됐다. 프로농구 KCC 감독 시절 심판에게 블로킹 반칙을 여부를 거세게 항의하면서 했던 ‘이게 블락이야’ 호통은 ‘불낙전골’ 패러디 열풍을 몰고 왔다. 농구 대표팀 감독으로 2011년 아시아농구선수권대회에서 중국에 패한 뒤 기자회견에서 엉뚱한 질문을 한 중국 기자에게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XX”라고 속 시원하게 날린 ‘사이다’ 발언도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웬만한 개그맨보다 유행어가 많다.

“기쁘다. ‘블락’은 정확하게 블로킹인데 급하니까 나도 모르게 나왔다. 어떤 팬들이 영상을 처음에 올렸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나도 재밌어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중국 기자에게 말한 건 지금도 후회는 안 한다. 경기 내용 관련 질문을 해야되는데 ‘우리 선수들이 중국 국가가 나올 때 움직였다’는, 전혀 상황에 맞지 않은 질문을 해서 대답하기가 싫었다. 더 인터뷰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 농구 인기 하락, 농구인 모두가 반성해야

예능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농구 코트로 돌아가고픈 ‘뼛속까지’ 농구인이다. “지금 프로 감독들이 잘하고 있다”고 손사래를 치면서도 사령탑에 복귀하고픈 작은 욕심이 없지는 않다. 한국 농구의 최 전성기를 이끌었던 주인공. 프로농구 인기 하락, 국제 경쟁력 저하에 대한 걱정과 책임감도 분명 있다.

-한국 농구가 위기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잖다.

“농구인의 한 사람으로 안타깝지. 한 사람의 잘못은 아니고 농구인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 팬을 구름처럼 몰고 다니는 스타가 자꾸 등장해야 한다. 남자 농구만 봐도 10년 주기로 슈퍼스타가 나오고 그 중간 시기 공백을 메워주는 수준급 선수들이 배출되면서 경쟁력이 유지됐다. 신동파에서 이충희, 김현준, 그 다음 나로 왔고, 내가 죽을 만하니까 문경은, 이상민, 서장훈, 현주엽, 전희철 등이 나왔다. 이렇게 계속 ‘이어달리기’가 됐는데 지금은 아니다. 농구계의 노력도 있어야 하지만 언론도 스타들이 계속 나오도록 도와줘야 한다.”

●철저한 실전 계산과 반복 연습… 농구대통령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다

-결국은 코트에서 뛰는 선수들의 목적의식이 중요한 게 아닌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경기에 들어갈 때 어떻게 플레이를 하겠다는 계산이 서야하고 사전 에 이미지트레이닝을 해야 한다. 지금 선수들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나에게 수비가 누가 붙을 것인지, 수비수가 이렇게 막으면 나는 어떻게 공격 전개를 하고 드리블과 슛 타이밍은 언제 가져갈 건지, 계산을 하고 머리 속에 떠올리면서 맞춤 연습을 반복해야 실전에서 빠른 상황 판단과 좋은 경기력이 나온다는 거다.”

-기본기의 중요성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예상 실전 상황을 이미지트레이닝으로 구상하면 절대 슛 훈련도 제 자리에 서서 할 수 없게 된다. (안)정환이 한테 들으니 축구에서도 서서 슛을 하는 찬스는 전혀 안 난다고 하더라. 수없이 움직이다 숨이 차고 수비가 붙어 있을 때 자신의 본래 킥 실력이 나온다고 했다. 나도 예를 들어 수비수를 밋 아웃, 팝 아웃 무브(패스를 받기 전에 스텝과 페이크 모션 등으로 수비수를 떨어뜨리는 동작)를 확실하게 해주고 다음 크로스 방향이나 L자 형태로 움직여 패스를 받고 바로 슛을 던지는 식의 연습을 수없이 했다. 한 지점에서만 하루 300~400번 가까이 했다. 지겨울 정도로 했다. 40분 경기하면서 서서 자유롭게 슛을 던질 수 있는 오픈 찬스는 3번 이상 안 온다. 잘하는 선수는 더 기회가 없다. 그래서 움직이면서 패스를 받고 슛을 하는 반복된 연습이 중요하다.”

-실수한 플레이 복기도 늘 강조했다.

“실수를 되짚을 줄 알아야한다. 그래서 감독 때 선수들에게 녹화 비디오 영상을 자주 보라고 했다. 그런데 요즘 선수들은 10개 슛 쏜 것 중에 2개가 들어갔다면 그것만 돌려본다. 실패한 8개가 왜 안들어갔는 지가 중요한 데 말이지….”

● 허재의 불타는 승부욕 롤모델은 신선우

-동기 부여가 된 선배들이 있었나.

“어릴 때 대표팀에서, 또 현대나 삼성 선배들하고 1대1을 하면서 ‘수싸움’이 늘었다. (이)충희 형이나 (김)현준이 형을 유심히 보면서 슛을 던질 때 보폭, 스텝, 자세 등을 익혔다. 팔 자세는 완전 오리지널 슛폼이라 따라하기가 어려웠다. 롤모델이라고 하면 신선우 선배(전 한국여자농구연맹 총재)였다. 나랑 포지션은 달랐지만 아주 터프하고도 영리한 플레이를 했잖아. 승부욕도 강했고…, 그걸 배웠다.”

-‘내가 농구로 최고가 될 수 있겠구나’라는 감은 언제왔나.

“용산고 1학년 올라가면서 웬만한 기본기를 다 내 것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대학에서 체력이 늘었고, 나보다 슛이 좋은 선배들을 많이 보면서 중앙대 2학년 때 소위 농구 선수로 ‘세팅’이 끝났던 것 같다. 그 때부터 어떤 경기든 겁나지 않았다. 서울올림픽(1988년)에서 세계 최강급이라던 유고하고 경기(92-104패, 23득점 가로채기 7개)를 하는데 주눅이 안 들고 오히려 더 자신감이 들더라. 내가 스크린을 활용해 오른손으로 원 드리블하고 슛을 하거나 드리블로 뚫는 동작에는 수비수가 잘 쫓아오지 못했다. 내 플레이에 확신이 있었다.”

-1995년 삼성과의 농구대잔치 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 막판 연속 17점 득점, 1990년 세계농구선수권대회 이집트 전 62득점 등 엄청난 기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운과 실력이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62점 넣을 때는 수비가 둘이 붙어도 던지면 다 들어가더라고. 앞으로 이 기록은 못 깨질 것 같다. 요즘에는 한 선수를 40분 가까이 뛰게 하지 않으니까. 자랑은 아니고 나에게 너무 감사한 기록들이다.”

어디 가서 농구 인생을 제쳐두고 예능 출연 얘기를 먼저 하는 것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는 허 전 감독. 그가 자주 쓰는 말투대로 ’하여간‘ 방송이 됐던, 농구가 됐던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연 농구아카데미 일로도 분주하다. 발달장애인 농구 교실부터 농구 재능 기부, 유소년 유망주 발굴 등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 밀려드는 스케줄에 ‘만세’를 부를 법 하지만 인연이 닿는 사람들의 부탁도 절대 거절 못하고 들어준다. 그럼에도 28일 맞이할 54번째 생일을 미리 축하하니 ‘의리파’ 형님은 손님을 그냥 보내지 않았다. “이건 아니지, 소주 한 잔 하러 가자.”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