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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Dream] NC 다이노스 김태진

대단한미디어 입력 2019.09.3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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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 지어다! 구다주!

어느덧 2019시즌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KBO리그. 후반기가 시작됐을 때까지만 해도 올해 신인왕의 판도는 LG 트윈스의 정우영과 삼성 라이온즈의 원태인, 두 투수의 이파전이었다. 하지만 시즌 막판 창원의 새로운 아이돌 ‘구다주’ 김태진이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내야와 외야를 가리지 않는 수비 센스와 리드오프로서 뛰어난 재능까지 조용하지만 강렬하게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갔다. 그는 과연 반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6년 차 중고 신인, 김태진에게 이렇게 외쳐본다. 될 지어다! 구다주!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최윤식 Location 창원NC파크


<더그아웃 매거진>과 단독 인터뷰는 처음이에요.

베테랑이나 기록 좋은 선수들이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프로 유니폼을 입고 제가 나온다고 하니까 감회가 새롭습니다. 신일고등학교 때 했던 단체 인터뷰하고는 확실히 다르네요. (하하)

#유니폼을 사랑했던 어린아이

과거 이야기를 해볼까요? 한때 태권도 꿈나무였어요.

야구를 하기 전에 태권도를 하려고 했어요. 관장님께서 태권도 선수로 키워보고 싶다고 했죠. 근데 형이 서울로 학교를 가게 되면서 가족이 모두 이사를 하게 됐어요. (관장님이 안타까워했겠어요.) 태진이는 제가 키울 테니 놓고 가달라고 그러셨죠. (웃음)

체조선수도 권유받았다는데 사실인가요?

텀블링을 좀 했어요. (웃음) 초등학교 배구부 감독님이 그 모습을 보고 부모님께 체조에 재능이 있어 보인다고 학교를 알아봐 주겠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어머니는 뭔가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오셨나 봐요. 그렇게 여러 길을 돌아 야구를 하게 됐어요.

야구는 언제 시작했나요?

초등학교 2학년 가을이요. 형이 야구를 먼저 했는데 저도 해보고 싶어 부모님께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여기에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어떤 에피소드인가요?

사실 야구를 정말 하고 싶었던 이유가 유니폼이 너무 예뻐 보였거든요. 그래서 유니폼 맞춰달라고 해야 했는데 어렸을 때 그게 뭔지도 모르고 교복을 맞춰달라고 했어요. (웃음) (귀여운 사연이네요. 그러면 야구부에는 어떻게 들어가게 됐어요?) 야간 운동을 하는데 시간이 남아 감독님이 배팅을 한번 쳐보라고 하신 적이 있어요. 몇 번 보시더니 나중에 어머니한테 “태진이 잘할 것 같으니 야구를 시켜보면 어떻겠냐”라고 해주셔서 하게 됐어요.


초등학교 2학년이면 매우 어린 나이잖아요.

다른 선수에 비해 출발이 빨랐죠. (재능이 남달랐던 모양이에요.) 활동적인 걸 되게 좋아했어요. 부모님도 그런 모습을 보고 시키려고 하셨고요.

야구부에 처음 들어갔을 때 경기에 나가기보다 심부름을 많이 했다면서요.

감독님과 코치님이 “잡일을 잘해야 야구를 잘한다”라고 하셨어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막 쓰레기도 줍고 야구장에 돌도 주웠어요. 참 열심히 했죠. (하하) 그러다 보니까 시합도 뛰게 됐어요.

어린 마음에 야구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나 봐요?

뭐든지 잘하고 싶었어요. 공부는 빼고요. (웃음) 적성에 안 맞더라고요.

초등학교 때부터 내야부터 포수까지 포지션을 가리지 않는 선수였어요.

고학년 형들도 있었고 아무것도 모를 시기잖아요. 그냥 감독님이 경기에 뛰라고 하면 “감사합니다!” 하면서 나갔어요. 그런 게 쭉 이어져 오다 보니까 또 팀에서 내야도 하고 외야도 하고 있네요.

야구에 대한 자세가 굉장히 적극적인 것 같아요. 평소 성격도 그런가요?

반반이에요. 활발하다는 소리를 듣는 만큼 내성적이라는 이야기도 주변에서 하더라고요. 하지만 야구는 확실히 적극적으로 합니다.


#근성 빼면 시체

그 열정이 신일고 시절 빛을 발했어요. 1학년부터 주전으로 출장했어요.

학교에 와서 첫해 중견수를 맡게 됐어요. 신입생이 바로 주전으로 출장한다는 게 쉽지 않을 일인데 감독님이 저를 믿어주셨기에 기회를 받지 않았나 생각해요. (어떤 면이 신뢰를 받는 힘이 됐을까요?) 주력과 수비요. 감독님이 작전 야구를 즐기셨는데 제가 적합해 보여서 주전 자리를 주신 게 아닐까요? (웃음)

지금도 그렇고 고등학교 시절 사진을 보면 항상 유니폼이 더럽혀져 있어요.

그저 프로 유니폼을 입어보고 싶었어요.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 당시에는 그랬어요. 1군 무대에서 활약하며 스포트라이트도 받아보고 싶었고요. 그 생각 하나로 지금까지 왔어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알리고 싶었군요.

고등학교 때도 그랬고 중계하는 게임을 되게 하고 싶었어요. 활약을 떠나서 여러 사람이 보잖아요. 많은 사람에게 힘을 얻는다고 해야 하나? 이목이 쏠린 게임에 출장하고 싶은 욕심이 강했어요.

‘김태진’ 하면 ‘근성’이 항상 붙어 다녀요.

덕분에 좋게 봐주시고 칭찬해주시는 분이 많아요. 그런데 솔직히 저는 그렇게 해야죠. 근성 빼면 시체거든요. (웃음) 악착같이 해야 재능이 보이죠! (근성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플레이 하나하나에 최대한 집중해요. 항상 이렇게 하다 보니까 이제는 습관이 됐어요. 타격을 했으면 1루까지 전력 질주를 하는 게 당연하고 수비를 나가면 매번 전력으로 뛸 순 없어도 할 수 있는 선에서 100%으로 뛰는 게 옳죠.

프로다운 자세네요. 이런 마음가짐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동기부여요. 아마추어 때 다른 선수들을 보면 혼나기 싫어 악에 받쳐 하는 선수도 있고 정말 열심히 뛰고 슬라이딩하는 선수도 있잖아요. 그런 모습을 계속 보면서 자연스레 습득했어요. 당시 프로야구에 달리기가 빠른 선수가 많아 선배님들을 보며 연구하기도 했고요.

매 순간 끈질긴 플레이를 보여줘 제26회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팀에도 발탁됐어요. 외야수 겸 리드오프로서 인상적인 경기력을 펼쳤습니다.

처음에는 내야수로 뽑혔어요. 그런데 정윤진 감독님께서 외야를 볼 수 있는지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주전으로 경기를 뛸 수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습니다”라고 말했어요. 그 이후에 1번 타자 좌익수로 뛰게 됐어요.


감독님의 결정에 아쉬움은 없었나요?

전혀요. 국가대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하는 선수들이 모인 곳이고 국제대회인 만큼 우승을 목표로 해야 하잖아요. 대회가 끝나고 감독님이 선수단과 미팅을 할 때 고생했다고 얘기해주셨는데 특히 저한테는 다른 포지션에서 잘해줘서 고맙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뿌듯했습니다.

2014 KBO 신인드래프트를 통해 NC 다이노스의 부름을 받게 됩니다.

생생히 기억나요. 4라운드였는데 앞에 구단이 다 뽑고 마지막이 NC 차례였어요. 2차 4라운드 안에 지명을 받는 게 목표라 여기서 안 뽑히면 진짜 대학에 가려고 했어요. 부모님한테도 그렇게 말씀을 드렸고요. 그런데 “NC 다이노스 타임 요청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거예요. ‘뽑혀야 해. 이게 마지막인데 제발 뽑혀야 해’라면서 애를 태웠죠. (웃음) “NC 다이노스 지명하겠습니다”라고 했을 때 티 안 나게 기도를 했어요. “신일고등학교”라고 했을 때까지도 마음을 안 놓다가 “신일고등학교 김”이라고 하는 순간 ‘됐다. 뽑혔구나!’ 싶었죠. 드래프트 끝나고 아버지께 전화해서 “아버지 저 프로 갈게요"라고 했어요. 아버지가 후회 않겠냐고 그러셨는데 후회 없이 가겠다고 했어요.

부모님은 대학에 가길 바랐나요?

너무 일찍 시작해서 다른 미련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시더라고요. 프로도 사회생활이잖아요. 어린 나이에 타지에 가서 살아야 하고 이래저래 어려운 게 있으니까요. 다른 부모님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항상 ”다치지 마라. 약이랑 밥 잘 챙겨 먹고“라고 귀에 딱지가 배기도록 말씀하세요. (웃음)

근성 있는 플레이와 재능을 겸비했지만 작은 신장이 아쉽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저는 오히려 그런 평가에 개의치 않았어요. 키가 작다고 야구를 못 하는 건 아니잖아요. 공⋅수⋅주 무엇이든 제가 잘해서 인정을 받는 게 더 중요해요. 그만큼 야구장에서 후회 없이 하려고 노력했고 지금도 변함없어요. (멋진 생각이네요. 롤모델이 누구인가요?) 손시헌 선배님이요. 선배님이 제게 가장 많은 동기부여를 주셨어요. (김)선빈 선배님도 그렇고요. 신장이 작은 데도 능력은 다른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더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며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잖아요. 저도 그런 선수가 되고 싶어요.


#결실과 고난 그리고 깨달음

프로 입문 2년 차 퓨처스리그에서 대단한 활약을 보여줬습니다. 퓨처스리그 역사상 6번째 4할 타율을 기록하며 수위타자에 올랐어요.

많은 분에게 도움을 받았어요. 특히 현재 두산 베어스에 계시는 최경환, 이도형 코치님의 공이 크세요. 최경환 코치님께서는 정신적인 점과 기술적인 부분에서 옆에서 컨트롤해주셨어요. 시합에 나가게 되고 나서는 이도형 코치님이 컨디션을 관리해주셔서 4할이라는 타율을 달성할 수 있었죠.

아무리 퓨처스리그라지만 절대 쉽지 않은 성적이잖아요. 그때 소감이 어땠나요?

얼떨떨했죠. (웃음) 시즌 초반만 해도 4할은 상상도 못 했는데 매 시합 포기하지 않고 임하다 보니까 엄청난 결과가 나왔어요.

행복한 일만 가득하면 좋겠지만 굴곡이 있는 게 또 우리 인생이잖아요. 2016년 건강검진에서 식도에 혹을 발견했어요. 복귀 이후에는 어깨 부상으로 1군 콜업 기회를 놓쳤고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을 것 같아요.

고민이 깊은 해였어요. “안 아팠으면 1군에 올라갔겠지?”라며 후회도 했고요. (어떻게 극복했나요?) 관점을 바꿨어요. 안 다쳤어도 못하면 위에서 부르지도 않았을 거고 일단 회복이 최우선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완쾌하고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면 불러주시겠지’ 하고 기다렸어요.

그렇게 기다린 끝에 1군에 올라갔지만 높은 벽을 실감했어요.

시야가 좁았던 것 같아요. 누구나 다 준비를 잘해서 좋은 컨디션으로 갈 수는 없잖아요. 그런 걸 미처 판단하지 못했어요. 돌이켜 보면 왜 내가 그때 당시에 그런 생각을 가지지 못하고 올라갔을까 아쉬워요.

2016시즌을 마치고 경찰 야구단에 입대했어요. 경찰에 있는 동안 가장 도움이 된 건 무엇인가요?

“거기서 배운 게 뭐냐”라고 물어보시는 모든 기자님한테 그랬어요. 경찰에서는 연봉이 깎일 일이 없고 2군에 내려가고 1군에 올라가는 게 없으니까 해보고 싶은 것을 다 해봤다고요. 프로야구 선수로서 1군에 진입하는 게 가장 큰 성공이겠지만 다양한 도전을 하면서 성공도 느껴보고 실패도 했어요. 많은 것을 깨닫는 시간이 됐어요.

수많은 도전 중 신의 한 수는 외야수를 하는 거였어요.

유승안 감독님이 선임들도 전역할 시기고 외야 볼 사람이 없어서 외야가 가능하겠냐고 질문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고등학교 때도 외야를 했다고 말씀드렸더니 맡게 됐어요. 공석을 채우기 위해 한 일인데 제게 기회가 된 거죠. 외야랑 뭔가 운명이 있나 봐요.


#구다주 날개를 펴다

올 시즌 그토록 바라던 1군에서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행복한 한 해예요. 하지만 팀이 시즌 막판까지 5위 경쟁을 치열하게 하는 중이라 거기에 더 도움이 되고 싶어요. 저로 인해 이길 수도 질 수도 있겠지만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해 보탬이 돼야죠.

지난 5월 선배 나성범의 부상으로 주전 기회를 잡게 됐어요. 당시 주전 선수의 이탈이 많았는데 부담은 없었나요?

부담보단 팀의 손실이잖아요. 그래서 손해를 최소화하는 데에 초점을 뒀어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 역시 잘해줬기에 주축 선수들이 빠졌음에도 팀이 5강 싸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만큼 주목을 받은 게 배트를 짧게 쥔 거예요. 학창 시절에도 짧게 쥐었던 거로 기억하는데 프로에 와서는 길게 잡았잖아요. 다시 돌아간 이유가 있나요?

저도 그렇고 코치님들도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정)수빈이 형도 저렇게 짧게 잡는데 나라고 못 잡겠어?’라는 판단과 코치님들의 조언에 다시 짧게 쥐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오랜만에 하는 거라 어색했는데 이제는 길게 잡으면 느낌이 이상해요.

멀티플레이어답게 다양한 포지션에서 고른 활약을 보여주고 있어요. 내야와 외야를 오가는 데 있어서 어려움은 없나요?

‘외야면 딱 외야수 내야면 딱 내야수’라고 머리에 새기고 있어서 애로사항은 없어요. 전준호 코치님과 한규식 코치님도 “외야로 나가면 외야수고 내야에 나가면 내야수다”라고 하세요. 그리고 “충분히 가진 재능이 좋으니까 평소처럼만 해. 그럼 성적을 따라올 거야”라고 격려도 해주시고요. 두 코치님 덕에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아 감사해요.

그렇다면 포지션이 딱 정해진다면 가고 싶은 자리는 어디인가요?

내야죠. (운명의 외야와는 작별인가요?) 아닙니다. (하하) 그래도 내야 경험이 제일 많아서요. 제게 좀 더 좋은 영향을 주기도 하고요. (찾아보니까 타격 성적은 외야에서 더 좋던데요?) 맞죠? 기록을 딱히 찾아보지는 않는데 그런 것 같더라고요. (웃음)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데 실감하나요?

대기하다가 타석에 들어갈 때 팬분들이 환호해주시면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껴요. (팬서비스도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예전에 팬서비스 관련해서 안 좋은 이야기들이 나왔잖아요. 책임감을 가지고 보이는 분들에게는 최대한 좋은 추억을 만들어 드리려 성실하게 하고 있습니다.

창원 아이돌 4호라는 별명이 있어요.

그 별명은 몰랐네요. (웃음) (김태진이 생각하는 본인의 매력 포인트 세 가지가 있다면?) 와… 뭐가 있죠? (웃음) 눈웃음, 작은 키요. 저는 절대 키가 작은 게 단점이라고 생각 안 해요. 그리고 작은 발 사이즈요. 예쁜 신발을 많이 신을 수 있거든요.

구다주는 많이 들어봤을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별명입니다. (웃음) (듣고 싶은 다른 애칭이 있나요?) 전혀요. 구다주가 좋습니다! 계속 들어도 지겹지 않아요. (구다주를 탄생시킨 팬분들과 구단주님에게 한마디 부탁드려요.) 구단주님, 제 이름에 받침 하나만 붙으면 구단주님 성함이 되는데 저 기억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웃음) 구다주를 만들어주신 팬분들에게도 고맙고 최선을 다하는 플레이로 보답하겠습니다.

많은 사랑을 받는 올해, 본인의 활약에 점수를 매긴다면?

어렵네요. 괜히 만족할 것 같아서요. 그러면 나태해지더라고요. ‘이만큼 했으면 됐어’라고 하는 순간 해이해지는 게 느껴져요. 정신을 단단히 붙잡으려고 ‘오늘 이 정도 했으면 내일은 어떻게 해야겠다!’ 이렇게 생각해요. 0점은 아닌데… 몇 점을 줘야 하나? 35점을 줄게요. (웃음) 방심은 금물이죠!

시즌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는데 올 시즌 목표가 무엇인가요?

안 다치고 마지막까지 1군에서 뛰는 거요. 기록은 시즌이 끝나야 아는 거니까 지금은 신경 쓰지 않아요. 부상 없이 올해를 잘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어떤 선수가 되고 싶나요?

지금처럼 투지 있고 근성 있게 야구를 하면서 성실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김태진에게 야구란 무엇인가요?

인생? 삶을 통틀어 절반은 야구를 해왔으니까요. 올해 끝나고 안 할 것도 아니고 앞으로 계속 힘이 닿는 데까지 하고 싶어요. 야구는 제가 가진 능력 중 하나잖아요.

***

뿌리 깊게 박힌 성질, 근성. 김태진은 다른 선수를 보며 자연스레 근성을 배웠다고 말했지만 에디터는 그의 투지와 야구에 대한 욕심은 결코 배움으로는 될 수 없는 타고난 성질이라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신장보다 크고 뜨거운 심장을 지닌 남자. 김태진이 만들어갈 야구 인생을 지켜보자. 분명 큰 선수가 될 것이다.


더그아웃 매거진 102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9년 102호(10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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