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영 칼럼] 틀을 깨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

조회수 2019. 10. 17. 06: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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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N 야구 선임기자 키스 로는 그의 저서 ‘Smart baseball’에서 투수의 세이브 기록을 ‘야구를 망치는 기록’이라고 했다.

응? 뭐라고? 그럼 야구에서 경기 후반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야?

이런 생각이 들 수 있겠으나 그가 비판하는 것은 세이브라는 기록 자체라기 보다는 마무리투수를 오로지 세이브 상황에만 등판시키는 감독의 운영이다.

그가 예로 든 것은 지난 2016년 아메리칸 리그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나타났던 볼티모어 벅 쇼월터 감독의 불펜 운영이었다. 당시 볼티모어에는 김현수 선수도 뛰었기 때문에 국내에서도 관심이 많았던 경기다. 명장으로 불리는 벅 쇼월터 감독은 최고의 마무리투수 중 한 명이었던 잭 브리튼을 끝까지 아꼈다. 원정에서는 마무리투수를 상대 말공격에 등판시키지 않는다는 전형적인 경기운영이 결국 화를 불렀고 팀은 끝내기 홈런을 맞고 패했다. 결국 최고의 마무리투수는 경기에 등판해보지도 못하고 팀의 시즌 마감을 지켜봐야만 했다.

키스 로의 주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감독들이 마무리투수를 오로지 세이브상황에서만 기용하다보니 팀내에서 가장 강한 불펜투수가 한 시즌을 마치고보면 가장 적은 이닝을 소화한다. 이것은 분명 잘못된 통념이다.’

여기에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의 러셀 칼튼은 그의 저서 ‘The shift’에서 조금 구체적인 운영방법을 제시한다. 불펜의 강한 투수들을 상황중요도에 따라 기용하는 것.

상황중요도(Leverage Index)는 유명 세이버매트리션 톰 탱고가 고안한 개념으로 이닝과 아웃카운트, 점수차이에 따른 개별상황의 중요도를 뜻하는데 간략히 말해 1을 기준으로 그보다 높으면 위험한 상황, 그보다 낮으면 위험하지 않은 상황이다. 경기 전체의 상황중요도는 링크의 표를 참고하면 된다.

http://www.insidethebook.com/li.shtml

이렇게 길게 서론을 이야기한 이유는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키움의 장정석 감독이 보여주는 틀을 깬 투수진 운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키움에는 리그를 대표하는 구위를 가진 투수 조상우가 있다. 조상우는 올시즌 마무리로 시즌을 시작했다. 말 그대로 철벽이었다. 그러던 중 부상을 당했고 조상우가 몸을 회복하는 기간동안 베테랑 오주원이 마무리를 맡았다. 조상우가 재활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점에서 대부분은 조상우가 다시 마무리를 맡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조상우 복귀후에도 키움의 마무리는 그대로 오주원이었고 조상우에게는 새로운 역할이 주어졌다. 그 역할이 이번 포스트시즌까지 이어지고 있는 중요상황등판투수다.

이번 포스트시즌 기간동안 조상우의 등판 상황을 살펴보자.

[준PO]

1차전 2번째 투수, 0:0 7회초 2사 1,2루.

2차전 9번째 투수, 3:4 9회초 무사주자없음.

4차전 9번째 투수, 6:5 7회말 1사 1루.

[PO]

1치전 2번째 투수, 0:0 6회말 1사 1루.

2차전 6번째 투수, 6:6 7회말 무사 1,3루.


그렇다면 조상우 상황의 상황중요도(이하 LI)를 확인해보자.

[준PO]

1차전 0:0 7회초 2사 1,2루. (LI 2.9)

2차전 3:4 9회초 무사주자없음. (LI 0.7)

4차전 6:5 7회말 1사 1루. (LI 1.1)

[PO]

1차전 0:0 6회말 1사 1루. (LI 1.7)

2차전 6:6 7회말 무사 1,3루. (LI 3.2)

가장 기본적으로 세이브가 주어지는 상황이라 일컫는 마지막 수비이닝 3점차리드는 상황중요도로 보면 0.8에 불과하다. 이는 조상우가 두번째로 등판했던 9회 팀이 한점 뒤진 상황에서의 등판과 중요도가 비슷하다. 그 외에도 두점차리드시 상황중요도는 1.6, 한점차리드는 2.9다.

즉, 불펜투수 조상우가 등판한 상황들은 모두 세이브의 요건에 버금가거나 혹은 그 이상의 중요한 상황이었다. 특히 준플레이오프 2차전의 경우는 톰 탱고의 상황중요도 표에서도 상당히 어려운 상황으로 분류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조상우는 이번 가을 내내 경기의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에 등판해서 무실점하거나 혹은 실점을 최소화하며 팀의 승리기회를 만들어준 것이다.

후반기에 장정석 감독에게 조상우가 복귀한 후에도 오주원에게 마무리 역할을 계속 맡기는 이유에 대해 질문했을때 장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조상우가 빠져있을때 오주원이 마무리 역할을 너무 잘해줬다. 상우가 돌아왔지만 잘 돌아가고 있는 불펜진의 틀을 굳이 깨고싶지 않았다. 대신 조상우에게는 새로운 역할을 맡겼는데 8회를 맡는 고정 셋업이 아니라 경기 중반 이후에 위기 상황이 오면 조상우가 제일 처음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상우도 이 역할을 잘해주고 있다.”

장정석 감독은 조상우라는 리그 최강구위의 불펜투수를 활용하면서 기존 불펜운영의 낡은 틀을 깼고 이것이 현재까지 키움의 성공적인 가을야구로 이어지고 있다.

틀을 깨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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