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일, 성격 바꿨더니 'KS 제일'

박소영 입력 2019. 10. 28. 00:04 수정 2019. 10. 28. 06:5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두산 4연승 가을야구 우승
코치 "조용히 있다간 사라진다"
7년전 이적뒤 외향적으로 개조
1·4차전 결승타 15년 만에 만개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4차전(26일) 연장 10회 결승타를 친 두산 오재일이 시리즈 MVP에 뽑혔다. 두산은 4연승으로 정규리그와 KS를 통합우승했다. 사진은 MVP 수상 직후 관중석 팬들의 연호를 유도하고 있는 오재일. [연합뉴스]
“그렇게 조용히 있다가는 사라진다.”

2019 프로야구 한국시리즈(KS)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두산 1루수 오재일(33)이 같은 팀의 한 코치에게 들은 말이다. 말수 적고 소극적인 오재일에게 꽤 충격적인 말이었다. 오재일은 고교 시절부터 힘 있는 타자로 주목받았다. 2005년 프로에 데뷔한 그는 오랫동안 지지부진했다. 현대에서 히어로즈, 넥센으로 팀 이름이 바뀐 7년 동안 한 시즌 최다 안타는 2011년 23안타(46경기)였고, 최다 홈런은 같은 해 1개였다. 초라한 기록이다. 그는 2012년 넥센(현재 키움)에서 두산으로 트레이드됐다.

새 유니폼을 입는다고 내성적인 성격이 바뀔 리 없다. 쾌활한 두산 선수단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오재일도 “나는 조용한 성격이라서 이 분위기에 적응 못 하겠다”고 인정했을 정도다. 그런 그의 태도에 한 코치가 죽비로 내리치듯 “가만히 있지 마라”고 충고했다. 그는 고교(야탑고) 2년 선배인 같은 팀 오재원(34)에게 이 말을 전했다. 오재원은 오재일에게 “그런 말을 듣고 기분이 상했다면 현재 상태를 뒤엎어야 한다. 너 스스로 성격을 바꿔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재일의 ‘성격 개조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했다. 성격을 외향적으로 바꾸는 게 골자였다. 일단 더그아웃에서 시끄럽게 떠들기로 했다. 안타나 홈런을 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오는 동료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1루 수비를 할 때도 상대 팀 타자 주자와 수다 떠는 모습이 자주 TV 중계에 잡혔다.

성격이 활발해지면서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타석에서도 보다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휘둘렀다. 타율과 장타력이 상승했다. 유망주 시절 기대한 모습이 데뷔 10년이 지나 나오게 됐다. 2016년 처음으로 3할대(0.316) 타율을 기록했다. 개인 통산 최다인 홈런 27개를 쏘아 올렸다. 그렇게 두산의 주전 1루수로 자리 잡았다. 연봉도 2018년 3억원까지 올랐다.

정작 팀의 중심타자로 자리 잡은 뒤로는 KS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16년 KS에선 두산이 NC에 4전 전승으로 앞서 우승했지만, 오재일은 빈타(타율 0.059)에 시달렸다. 2017년 KS에선 5경기에 나와 타율 0.316, 1홈런, 3타점으로 맹활약했지만, 팀이 KIA에 1승4패로 뒤져 준우승했다. 지난해에는 정규리그 우승으로 직행한 KS에서 6경기에 나와 타율 0.125로 부진했다. 팀도 SK에 2승4패로 밀려 또 우승을 놓쳤다.

오재일은 올해 정말 잘하고 싶었다. 그는 “작년에 너무 못해서 마음이 아팠다. 올해 KS를 준비하면서 지난해 생각이 자꾸 났다. ‘이번에는 잘할 수 있다’고 되뇌면서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는 키움과 KS 1차전 9회 말 끝내기 안타를 날리면서 감을 잡았다. 2차전에서는 홈런을 쏘아 올렸고, 3차전에서는 적시 1타점 쐐기타를 쳤다. 그리고 4차전, 9-9로 맞선 연장 10회에 큼지막한 결승 2루타로 두산의 6번째 우승을 이끌었다. KS 4경기에서 타율 0.333(18타수 6안타), 1홈런, 6타점으로 MVP가 됐다.

숫자로 본 두산 KS 우승
오재일은 4차전 결승타를 치던 상황을 아주 솔직하게 설명했다. 그는 “10회 득점 상황에서 (타석에) 나가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여기서 내가 안타를 치면 MVP를 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받아쳤는데 2루타가 되더라. ‘이제 MVP가 됐구나’란 생각을 하며 달렸다”고 말했다. 성격이 내성적이던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을 마음가짐이다.

사실 4차전 9회까지도 KS MVP는 두산 포수 박세혁이었다. 두산이 9-8로 이기고 있었고, 경기 종료 직후 MVP를 발표하는 관례상 기자단 투표가 9회 초에 마감됐다. 이번 KS에서 박세혁은 타율 0.417(12타수 5안타), 4타점으로 준수한 타격을 보인데다, 안정적으로 투수 리드를 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실제로 박세혁 표가 가장 많았다. 그런데 경기가 연장으로 넘어갔고, 오재일의 결승타로 승부가 갈렸다. 기자단에서 “재투표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재투표에서 오재일(36표)이 박세혁(26표)을 제쳤다. 오재일은 “10회에 기회가 온 게 ‘MVP를 받으라’는 운명이었나 보다”라며 웃었다. 조용히 사라질 것 같았던 오재일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서 농담도 잘하는 한 베테랑 타자가 웃고 있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