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Dream] 탬파베이 레이스 최지만

조회수 2019. 10. 3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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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세월, 드디어 빛을 발하다

참 오랜만이다. 메이저리그에서 새로운 한국인 야수가 주전급으로 활약하는 게 얼마 만인가. 추신수가 꾸준함으로 역사를 써 내려가고, 강정호가 몇 시즌 좋은 모습을 보인 후 그 뒤를 이을 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KBO의 내로라하는 스타들이 꿈의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비로소 한 선수가 매일 아침 팬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있다. 괄목할만한 발전을 보이며 끊긴 명맥을 이어갈 유력한 후보가 됐다. 그 주인공은 바로 ‘핫 초이’ 최지만. 9월 19일 소속팀 탬파베이 레이스의 LA 원정 경기 날, 비로소 진짜 메이저리거로 거듭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MLB 쇼’의 연상은 아나운서 그리고 메이저리그 대선배 ‘BK' 김병현 위원이 함께해 자리를 더욱 빛냈다.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이찬우 Location 다저스타디움




#메이저리거 최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자주 볼 수 있게 된 만큼 관심도 커졌어요. 한국 팬들에게 인사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탬파베이 레이스의 최지만입니다. 이렇게 인터뷰로 인사드린 경험이 별로 없어서 어색하네요. (웃음)

경기장에선 활발한 이미지인데 카메라 앞에서는 약간 부끄러워하는 모습이에요.

야구장은 놀이터 같은 곳이라 즐겁고 활발해지는데 평소에는 달라요. (그럼 평소 성격은 어떤가요?) 부끄럼이 많은 편이에요. 어릴 땐 발표하는 것도 어려워하는 학생이었습니다. (BK: 공부도, 발표도 안 한 건가?) 네, 맞아요. 그래도 야구하면서바뀌었습니다. (지금도 떨고 있는 거 같아요.) 조금 떨리네요. (웃음)

메이저리그 첫 풀타임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올 시즌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미국 생활을 10년 하면서 처음으로 풀타임으로 뛰는 중인데, 다치지 않고 소화 중인 것도 처음이라 뜻깊어요.

마이너리그를 오가던 시절과 비교하면 어떤 점이 가장 좋아졌나요?

일단 음식이 좋아진 게 제일 커요. 김병현 선배님도 잘 아실 거예요. (BK: 밀 머니(meal money)부터 달라요. 요즘엔 하루에 100불 정도 나오나?)지금은 150불 정도에요. 노조 협회 상황에 따라 다른데 이전에는 200불도 줬다고 하더라고요.

올 시즌 꾸준히 출전 중인데, 기회를 잡을 수 있던 본인의 강점이 무엇일까요?

감독님이 저를 믿고 또 좋아해 주세요. 미국에선 이런 게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밀어주는 게 생각보다 많아요. 한국에서도 그렇듯 기회를 보장해주며 키우는 게 있어요. (BK: 그만한 자질이 있기 때문이지, 아닌 선수는 안 믿어줘요.)

그렇다면 최지만의 어떤 면을 좋게 본 걸까요?

사교성이라 생각해요. 야구장에서도 활발하니까. 그런데 말씀드렸듯 경기 끝나면 말수가 적어져요. 그래서 “경기할 때랑 안 할 때랑 왜 이리 다르냐”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메이저리그에는 강투수가 즐비하잖아요. 특히 8월 29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게릿 콜을 상대로 홈런과 2루타를 친 경기가 화제됐어요.

사실 여기 있으면 한국 반응이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기 어려워요. 한국 방송이 막혀 있어 해설위원이나 캐스터분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 궁금해도 못 봐요. (팬들의 반응이 정말 뜨거웠어요. 본인은 그때 경기를 어떻게 회상하나요?) 게릿 콜이 멋진 투수고, 또 자존심이 무척 강한 선수라는 걸 느꼈어요. 첫 타석에 볼넷으로 나가고 나서 두 번째에 홈런을 쳤는데 사실 직구인 줄 알고 스윙했어요. 그런데 다시 보니 슬라이더였어요. 그리고 다음 타석에서 2루타를 쳤을 때는 ‘무조건 직구다, 홈런 나왔으니까’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진짜 직구만 던지고, 변화구는 안 들어왔어요. 홈런을 맞은 만큼 더 승부한 거겠죠. (BK: 자신감이 보이는데 상대할 만하다는 건가.) 사실 게릿 콜이나 같은 팀의 저스틴 벌렌더 같은 스타일이 더 편해요. 주로 빠른 공을 던져서 머리싸움 하지 않고 단순하게 들어갈 수 있는 선수니까요.

그리고 며칠 후 시즌 13호이자 통산 30호 홈런을 기록했습니다. 역대 한국인 메이저리거 중 네 번째인 대기록이에요.

솔직히 통산 성적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이것도 연락이 와서 알게 됐죠. 좋은 기록일 수 있지만, 크게 개의치 않고 스스로 할 일만 열심히 하려고요. 자꾸 신경 쓰다 보면 부담감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주변분들 중 이번 인터뷰를 본다면 기록에 관해 연락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지나가는 선수들이 한국어로 인사하는 게 신기해요. 동료들에게 알려준 건가요?

가끔 알려줘요. 어린 선수가 많아서 그런지 서로의 나라에 대한 호기심이 커요. 저도 쿠바나 베네수엘라 등 다른 나라 문화에 관해 물어봐요. 모두 착하고 정말 가족 같은 분위기입니다. (올 시즌 좋은 팀 성적에 이런 젊음의 힘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요?) 맞아요. 사실 팀에 노장 선수가 중심을 잡아주는 게 필요하잖아요. 특별히 그런 구심점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젊은 선수들이 으쌰으쌰 하며 지금까지 잘해왔어요.

시즌이 마무리돼가고 있는데, 본인의 점수를 매겨 볼까요?

솔직히 100점을 주고 싶어요. 부상 없이 끝까지 소화해낸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아메리칸 드림

꿈같은 시즌을 보낸 최지만이지만,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가시밭길의 연속이었다. 고교 졸업 후 스무 살의 어린 나이에 미국으로 건너오며 외로운 싸움이 시작됐다. 거듭된 부상과 수술이 그를 괴롭혔고, 여러 차례 이적을 겪어야만 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건너와 힘이 돼주던 선수들은 하나둘씩 돌아갔다. 그렇게 견뎌온 시간이 무려 10년. 지금의 최지만이 있기 전에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버틴 긴 시절이 있었다.

시간을 되돌려보겠습니다. 동산고 졸업 후 바로 미국에 진출했어요. 처음부터 메이저리그 진출이 우선순위였나요?

전혀 아니에요. 야구를 정말 좋아해서 취미로 시작했어요. 아버지와 형까지 온 가족이 야구 집안이라 어릴 적 장난감도 다 야구공, 방망이였죠. 진로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해 본 건 고2 때쯤부터였어요. 그제야 대학진학을 할지 아니면 프로에 갈지 생각했고, 그전까진 어디까지나 취미였어요. 미국에 와서 심리 상담을 받은 적 있는데 야구로 돈을 벌어야 하는 게 힘들다고 얘기했어요. 좋아하는 게 일이 되니까 어렵더라고요. 제 유일한 취미였는데, 그게 직업이 되니까 즐길 거리가 없어져 힘들었죠.

미국에 와서 순조롭게 프로 생활을 시작했지만, 수술을 받으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지금까지 수술을 여섯 번 정도 받았어요. 지금도 핀이 열 개씩 박혀 있는 안 좋은 몸이죠. 똑바로 누워서 잘 수 없을 정도의 상태예요. 종종 “그 몸으로 어떻게 야구를 하냐”고 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더 열심히 운동했어요.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포기하고 싶었을 때도 있지 않나요?

2017년 뉴욕 양키스에 있을 때 처음으로 그런 고민을 했어요. ‘돌아가자, 이제 그만 하자’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떠오르더라고요. 지금까지 도와주신 분들, 에이전트, 매니저 그리고 가족들이요. 지금 돌아가면 무시당할 거 같았어요. 그래서 힘겹게 버텨왔어요. (BK: 한국에 돌아간다고 무시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힘이 남아있고, 아직은 버틸 수 있다는 의지가 있었기에 도전을 이어올 수 있었겠지.) 맞습니다.

그 시간이 지금의 최지만 선수를 만든 거죠.

시즌 끝날 때면 잘 버티고 있는 게 스스로 대견하기도 해요. (BK: 최지만 선수처럼 수술을 많이 받고도 야구하는 선수들을 보면 되게 존경스러워요. 저는 맹장 수술 빼고는 한 번도 받은 적 없는데 끝까지 도전할 수 있다는 게 참 부럽기도 해요. 지만이는 앞으로 더 잘 될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런 인고의 시간을 견디다 보니 지금이 온 거잖아요. 마이너리그 생활이 정말 고되다고 들었어요.

그땐 정말 야구만 해서 어렵지는 않았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일상이었거든요. 야구장과 집만 왔다 갔다 하는 생활이 익숙했죠. 그래도 힘들 때가 있긴 했어요. 버스 안에서 긴 시간을 보냈는데 전등이 없어 깜깜하고 ‘내가 왜 여기 있지? 나는 여기서 뭐 하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이는 먹어 가는데 남들이 할 수 있는 걸 저는 못 하고 있으니까 그게 좀 아쉽고 힘들었죠.

힘든 시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일까요?

가족이죠. 유일한 내 편이고. 또 최고의 팬이기도 하죠. 어머니께서 많이 응원해주시는데 가끔 제 눈치를 보세요. 야구가 안 되면 연락도 못 하시고 걱정하시는 거 같아요. 정말 죄송하고 감사해요. 제가 그렇게 안 보일 수 있지만 되게 예민한 편이라 신경을 많이 써주세요. (BK: 야구 잘하는 선수들은 그런 부분이 하나씩은 있는 거 같아요. 류현진 선수 같은 경우에도 다른 건 안 그런데 투구폼은 되게 예민하더라고요.) 사실 전 잠귀도 밝아요. 잘 때 발소리만 나도 바로 깨버려요. 같이 사는 통역사가 되게 시끄럽거든요. 그래서 맨날 “야! 조용히 좀 하자”고 해요. (웃음)

이번 인터뷰가 진짜 최지만 선수의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될 거 같아요.

인터뷰를 많이 안 했어요. 안 한 거보단 저한테 안 오셨죠. 보여드릴 방법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달려온 겁니다!) 감사합니다. (웃음)

메이저리그 데뷔 무대도 기억나요?

대수비로 나가서 좀 허무했어요. 그다음 경기도 대타로 출전했고요. 데뷔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양키스에서 기록한 첫 홈런이에요. 처음으로 구장에 간 날인데 떨려서 두 시간 자고 나왔어요. 선수들도, 라커룸도 너무 달라 보이더라고요. 두근거리고 긴장했는데 첫 타석에서 땅볼 한번 치고 나서 긴장이 쫙 풀렸어요.

현재 탬파베이에서 ‘인싸’라는 말이 많은데 사실인가요?

아니에요. 그리고 제가 그 말을 별로 안 좋아해요. (정말요?) 단어 뜻도 그렇고, 줄임말을 별로 안 좋아해요. (그래도 인기가 많지 않나요?) 에이, 별로 없어요. (중계에서 “최지만 선수가 친화력이 좋고, 동료들과 잘 지낸다”는 얘기를 꼭 듣는 거 같거든요.) 비즈니스 친목으로 알고 있어요. (웃음)




지금 팀 분위기는 어때요?

정말 좋아요. 어린 선수들의 에너지가 좋죠. 종종 연패가 이어지면 분위기가 다운되는 경우가 있긴 했는데, 선수들이 잘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가끔 그럴 때 야수 쪽에서는 케빈 키어마이어가 선수들을 뭉치게 해요. 한 번씩은 감독님께서 미팅을 열어서 팀을 다잡기도 하고요. 저는 조용히 듣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친한 선수는 누군가요?

오스틴 메도우스랑 친해요. 둘 다 낚시를 좋아해요. 처음으로 같이 하러 갔는데, 둘이 60마리를 잡았어요. 잡은 건 회 떠서 제가 다 먹어버렸어요. (60마리를요?) 네. (웃음) 진짜 많았는데, 그걸 제가 다 떴어요. (BK: 탬파베이에 ‘지만 횟집’ 하나 차려야겠는데.) 메도우스는 회를 못 먹어서 낚은 다음에 사진만 찍고 있더라고요. 제가 그러지 말고 가져오라고 했죠. 작은 건 놔주고 큰 건 다 먹었어요. (BK: 저희 언제 한 번 탬파베이로 낚시하러 가야겠네요.) (잡은 물고기 중 가장 큰 게 어느 정도였나요?) 많이 크진 않았어요. 처음에 봤을 땐 광어인 줄 알았는데 도다리더라고요.맛있었어요.

정말 재밌는 얘기였어요. 낚시 외에 다른 취미도 있나요?

예능 보는 걸 좋아해요. 김병현 선배님 출연하신 것도 봤어요. 재밌게 잘하시더라고요.

현지에서 교민들이 많이 알아보나요?

이곳 생활을 오래 해서 그런지 미국 분들이 많이 알아봐요. 사는 동네에 한국 사람이 별로 없기도 하고요. LA 에인절스 시절에도 쇼핑몰에 가면 우리나라 분들은 전혀 못 알아보셨어요. 또 어린 학생들이 잘 알아봐 줬는데 제가 아이들한테 인기가 많은 거 같아요.




#‘핫 초이’ 프롬 코리아

산전수전 다 겪은 미국 생활,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을 버티며 최지만은 머나먼 타지에 완전히 정착했다. 하지만 고향에 대한 마음 한 가지는 변치 않았다. 인터뷰 내내 한국에서의 일상을 그리워하고, 한국 사람들에 대한 끈끈한 유대감을 숨김없이 내비친 그였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의 마음속 가장 가까운 곳엔 고국이 자리해있었다.

벌써 미국 생활 10년 차예요. 한국이 그립지 않나요?

스물다섯까지는 괜찮았는데, 메이저에 올라갔을 때부터 되게 외롭더라고요. 나이를 먹어 가는데, 야구 외엔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느껴졌어요. 정말 20년 청춘을 이거만 했으니까요. (BK: 나도 스무 살 때 미국에 왔는데, 그때부터 시간이 딱 멈춘 기분이었어.) 네, 저도 그래요.

지난겨울에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미국에 머물렀어요.

뇌진탕 증세가 있어서 어쩔 수 없었어요. 경기 중 홈으로 들어오다가 부딪혔는데, 머리에서 피가 나더라고요. 단순 출혈이겠지 했는데 다시 보니까 많이 찢어져서 꿰맸어요. 병원에서 뇌진탕 증세가 있다 하더라고요. 전 괜찮은데 미국은 뇌진탕을 엄청 심각하게 받아들여 장거리 비행을 못 하게 했어요. 결국, 귀국을 포기했죠.

올해는 돌아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올 시즌 끝나고는 갈 거 같아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여기로 오시면 못 돌아갈 수도 있어요. 어머니가 미국을 좋아하시더라고요. (웃음) 아들 카드 쓰시는 것도 좋아하세요. 제가 해드린 게 얼마 없어서 미국에 놀러 오시면 제대로 대접해 드리려고요.

귀국하면 제일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강아지랑 놀고 싶어요. 집에 두 마리가 있는데 정말 예뻐요. 예전에 강아지 때문에 소개팅에 못 간 적도 있어요. 외출하는데 어머니께서 애기들 사진을 보내셨어요. “너 나갔다고 애들이 이러고 있다. 뒷모습이 너무 처량하지 않니?”라고요. 그래서 다시 들어왔어요. (웃음)




외국에 있으면 한국 음식이 정말 많이 생각나잖아요. 어떻게 해결하나요?

저는 많이 해 먹어요. (어떤 음식을 제일 자주 하나요?) 김치찌개요. 올해는 요리를 별로 안 한 거 같아요. 한 살 한 살 먹을 때마다 귀찮아지더라고요. 원래 음식 하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주변에서 블로그 해보라고 추천할 정도로요. 요즘은 귀찮아서 주로 탕만 하고 부족하면 물 넣어서 더 끓여 먹고 그래요.

개인 재단을 설립해 기부 활동을 해오고 있어요. 마이너 시절에 부담스러웠을 법도 한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어요?

없이 살아봐서 운동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알아요. 저도 받은 게 있으니까 시작한 거 같아요. 어릴 때부터 좋은 은사님들을 만났어요. 그분들께서 “항상 고개 숙이고 베풀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가르침을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BK: 궁금한 점이 있어요.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최지만의 모습은 만나기 어려울까요? 오는 2019년 WBSC 프리미어 12 국가대표 예비 엔트리에서 제외돼 아쉬움이 커요.

아시안게임도 그랬고 저도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싶어요. 작년에 팀과 계약할 때, 대표팀 경기에 출전하게 해달라는 옵션을 요구했지만 잘 안 됐어요. 하지만 올해는 감독님께서 허락해주셨거든요. 대회가 시즌이 끝나고 열리니까 단장님께서도 다녀오라고 하셨죠. 그런데 MLB에서 허가를 안 내줬어요. 팀과 협의가 됐어도 못 나가게 된 거죠. (BK: MLB 안 되겠네.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리그에서 막으니까 방법이 없어요.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다른 한국 선수들도 같은 마음일 거예요. 간혹 오해가 있는데 저희는 정말 가고 싶거든요. 한국팬들, 한국선수들과 함께 뛰는 게 그리워요.

과거의 최지만이 선배들을 보고 꿈을 키워왔다면, 이제는 본인을 롤모델로 삼는 후배들이 있어요. 그들에게 한마디 전해볼까요?

상상력을 키우라 말해주고 싶어요. 그게 현실이 되거든요. 당장 눈앞에 놓인 목표는 낮게 잡고, 꿈은 크게 가지는 게 좋아요. 저도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메이저리거가 목표는 아니었어요. 하나씩 해내다 보니 여기까지 왔죠. 또 상상력을 위해 야구 만화를 보는 것도 추천해요. (BK: 스즈키 이치로 선수도 같은 말을 했어.) 정말요? 어릴 때부터 만화를 엄청나게 좋아해서 많이 봤어요.

BK: 함께 이야기해보니까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사는 거 같아요. 거창한 꿈이 있는 게 아니고, 야구를 정말 좋아해서 열심히 하다 보니 그게 쌓여서 지금의 모습이 된 거죠.

선수들이 그냥 편안하게 즐겼으면 좋겠어요.

시즌 막바지에 임하는 각오가 궁금합니다.

어제 한국팬이 경기장에 정말 많이 찾아오셨어요. 덕분에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벅찬 감동을 느꼈습니다. 항상 사인도 다 해드리고, 팬분들께 최대한 신경 써드리려 하고 있으니 많이 찾아주세요. (약간 울컥한 거 같아요.) 미국에서 참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한국 사람을 자주 못 보니 가끔 한국말이 들리면 어색하게 느껴져요. 그만큼 한국팬들이 찾아주시면 더욱 행복하죠.

BK: 이번 인터뷰를 보시는 탬파베이, 플로리다 근처에 계시는 교민들께서 최지만 선수를 더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시면 팬서비스가 과하다고 생각될 만큼 해드릴게요. (웃음)




먼 한국에서도 많은 분이 매일 최지만 선수의 경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팬들에게 감사의 한마디 부탁해요.

정말 감사합니다. SNS를 통해 많은 분이 응원을 보내주세요. 제 덕분에 오늘 하루가 행복하다는 메시지를 받으면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일상이 경쟁인 현대 사회에서 십분 공감되는 말이다. 입시나 취업, 심지어 결혼까지 경쟁이 돼 청춘들을 지치게 하는 세상이다.

그 이상의 피 튀기는 생존 게임이 기다리는 곳이 메이저리그다. 30개의 구단과 팀별 25명의 로스터로 구성된 메이저리그에 오르기 위해, 무려 256개의 마이너리그팀에서 수천 명의 선수가 피와 땀을 흘린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치열한 싸움을 버텨낸 최지만이다. 진정 ‘강자’라 칭하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10년의 인고가 있었기에 그의 이번 시즌은 더욱더 눈부셨다. 하지만 이제 한 시즌일 뿐이다. 올해의 준수한 성적과 함께 꽃길이 찾아올지, 또 다른 역경이 닥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강자 최지만은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도전의 아름다움을 아는 그의 다음 10년은 더 밝게 빛나리라. 내년에도 당당히 꿈의 무대를 누비며 선배들의 발자취를 이어갈 최지만을 응원한다.


더그아웃 매거진 103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9년 103호(11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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