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DUGOUT Talk] LG 트윈스 심수창

대단한미디어 입력 2019.11.1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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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까지 '심쿵'했던 눈물의 사나이

30년, 그저 LG 트윈스가 좋아 야구를 시작했던 초등학생이 야구선수로서 살아온 세월이다. 이 시간이 조금 더 길 줄 알았다. 16년 만에 처음으로 탈이 나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도 이 악물고 정상 궤도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시곗바늘은 심수창의 회복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아무도 마지막일 것이라고 생각 못 한 마운드에서 혼자 조용히 나만의 은퇴식을 치렀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정직하게 투구했던 선수였기에 갑작스러운 소식을 들은 팬들은 아쉬움을 숨기지 못하면서도 그의 결정에 박수를 보내며 앞날을 응원했다.

에디터 표권향 사진 LG 트윈스




심수창 (10월 12일 인터뷰)

출생 1981년 7월 9일 서울특별시 185cm 몸무게 85kg

별명 심쿵창, 심승헌, 심크라이, 슈퍼스타

10월 12일에 몇몇 선수들이 모여 조촐한 은퇴식을 열어줬다.

장원삼과 최동환, 정용운 그리고 서인석 매니저가 함께 자리했다. 은퇴식을 원했던 건 아닌데 “우리가 은퇴식 해주면 되지”라며 챙겨주니까 고마웠다. 용운이가 내 사진을 넣은 케이크를 선물해줬다. 정말 감동이었다.

LG로 돌아온 후 장원삼과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이천에서 서로 의지했다. 시즌 중에 NC 다이노스와 경기 때 원삼이랑 직접 표를 사서 잠실야구장을 찾은 적이 있다. 선수들과 구단에 부탁하고 싶었지만 민폐를 끼칠까 봐 조용히 다녀왔다. 티켓은 샀는데 입구를 몰라서 이리저리 헤맸다. 원삼이가 검표원이 우리를 알아보면 들어가게 해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정말 못 알아보더라. 외야석 입구를 몰라서 1루 출입문으로 갔다가 제지당했다. (웃음)

결국 입구는 찾았는가. 어디에 앉았고 치킨은 사 먹었는가.

좌익수 쪽 맨 꼭대기 폴대 옆에 앉았다. 배가 고파서 팝콘치킨이랑 음료수 한 잔 사서 자리 잡았다. 채은성이 우리가 있는 쪽으로 홈런을 쳤다. 순간 “원삼아, 숙여!”라며 둘이 몸을 사렸다. 이날 중계화면에 조그맣게 나왔다. 원삼이가 캡처해서 동그라미 친 사진을 “형, 마지막 기념이에요”라며 보내줬다.

외야석에서는 그라운드가 한눈에 보인다. 기분이 이상했을 것 같다.

선수들이 대단하고 멋있어 보였다. 투수가 공을 던져야 경기가 시작되니까 다 투수만 쳐다보고 있었다. 나도 저기에 서고 싶었다. 며칠 후 마지막 선발 마운드에 올랐고 ‘이제 정말 끝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 씁쓸한 등판이었다.

조금 더 선수 생활을 이어나갈 줄 알았는데 갑작스럽게 은퇴를 결심했다.

시즌 초에 어깨가 안 좋았다. 16년 동안 야구하면서 처음으로 아파서 2군에 내려갔다. ‘다치면 이런 기분이구나’라는 마음에 어쩔 줄 몰랐다. 주사를 맞으면서까지 참고 던졌지만 구속이 올라오지 않았다. 어깨만 안 아팠으면 야구를 더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잘 안 되더라. 그만둘 때가 된 것 같아 마음을 먹었다.

마지막 경기 전날 콜업 전화를 받았을 텐데 기분이 어땠는가.

2군에서 게임을 안 나가고 있어서 올라갈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공은 놓지 않고 있었는데 전화가 왔다. 내일 콜업될 수도 있는데 가능하냐고 묻더라. 내 인생에 있어 마지막 등판이 될 수 있겠다는 판단에 하겠다고 말했다. 그럼 연락을 기다려보라며 만약 연락이 안 오면 이천으로 출근하고 연락이 오면 1군에 올라가는 것이라고 했다. 4경기 정도 남은 상황이라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했다. 그때 차명석 단장님이 마지막 배려를 해주는 것이라고 깨달았다.




잠실구장에 도착했을 때 만감이 교차했겠다.

옛날 생각이 났다. 처음 LG에 입단해서 선발투수로 나설 때의 루틴 그대로 딱 5시 45분에 스트레칭을 받고 야구장에 나가서 뛰었다. 똑같이 몸을 푸는데 새로웠다. 처음과 마지막을 LG 유니폼을 입었다는 사실에 기뻤다. 관중을 보면서 마지막 환호를 받는다는 생각에 잠시 뭉클했다. 30년 동안 했던 것을 놔야 하니까…. 이젠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슬펐다. 그날 짐 싸서 나오는데 팬들에게 사인 요청을 받았다. 마지막 사인이지만 팬들을 보며 잠시나마 행복했다.

교체되고 내려오면서 박용택과 포옹을 했다.

2이닝을 던지고 더그아웃으로 들어왔는데 (박)용택이 형이 직감했는지 뒤로 와서 “수창아, 그동안 수고 많았다”라며 안아줬다. 다른 선수는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고 경기가 끝났을 때도 모르는 분위기였다. 용택이 형에게 정말 고마웠다.

짐을 챙겨서 나올 때 서산과 잠실에서의 감정이 달랐을 것 같다.

서산에서는 아쉬움이 컸다. 개막 3경기에서 2.1이닝 4실점을 하고 2군에 내려간 건 인정한다. 그렇기에 퓨처스리그에서 절치부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거의 전 경기를 소화하면서 구속도 145~7km/h가 나왔고 18경기 연속 세이브를 기록해 자신 있었다. 하지만 경쟁에서 이겨도 1군에 콜업 소식은 없었다.

그날 많이 울었다고 들었다.

집에 가서 울었다. 그만둘 때 이런 기분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돼 눈물이 많이 났다. 야구를 내려놔야 한다는 게 실감 나지 않았고 그저 멍한 기분이었다.

이날 경기를 마치고 나올 때 팬들의 사인 요청이 있었을 텐데.

경기 후 재계약 불가 소식을 듣고 짐을 싸서 나왔다. 팬들이 나를 보자마자 사인을 부탁했다. 방금 방출됐다는 것을 모르는 팬들에게 감정을 드러내며 인상을 쓸 수 없었다. 그래서 사인을 해주고 사진도 찍어줬다. 나는 팬들을 정말 사랑한다. 내가 지금까지 야구할 수 있도록 응원해준 고마운 분들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잘생긴 야구선수’로 항상 꼽힌다. 이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았다.

곧 마흔이고 나도 늙었다. (웃음) 오해가 있는 게 예전부터 연습을 정말 열심히 했다. 혼자 야구장에 나가 네트에 공을 던지기도 했다. 그런데 몇몇 팬이 놀 것 같이 생겼다고 단정 짓더라. 놀 땐 잘 놀기도 했지만 그보다 훈련이 더 중요했다. 그런데 안 보이는 모습은 몰라줬다. 야구계에서는 나보고 ‘미친놈처럼 밸런스 연습하는 선수’라고 한다. 아등바등 16년을 간절하게 했다.




사실 예전에 심수창, 이대형, 우규민, 이병규, 정의윤을 모아 ‘잠실 5인방’이라고 불렀다.

매일 즐기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에 한 번은 놀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운동선수는 연예인과 달리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인식이 박혀있다. 일주일에 한 번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데 팬들은 싫어했다. 심지어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술 마시고 어디서 나왔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이 올라와 억울했던 적도 있다.

신천에서 어머니가 운영했던 호프집에 ‘비밀의 방이 있다’는 등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장사를 접었다.

비밀의 방은 무슨! 방이 하나가 있긴 했는데 밖에서 다 보이는 공간이었다. 그 안에서 대화만 나눠도 이상한 말들이 나와 그만하자고 했다. 우리 부모님도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데 말이다.

LG팬들의 응원전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때로는 사랑이 지나쳐 과한 모습이 나온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하지만 가끔 지나친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하루는 가게 앞에서 나를 붙잡고 “똑바로 하라”고 했다. 그날은 나도 화가 나서 “당신도 똑바로 살라”고 한마디 했다. 남에게 이래라저래라할 정도로 자신의 인생은 떳떳한지 물었다.

그래도 많은 팬에게 응원을 받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는가.

팀을 자주 옮기다 보니 여러 얼굴이 떠오른다. LG에 입단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팀을 옮겨가며 나와 동행했던 팬도 있다. 정말 감사한 분이다. LG에 있을 때는 팬 미팅도 했는데 안 한 지 오래됐다. 그동안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오랜만에 만남을 준비할까 고민 중이다.

여러 번 유니폼을 바꿔 입었지만 그곳에서 또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정말 많은 연락을 받아서 깜짝 놀랐고 감사했다. 여러 구단에 있으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가장 큰 힘이 돼준 (송)승준이 형, (손)승락이, (김)사율이, (손)아섭이, (황)재균이, (김)태균이, (송)광민이, (최)진행이, 용택이 형, (오)지환이 등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LG에 오랜만에 돌아왔는데 토박이는 별로 없더라. 그래도 (김)현수, (차)우찬이를 알게 돼서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야구란 것이 사람을 웃고 울게 만든다. 나중에 다시 야구 쪽에서 일하게 된다면 울면서 나왔지만 다시 웃으며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LG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으니 잠실에서의 아쉬움이 더 컸을 것 같다.

나도 엘린이였다. 어렸을 때 김용수 코치님, 이상훈 선배, 김재현 선배를 좋아해서 폼을 따라 했다. 특히 우규민, 이대형, 박경수, 이병규, 정의윤, 봉중근, 박병호 등이 뭉쳐서 잘해보려고 했던 추억이 깊게 남는다. 다시 친정팀에 와서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열정이 가득했다. 호주 캠프에서 공이 제일 좋아 의욕이 넘쳤다. 그런데 끝나기 일주일 전에 라이브 피칭 도중 이상 증세를 느꼈다. 신인들과 똑같이 할 때가 아닌데 욕심을 부리다 팔을 다쳤다.

16년 동안 참 다양한 일이 있었는데, 은근히 ‘최초’의 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기록제조기다. 최초로 연봉을 두 군데서 받은 사람이다. 연패할 때 정말 힘들었다. 프로야구에서 18연패가 말이 되냐고! (웃음) 퀄리티스타트를 9~10번 했는데도 2승이 전부였다. 최선을 다했으니 이것이 내 운명이라고 여겼다. 가장 친한 친구가 그러더라. 흠이 아니라고…. 실력이 되니까 1군에서 18번 연패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듣고 보니 그 말도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력이 안 됐으면 18연패 하는 동안 1군에 놔뒀겠는가 싶었다.

좋은 일도 많았다. 언제가 가장 행복했는가.

김성근 감독님을 만났을 때가 제일 행복했다. 남들은 혹사라고 하지만, 내가 다쳐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그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다. 감독님은 선수들의 마음을 울리고 절대 사람을 버리시지 않는다. 허리 수술을 하셨을 때도 장문의 메시지를 보낸 분이다. 그래서 선수들이 소통하는 김성근 감독님을 최고라고 말한다. 솔직히 훈련이 힘들긴 하지만 굉장히 따뜻한 분이다. 선수들을 괴롭히려고 하겠나. 잘하게 하려고 시키시는 것이다.

가장 돌아가고 싶은 시절은 언제인가.

고등학교? 욕심일 수 있는데 타자로도 살아보고 싶다.




혹시 지도자 제안은 없었는가.

아직 없다. 만약 선수들을 가르치게 된다면 기술적인 면보다 소통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요즘 어린 선수들의 정신력이 약해서 어루만져줘야 한다. 강성으로 가면 외골수가 된다. 2군에서 선수들과 고참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는 이종범 코치를 보면서 정말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다. 나만 그런가 싶었는데 모두가 나와 같았다. 왜 이정후가 야구를 잘하는지 알겠더라.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는가.

해설위원을 하면 시야가 넓어진다고 하더라.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야구밖에 없는데 다른 시선으로도 야구를 바라보고 싶다. 하지만 레전드 선배님들이 하고 있어서 아직 내 커리어에서는 어렵다. (웃음) 전력분석, 스카우트 등 야구와 관련된 일이라면 다 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인사 부탁한다.

프로야구에서 16년이란 시간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LG, 키움 히어로즈, 롯데 자이언츠, 한화 이글스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야구장에서 좋은 모습도 나쁜 모습도 보였지만 나쁜 기억은 지우시고 좋은 것만 기억해줬으면 합니다. 이제 제2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데 이 삶 또한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야구팬 여러분,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파이팅!


더그아웃 매거진 103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9년 103호(11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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