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차범근이 말하는 백승호와 분데스리거 [GOAL LIVE]

정재은 2019. 11. 11. 18:0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골닷컴, 다름슈타트] 정재은 기자=

10일 오후(현지 시각) 다름슈타트의 메어크 슈타디온에 특별한 손님이 방문했다. 2019-20 2.분데스리가 다름슈타트와 얀 레겐스부르크의 13라운드를 관전했다. 멋스런 검은 자켓을 입은 그는 경기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갑자기 "어이쿠, 그래! 지금 좋다!"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차범근 감독이다. 분데스리가의 두말 할 것 없는 레전드다. 프랑크푸르트의 특별한 행사에 들렀다가 백승호(22, 다름슈타트)의 홈경기 일정을 확인하고는 경기장으로 발걸음을 향했단다. <골닷컴>은 그와 함께 백승호와 분데스리가의 한국 선수들을 이야기했다.

차 감독은 다름슈타트에 애정이 남다르다. 1978년, 분데스리가의 시작을 이곳에서 했다. 군대를 가야해 딱 한 경기(보훔전)밖에 뛰지 못했지만 짧은 시간 속에서 많은 걸 배웠다. 이날 경기장을 찾은 그를 알아보는 이들도 많았다. 그들은 당시 모두 부모님 손을 잡고 경기장을 찾았다가 약 30년이 흐른 후 현재 누군가의 부모님이 됐다. 차 감독은 흐뭇하다. "오는 길에 누가 나를 알아봐서 사진 같이 찍었다. 여기서 딱 한 경기 뛰었는데. (웃음) 여기 사람들은 모든 경기를 다 보니까. 그 사람들이 다 어릴 때 아버지 손잡고 따라왔다가 나를 봤던 거다. 팀 차붐이 오면 첫 경기를 항상 여기서 한다."

30년 전을 천천히 회상하던 차 감독이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러더니 "아이고, 저기서 슈팅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라고 안타까워 한다. "이 사람들은 축구를 많이 봐서 보는 수준이 높다. 어려운 상황에서 슈팅하면 박수를 쳐준다. 흐름상 슈팅을 때려야할 때 다른 거 하다 뺏기면 싫어한다. 축구를 잘 안다."

이야기 주제는 자연스럽게 백승호로 넘어갔다. 백승호 입단 후 차 감독은 프랑크푸르트에 올 때마다 다름슈타트 경기를 본다. 입단 직후 구단의 기획으로 차 감독과 백승호는 만남을 가졌다. 이후에도 경기장에서 만나 차 감독은 그를 격려하고 진심 어린 조언도 건넸다.

그는 백승호가 대단하다고 했다. 입단하자마자 선발로 데뷔 기회를 잡더니 전 경기를 소화하는 중이다. "저렇게 입단하자마자 첫 경기부터 뛰고 주전으로 자리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 대단한 거다. 당장 적응도 해야하는데. 지금도 적응을 해나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적응'은 쉬워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환경과 언어뿐만 아니라 독일의 축구 스타일, 구단의 철학, 감독의 주문, 포지션 변화 등등 신경써야할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심지어 아직 독일어가 미숙해 백승호는 100% 이해도 어려운 상황이다.

또, 백승호는 잔디도 적응 중이라고 했다. "비가 오니까 푹푹 들어가더라"라며 "차범근 감독님이 말씀하신 부분이 뭔지 알 것 같다"하고 했다. 입단 초기 차 감독이 건넨 조언 중 하나가 "잔디 적응"이었다. 스페인과 독일은 잔디가 다르기 때문에 그것부터 적응해야 한다고 말이다.

차 감독은 "이렇게 안개가 많이 끼고 축축한 날씨가 딱 전형적인 독일 날씨다. 이럴 때 잔디가 많이 꺼진다. 그러니 뛰기가 더 힘들어진다. 근육 부상 당하기 좋다"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승호가 대단한거다. 벌써 저렇게 주전으로 뛰고 있으니."

"그렇지만 여기서 안주하면 안 된다. 좋은 선수들은 계속 나온다. 본인이 주전으로 뛰어야 하는 이유를 계속 보여야 한다. 뛰면서 드러나는 보완점도 얼른 보완해야 한다."

차 감독이 발견한 백승호가 보완해야 할 점은 뭘까. 그는 "승호가 어릴 때는 공격수였다. 그때는 스피드가 빨랐다. 어느 순간 애가 훅 크더라. 그러면서 속도가 조금 느려졌다"라고 말했다. 미드필더로서 많이 움직이고 상황 판단을 빠르게 하려면 일단 스피드가 좋아야 한다고 했다.

득점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승호가 전에는 골도 많이 넣었다. 사실 어느 포지션에 서든 선수는 골을 넣을 줄 알아야 한다. 골을 넣는 선수와 못 넣는 선수는 가치가 다르다."

이어서 차 감독은 "승호가 가진 장점도 더 살려야 한다"라고 했다. 그가 꼽은 백승호의 장점은 "기술력과 패싱력"이다. 다름슈타트가 그를 수비형 미드필드에 세우고 공격적으로 나서라고 주문하는 이유다. 그가 뛰어난 기술과 수준 높은 패스로 공격의 물꼬를 틀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백승호의 국가대표 경기도 물론 챙겨봤다. 국가대표에서는 백승호가 그의 장점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국가대표에서 저 포지션(수비형 미드필더)을 굉장히 잘 소화하더라. 깜짝 놀랐다. 그 대표팀에서의 능력이 여기서 안 나온다. 아직 못 보여주고 있다. 아무래도 적응을 해나가는 중이라 그렇다. 여러 상황에 적응하고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차 감독은 이야기의 범위를 넓혀나갔다. 백승호 뿐만 아니라 분데스리가에서 뛰는 모든 한국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우리 선수들은 여기에서 외국인이다. 외국인 선수는 절대 평범하면 안 된다. 자기만의 색깔이 있어야 한다. 외국인 선수를 데려와서 쓴다는 건 그 선수에게 특별함이 있기 때문이다. 차별을 보여야 한다. 다른 선수랑 똑같으면 안 된다. 그럼 그 선수 쓰지 왜 우리 선수 쓰겠나."

그는 백승호뿐만 아니라 다른 분데스리거의 경기도 두루두루 보고 있다. "독일로 오기 전에 보훔 경기를 봤다. 우리 (이)청용이가 아주 좋은 찬스를 못 넣어서 아쉬웠다. 그거 완전 골이 될 수 있었는데"라며 안타까운 목소리를 내더니 "킬의 (이)재성이가 아주 활발하더라. 요즘 제일 잘 한다"라며 웃었다. "권창훈은 많이 못 나오는 게 아쉽다. 지금 팀이 너무 잘하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차 감독과 분데스리가, 분데스리가의 한국 선수들을 주제로 이야기꽃을 열심히 피우다 보니 어느새 경기가 막판으로 향했다. 다름슈타트의 동점 골에 그는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다름슈타트는 역전까지 했으나 결국 2-2로 끝냈다.

그는 이날 79분을 소화한 백승호를 이렇게 평가했다. "공격적인 움직임은 좋다. 하지만 너무 한 자리에 머물면 안 된다. 계속 움직여야 한다. 한 동작에서 멈추고 있으면 안돼. 여러 동작으로 여기저기 움직여야 한다. 상대도 계산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후 차 감독은 백승호를 만나러 갔다. 백승호는 이제 두바이로 출국한다. 약 1년 반 만에 김학범 감독 U-23 대표팀에 부름을 받았다. 도쿄 올림픽의 출발점이다. 올림픽을 목표로 하는 백승호에게 이날 차 감독과의 만남은 또다른 따듯한 동기부여로 작용할 것이다.

사진=정재은, 플로리안 울리히, Getty Images, 대한축구협회

Copyright © 골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