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앞두고 KCC에 이 악문 39살 태풍이 형

박린 2019. 11. 14. 00: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시즌 보내는 SK 전태풍
KCC서 5억 받다 SK서 7500만원
감독에 "돈보다 즐겁게 뛰고 싶어"
문태종처럼 우승하고 은퇴가 꿈
경기도 용인의 프로농구 SK 훈련장에 1000㏄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한 가드 전태풍. 문경은 SK 감독은 전태풍이 턱수염을 기르는 것과 오토바이로 출근하는 걸 허락했다. 자유로운 팀 분위기에 놀란 전태풍이 ’몰래카메라인 줄 알았다“고 얘기했을 정도다. 변선구 기자
“차가 고장 났는데 오토바이 타고 출근해도 돼요?”(전태풍)

“안전하게만 타.”(문경은 감독)

“끝났어요? 잔소리 더 안 줘요? 이거 한국 스타일 아닌데. 몰래카메라 아니에요?”(전태풍)

5개월 전 프로농구 서울 SK 가드 전태풍(39)과 문경은(48) 감독이 나눈 대화다. 최근 경기 용인시 SK 훈련장에 1000cc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한 전태풍이 들려준 일화다.

올해 39세 전태풍은 지난 시즌 후 전주 KCC에서 은퇴 위기에 몰렸다. 5월 극적으로 SK와 1년 계약을 맺었다. 전태풍은 소주 한 병 반을 마시고 문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저 태풍이에요. 돈보다 10분이라도 즐겁게 뛰고 싶어요”라고 부탁했다. 문 감독은 전태풍 손을 잡아줬다.
SK유니폼을 입은 전태풍과 문경은 감독, 김선형, 고 정재홍. [사진 전태풍 인스타그램]

전태풍에게 SK의 자유로운 팀 분위기는 충격이었다. 전태풍은 “문 감독은 패션부터 젊은 느낌이고, 선수들도 스웨그가 있다”고 했다. 문 감독은 전태풍에게 “넌 수비 신경 쓰지 말고 기술이 있으니 공격에 집중해”라고 말했다. 전태풍은 “한국에 온 지 12년인데 그런 말은 처음 들었다. 다른 감독은 ‘무리하지 마’ 또는 ‘캄 다운’이라고 잔소리했는데…”라고 고백했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전태풍은 2009년 귀화 혼혈선수로 한국 무대를 밟았다. 올 시즌까지 11시즌 동안 KCC·고양 오리온·부산 KT 등을 거쳤다. 2010~11시즌 KCC에서 챔피언결정전 우승도 맛봤다. 뭔가 허전했다. 국내에 뛸수록 조지아공대 시절 전태풍 특유의 번뜩이는 플레이가 사라져 갔다.

KCC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절친 전태풍과 하승진. [사진 전태풍 인스타그램]
지난 시즌을 끝으로 KCC에서 은퇴한 하승진(34)은 5월 유튜브를 통해 “한국 농구가 망해가고 있다. 국내 선수가 화려한 플레이를 하면 ‘외국인 선수에게 패스나 해라’고 말하는 분위기”라고 쓴소리를 했다. 전태풍은 “승진이 말이 맞다. 승진이도 마음의 상처를 안고 은퇴했다”고 말했다.
전태풍은 미국 프로농구(NBA) 휴스턴 로키츠 제임스 하든(30)처럼 턱수염을 덥수룩하게 길렀다. 수염이 자신에게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걸까. 전태풍은 “턱수염은 ‘내 스타일 대로 하겠다’는 의미”라며 “예전에 몸담았던 팀 관계자가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안 든다’며 자르라고 했다. 문경은 감독은 턱수염을 보더니 ‘멋있다’고 해줬다”고 전했다.
제임스 하든처럼 턱수염을 기른 전태풍. 용인=변선구 기자

SK 팀 분위기에 녹아들고 있다. 그는 최근 상대 팀 코치의 트래시 토크(상대를 자극하는 말)에 거세게 맞섰다. 그런 그에게 팀 동료들이 “형, 멋있어”라고 칭찬을 건넸다. 전태풍은 “자유로운 팀 분위기가 적응이 안 됐다. 처음에는 날 놀리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태풍의 11시즌 간 평균 기록은 11.2점, 4.2어시스트다. 지난 시즌 거의 벤치만 지키고도 그렇다. KCC에서 사실상 내쫓긴 전태풍은 5월 소셜미디어에 “KCC가 나한테 코치 이야기 안 하고 돈 이야기도 아예 안 한다. 그냥 ‘여기까지 합시다’라고 했어”라고 적어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전태풍은 “2년간 햄스트링 부상으로 고생해 원래 은퇴하려 했다. 그런데 KCC가 내 파이팅과 열정을 끌어올렸다. KCC 동료와 팬들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그래도 KCC 구단은 꼭 이기고 싶다”고 했다.

9월 햄스트링 부상이 재발했던 전태풍은 2일 복귀전을 치렀다. SK는 전태풍이 두 달간 충분히 재활하도록 배려해줬다. 전태풍은 5일 삼성전에서 6득점 했다. 10일 KCC전에서 2득점에 그쳤지만, 벤치에서 파이팅을 불어 넣었다. 전성기 시절과 달리 조커 역할을 주로 한다. SK(10승3패)는 단독 선두다.

전태풍은 같은 팀 막내 김형빈(19)과 20살 차다. 2015~16시즌 5억4000만원을 찍었던 연봉도 지금은 7500만원이다. 전태풍은 “100% 은퇴 시즌이다. 눈치 안 보고 내 스타일대로 ‘파이팅 날라리’가 되겠다. SK에는 좋은 가드(김선형), 포워드(최준용), 센터(자밀 워니)가 있어 우승 전력이다. 난 지난 시즌 문태종(44)처럼 우승하고 은퇴하는 예쁜 패키지를 꿈꾼다”고 말했다.

전태풍이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 [사진 전태풍 인스타그램]
전태풍은 경기도 죽전에서 가족과 함께 지낸다. 다문화 가정 행사에도 나간다. 전태풍은 “가족들과 식당에 갔다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인종차별을 경험한 적이 많다. 20년 후에는 (차별적) 문화도 완전히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은퇴한 뒤에는 한국에 영어 농구 교실을 열거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플로터 슛(볼을 높이 올려 쏘는 슛)을 던질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용인=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