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앞두고 KCC에 이 악문 39살 태풍이 형
KCC서 5억 받다 SK서 7500만원
감독에 "돈보다 즐겁게 뛰고 싶어"
문태종처럼 우승하고 은퇴가 꿈
“안전하게만 타.”(문경은 감독)
“끝났어요? 잔소리 더 안 줘요? 이거 한국 스타일 아닌데. 몰래카메라 아니에요?”(전태풍)
5개월 전 프로농구 서울 SK 가드 전태풍(39)과 문경은(48) 감독이 나눈 대화다. 최근 경기 용인시 SK 훈련장에 1000cc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한 전태풍이 들려준 일화다.
전태풍에게 SK의 자유로운 팀 분위기는 충격이었다. 전태풍은 “문 감독은 패션부터 젊은 느낌이고, 선수들도 스웨그가 있다”고 했다. 문 감독은 전태풍에게 “넌 수비 신경 쓰지 말고 기술이 있으니 공격에 집중해”라고 말했다. 전태풍은 “한국에 온 지 12년인데 그런 말은 처음 들었다. 다른 감독은 ‘무리하지 마’ 또는 ‘캄 다운’이라고 잔소리했는데…”라고 고백했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전태풍은 2009년 귀화 혼혈선수로 한국 무대를 밟았다. 올 시즌까지 11시즌 동안 KCC·고양 오리온·부산 KT 등을 거쳤다. 2010~11시즌 KCC에서 챔피언결정전 우승도 맛봤다. 뭔가 허전했다. 국내에 뛸수록 조지아공대 시절 전태풍 특유의 번뜩이는 플레이가 사라져 갔다.
SK 팀 분위기에 녹아들고 있다. 그는 최근 상대 팀 코치의 트래시 토크(상대를 자극하는 말)에 거세게 맞섰다. 그런 그에게 팀 동료들이 “형, 멋있어”라고 칭찬을 건넸다. 전태풍은 “자유로운 팀 분위기가 적응이 안 됐다. 처음에는 날 놀리는 거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태풍의 11시즌 간 평균 기록은 11.2점, 4.2어시스트다. 지난 시즌 거의 벤치만 지키고도 그렇다. KCC에서 사실상 내쫓긴 전태풍은 5월 소셜미디어에 “KCC가 나한테 코치 이야기 안 하고 돈 이야기도 아예 안 한다. 그냥 ‘여기까지 합시다’라고 했어”라고 적어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전태풍은 “2년간 햄스트링 부상으로 고생해 원래 은퇴하려 했다. 그런데 KCC가 내 파이팅과 열정을 끌어올렸다. KCC 동료와 팬들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그래도 KCC 구단은 꼭 이기고 싶다”고 했다.
9월 햄스트링 부상이 재발했던 전태풍은 2일 복귀전을 치렀다. SK는 전태풍이 두 달간 충분히 재활하도록 배려해줬다. 전태풍은 5일 삼성전에서 6득점 했다. 10일 KCC전에서 2득점에 그쳤지만, 벤치에서 파이팅을 불어 넣었다. 전성기 시절과 달리 조커 역할을 주로 한다. SK(10승3패)는 단독 선두다.
전태풍은 같은 팀 막내 김형빈(19)과 20살 차다. 2015~16시즌 5억4000만원을 찍었던 연봉도 지금은 7500만원이다. 전태풍은 “100% 은퇴 시즌이다. 눈치 안 보고 내 스타일대로 ‘파이팅 날라리’가 되겠다. SK에는 좋은 가드(김선형), 포워드(최준용), 센터(자밀 워니)가 있어 우승 전력이다. 난 지난 시즌 문태종(44)처럼 우승하고 은퇴하는 예쁜 패키지를 꿈꾼다”고 말했다.
용인=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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