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킥은 자신 있었는데요.." 고개를 끄덕이게 한 이천수의 위로

임성일 기자 2019. 11. 16.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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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4일(현지시간) 오후 레바논 베이루트 카밀 샤문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년 카타르 월드컵 2차 예선 4차전 레바논과의 경기에 앞서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이날 경기는 레바논축구협회가 반정부 시위 악화 등 안전상의 이유로 아시아축구협회에 무관중 경기를 제안해 치러졌다.2019.11.15/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아부다비(UAE)=뉴스1) 임성일 기자 = 지난 14일 레바논 베이루트의 스포츠시티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레바논과의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2차예선 H조 조별리그 4차전을 두고 많은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당시 대표팀은 아쉬운 플레이 속에서 0-0으로 비겼다.

레바논 내부의 시위가 격화, 지난달 15일 평양에서 열린 북한과의 경기에 이어 2연속 '무관중 경기'로 치러졌고, 경기장은 폐허 수준이었으며, 잔디 상태는 부상이 우려될 만큼 좋지 않았다. 이처럼 크고 작은 걸림돌들이 있었다고는 하나 어쨌든 원했던 승리는 놓쳤으니 성공적인 결과는 아니었다. 실패다.

내용도 나빴다. 많은 전문가들과 팬들이 무엇을 시도하려는지 의도를 파악하기 어려운 공격전개에 답답함을 표했다. 특히 김신욱이라는 특화된 스트라이커가 일찌감치 교체로 투입됐음에도 그 옵션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벤투 감독의 고집스러운 전술을 도마에 올리고 있다. 사실 고집하진 않았다.

레바논전에서 벤투 감독은 후반 18분 남태희를 빼고 장신 스트라이커 김신욱을 투입했다. 현장에서 지켜본 견해로는, 기존 '벤투스러움'을 버리고 접근을 단순화하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그리고 후반 34분에는 드리블이 좋은 이재성 대신 크로스가 날카로운 이강인을 넣었다. 앞선 해석에 더 힘이 실렸다. 상황이 좋지 않으니 패턴을 단순화 하겠다는 복안이었다. 즉 플랜B를 가동하려했는데, 잘 안 됐다.

관련해 날선 목소리들이 많다. 국가대표를 역임한 축구인들이 진행하는 한 축구채널에서는 큰 비판이 쏟아졌다. 채널에서는 우선 "아무리 환경이 좋지 않다고 해도 상대가 레바논이었다면 결과를 가져왔어야한다. 축구는 동일한 조건에서 진행되는 것"이라며 "핑계댈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신욱이라는 옵션을 투입하고도 크로스를 올리지 않은 채 횡패스와 백패스를 반복했다. 선이 굵은 축구로 선회하더라도 박스 안에 공을 투입했어야했다. 아시아에서 헤딩을 제일 잘하는 선수가 있는데도, 하던 것만 고집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또 다른 플랜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이건 빌드업 축구가 아니라 빌드다운 축구"라 질타했다.

못했으니, 실패했으니 쓴소리를 듣는 것이야 대표팀의 숙명이다. 하지만 경험한 이들까지도, 전문가라 불리는 이들도 일반적인 수준의 비난에 그친 것은 아쉽다. "김신욱한테 왜 공을 투입 못해"라고 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지적이다. 선수들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런데 행해지지 않았다면 '왜?'라는 접근도 필요한데 건너 뛰고 조롱으로 넘어갔다. 이 문제에 대해 이천수는 다른 견해를 전했다.

또 다른 축구채널에서 이천수는 "레바논전을 보면서 사람들이 '왜 크로스를 안올리지?'라고 답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내 경험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정확하게 그 지점으로 공이 가지 않을까봐 안 차는 경우도 있다. 분명히 있다"고 전했다.

이천수는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키커로 꼽히는 선수다. 그가 오랜 공백기를 딛고 현역 막바지 K리그로 돌아왔을 때 황선홍 감독과 최용수 감독 모두 "그래도 킥은 이천수다. 데드볼 상황이 만들어지면 좋을 것 없다"고 인정했던 선수다.

방송에서 이천수 스스로도 "나도 킥이라면 자신이 있던 선수였다"고 전제했다. 이어."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저쪽으로 공을 보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레바논전이 열린 곳 같은 그라운드는)일반적인 잔디와 다르다. 잔디가 높고 공이 붕 떠 있어서 마음먹은 곳으로 가지 않는다"면서 "나도 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으나 시도하지 못하게 된다. 망설이게 된다. 그래서 가까운 선수에게 공을 주게 되는 것"이라는 경험담을 전했다.

무조건 선수들을 옹호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해당 영상 전체를 살펴보면, 대표팀의 이번 경기력에 대한 지적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덮어놓고 "우리 때도 다 그 정도는 극복했어"라고 외치는 게 아니라 경험에 빗대 상황을 헤아렸다.

그의 추측은 참에 가깝다. 경기에 출전했던 한 선수는 "정말 여기서 뛰다가는 발목이 돌아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그래도 극복해야하는 것은 맞지만..."이라고 말을 삼켰다.

못한 것까지 칭찬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렇다고 덮어놓고 화살만 쏠 것도 아니다.

lastuncl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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