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Story] LG 트윈스 이형종
중학교 때부터 ‘특급 에이스감’으로 주목받았던 이형종. 2007 대통령배고교야구대회에서 진가를 발휘해 당시 상대적으로 약체에 속했던 서울고를 정상을 향한 길로 이끌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승전에서 전통의 강호 광주일고와 접전을 치르게 되는데 9회 말 2아웃 후 마운드 위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투혼을 발휘, 지더라도 투수의 자존심을 보여줬다. 우승팀 선수들을 제치고 제일 먼저 LG 트윈스에 지명됐다. 하지만 부상과 재활, 방황 후 제2의 삶을 꿈꾸며 골프선수로 전향, 돌고 돌아 다시 야구선수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의 두 번째 야구 인생은 투수가 아닌 타자였다. 염려의 시선이 있었지만 끊임없는 노력 끝에 ‘야잘잘’, ‘광토마’로 불리며 그라운드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완벽한 5툴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이형종을 만나봤다.
Photographer 황미노 Interview 김세연 Editor 표권향 Location LG챔피언스파크
안녕하세요. 아나운서 김세연입니다. 벌써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이에요. 2019년 새해 첫날 계획하고 다짐했던 목표 혹은 자신과의 약속은 지키셨나요? 독자 여러분에게는 어떤 해였는지 궁금합니다. 선수들도 매 시즌을 준비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지는데요. 올 시즌 뜨거웠던 LG의 이형종 선수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형종에게 2019시즌이란 ‘광토마vs야잘잘’
안녕하세요. <더그아웃 매거진> 독자에게 인사 부탁드려요. (11월 14일 인터뷰)
안녕하세요. LG 트윈스 이형종입니다. (시즌 종료 후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여행을 다녀왔어요. 골프도 치면서 못 했던 취미생활을 하고 있어요. 지금은 이천에 나와서 계속 훈련하고 있습니다.
시즌을 치르며 피로가 쌓였을 텐데 어떻게 체력을 보충하고 있나요?
몸도 잘 쉬고 머리도 잘 식히고 있어요. 이렇게 해야 내년에 잘 할 수 있다는 주위의 조언이 있어서 잘 쉬고 잘 먹으면서 취미생활하고 있어요.
2017년부터 타자로서 풀타임을 치르면서 광토마라는 별명을 얻었어요. 이 별명에 대해서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2017시즌의 미친 활약으로 이런 별명이 지어진 것 같아요. (이병규 코치의 별명 ‘적토마’에서 따왔다던데, 반응이 어땠나요?) 코치님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지는 잘 모르겠는데. 별로 안 좋아하지 않을까요? 제 생각에는 “쟤가 뭔데, 어딜 나랑 같은 그런 별명을 지어”라는 표정이었던 것 같아요. (웃음) 코치님이 저번에 “광토마”라고 부르셨는데 창피했어요. 진짜 원조가 저에게 말하니까 창피하더라고요.
올 시즌부터 머리를 길렀는데, 삼손처럼 긴 머리의 효과를 봤나요?
딱히 없는 것 같아요. 2018년부터 조금씩 기르기 시작했는데, 올해는 별로 효과를 보지 못했어요. (그래도 이형종만의 특별한 캐릭터를 갖춘 느낌일 것 같아요.) 스포츠라는 게 어떤 변화를 주려고 할 때 눈치를 보게 돼요. 한 번쯤은 눈치를 안 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머리 스타일이 제일 먼저 보여 기르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이거 했다고 더 잘되고 그런 게 없어서 효과를 본 건 아니에요. 머리카락을 잘랐다가 길렀다가 조금 다듬었다가 하니까 적당한 길이를 유지하고 있어요.
많은 지도자가 “이형종은 타고난 스포츠맨”이라고 말해요.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고 특히 요즘 돼서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20대 중반까지는 이런 마음이 굉장히 셌는데 지금 1군에서 몇 년 뛰고 나니까 그렇게 타고나진 않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어요.
광토마 전에 먼저 야잘잘로 불렸어요. 기분이 어땠나요?
그것도 좋긴 좋았는데, 솔직히 냉정하게 말해서 뭔가 열심히 안 해서 얻은 기분이 들더라고요. 한 편으로는 ‘야구를 원래 잘하는 사람이 잘한다’는 의미인데 말이죠. 열심히 해서 받은 별명인 것 같은데 너무 쉽게 지어진 별명인 것 같아서 별로 좋진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은 이 말을 듣고 싶은데 듣지 못할 때가 많아서 속상하죠.
팀 내 동료들은 뭐라고 부르나요?
‘싸패(싸이코패스)’요. 형들이나 친구들은 쉽게 부르지만 동생들은 그렇게 못하죠. 한 살 동생인 (오)지환이, (양)종민이, (정)주현이는 전부 싸패라고 불러요.
누가 먼저 시작했어요?
시작은 기억이 안 나는데…. ‘미친개’란 별명도 있었고, 미친개는 (김)광삼 코치님이 붙여줬어요. 광삼 코치님도 선수 시절에 강하셨거든요. 자기보다 미친놈은 처음 본 것 같다면서요. 별명 자체가 그런 식으로 가다 보니까 유행어처럼 점점 바뀌더라고요. 싸패란 별명을 지었는데 많은 분이 공감하고 있죠. 정성훈 선배님도 지금까지 그렇게 불리는 것 같고요. (웃음)
싸패라는 별명에 동의하세요?
좋은 뜻은 아니지만 다르게 보면 ‘어디를 가더라도 그런 소리를 들어야 잘 된다’는 느낌도 있잖아요. 이런 뉘앙스로 생각하면 괜찮은 것 같아요.
올 시즌 광토마와 야잘잘 둘 중 어떤 별명에 더 잘 어울렸다고 생각하나요?
둘 다 없는 것 같아요. 올해는 한 번도 미친 적이 없었어요. 야잘잘도 잘하는 사람에게 하는 말인데 이를 충족시킬 만큼 잘하지 못했어요. 정말 많이 부족했던 해였어요. 주변에서는 잘했다고 하는데 저는 아쉬웠어요.
#예상치 못했던 길이 빛이 되다
식상하긴 하지만 눈물의 에이스란 별명을 빼놓을 수 없어요.
당시에는 승부욕이 굉장히 강했어요. 지금도 센데 그때에 비하면 부릴 때와 가릴 때를 잘 판단하려고 노력해요. 그땐 시도 때도 없이 그랬거든요.
승부욕이 굉장히 강한가 봐요.
뭘 해도 잠을 안 잤어요. 학교 다닐 때 탁구를 쳤는데 진 거예요. 그러면 며칠 동안 연습하러 다녔어요. ‘야구선수를 준비하고 있는데 왜 탁구선수를 준비하는 것처럼 열심히 하냐’는 소리도 들었어요. 어떤 말을 해도 그렇게 살았던 것 같아요. 지는 게 싫어서 한 달 동안 운동 끝나고 밤 9~10시에 가서 새벽 1~2시까지 탁구만 쳤어요. 아마 무슨 운동을 하든 그렇게 했을 것 같아요. 그때 야구를 더 했더라면 지금 더 잘했겠죠? (웃음)
타고난 스포츠맨의 성격이네요.
너무 과해서 문제였어요. 가끔 이성을 잃을 때도 있었고 시합 중에 감정 조절을 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잘 안 됐어요. 지금은 그나마 조금 사람 됐고요. (웃음)
프로 데뷔 후 눈물의 투혼을 벌이게 했던 정찬헌, 윤여운, 서건창, 허경민 선수를 만났을 땐 기분이 묘했을 것 같아요.
LG 입단 동기가 정찬헌, 서건창이에요. 사실 찬헌이랑 거의 2년 동안 한마디도 안 했어요. 찬헌이도 말하기 싫었을 수도 있고 저도 말하기 싫었어요. 그런데 제가 지나갈 때 티가 났는지 인사도 안 했어요. (웃음) 찬헌이는 들어오자마자 1군에서 게임을 많이 뛰었는데 저는 수술하고 재활하는 기간이었기 때문에 많이 힘들었어요. 경민이나 여운이를 만난 건 거의 20대 중반을 넘어서였기 때문에 괜찮았어요. 제가 야구를 못 해서 늦게 경기에 나간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언제부터 정찬헌 선수와 편한 사이가 됐어요?
계속 서먹서먹하게 지내다가 찬헌이는 공익생활을 하고 저도 야구에서 떠났다가 다시 들어오면서 운동을 같이하는 계기가 생겼어요. 밖에서 밥 한번 먹자고 해서 친해졌어요. 물론 몇몇 선수와 함께요. (웃음) 지금은 잘 지내고 있어요.
표정 변화가 거의 없지만 이 악물고 플레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야구할 때 본인 성격은 어떤가요?
즐기고 싶은데 약간 진지하게 임하는 것 같아요. 슬플 때나 화날 때도 많고요. 가끔 너무 진지해져서 혼자 난리 치는 게 있어요. 이것만 줄이면 좋을 것 같아요. 내년 시즌에는 조금 더 즐기면서 하려고요.
골프로 전향 후 다시 야구선수로 복귀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을 것 같아요. 어떤 마음으로 준비했어요?
야구를 하다가 처음 골프를 쳤는데 힘든 부분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골프는 야구와 달리 뛰지도 않고 어떤 상황에서 갑자기 일어나는 일도 없잖아요. 체력적인 부분도 부담이 덜해서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골프선수로서도 성장 속도가 빨랐어요.
살면서 열심히 했던 적이 딱 두 번 있는데 굳이 말하자면 골프 칠 때와 타자로 전향했을 때예요. 사실 2013년에 투수로 들어왔는데 2015년부터 타자로 바꿨어요. 2년 동안 투수를 하다가 잘 안 되고 아파서 타자로 전향했어요. 그때 새롭게 골프를 시작했던 시기의 마음과 거의 비슷하게 조금 더 훈련했던 것 같아요. 처음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을 때가 골프였거든요. 초중고 시절 모두 열심히 했지만 그때 제일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다시 유니폼을 입었을 때 그것도 LG로 돌아왔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정말 힘들었어요. 나가는 건 쉬웠는데 다시 들어오기란 힘들잖아요. 사실 그때도 팔이 아팠어요. 하지만 당장 타자를 시켜달라고 말하는 것도 안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공을 던지다 보면 나아질 수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했어요. 그리고 테스트 아닌 테스를 봐서 다시 투수로 입단했죠. 열심히 재활하면서 던졌는데 2년 후에도 안 되니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타자로 포지션을 바꾸게 됐어요.
당시 투수코치였던 차명석 단장의 요청으로 1년 더 빨리 정식선수로 등록될 수 있었어요.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셨어요. 그때가 김기태 감독님이 1군 수장이실 때인데 제가 야구를 그만뒀을 때 감독님이 2군 감독이셨거든요. 2군에서 그렇게 나왔으니 결정하기 어려우셨을 거예요. 제가 감독님이었어도 같은 생각이에요. 차명석 단장님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던지는 것을 자주 보셨고 저를 감독님께 많이 어필해주셨던 것 같아요.
차명석 단장님이 아니었다면 복귀가 힘들었겠어요.
2012년에 돌아오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일 년이 지나 2013년에 다시 입단했는데 차명석 단장님께서 많이 도와주셔서 다시 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정식 등록 후 서울고에서 달았던 배번 ‘36’을 달았는데, 그 이유가 궁금해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번호였고 잘됐을 때, 잘했을 때 달았던 등번호였기 때문이에요. 다시 또 날아올라 보자는 마음도 있었어요.
투수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남았을 것 같아요.
없어요. 원래도 없었고 계속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어렸을 때 던졌던 느낌이 있어서 투수들을 보면 그 고생을 공감할 수 있어요.
투수 출신이라 타자로서 기본기에 대해 지적을 종종 받아요.
경험을 토대로 연구하고 하는 것이라서 스트레스받지 않으려고 해요. 가끔 받기도 하지만요. (웃음) 이건 당연한 거예요. 점차 좋아지려고 노력하고 있고 내년에는 조금 더 성숙한 모습을 팬들에게 보여드리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요.
타자들에게는 개인 응원가가 있잖아요. 본인의 응원가를 부르는 팬들의 환호를 들을 때 어떤 기분이에요?
LG는 팬이 많잖아요. 그래서 함성이 엄청 큰데 아쉽게도 타석에 섰을 땐 잘 안 들려요. 더 크게 질러줬으면 좋겠어요. (웃음) 집중하다 보니 응원 소리가 안 들려요. 오해하지 마세요! 더그아웃에 있거나 수비를 나갔을 때 ‘승리의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되게 좋아요. 지고 있더라도 끝까지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끊어지지 않는 연결의 끈 ‘쌍둥이’
올해 NC 다이노스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활약 후 “오랜만에 경기를 앞두고 떨렸다”고 했어요. 그 떨림이 어떤 느낌이고 어떤 의미였나요?
기대감과 설레는 마음과 약간의 긴장감? (준플레이오프에서는 갑자기 타격감이 떨어졌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제 실력이죠. 욕심이 있었는데 경기를 뛰다가 라인업에서 빠지면서 정신적으로 많이 흔들렸던 것 같아요. 이것도 역시 제 실력이라고 생각해요. 다음에는 더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가을야구를 경험하면서 더 높은 곳을 향한 욕심이 점점 커질 것 같아요.
2016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나갔다가 이후 엔트리에서 빠졌었어요. 올해 처음으로 와일드카드전을 하고 준플레이오프까지 뛰어 봤어요. 이번 시즌에 저도 그렇고 선수들도 더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거예요. 내년에는 더 높은 순위로 올라가고 싶고 또 올라가지 않을까 자신 있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팬들은 이형종 선수가 5툴 플레이어로 완전히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이를 이뤄내기 위해 본인이 채워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요?
저를요? 에이~ 설마요. 5툴 플레이어를 하려면 어려운 점이 많아요. 5툴 중에 3툴만 제대로 가지고 있어도 1군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예전부터 들어서 저는 우선 3툴에 집중하고 있어요.
이형종 선수를 미래의 LG 프랜차이즈 스타로 꼽고 있어요. 본인도 원하는 부분일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하죠. 하지만 아직 생각은 안 해봤어요. 그 정도의 성적을 남긴 적도 없고 타자를 한 지도 얼마 안 됐잖아요. LG에서 오래 있었는데 풀타임으로 뛴 시간은 3시즌이고, 나이도 있잖아요. 채워지지 않은 것들이 있어서 아쉬운 부분이 많아요. 몇 년 더 잘해서 그런 선수로 남으면 정말 좋죠. 그렇게 생각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올해 아쉬웠던 점과 내년 목표는 무엇인가요?
팀은 좋은 성적을 냈던 시즌이었지만 저는 아주 아쉽고 답답하면서도 많이 배운 시즌이었어요. 올해를 계기로 야구를 더 오래 할 수 있고 더 잘할 수 있는 선수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내년을 위해 전체적으로도 준비를 잘할 수 있게 됐어요. 아직은 아쉬움과 답답함을 달래주느라 목표는 없어요. 잘 정리해서 2020시즌에서 잘해야죠.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해요.
올 시즌 전체 관중 수가 줄었다고 들었어요. 많은 분이 다시 야구장을 찾을 수 있도록 선수들이 좋은 경기를 보여줘야 할 것 같아요. LG팬분들께 항상 감사하고 내년 시즌에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최상의 플레이를 펼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야구장 많이 찾아주시고 응원 부탁드립니다.
***
다시 돌아올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버렸다면 그의 이름은 야구팬들의 뇌리 속에서 영영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용기 내어 문을 두드렸고 LG는 돌아온 탕자를 받아들이듯 아비의 마음으로 그를 안았다. 다시 야구할 수 있게 됐다는 감사함을 항상 지니고 있다는 이형종은 최근 3시즌 동안 풀타임을 소화하며 그의 야구를 찾아가고 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지만 매 시즌 발전해가는 그의 플레이에서 ‘프랜차이즈 스타’ 이형종을 상상하는 LG팬들의 기대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이형종이 써갈 야구인생에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9년 104호(12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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