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KeSPA 표준계약서도 '불공정'.."그리핀 계약서보다 더 해"

문동성 이다니엘 윤민섭 정진영 기자 2019. 12. 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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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동의 없는 이적 가능..이적시 재계약 못하게 하기도..구단 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는 평가

한국e스포츠협회(KeSPA)가 작성해 프로게임단에 제공하는 표준계약서에 불공정 조항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KeSPA 표준계약서에는 선수 동의 없이 이적이 가능한 조항, 이적 뒤 재계약이 불가능한 조항이 담겨있다. 선수가 언론을 별도 접촉해 활동 내용이 기사화된 경우 구단은 계약을 즉시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도 있었다. 이때 선수는 지급된 연봉의 2배를 구단에 배상해야 한다.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해야 할 협회가 불공정 계약을 장려한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국민일보가 입수한 한국e스포츠협회(KeSPA) 표준계약서. 불공정한 조항이 다수 발견됐다.


국민일보는 최근 KeSPA 표준계약서를 입수해 분석했다. 그 결과 선수의 권익보다 구단의 이익을 우선시한 계약서라는 평가를 내렸다. 계약서에는 불공정 소지가 있는 조항이 다수 발견됐다. 협회는 이 표준계약서를 2003년 시작된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때부터 작성해 업데이트 해왔는데, 내용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이를 필요로 하는 구단이 요청할 때만 ‘은밀히’ 제공했다.

전문가들은 KeSPA 표준계약서 15조 ‘계약의 양도’ 부분을 대표적인 불공정 조항이라고 지목했다. 15조에는 “선수는 회사와 성격을 같이 하는 여하한 팀 또는 단체법인 등에게 본 계약에 의한 회사의 선수에 대한 권리의무를 양도 할 수 있음에 동의한다”고 돼 있다. 선수가 이 계약서에 ‘사인’할 경우 구단은 사전 동의 없이 선수를 마음대로 이적 시킬 수 있다. 이적시 선수에게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은 최근 불공정하다는 비판을 받은 프로게임단 ‘그리핀’ 계약서에도 있는 내용이다.

업계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그간 사전 동의 없는 이적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며 “이 조항은 문제가 되는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한국법조인협회 e스포츠연구회 소속 윤현석 변호사는 “계약 당사자의 일방적 변경을 선수가 무조건 따라야 하는 불공정 계약 조항”이라고 지적했다. 2001년 3월 공정거래위원회는 구단 측의 일방적인 선수 이적 행위를 불공정 거래 행위라고 판단한 적이 있다. 당시 공정위는 한국야구위원회를 상대로 시정명령을 내렸다.

국민일보가 입수한 한국e스포츠협회(KeSPA) 표준계약서. 불공정한 조항이 다수 발견됐다.


이뿐 만이 아니다. ‘양도된 선수의 의무와 처리’를 규정해 놓은 16조에는 “선수는 양도 전 팀과 체결한 선수계약의 변경을 양도팀에 요구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이적해 간 새로운 팀과의 재계약을 금지시켜 놓은 것이다. 윤 변호사는 “선수는 새 구단과 계약 내용을 변경할 권한도 주장할 수 없는 셈”이라며 “이 조항은 정의에 현저히 반 한다”고 비판했다.

상금 수령 조항은 일방적으로 구단 측에 유리하다. 계약서 6조는 “경기 상금은 회사에 전액 귀속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회사 기준에 따라 수령액의 일부를 선수에게 지급 할 수 있다. 지급 기준은 회사 자율로 결정한다”고 명시했다. 상금을 회사가 수령한 뒤 선수들에게 배분하는 경우는 일반적이다. 다만 이를 선수와의 협의 없이 회사 ‘자율’, 즉 마음대로 결정한다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 e스포츠 업계 관계자는 “상금을 한 푼도 안 줄 수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국민일보가 입수한 한국e스포츠협회(KeSPA) 표준계약서. 불공정한 조항이 다수 발견됐다.


초상권에 대한 부분을 규정한 14조도 마찬가지다. 14조 3항에는 “행사 참가 및 광고 출연 등에 의한 수익은 전액 회사에 귀속되는 것이 원칙이며 회사의 기준에 따라 수령액 일부를 선수에게 지급 할 수 있다. 지급 기준은 회사의 자율로 결정한다”라고 돼 있다. 광고 수익도 회사가 모두 가질 수 있는 셈이다. 2항은 또 “초상권, 섭외권 등 일체는 회사에 귀속되며, 부득이 선수의 개인적인 사유로 매스컴 등에 출연, 노출될 시에는 회사와 사전합의 후 추진한다”고 규정해 놓았다. 그런데 KeSPA 표준계약서에는 계약이 종료되면 선수에게 초상권 등을 돌려줘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윤 변호사는 “수익을 회사가 전부 가질 수 있어 불공정하다”고 비판했다. 다른 e스포츠 업계 관계자는 “계약 기간 동안 선수의 초상권이 구단에 귀속되는 일은 있지만 계약 종료 후에도 구단이 이를 소유한다는 규정은 듣도 보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회사에 의한 계약 해지’를 규정한 21조도 불공정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계약서에 따르면 구단은 선수 관련 상황에 대한 공식 발표권 등 언론 매체에 대한 독점적인 홍보 권한을 갖고 있다. 그런데 21조 5항은 선수가 이 독점적 홍보 권한을 침해할 경우 구단은 선수와 계약을 즉시 해지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아울러 선수는 계약 해지 30일 이내에 지급된 연봉의 2배를 구단에 배상하게 돼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선수가 언론을 따로 접촉해 활동 내용이 기사화되면 바로 내쫒겠다는 뜻”이라며 “이미 지급된 돈의 2배를 물어내라는 것도 가혹한 조항”이라고 말했다.

국민일보가 입수한 한국e스포츠협회(KeSPA) 표준계약서. 불공정한 조항이 다수 발견됐다.


선수 활동 외 상황에서 발생한 부상으로 선수가 더 이상 활동을 할 수 없는 경우 구단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21조 4항)도 있다. 이때 구단은 계약 기간 동안 지불해야 할 연봉을 지급할 의무를 면하고 손해배상까지 청구할 수 있다. 7조 2항은 “회사의 사전 승인 없이 신체적 위험이 따르는 어떠한 활동도 할 수 없다”고 명시해 놓았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이 신체적 위험이 따르는 활동인지는 규정해 놓지 않았다.

KeSPA는 계약서 21조에서 구단이 계약을 해지 할 수 있는 상황을 상세히 다뤘다. 그런데 선수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경우를 명시한 22조는 비교적 내용이 없거나 유명무실했다. 선수는 구단이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구단이 부도를 당하거나 해체되는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윤 변호사는 “구단의 계약 해지 조항에 비해, 선수의 계약 해지 및 그에 수반된 권리(손해배상)가 계약서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아 매우 불공정하다”고 비판했다.


13조 ‘훈련태만’ 항목에는 “선수가 팀의 훈련 또는 각종 경기 및 행사 등 활동에 있어 회사의 정당한 지시에 불복할 때는 회사의 요구에 따라 이를 시정해야 한다. 이 경우 선수는 선수의 귀책사유로 인해 발생한 손해 및 비용에 대한 책임을 부담 한다”고 돼 있다. 이에 대해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회사의 ‘정당한’ 지시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호하다”며 “손해에 대한 물적 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은 어린 선수들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되는 조항”이라고 말했다.

KeSPA 표준계약서에는 선수의 권익을 보호하는 조항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구단 측의 이익을 반영한 계약서라는 얘기다. 표준계약서에는 구단 측의 부당한 요구를 선수가 거부할 수 있다는 조항도 없다. 구단이 선수의 사생활이나 인격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행위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 선수의 신체적, 정신적 준비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조항도 없다. 이는 정부가 만든 대중문화예술인 표준계약서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업계 상황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KeSPA 표준계약서는 체계적이지도 않고 선수 권리 측면에서 빠져있는 부분들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카나비 사태’로 논란이 된 프로게임단 ‘그리핀’의 계약서가 KeSPA 표준계약서보다 더 낫지 않나 싶다”며 “그리핀 계약서에도 불공정 조항이 많았지만 이적을 선수 동의 없이 할 수 있다는 조항은 없었다”고 비판했다.


상당수의 프로게임단들이 불공정 조항이 담겨있는 이 계약서를 바탕으로 선수들과 계약을 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KeSPA 표준계약서를 초안으로 삼고, 여기에 불공정한 조항을 더 추가한 계약서를 만들어 사용한 곳도 있었다. 한 e스포츠 업계 관계자는 “KeSPA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는 ‘리그오브레전드(LoL)’ 1부 리그 팀도 있다”며 “적어도 3개의 LoL 구단이 KeSPA 표준계약서를 바탕으로 계약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은 KeSPA 계약서에 불공정한 조항들을 더 추가해놓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KeSPA가 작성한 표준계약서에 불공정 조항이 담겨있다는 사실은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선수들의 권익을 보호해야할 기관이 오히려 불공정 계약을 장려한 셈이 돼서다. KeSPA 측은 “계약서는 모든 팀이 따라야 하는 표준계약서라기보다, 팀들의 계약 편의를 위해서 요청하면 제공하는 형태”라며 “표준계약서에 대한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 개선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윤 변호사는 “KeSPA 표준계약서 문제는 정부 차원의 표준계약서가 왜 필요한지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례”라며 “정부 표준계약서도 강제성은 없지만 하나의 지침, 가이드라인이 되는 것이어서 e스포츠계에 만연한 불공정 계약이 시정되는 데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동섭 바른미래당 의원은 지난달 22일 구단과 선수가 계약을 맺을 때 문화체육관광부가 마련한 표준계약서를 사용토록 하는 ‘e스포츠 진흥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공정위 차원의 계약서 전수조사와 이에 따른 시정명령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문동성 이다니엘 윤민섭 정진영 기자 theMo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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