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DUGOUT Dream] 키움 히어로즈 이승호

대단한미디어 입력 2019.12.31. 12:02 수정 2020.02.29.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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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e to meet you!

이승호를 인터뷰이로 정한 건 사실 큰 의미는 없었다. 이왕이면 상위권 팀 소속이면 좋겠고, 떠오르는 신예면 좋겠고, 국가대표면 더 좋겠다 싶었다. 그리고 12월 2일,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고 나는 10분 만에 그의 팬이 됐다. 분명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부상으로 큰 수술을 했고, 입단 1년 차에 트레이드가 됐고, 한일전에서도 부진했는데 왜 그의 얼굴에는 그늘 하나 없는지. 참 맑은 사람이었다, 나까지 맑아지는 기분이 들게 할 만큼. 이 자리를 빌려 그에게 만나서 반가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Nice to meet you!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소경화 Location 대단한 미디어


실제로 이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인데 두산 베어스 정수빈 선수의 느낌이 있네요.

처음 들어보는데. (웃음) 평소에는 감자 같다는 소리를 자주 들어요.

포스트시즌에 2019 WBSC 프리미어 12까지 누구보다 바쁜 한 해를 보냈어요.

몸은 힘들었지만 그만큼 값진 경험을 한 2019시즌이었어요. 오늘은 프로야구선수협회 총회도 다녀왔고요.

야구 외에 비시즌 근황은요?

대표팀이 끝나고 구단에서 배려해주신 덕분에 마무리 훈련은 참가하지 않았어요. 서울에 있으면서 그동안 못 봤던 사람들도 만나고, 내일은 교정 때문에 광주에 있는 치과에 들렀다가 본가에 내려가 부모님과 시간을 보낼 예정이에요. 그리고 12월 말에 올라와 다시 운동 시작해야죠.

올해 좋은 활약을 해서 길 다니면 알아보는 사람도 있겠어요.

한 번도 없었어요. 사복 입으면 그냥 감자에 사복 입은 사람이라 아무도 못 알아보세요.

그래도 고향 가면 친구들의 반응이 예전과 다르지 않나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게 진정한 친구인 것 같습니다. 제가 어느 위치에 있든 야구를 잘하든 못하든 막 대하는 건 똑같아요. (한숨) 친구들 사이에서 제가 좀 밑에 있어서 늘 맞고 다닙니다.

‘찐우정’이네요. 손혁 감독이 키움 히어로즈의 새로운 수장이 됐어요. 만나 봤나요?

대표팀 다녀오고 두 번 정도 뵀어요. SK 와이번스 코치로 계실 때 항상 마운드에 올라가서 투수한테 박수를 쳐주고 내려가시는 모습을 인상 깊게 봤거든요. 그것도 걸어 내려가는 게 아니라 뛰어 내려가시니까 기억에 남았는데 실제로 만나 보니 포스가 느껴지면서도 친근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런 손혁 감독이 투수 기대주로 이승호 선수를 꼽았어요.

기분이 좋은 것보다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이제는 신인도 아니고, 연차가 적은 것도 아니고, 경험도 해봤으니까 내년에 더 좋은 실력으로 보여드려야겠다고 다짐했죠.

만났을 때 따로 이승호 선수에게 전한 얘기는 없나요?

내년 시즌과 내년에 있는 여러 가지 대회를 노릴 수 있게 잘 관리해서 만들어보자고 말씀해주셨어요.


이제 과거로 돌아가 볼게요. 처음 야구를 시작했던 순간을 기억하나요?

초등학교 3학년 겨울 이맘때쯤이었어요. 취미로 생활 체육 야구를 하던 아버지를 따라 운동장에 갔는데 감독님께서 저를 보더니, 야구 한번 시켜보자고 하시더라고요. 또래보다 키가 커서 학교 축구팀, 배구팀에서도 같이 운동해 보자는 얘기를 자주 들었거든요. 뛰는 걸 워낙 싫어해서 거절했는데 야구를 떠올리면 그렇게 많이 뛰지 않고 가만히 서 있잖아요.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한다고 했더니 소시지를 주시더라고요. ‘어? 야구하는데 먹을 것도 주네?’라는 해맑은 생각으로 야구의 길로 들어서게 됐어요. ‘간식도 주고 좋다. 야구할 만한 것 같다!’ 이런 마음이었죠.

지금의 이승호를 만든 건 간식과 뛰지 않는 운동 덕분이네요?

그랬는데 들어가자마자 동계훈련을 시작하더라고요. 어린 나이에 후회 아닌 후회를 했습니다.

아버님도 운동을 좋아했나 봐요.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저보다 운동 신경이 좋으셨어요.

대표적인 스포츠 스타들을 보면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경우가 많더라고요.

아버지께서 어릴 때부터 저를 가만히 두지 않으셨어요. 제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거나 놀고 있으면 “빨리 들어와서 뭐 해라. 이거 해라”라고 말씀하셨죠. 어린 나이에는 그게 잔소리처럼 들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다 저를 위해 하신 얘기잖아요. 그런 아버지 덕분에 한 번도 운동을 소홀히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나요?

러닝을 너무 많이 해서… 많이 한 건 아닌데 제 선에서는 좀 많더라고요. 중학교 때까진 체격도 뚱뚱하고 발도 느리다 보니 힘들어서 그만둘까도 생각해봤지만, 부모님이 맞벌이하면서 고생하시는데 한번 시작한 거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버텼어요.

야구선수 말고 다른 꿈은 없었나요?

진짜로 야구 말고는 생각해본 게 없어요. 굳이 꼽자면 백수가 꿈이었어요. 집에서 푹 쉬니까. 지금도 쉬는 날에는 집에만 있어요.

와인드업이 없는 투구폼이 인상적인데 언제부터 그런 투구폼을 가져갔나요?

원래는 와인드업을 했는데 여러 문제로 밸런스가 무너지더라고요. 고등학교 투수 코치님께서 그럴 바에는 세트 자세로 해보자고 하셔서 바꿨더니 조금씩 밸런스가 나아져 그때부터 와인드업을 없앴어요.


프로의 시작은 KIA 타이거즈였어요. 그때의 이승호는 어떤 선수였나요?

보여준 게 하나도 없는, 그냥 입단하자마자 수술한 갓난아기였죠. (지금은요?) 지금은 유치원 다니는 정도?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부산팜 최대어로 화려한 고교 시절을 보냈기에 그 시간이 더 힘들었겠어요.

아닌데요? (웃음) 저 말고 당시에 같이 지명된 LG 트윈스의 손주영이라는 친구도 있고, 롯데 자이언츠의 윤성빈 친구도 있고, 삼성 라이온즈의 최지광 선수도 있고. 저는 그 4명 중에 꼴찌였어요. (지금 선에서는 1등 아닌가요?) 아이, 아니죠. 단지 기회를 빨리 받았을 뿐이죠.

KIA에 입단하자마자 토미 존 수술을 받았죠? 당시 마음이 안 좋았겠어요.

꿈에 그리던 무대에 왔음에도 남들 다 던지는 공을 못 던진다는 게 너무 서러웠어요. 다시 공 던지는 날만 그리며 열심히 운동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기로 왔네요.

보통 고등학교 때 날아다니던 선수들이 그러한 과정을 겪게 되면 몸도 몸이지만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는 경우가 많은데, 본인은 어땠어요?

자존심보다는 자존감이 낮아졌어요. 그때는 아예 공을 던지지도 않고, 공을 던졌을 때의 기억조차 흐릿했으니까요. 눈에 보일 정도로 위축돼있었는데 투구하면서부터 서서히 괜찮아졌어요. 잘 못 하더라도 일단 공을 던지고 있는 것 자체가 제가 할 일이니까요. (멋진 말인데요?) 그래요? 좀 멋있었어요? 고마워요.

첫 팀인 만큼 애착이 컸을 텐데 트레이드로 팀을 옮기게 됐어요.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겠어요.

챔피언스 필드 마운드를 밟아보는 게 KIA에서 가진 첫 목표였는데 그걸 못 해보고 바로 팀을 옮기게 돼 속이 쓰렸죠.

선수 본인도 본인이지만 유망주를 내준 팬들의 아쉬움도 컸어요.

당시에 운동하고 있다가 트레이드 소식을 늦게 알았어요. 정신없이 바로 짐 싸서 서울로 올라오느라 기사도 제대로 못 보고 기억도 잘 나지 않아요. 하나 선명히 기억나는 건 KIA의 유승철이라는 친구가 갑자기 두 눈이 시뻘게져서 오더라고요. (두 사람 굉장히 친하잖아요.) 저만 친하다고 생각하는 거 아닐까요.


지금도 KIA 선수들과 잘 지내는 것 같던데 누구랑 친한가요?

이번에 대표팀에 같이 간 문경찬 형이나 양현종 선배님과도 마주치면 인사하고 얘기도 주고받아요. 또래 중에서는 강이준이라는 친구랑 박진태 형, 최원준 형… 더 많은데 지금 생각나는 건 이렇게 5명이네요.

절친한 유승철 선수는 내일 입대하잖아요.

안 그래도 얼마 전에 만났어요. 시간이 안 나서 못 보다가 이번에 시즌 끝나고 연락했더니 마침 승철이가 서울 쪽에 올라와 있더라고요. 바로 만나러 갔는데 군대 가는 애치고는 얼굴이 좋아 보여서 한시름 놨어요. 성격상 잘 갔다 올 거 아니까 갔다 와서는 사람 좀 됐으면 좋겠네요. (아마 인터뷰 영상은 2주 후에 나갈 것 같은데 친구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내볼까요?) 2주 후면 한창 추운 바람 속에서 열심히 하고 있을 텐데 좀 더 고생해서 뺑뺑이도 뛰고 사람 돼서 나왔으면 좋겠다, 승철아. 나오면 연락하자!

나중에 본인 군대 가면 어쩌려고 그래요.

뭐 돌아오겠죠.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겠습니다. (유승철 선수 친구다운 텐션이네요.) 승철이 텐션 많이 죽었던데요. 군대 가서 그런지 약간 꼬랑지 내린 강아지 같아요.

재활을 마치고 2018년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어요. 특히 8월 7일, 어떤 날인지 기억하나요?

혹시 첫 승을 한 날인가요? (맞아요.) 오 찍었는데. (이런 건 기억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찍어서 맞혔다는 거에 의미를 두겠습니다.

친정팀 KIA를 상대로 프로 첫 승을 거뒀어요. 어떤 마음가짐으로 마운드에 올랐나요?

아무래도 트레이드가 됐으니 KIA랑 붙을 때 한 번은 올라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진짜 올라가게 되니 그날따라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 느낌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매우 기분 좋았고 잠이 잘 오는 밤이었죠.


경기 끝나고 KIA 선수들에게 연락도 꽤 왔겠어요.

그때 최원준 선수를 상대로 직구를 3개인가 던졌거든요. 그랬더니 원준이 형한테 직구를 3개나 던질 줄 몰랐다고 연락이 오더라고요. 변화구나 던질 줄 알았다고. 그래서 저는 그렇게 비겁하게 안 도망간다고 얘기했죠.

9월 19일부터는 선발 투수로 투입됐어요. 이후 쭉쭉 선발의 길로 들어섰는데 사실 선발이 더 익숙하잖아요?

원래라면 그랬을 텐데 워낙 공을 안 던진 시기가 길어서 좀 어색했어요. (그래도 몸이 기억하지 않아요? 경남고 시절에 100구는 우습게 던지곤 했으니까요.) 느낌은 익숙하지만 어색한 건 지울 수 없더라고요.

당시 ‘제2의 류현진’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어요.

제 그릇에 너무 과분한 수식어였어요.

롤모델도 류현진 선수로 알고 있는데 최근에도 등판 경기를 찾아보나요?

던지실 때마다 찾아봐요. 류현진 선배님의 밸런스와 체인지업을 배우고 싶거든요. 물론 국내에도 김광현 선배님과 양현종 선배님이 대표적으로 계시니까 이 세 분의 투구 모습을 찾아보곤 해요.

실제로 류현진 선수랑 인연은 없는 거죠?

아예 없어요. 만약 만나게 된다면 물어볼 게 많습니다.

대망의 2019시즌, 제대로 된 좌완 영건의 모습을 보여줬는데 시즌 시작할 때 이러한 활약을 예상했나요?

전혀 예상 못 했어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그냥 한 게임 한 게임에 전력을 다해 임하자는 생각으로 뛰었는데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어요.

5월 8일에는 LG를 상대로 데뷔 첫 완봉승을 기록하기도 했어요. 그날은 정말 이승호의 날이었어요.

그날은 잊을 수 없기도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얻어 지금도 얼떨떨해요. 진짜 내가 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요. 당시 상황을 떠올려보면 5이닝을 던지고 내려왔을 때 투구수가 매우 적었어요. 시즌 초부터 계속 전력을 다해 뛰었기 때문에 힘에 부치는 느낌이 있었는데 내려와서 보니 이닝보다 숫자가 적더라고요. 저만의 계산 방식이 있는데 만약 5이닝일 때 제 투구수의 앞자리가 5면 오늘 적정하게 잘 던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마침 감독님과 코치님도 계속 올려주셨고요. 사람이다 보니 8회 때부터는 어쩔 수 없이 의식하게 됐어요. ‘어쩌면 완봉승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정말 짜릿했죠. 마침 어버이날이었고요.


온 우주의 기가 이승호 선수 효도하라고 모였네요.

그날 아침에 부모님께 오늘 어버이날이니까 좋은 선물 갖고 온다고 얘기했는데 진짜 그렇게 돼 뿌듯했어요.

잘한 시즌이지만 그런데도 아쉬운 기록이 있다면?

뜻밖의 부상으로 인해 후반기 시작하자마자 부진했던 것과 완봉승을 한 다음 경기에 흔들린 거, 그게 제일 아쉬워요.

아직 야구할 날이 더 많은데, 이루고 싶은 타이틀이나 기록은 무엇인가요?

일차적으로는 1,000이닝을 넘기는 투수가 되고 싶고요. 개인 통산 100승을 목표로 두고 있어요.

아무래도 키움은 젊은 선수가 많아 분위기가 활기찬데 유독 본인을 예뻐하는 선배가 있다면?

(이)지영 선배님께서 제일 예뻐해 주세요. 거의 제 어머니이시자 때론 아버지이시자 정말 소중한 존재입니다. 투수 중에는 나이 또래가 비슷한 (최)원태 형이 잘 챙겨주세요.

반대로 본인이 챙겨줘야 되는 선배, 손이 많이 가는 선배는?

방금 말했던 사람 중 한 명이요. 대충 누군지는 짐작 가시죠? ‘ㅊㅇㅌ’이라고 있어요. (나중에 안 혼나겠어요?) 형, 혼내지 말아요. (웃음)

올 시즌 활약을 발판삼아 ‘김경문호’에도 승선했어요. NC 다이노스 구창모 선수를 대신하는 역할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이승호 선수에게 굉장한 운이 따른 거거든요.

돈 주고도 못 사는 값진 경험을 했죠.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왼손 선발 투수들의 루틴과 공을 던질 때 어떤 생각을 갖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KIA 양현종 선수가 볼 배합에 대해서도 가르쳐줬다고요.

평가전 등판을 하고 내려오자마자 바로 양현종 선배님께 가서 대뜸 공을 어떻게 던지느냐고 물어봤어요. 저랑 같은 구종을 쓰시는데 본인은 체인지업을 던지기 전에 뭘 쓰고 또 체인지업을 던지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셨어요. 김광현 선배님과는 수술 시기가 비슷해 그때 재활을 어떻게 했고, 비시즌 때 어떻게 준비하시는지 여쭤봤고요.

키움이라는 팀 특성상 베테랑 선배가 부족하기에 좋은 경험이 됐겠어요.

그렇죠. 선발 투수는 외국인 두 명과 원태 형, 저, (안)우진이 이렇게 있었으니까 올해는 외국인 투수들한테 많이 물어봤어요.


영어 잘해요?

영어요? Nice to meet you. 괜찮았나요? (발음이 좋네요.) 그럼요.

11월 16일 열린 프리미어 12 한일전에서는 부진한 모습이었어요. 당시 상황을 되돌려 본다면?

그날은 준비가 덜 됐던 것 같아요. 여유 있게 저를 믿고 던졌으면 그렇게 안 됐을 텐데 번트 수비에서 실수가 난 게 가장 컸어요. 여기서 꼭 하나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물론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모르겠지만 전 정말 열심히 뛰었거든요. 열심히 뛰었는데 타자가 빠르고 번트도 잘 대서 다시 보기로 봐도 제 모습이 안 좋게 보이더라고요. 분위기를 가져왔어야 하는데 저 때문에 분위기를 빼앗긴 느낌이었어요.

경험치의 문제가 아니었을까요?

대표로 나간 자리인 만큼 경험치가 부족해서 못했다는 핑계는 멀리하고 싶어요.

당시 정말 많은 욕을 먹었어요.

장수할 것 같습니다. (멘탈이 좋더라고요. 의연한 모습이었어요.) 지나간 일에 연연하면 안 되니까요.

그거야말로 투수한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싶어요.

좋게 말하면 멘탈이 좋은 거지만, 단점이라고 하면 그냥 생각이 없는 거거든요. (생각 없는 게 좋은 거 아닌가요?) 그럼요. 세상 편하죠.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아야죠.) 그렇죠. 고마워요.

큰 무대를 경험하며 어떤 걸 배웠나요?

한일전을 마치고 내려오니 선배님들이 좋은 경험을 했다고 말씀하시는데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어요. 그래서 현종 선배님께 “선배님, 좋은 경험이라는 게 뭐가 좋은 경험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왜 좋은 경험입니까?”라고 물어봤더니 “이렇게 큰 경기에 올라가 봤으니 앞으로 어떤 경기에 올라가도 오늘을 생각하면 ‘그래, 내가 여기서도 던졌는데 이까짓 거!’라는 생각이 들 거야“라고 하셨어요. 큰 걸 배웠죠. 만약 한 번 더 기회가 온다면 그때는 반드시 일본을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질문하는 데 거리낌이 없네요.

궁금한 건 물어봐야죠.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물어보겠어요. 제가 먼저 다가가야 알려주시는 게 당연한 거니까 항상 선배님들께 먼저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야구만 하기엔 아까운 나이인데 놀러 다니고 싶은 마음도 들 법해요.

놀러 다니고야 싶죠. 근데 노는 건 나중에도 할 수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누가 그러던가요?) 세상 모든 사람이요. 그리고 가끔 놀러 다녀요. 게임방도 가고, 맛집도 가고요.

야구선수들은 왜 이렇게 게임을 좋아하는 걸까요?

편하잖아요. 앉아서 하고, 재미도 있고요. 맨날 움직이다가 앉아서 재미있는 거 하면 재미있잖아요.

귀여운 이유네요. 야구선수로서 말고 청년 이승호의 고민도 궁금해요.

야구 외적인 고민은 거의 없어요. 집을 언제 내려갈까, 어떤 걸 먹을까 이런 거 말고는…. 집이 너무 멀어요.

이승호가 말하는 이승호는 어떤 사람인가요?

매일 무얼 먹을지 고민하는 거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고요. 집 밖에 나가는 걸 그리 선호하지 않는 그런 이승호인 것 같아요. (백수네요.) 제 꿈이었죠. 돈 많은 백수가 꿈이었는데 쉽지 않네요.

겨울 휴가 계획은 없나요?

집에 내려가는 게 여행이에요. 워낙 장거리이기도 하고 올해 못 본 사람들 만나고 하면 또 몸 만들 시기가 찾아와서 따로 여행 갈 시간은 없을 것 같아요.

이제 월요일을 4번만 더 보내면 2020년인데 ‘올해가 가기 전에 이것만큼은 꼭 할 거다’ 하는 게 있다면?

곧 있으면 아버지 생신이라 식사 근사하게 대접해 드리고 마음에 드실 만한 물건을 잘 골라서 선물하고 싶어요. 너무 방송용 멘트인가요?


딱 좋았어요. 그렇다면 새해 소원은요? 야구 잘하게 해달라는 거 말고요.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그거 말고요.) 왜요! 안 아픈 것도 얼마나 중요한데요. 그리고 팀 우승이요. 저희는 매년 그것만 바라보고 달리니까요.

이제 마무리할 시간이에요. 이승호 선수를 응원하는 ‘일당백’ 팬들에게 인사 남겨볼까요?

내년에도 좋은 모습으로 잘 준비해서 팬분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올해보다 나은 이승호가 돼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준비된 멘트 아닌가요?) 제가 원래 센스가 좋아요. (웃음)

***

인터뷰를 하다 보면 간혹 ‘핑퐁(ping-pong)’이 잘 되는 사람이 있다. 이승호가 그랬다. 그의 능글 바이러스가 온 스튜디오를 가득 채웠고, 인터뷰 내내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 실로 신묘한 힘이다. 모두를 행복하게 하는 힘 말이다. 그렇다고 마냥 해맑기만 한 성격은 아니다. 분명 진중했고, 겸손했고, 배움을 그리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스타의 기질은 충분하다. 이제는 야구로 팬들을 행복하게 할 차례다.


더그아웃 매거진 105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0년 105호(1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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