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은 싱글, 필드는 백돌이?

정현권 2020. 1. 25.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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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오딧세이-40] "골퍼에는 세 종류가 있다. 필드에서만 잘하는 사람, 스크린에서만 잘하는 사람, 필드와 스크린 모두 잘하는 사람."

골프계에 나도는 이야기다. 겨울과 여름 혹서기엔 스크린 골프장이 붐빈다. 특히 겨울철엔 스크린 골프장에서 기량을 연마하고, 필드보다 스크린을 더 선호하는 마니아도 있다.

동호인 가운데 이 세 가지 부류를 각각 동반자로 골프를 해본 적 있다.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스크린에서 언더파를 적는 동반자가 필드에선 100타 가까운 스코어를 기록했을 때다.

스크린 골프장에서는 기기 작동법과 스윙자세까지 나에게 조언했는데 필드에선 10타 이상 나에게 뒤져 놀라웠고 분위기도 어색했다. 알고 보니 그 사람은 필드보다는 스크린 골프장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이젠 1시간 이상 차를 타고 가기보다는 시내에 있는 깨끗한 스크린 골프장에 가고 싶다. 주말엔 차가 안 밀리고 저렴한 스크린 골프장이 아예 좋다."

골프 마니아인 고교 친구의 말이다. 그는 스크린에서도 필드와 똑같은 재미를 느낀다고 한다. 필드는 물론 스크린에서도 싱글 골퍼다. 1번 필드 비용으로 10번 스크린 골프가 가능해 이런 금상첨화가 없단다.

그는 필드에서 골프를 끝내면 종종 시내 스크린 골프장에서 18홀을 더 돈다. 비가 오거나 겨울엔 스크린 애호가인 또 다른 친구와 서로 스윙자세를 봐주며 가다듬는 스크린 골프 마니아이기도 하다.

반면 구력 20년의 한 친구는 스크린에서는 재미를 전혀 못 느낀다. 80대 초반의 실력을 보유한 그는 친구들에게 마지못해 끌려 스크린 골프장에 간다. 필드에서의 몰입과 정확도를 못 느낀단다.

호불호에도 불구하고 스크린 골프가 엄연한 골프문화로 자리 잡았다. 오히려 대세다. 골프대회 인기 측면에서도 여자프로골프, 스크린골프, 남자프로골프 순이라는 말이 나돈다.

"처음엔 그것도 골프냐는 핀잔을 많이 받았죠. 하지만 이젠 같은 프로선수들도 스크린 골프대회인 G투어에 대해 물어보며 출전에 관심이 큽니다."

'스크린 골프계 황제'로 통하는 프로선수 김홍택(27)은 지독한 연습 벌레인데 오전에는 야외, 오후엔 스크린 골프장에서 연습한다. 21언더파를 기록한 적도 있고 G투어에서 우승했다.

그에 따르면 드라이버 거리는 스크린이나 필드 모두 비슷하다. 단 숏게임에선 경사가 아무리 심해도 공이 멈춰서는 등 오락 요소가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린이 굉장히 빨라 오히려 필드 그린보다 더 집중해야 할 때도 있다. 스크린이라고 쉽게 여기는 사람이 있는데 10언더파 이하를 밥 먹듯 하는 아마추어 스크린 괴물도 많다고 전한다.

스크린 골프대회에서 8승을 올린 프로선수 김민수(30)는 "말 그대로 스크린은 스크린일 뿐 실제 경기력과는 크게 상관없다"고 말한다. 스크린 골프는 아직 생계 유지용이며 필드 경기력은 필드에서 갈고 닦아야 한다는 것.

투어 성적이 신통치 않을 때 스크린 골프대회에 진출하는 프로선수도 늘어났다. 배경은(35), 최우리(35) 등 여자선수 10여 명이 WG투어에 출사표를 던졌다. 배경은은 메이저 포함 통산 4승을 올린 베테랑이다.

지난해 12월 G투어 우승자 최민욱(24)은 통산 12승으로 스크린 골프 남자 부문 최다승을 올렸다. '최민욱 프로'라는 유튜브 채널까지 운영한다.

스크린 대회 3승을 올린 김홍택은 2017년 동아회원권 부산오픈에서 우승해 스크린과 필드를 동시에 제패한 첫 사례를 기록했다.

스크린 골프대회는 '더 CJ컵@나인브릿지 스크리골프대회'가 작년에 열려 국내외 골프팬의 관심을 끌었다. 한국에서 열리는 유일한 PGA 대회인 'CJ컵'을 두 달 앞두고 홍보차 열린 행사였다.

얼마 전 KPGA 소속 정상급 선수들이 'G투어 프로 인비테이셔널'에 출전해 높아진 스크린 골프의 위상을 실감케 했다.

상금도 많이 늘었다. 2012년 8억원으로 시작한 G투어 상금은 이젠 15억원으로 올라 누적 상금 100억원 시대를 맞았다. 스폰서 업체도 롯데렌터카에서 삼성전자, 삼성생명 등 굵직한 기업으로 이어졌다.

이처럼 프로선수들도 참가하는 골프 대회가 열리는 것은 무엇보다 스크린 골프의 인기 덕분이다. 한국레저산업연구소 레저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스크린 골프인구는 약 390만명이다.

스크린 골프업체인 골프존을 기준으로 라운드 횟수가 2010년 3042만회에서 지난해 6000만회로 2배 넘게 증가했다. 스크린 골프 시장 규모는 2017년 기준 1조2819억원가량이다. 실제 골프장 시장의 절반에 달한다.

현재 국내 스크린 골프업체는 크게 골프존을 선두로 카카오VX와 SG골프가 추격하는 양상이다. 골프존이 한때 80%를 점유했지만 현재 56%로 내려앉았다.

이들 업체가 내놓은 스크린 장비는 타구 방향 인식 센서를 비롯해 하드웨어 정확도에선 별 차이가 없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그래픽 구현력에서 업체별로 약간의 특성이 있다.

임팩트 후 공 움직임이 화면에 반영되는 속도와 공이 페어웨이에 떨어져 얼마나 자연스럽게 굴러가는지 등이 기술력 차이다.

최근에는 "티 높여줘" "멀리건 쓸게" 등 음성인식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한 스크린 장비(카카오VX)도 나왔다. 카메라 센서를 이용해 스윙 자세를 다각도로 촬영해 프로선수 동영상과 비교하는 단계까지 진화했다.

평면이 아닌 약간 커브형의 파노라마 형태 화면에서 골프장에 온 듯한 몰입감을 주고 눈의 피로도 덜어주는 제품도 있다. SG골프는 이런 선명한 그래픽 기술을 특징으로 내세운다.

외신에서도 간혹 명사들이 스크린 골프를 하는 장면이 나와 열기를 실감케 한다. 타이거 우즈는 2016년 음주와 부상에서 회복했음을 보여주기 위해 스크린 골프장에서의 아이언샷 장면을 트위터에 올렸다.

골프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작년 백악관에 5만달러(약 5600만원)를 들여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사용하던 스크린 골프 장비를 낡았다며 교체했다. 참고로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백악관에 퍼팅그린을 놓았다.

골프장은 2008년까지만 해도 담배와 술, 여자 도우미 등으로 인해 '골프방'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이제 첨단 정보기술(IT) 기기로 무장한 디지털 골프문화로 정착했다.

안전문제는 좀더 신경 쓸 부분이다. 지난해 7월 대구 남명동에서 스크린 골프장 화재로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18년에는 부산 북구 골프장에서도 화재가 났다.

스크린 골프 요령은 유튜브 동영상 등으로 많이 소개된다. 전문가들의 조언을 간추리면 기기를 이용한 거리와 방향 측정이 제일 중요하다. 기기 조작 미숙과 불편함이 스크린 골프 흥미 감소의 가장 큰 요소다.

드라이버샷은 필드와 비슷하고 스크린에서는 자연스럽게 방향이 설정돼 필드보다 에이밍하기 편하다. 바람을 잘 감안해야 한다.

스크린에선 아이언샷으로 거리를 내기 위해선 특히 뒤땅을 내지 않고 정확하게 임팩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운스윙 때 손목을 풀지 않고 좀 더 끌고 오는 것을 명심하면 좋다.

필드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아이언샷에서는 무엇보다 공을 띄우는 게 중요하다. 롱 아이언을 제외하곤 공을 그린에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스크린에선 퍼팅이 가장 어렵다는 사람이 많다. 경사와 방향을 잘 계산해 스크린에 맞는 감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경기 임하기 전 충분한 기기 조작법 숙지가 스크린 고수 탄생의 첫 번째 조건이다.

추운 겨울 스크린으로 골프 욕구를 달래고 스윙도 가다듬으면 어떨까.

[정현권 골프 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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