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경X인터뷰] '야구인생 9회말 투아웃' LG 박용택 "지기 싫어 버텼던 19년, '우승택'으로 마무리 하고파"

잠실 |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2020. 1. 2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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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마치고 은퇴를 선언한 LG트윈스의 박용택이 스포츠경향과 만났다. 박용택은 은퇴를 우승으로 장식하고 싶다고 말했다.박민규 선임기자

강산이 변한다는 10년 세월이 세 번이나 흘렀다. 프로 입단 후 2139경기나 뛴 박용택(41·LG)은 그 어떤 경기, 그 어떤 순간보다 1990년 6월3일을 또렷이 추억했다. 자신의 인생이 바뀐 날이다. 박용택은 아버지와 마주하고는 “야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늘 책임감을 강조하셨다. 그때 5학년이던 내게 ‘이제 야구를 시작하면 네 인생은 야구가 되는거다. 야구 선수로서 인생을 사는거다. 그런 다짐이어야 야구를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려웠던 말 아닌가. 그렇지만 저는 정말 그런 마음가짐으로 야구를 시작했다.”

그렇게 야구선수의 길로 접어들어, 30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다. 2020년 ‘야구 선수’ 박용택의 마지막 시즌이 시작된다. 마지막 스프링캠프를 앞둔 박용택은 스포츠경향과 인터뷰에서 “30년간 뒷바라지 해주신 부모님이 새해에 ‘올해는 마지막으로 선수 아들을 볼 수 있으니 지방 경기도 오시겠다’고 하시니 조금 실감이 나는 것 같다”고 했다. 평소와 같은 미소였지만, 30년 야구 인생의 감정이 미세하게 녹아들었다.

올 시즌 마치고 은퇴를 선언한 LG트윈스의 박용택이 스포츠경향과 만났다. 박용택은 은퇴를 우승으로 장식하고 싶다고 말했다.박민규 선임기자

■거북이처럼, 끈기로 지킨 그라운드

KBO리그 최고의 인기구단에서 간판스타로만 걸었던 19년. ‘꽃길’만 있었을 듯하지만, 그의 야구 인생은 우화 ‘토끼와 거북이’의 거북이와 비슷했다. 묵묵히 그만의 길을 걸어왔다. “야구를 좋아하지만, 다시 태어나면 야구 못할 것 같다”는 그의 말에서 스스로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아왔는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박용택은 “최선을 다하다 보면 막연히 될 것이라는 생각만으로 야구를 해왔다. 실패하거나 뒤쳐질 때도 있었지만 관두겠다는 말이나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며 “다른 건 몰라도 버티는거 하나는 자신있다. 조금 친한 사람들은 나를 ‘좀비’나 ‘바퀴벌레’같은 별명으로 부른다”고 말했다.

그렇게 버텼던 시간이 모여, 30년이 됐다. 박용택은 “누군가가 ‘야구를 잘했다’고 말하면 여전히 쑥쓰럽다. 그렇지만 ‘박용택이 정말 열심히 했던 선수였지’라고 한다면 자부심이 있다. 스스로도 그런 부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했다.

박용택은 야구 커리어 후반기에 더 화려한 성적을 냈다. 20대의 박용택은 화려함으로 대표됐다면, 30대에는 꾸준함의 상징이 됐다. “요즘에는 대기만성형 선수라는 말도 듣는다”고 웃은 박용택은 “시간이 흐르면서 주변의 평가도 달라지는 것 같다. 20대에는 뛰어난 재능에도 열심히 하지 않는 선수라는 말도 들었다. 나는 그냥 누구에게도 지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운동했다”고 담담히 말했다. 마지막 1년도 변함은 없다.

■이병규처럼, 사랑해요 LG~

박용택은 요즘 말로 ‘성덕(성공한 덕후)’라 불릴만 하다. 입단하기 전부터 LG팬이었다. 유지현, 서용빈, 이병규 등 LG의 간판 선수들을 동경했다. 운명처럼 LG는 박용택이 야구를 시작한 1990년 창단했다. 창단 30주년인 올해 박용택은 은퇴한다.

박용택은 LG의 화려한 좌타 계보를 잇는 선수로 사랑을 받아왔다. 박용택의 입단 첫 룸메이트는 양준혁이었다. 그가 특별히 좋아했던 선배는 ‘적토마’ 이병규였다. “LG를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LG 선수들은 다 좋아했는데 이병규 선배를 늘 동경해왔다. 훌륭한 좌타자 선배들의 조언을 들으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데뷔 첫해에 이병규와 타율을 놓고 내기했던 것을 기분좋게 떠올리기도 했지만, 그에겐 롤모델이면서도 넘어야 할 경쟁상대이기도 했다. 박용택은 “어쩌면 좋아하는 선배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실력 발전에 도움이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용택은 “내가 정말 좋아했던 팀에서, 그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야구선수로 누구나 누릴 수 없는 기회를 누린 나는 행운아”라고 고백했다. 그가 뛰던 시절, 긴 암흑기를 보낸 시간을 떠올리면서는 “내가 앞장서 이끌어야 할 위치에서 늘 그 정도밖에 하지 못했다는 데 스스로에게 실망했던 때가 많다”며 묵직하게 누르고 있는 자신의 한계를 자책하기도 했다.

올 시즌 마치고 은퇴를 선언한 LG트윈스의 박용택이 스포츠경향과 만났다. 박용택은 은퇴를 우승으로 장식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민규 선임기자

■배영수처럼~, 마지막엔 ‘우승택’으로

박용택에게 한국시리즈 우승은 한으로 남았다. 2002시즌 데뷔와 함께 처음 밟았지만, 그게 마지막이었다. 박용택은 “내가 지금까지 운동할 것이라는 생각도 못했지만, 반대로 그때 한국시리즈가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것도, 우승을 못하고 마지막 시즌을 맞을 것이란 생각도 더더욱 못했다”고 고백했다. LG는 1994년 이후 한국시리즈 우승이 없다. 2002년 좌절이 가슴 속에 젖어든 것은 삼성이 그 우승으로 왕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박용택은 “매년 한국시리즈를 보면서 그 때 상황을 생각해보곤 한다. 그 해에 우리가 했다면 저도 우승 반지가 한 손을 넘어가지 않았을까요?”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마지막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두산이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는 순간, 헹가래 투수가 된 배영수를 떠올린 박용택은 “어쩌면 내가 꿈꾸는 장면일 수 있다”며 여전히 한국시리즈 7차전 2사 만루에서 자신에게 찾아올 찬스를 기대했다. 배영수는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벤치의 실수로 등판 기회를 잡았고, 베테랑 투수답게 과감한 투구로 팀 승리를 지켜내면서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배영수는 시즌 뒤 은퇴했다. 박용택은 “마음같아서는 200안타도 치면 좋겠지만, 건강하게 한 시즌을 뛰고 싶다. 무엇보다 진심은 내가 아무것도 못해도 좋으니 우승만 해도 좋겠다”고 2020시즌 소망을 이야기했다.

박용택은 ‘별명 부자’다. 올해는 ‘우승택’이라는 별명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욕심을 이야기했다. ‘해피엔딩’을 꿈꾸는 박용택은 홀쭉해진 모습으로 새 시즌을 준비 중이다. 박용택은 “18년 동안 가장 많이 살을 뺀 시즌”이라고 했다. 가장 좋을 때인 2009시즌 몸상태로 새 시즌 출발선에 서는 게 목표다.

잠실 | 이정호 기자 alp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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