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DUGOUT Dream] KIA 타이거즈 이창진

대단한미디어 입력 2020.03.03. 12:00 수정 2020.03.0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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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 거듭되면 운명이다

내가 아는 이창진은 늘 싱글벙글 웃고 있는 사람이다. 정확히 ‘야구를 할 때’ 빼고는 말이다. 그의 해맑은 미소가 사람들의 눈에 띄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남들은 한 번도 하기 어려운 두 번의 트레이드가 그 시작이었고, 이후에는 제레미 해즐베이커의 웨이버 공시, 그리고 외야 글러브조차 없던 그에게 내려진 포지션 전환 오더가 마지막 우연의 퍼즐이었다. 우연이 거듭되면 운명이라고 했다. 그 운명을 만든 건 이창진의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 덕분이었다. 늦게 핀 꽃이 더 아름답다고 했다. ‘노력’이라는 반짝이는 빛을 가진 이창진은 ‘오랫동안 팬들에게 사랑받는 야구선수’가 될 운명임에 분명하다.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소경화 Location 홀리데이 인 익스프레스 호텔 & 스위트 포트마이어스


#세 번째 유니폼

이창진의 출발지는 부산이다. 인천고-건국대를 나와 2014년 2차 6라운드로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고, 퓨처스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보여주며 키워볼 만한 유망주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뭔가를 보여주기도 전 대형 트레이드에 묶여 KT 위즈로 팀을 옮겼고, 이후 상무 야구단에서 군 복무를 해결했다. 이쯤 하면 됐나 싶지만, 아직도 그의 배경은 더 남았다. 2018년 6월 7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 종료 직후 오준혁과 1:1 트레이드로 또 한 번 옷을 갈아입게 된 것이다. 대졸 선수로서 그의 나이 스물여덟에 입게 된 세 번째 유니폼, 가혹하다 싶지만 그의 야구 인생에 포기란 없었다.

<더그아웃 매거진>은 처음이에요. (2월 9일 인터뷰)

유명한 선수들만 하는 거 아닌가요? 너무 좋네요. (웃음)

이창진 선수에게 2019년은 격변의 해가 아니었나 싶어요.

프로에 들어와서 풀타임이란 걸 처음 뛴 거잖아요. 마냥 행복하고 기뻤죠. 정말이지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갔어요. 제가 뭘 했는지도 모를 만큼이요. 근데 그 수많은 해 동안 뭘 했나 싶은 마음에 스스로 반성하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신인왕 후보였기에 어린 선수 혹은 원래 KIA 선수로 아는 분이 많지만, 올해 나이가 서른에 두 번의 트레이드를 경험했어요.

솔직히 트레이드된 선수 모두가 저와 같은 마음은 아니겠지만, 팀을 옮기면서 원소속팀에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어요. 하필 그때 부상이었거든요. 빨리 나라는 사람을 보여주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 마음이 좋지 않았죠.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오면서 ‘이 트레이드가 마지막이다, 이 팀이 마지막이다’라고 다짐했어요. (대졸이기에 더 조급한 마음이 들었겠어요.) 어쩔 수 없는 조급함이죠. 그래서 고졸 선수들보다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어요.

팀 적응은 수월했나요?

모두 착해서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특히 (최)형우 형과 (나)지완이 형이 잘 챙겨주셨어요. (한)승택이랑 (황)윤호도 저를 잘 따라줬고요. 정말 착한 동생들이에요.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지난 시즌 드디어 빛을 봤어요. 2019 스프링 캠프 때 기량 발전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이 정도의 활약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뒤에서 꾸준히 노력했기에 자신은 있었어요. (외인의 부진이 뜻하지 않은 기회가 되기도 했고요?) 저한테는 큰 기회였죠. (웃음)

그에게 고마운 마음도 있나요?

감사하죠. 밥이라도 한 끼 하고 보냈어야 하는데. (지금 호주에서 바쁘게 지내고 있더라고요.) 그렇더라고요. 영상 보니까. (찾아보고 있어요?) 아뇨. 우연히 봤어요. 우연히!

신인왕 얘기도 안할 수가 없어요.

신인왕 자격이 된다는 것도 시즌 중반에서야 알았는걸요. 노력했으니까 후회는 없어요. 저보다 잘해서 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노력 앞에 장사 없다

“신인왕을 놓친 것에 아쉽지 않냐”는 질문에 “노력했으니 후회는 없다”라고 대답하는 이 사람. 그렇다. 스스로 노력했는데 상이 무슨 대수고 타이틀이 무슨 소용이겠나. 프로 선수가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한 건데 어쩌면 우린 너무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창진은 그저 당연한 것을 당연히 하고 있을 뿐이었다. 팀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그 기회를 잡은 건 꾸준한 준비와 노력 덕분이었어요. 이창진의 이름 앞에는 열정, 근성, 끈기 등의 단어가 따라붙잖아요.

사실 그 단어들이 저한테만 해당하는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모든 선수가 뒤에서 남몰래 땀 흘리고 있으니까요. 저는 운이 좋았어요.

항상 야구장에 1등으로 나오는 사람 치고 너무 겸손한 거 아닌가요?

그건 집에 있어도 별로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거예요. 그리고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남들에게 뒤처지는데 당연히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를 내야죠. (그동안도 다 열심히 했을 텐데 왜 이제야 빛을 본 걸까요?) 열심히는 했지만 실력이 부족했어요. 기회를 덜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외야 전향이 좋은 기회가 된 걸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외야로 나간 게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조금 갑작스러운 오더였죠?) 그때는 외야 글러브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으니 매우 갑작스러웠죠. 근데 그게 최고의 기회가 됐네요.

이름 앞에 붙는 여러 수식어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수식어는 무엇인가요?

이름 앞에 ‘빛’을 써주시더라고요. 제가 생각해도 2019년에 빛을 본 것 같아 ‘빛창진’이라는 수식어가 제일 마음에 들어요.

본인보다 오히려 가족들이 더 달라진 입지를 체감할 것 같아요.

부모님께 많은 연락이 온다고 하더라고요. 칭찬을 많이 해주신다고요. 아들로서 조금이나마 효도를 한 것 같아 뿌듯합니다.


연봉도 많이 올라서 고과 1위를 달성했어요.

구단에서 잘 챙겨주셨어요. 정말 만족하고, 올해는 작지만 저를 위한 선물을 하나 할까 해요. 아직 어떤 걸 선물할 지는 못 정했지만요. 후배들에게 밥도 사야죠.

내외야 모두 가능한 유틸리티 선수다 보니 활용도가 높지만, 외야 경험 부족에 따른 타구 판단 능력이 꾸준히 고쳐야 할 점으로 제기되고 있어요.

저 역시 공감하는 부분이고 앞으로 안고 가야 할 숙제라고 생각해요. 이번 캠프에서 그런 점들을 보완해서 올 시즌에는 팀에 도움이 돼야죠.

지금 KIA의 3루가 무주공산이고, 레전드 3루수 출신인 맷 윌리엄스 감독이 새롭게 지휘봉을 잡았기에 노하우를 배워보고 싶은 욕심도 있을 법해요.

욕심은 들어요. 하지만 ‘내가 뭘 해야 더 잘할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했을 때 외야를 봐야 한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현재는 내야보다 외야가 더 자신 있고요.

타격 얘기도 해봐야겠죠. 2할 7푼에 첫 시즌 100안타 달성까지 좋은 활약을 보여줬으나 삼진이 많은 게 아쉽겠어요.

안 그래도 시즌 끝나고 기록을 살펴보는데 삼진이 엄청 많더라고요. 풀타임 첫해다 보니 투수와 싸움하는 방법을 몰랐어요. 야구를 20년을 했는데 아직도 어렵네요. (아무리 오래 해도 어려운가 봐요.) 야구란 게 10번 나가서 3번만 쳐도 잘 치는 건데 좋은 투수를 만나면 그게 쉽지가 않네요. 어떤 일이든 하면 할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워낙 다 열심히 하니까 야구 말고 다른 걸 해도 잘하지 않았을까요?

머리가 나빠서 운동을 해야 했어요. (웃음) (설마 공부하기 싫어서 야구한 건가요?) 맞아요. 부모님이 학원 보내면 맨날 땡땡이쳐서 야구를 시키신 거예요. 훈련은 한 번도 땡땡이 안 쳤거든요. 몸으로 하는 게 정말 즐거웠어요. 행복한 유소년 시절을 보냈죠.

타격 관련해서는 이번 괌 개인 훈련 때 최형우 선배에게 많은 걸 배우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타석에서 투수와 대치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셨어요. 또 심적으로 슬럼프가 오거나 컨디션이 떨어졌을 때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많은 대화를 나눴어요.

최형우 선배와 1년 본 거잖아요. 어떻게 같이 가게 된 건가요?

제가 졸랐어요. 데리고 가달라고요. (시즌 중 이태원 쇼핑도 따라가고, 괌도 따라갔네요.) 그때도 제가 간다고 했어요. 형우 형이랑 최대한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어서요.

이태원 쇼핑 멤버인 박준태 선수가 키움 히어로즈로 이적해 씁쓸하겠어요.

당시 준태한테 문자를 했어요. ‘당장은 마음이 안 좋을 수 있지만, 멀리 내다보면 너한테 기회일 수 있다’고요. 저도 트레이드를 해봤기 때문에 여러 얘기를 나눴죠. (박준태 선수는 뭐라고 하던가요?) 제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고, 가서 열심히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기쁨을 주는 사람

그에게 팬이 어떤 존재인지 물었다. 그러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기쁨”이라고 대답했다. 김이 팍 식는 허무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얼굴을 보니 바로 이해가 갔다. 팬 이야기에 내내 행복한 미소를 짓는데 그의 대답이 진심이 아닐 리 없었다. 사랑은 받을 줄 아는 사람과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 이창진은 전자였다. 게다가 주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스스로 무뚝뚝하다고 평하지만, 팬들이 좋아하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용기를 가진 사랑꾼이었다.

그동안의 야구 인생을 돌이켜봤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한 장면을 꼽는다면?

프로 데뷔 첫 홈런을 쳤을 때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그라운드를 도는데 머릿속이 하얘지더라고요. 너무 꿈꿔온 순간이었고, 행복했어요.

활약은 그라운드 밖에서도 이어졌어요. 구단 유튜브에서 ‘스윗창진’으로 활약하고 있죠?

창피하네요. (웃음) 그냥 그런 모습을 팬분들이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올해는 더 많이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스윗함을 보여준다는 얘기인가요?) 노력해볼게요. (웃음)

실제 성격도 스윗한 편인가요?

사실 전 내성적이고 무뚝뚝한 사람 같아요. 야구장에서는 최대한 활발하게 하려고 하는데 집에 가면 조용히 혼자 있는 게 좋아요. 혼자 쇼핑하고 혼자 영화 보고요.

팬들과 있을 때는 활발한 모습이던데요?

팬분들을 만날 때면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특히 제 이름을 불러주실 때 정말 기뻐요. 무명 시절이 길어서 그런지 팬들의 사랑에 목말랐나 봐요. 앞으로도 제 이름 많이 불러주시면 좋겠어요.

그럼 팬 여러분께 이창진 선수를 만날 수 있는 몇몇 장소를 공유하는 게 어때요?

터미널에 오시면 볼 수 있어요. 유스퀘어 근처에 자주 출몰합니다. (웃음)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선수인데요. 올해 목표가 궁금합니다.

부상 없이 풀타임으로 뛰는 것 외에는 개인적인 목표를 정해 두지 않았고, 팀이 5강 싸움을 하는 데 보탬이 되는 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마지막 질문이에요. 이창진의 야구는 어떤 야구인가요?

끈질긴 야구, 바퀴벌레처럼 죽지 않는 야구요. 타석에서든 수비에서든 쉽게 죽지 않고 끈질기게 하고 싶어요.

팬분들께 인사하고 마칠까요?

작년에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올해도 좋은 모습 보여드릴 테니 야구장 많이 찾아와서 응원해주세요!

***

인터뷰 며칠 후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이창진이 고질적인 허리 디스크 통증으로 조기 귀국한다는 얘기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환하게 웃으며 훈련하고 있던 그가 어느 순간 외야에서 안 보인다 싶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였다. 김주찬의 외야 훈련 합류가 빨라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인터뷰 내내 부상이 없는 게 목표라 했던 그가 부상으로 인한 중도 귀국이라니,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이 얼마나 착잡하고 쓰렸을지 감히 가늠이 가지 않는다. 핵심 자원인 이창진의 이탈로 타이거즈의 팀 구상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팬도, 팀도 그의 복귀가 간절하다. 하지만 부디 서두르진 말길 바란다. 느려도 건강하게 돌아오길, 그의 SNS 속 글처럼 ‘조급함은 내려놓고, 연약함은 내어놓고’ 말이다.


더그아웃 매거진 107호 표지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0년 107호(3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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