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 감독, 프로배구의 김경문 이미지 벗을까? [발리볼 비키니]

황규인 기자 입력 2020. 3. 1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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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 한국 야구 대표팀 감독(왼쪽)과 신영철 프로배구 우리카드 감독. 동아일보DB·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야구에 김경문 감독이 있다면 배구에는 신영철 감독이 있습니다.

두 감독 모두 중하위권 팀을 상위권 팀으로 만드는 데는 일가견이 있지만 정작 리그 우승 트로피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그런 점에서 신 감독에게는 2019~2020 시즌은 이 오명을 벗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우리카드는 1월 4일 경기서 대한항공을 3-0으로 물리치면서 남자부 1위로 도쿄(東京)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 휴식기를 맞았습니다.

그 뒤로도 (잠시 경기 숫자 차이로 1위를 내줬던 걸 제외하면) 줄곧 1위를 지키면서 마지막 6라운드 일정을 소화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변수가 생겼습니다. 한국배구연맹(KOVO)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 때문에 3일부터 리그 진행을 중단시킨 것.

그 뒤로 열 하루가 흘렀습니다. 언제 리그를 재개할지, 재개한다면 정규리그 일정을 모두 소화할 수 있을지, 바로 플레이오프를 진행한다면 어떤 식으로 ‘봄 배구’를 치를지 아직 아무 것도 정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만약 KOVO에서 봄 배구 없이 이대로 2019~2020 시즌 종료를 선언하게 되면 신 감독은 (과정이야 어찌됐든) 우승 감독 반열에 이름을 올릴 수 있습니다.

우리카드 신영철 감독.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그러나 신 감독은 무망지복(無望之福) 같은 건 바라지 않는 눈치입니다. 그는 “적어도 챔피언결정전은 원래 예정대로 5전 3선승제로 맞붙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기자와 만난 신 감독은 “이미 외국인 선수가 귀국한 팀이 적지 않다. 이미 사실상 리그를 접은 팀끼리 맞붙는 경기는 팬들도 보고 싶어하지 않으실 것”이라며 “가능하면 (2, 3위가 맞붙는) 플레이오프부터 아니면 챔프전이라도 정상적으로 진행하는 게 팬들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현대캐피탈이 단기전에서 얼마나 무서운 팀이 될 수 있는지도 알고, 대한항공 역시 경험면에서 우리가 감히 상대하기 어려운 팀이라는 걸 잘 안다”면서도 “우리가 한 단계 더 좋은 팀이 되려면 승부를 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실 신 감독은 대한항공 조종간을 잡고 있던 2010~2011 시즌 팀을 정규리그 1위로 이끈 적은 있습니다.

그리고 올 시즌 분위기도 이때와 비슷합니다. 적어도 엘로 평점 시스템(Elo Ratings)으로 따지면 확실히 그렇습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League OF Legend’나 ‘월드 오브 탱크·World Of Tank’ 게이머라면 엘로 평점 시스템이 뭔지 잘 아실 테니 다음 단락은 건너 뛰셔도 좋습니다.)

● 엘로 평점 시스템이란 무엇인가?

세계 체스 명예의 전당에 있는 아르파드 엘로 박사 현판. 세계 체스 명예의 전당 홈페이지

물리학 박사이자 체스 고수였던 아르파드 엘로 미 마르케트대 교수(1903~1992)는 1960년 새로운 체스 세계랭킹 계산법을 만들어 발표했습니다.

엘로 평점을 계산할 때는 각 선수(또는 팀)에게 1500점을 주는 걸로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각 선수가 모두 1500점이니까 맞대결 예상 승률을 각각 0.500이라고 간주합니다. 실제로 경기 결과가 나오면 이긴 팀에서 미리 정한 비율에 따라 점수를 가져 옵니다. 예를 들어 100점씩 주고 받는 상황이라면 이긴 팀은 1600점, 진 팀은 1400점이 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점수 차이가 생기게 됐을 때는 자기보다 점수가 높은(더 강한) 상대에게 이겼을 때는 점수를 많이 가져오고 졌을 때는 조금 주는 방식으로 다시 점수를 계산합니다. 물론 거꾸로 자기보다 약한 상대에게 이겼을 때는 점수를 조금 가져오고 졌을 때는 많이 내줍니다.

여기서 ‘미리 정한 비율’이나 점수가 많고 적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엘로 박사가 정한 공식에 따라 결정합니다.

이 공식을 바탕으로 각 종목별 특징에 따라 가중치를 주는 것도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 축구 대표팀(1464점)은 원래 31일 스리랑카(853점)와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을 치를 예정이었습니다.

만약 이 경기에서 한국이 이기면 랭킹 포인트 2.19점을 따는 게 전부지만 패했을 때는 22.81점을 내줘야 합니다. 심지어 한국은 무승부일 때도 10.31점을 내주게 됩니다.

그러니까 FIFA 역시 이 엘로 평점 시스템을 바탕으로 랭킹을 계산하고 있는 겁니다. 지난해 월드컵 이후 이렇게 바꿨습니다.

국제배구연맹(FIVB)도 올해 1월 새 랭킹 산정 방식을 발표했는데 역시 엘로 평점 시스템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 양강 우대

지난달 9일 5라운드 맞대결 때 신영철 우리카드 감독과 박기원 대한항공 감독.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그러면 프로배구에도 이 평점 시스템을 적용할 수 있겠죠?

리그 중단 시점(3일) 기준으로 남자부에서 엘로 레이팅이 제일 높은 팀은 역시 우리카드(1681점)였고 대한항공(1651점)이 바짝 뒤를 쫓았습니다.

리그 1, 2위 팀 엘로 평점을 합쳐 3300점을 넘기는 건 이번 시즌이 (예상하시는 것처럼) 2010~2011 시즌 이후 이번이 처음입니다.

1, 2위 엘로 평점 합계 1~3위는 전부 프로배구 초창기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이 전통적인 라이벌 구도를 이룰 때 나왔습니다. 그만큼 이번 시즌 우리카드, 대한항공도 막강한 양강 구도를 구축하고 있는 겁니다.

2010~2011 시즌에는 지금처럼 승점이 아니라 승률로 순위를 정했습니다.

만약 현재 방식으로 승점을 계산하면 대한항공이 75점, 현대캐피탈이 62점으로 차이가 적지 않았던 게 사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우리카드(69점)와 대한항공(65점)이 승점 4점 차이로 순위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번 시즌이 그때보다 더 치열한 양강 구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 대권 굳히기?

2010~2011 남자부 챔프전 당시 삼성화재 유광우(가운데). 한국배구연맹(KOVO) 제공

그런데 2010~2011 시즌 챔피언은 대한항공도 현대캐피탈도 아닌 3위 삼성화재였습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을 2승 1패로 꺾은 삼성화재는 플레이오프에서 현대캐피탈에 3전 전승을 기록한 데 이어 챔프전에서도 대한항공을 4전 전승으로 물리치면서 권토중래(捲土重來)에 성공했습니다.

단기전에서는 역시 ‘경험’(과 몰방·沒放)을 무시할 수 없는 것.

신영철 당시 대한항공 감독이 2010~2011 시즌 챔프전에서 패한 뒤 고향 후배 신태용 당시 프로축구 성남 일화 감독과 함께 위로주를 마시고 있는 모습. 사진 기자가 찍은 기사용 사진입니다. 동아일보DB

올 시즌 3위 현대캐피탈 역시 엘로 평점은 1488점으로 2010~2011 삼성화재(1557점)보다 떨어지는 상태지만 신 감독 이야기처럼 단기전에는 갑자기 전력을 끌어올린다고 해도 이상한 팀이 아닙니다.

(지난 시즌 챔프전 때 이승원이 그렇게 잘할 거라고 예상하셨던 분 손 -_-)/)

그러나 신 감독은 “올 시즌 맞대결 성적이 5승 1패”라며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면 2승 3패로 뒤쳐진 상태로 마지막 6라운드 맞대결을 앞두고 있던 대한항공은 좀 부담스럽지 않을까요?

신 감독이 말 없이 미소 짓는 사이 함께 자리한 구단 관계자가 “김규민이 빠졌다”고 슬쩍 운을 띄웠습니다.

맞습니다. 대한항공 주전 센터로 활약한 김규민은 2일 입대했고 그러면 상대적으로 센터가 약한 우리카드도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과연 계산과 바람대로 이번 시즌 신 감독이 드디어 ‘콩라인’ 이미지를 벗고 대권을 거머쥘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알려면 얼른 프로배구 경기가 다시 열려야 할 터.

모쪼록 코로나19로 편찮으신 분들 없이 프로배구 경기를 치를 수 있는 날이 하루라도 빨리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 봅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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