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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즈 vs 세후도, 방패와 창의 대결

김종수 입력 2020.05.0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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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FC 체급별 구도를 말한다⑫] 밴텀급(2)

[오마이뉴스 김종수 기자]

최근 UFC 밴텀급은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쟁쟁한 밴텀급 경쟁구도 속에서 플라이급에서 날아온 '더 메신저(The Messenger)' 헨리 세후도(33·미국)가 깜짝 챔피언에 올라버린 것이다. 플라이급에서 전설로 불리던 '마이티 마우스' 드미트리우스 존슨(33·미국)을 누르고 챔피언을 차지했던 세후도는 기세를 몰아 밴텀급까지 장악하며 2체급 석권의 기염을 통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55kg급 금메달을 목에 건 뒤 UFC 2체급 챔피언의 업적까지 달성한 세후도는 자신의 커리어에 굉장한 자부심을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다. 

이전까지 밴텀급은 '지배자(The Dominator)' 도미닉 크루즈(35·미국), '마법사' TJ 딜라쇼(34·미국), '노 러브(No Love)' 코디 가브란트(29·미국)가 물고물리는 삼각구도로 판도가 흘러갔다. 이를 입증하듯 챔피언 타이틀은 셋이서 주고니 받거니 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가운데 세후도가 딜라쇼가 징계를 받아 비워둔 밴텀급 타이틀을 놓고 말론 모라에스(32·브라질)와 격돌해 정상의 새로운 주인이 됐다.

 
 '더 메신저' 헨리 세후도(사진 왼쪽)와 ‘지배자’ 도미닉 크루즈
ⓒ UFC
 
크루즈·딜라쇼·가브란트, 물고 물리던 삼각구도

초대 챔피언 크루즈가 거듭된 부상으로 '사이버 파이터'로 전락해버린 가운데, 차기 제왕으로 낙점받은 선수는 헤난 바라오(33·브라질)다. '크루즈를 능가하는 괴물이 나왔다'는 평가 속에서 기세등등했던 바라오였으나 새로운 강자의 등장에 이내 흘러가는 조연으로 전락하고 만다.

바라오를 끌어내리고 본격적인 테크니션의 시대를 연 주인공은 딜라쇼였다. 이전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딜라쇼는 바라오에게 2번의 완벽한 절망을 안기며 식어가던 밴텀급 열기를 다시금 끓어 올렸다. 딜라쇼의 선수 커리어는 스텝왕이 되기 전과 되기 후로 나뉜다. 쓸만한 타격을 갖춘 레슬러 정도로 평가받던 딜라쇼는 명 타격코치 드웨인 루드윅과의 트레이닝을 통해 자신의 격투인생을 뒤바꿀 스텝을 장착하게 된다.

부드러우면서도 강약조절이 적절하게 가미된 딜라쇼의 스텝은 이전 '스텝왕'으로 불리던 크루즈 못지않았다. 옥타곤을 넓게 쓰며 상대의 공격 거리 밖에서 기회를 엿보다 빈틈을 발견하면 삽시간에 파고들어 공격을 펼치고 반격이 나오려는 찰나 잽싸게 빠져버리기를 반복한다.

사우스포 자세에서 훅과 어퍼컷이 나오다 느닷없이 오소독스로 전환하며 킥을 차는 등 자연스러운 엇박자 타격에 상대의 리듬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되어버린다. 거기에 타이밍 태클까지 섞여 위력은 더욱 극대화된다. 플라이급 존슨 이상가는 독재자가 밴텀급에 등장한 듯 보였다.

딜라쇼의 장기집권 전망을 깨고 밴텀급 구도를 혼돈으로 몰고 간 것은 돌아온 크루즈였다. 오랜만에 옥타곤에 복귀한 크루즈는 5라운드 접전 끝에 딜라쇼를 누르고 또다시 챔피언에 등극했다. 마치 '본래부터 이곳의 왕은 나다'라고 선언하듯 가장 중요한 순간에 컴백해 왕권을 탈환해버린 것이다.

부상으로 챔피언을 박탈당했을 뿐 실력은 여전하다는 것을 입증한 크루즈의 발목을 잡은 것은 신성 가브란트였다. 브라질산 '최종병기'로 불리던 토마스 알메이다(29·브라질)를 꺾고 체급내 최고 젊은 피의 존재감을 입증한 가브란트는 상승세를 앞세워 크루즈마저 꺾고 새로운 젊은 황제로 등극하는 듯 했다.

혼돈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절치부심한 딜라쇼는 과거 한솥밥을 먹었던 가브란트를 2차례에 걸쳐 눌러버리고 자신의 왕국을 공고히 했다. 무패질주를 달리던 가브란트는 딜라쇼에게 연패한 이후 특유의 기세가 확 꺾이고 말았다. UFC 235대회서 페드로 무뇨즈에게마저 패하며 3연패 수렁에 빠져있다.

 
 TJ 딜라쇼(사진 왼쪽)와 헨리 세후도
ⓒ UFC
 
딜라쇼의 몰락, 세후도의 급부상

가브란트를 완벽히 꺾은데 이어 크루즈마저 다시금 부상으로 잠정휴업에 들어가게 됨에 따라 밴텀급 정상대전의 승자는 사실상 딜라쇼로 굳혀진 듯 했다. 딜라쇼는 밴텀급 장악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쉼 없이 존슨을 도발하는 등 이전부터 아랫체급을 호시탐탐 노렸던 딜라쇼는 결국 새롭게 챔피언에 오른 세후도와 플라이급 타이틀을 놓고 격돌한다.

경기전 전력 평가에서는 딜라쇼의 우세가 예상됐다. 각체급 최강자끼리의 격돌에서는 아무래도 상위체급에서 활약하던 선수가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딜라쇼는 한술 더 떠 페더급 챔피언 '블레시드(Blessed)' 맥스 할로웨이(29·미국)까지 누르고 UFC 최초 세 체급 챔피언을 노리겠다는 포부까지 밝혔다.

당초 예상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세후도가 불리한 가운데 그나마 레슬링 정도가 변수로 꼽혔다. 올림픽 금메달에 빛나는 세후도의 레슬링 실력은 체급 내 최고 수준인지라 어떤 상대를 맞아서도 통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세후도가 존슨을 이길 수 있었던 배경에도 레슬링의 힘이 컸다.

결과적으로 세후도는 장기인 레슬링을 쓰지도 않았다. 딜라쇼는 세후도의 레슬링을 경계하며 타격전을 벌이려했다. 적어도 스탠딩 싸움에서 딜라쇼가 무너지는 그림은 예상하기 힘들었다. 세후도는 딜라쇼의 예상보다 더 빠르고 파워풀했다. 타격을 주고받는 상황에서 세후도의 라이트 훅이 귀 뒤쪽에 적중됐고 충격을 받은 딜라쇼는 앞으로 넘어졌다.

세후도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딜라쇼를 따라다니며 후속타를 쉬지 않고 냈다. 결국 쏟아지는 파운딩 세례에 심판은 경기를 중단시켰다. 딜라쇼는 자신이 몰린다 싶으면 머리를 숙이고 사이드로 빠지는 움직임을 통해 위기를 벗어나고는 했다. 하지만 세후도는 딜라쇼의 동선을 잘 파악하고 나온 듯 그림자처럼 달라붙으며 펀치를 적중시켰다.

1라운드 32초 만에 녹아웃으로 무너지며 자존심을 구긴 딜라쇼의 고난을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금지약물인 EPO 양성반응으로 타이틀을 박탈당할 위기에 처했고 결국 스스로 반납했다. 2년 출전 정지 징계를 받은 상태로 2021년 1월에야 복귀가 가능하다.

현재 딜라쇼는 복싱에 집중하는 상태로 알려져 있는데 세계 최고의 테크니션 복서중 한명인 '하이테크' 바실 로마첸코(32·우크라이나)와 함께 훈련하며 친분을 쌓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돌아온 크루즈, 밴텀급 터줏대감 위력 다시 보여줄까?

딜라쇼의 징계, 가브란트의 슬럼프 등으로 세후도의 밴텀급 침공이 장기화될 것 같은 상황에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카드가 등장했다. 다름 아닌 원조 제왕 크루즈가 돌아온 것이다. 기가 막힌 컴백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파이팅 스타일이 완전히 다른 유형의 선수 간 격돌인 만큼 흥미로운 대결 양상이 기대되고 있다.

본래 세후도는 조제 알도와 브라질에서 맞붙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일정이 헝클어지면서 크루즈에게 다시 기회가 왔다. 당초 여러 실력파 파이터들이 거론됐으나 네임밸류 등을 고려한 끝에 크루즈가 최종낙점 됐다. 둘은 오는 10일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에서 있을 UFC 249대회서 코메인 이벤트로 격돌할 예정이다.

'밴텀급 역대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크루즈는 기량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그는 WEC, UFC 밴텀급에서 활약하며 조셉 베나비데즈, 유라이아 페이버, 드미트리우스 존슨, TJ 딜라쇼 등 동시대 쟁쟁한 강자들을 줄줄이 잡아냈다.

사실 기본적인 무기만 살펴보면 도미닉 크루즈는 크게 강력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통산 22승중 판정승이 14승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강한 펀치나 킥을 갖고 있지도, 서브미션 결정력 등이 탁월한 것도 아니다. 이는 UFC에서 뛰면서 더욱 뚜렷해졌다. UFC에서 치른 6경기 중 5경기는 판정까지 갔다.

판정머신 크루즈는 주로지지 않는 경기를 통해 높은 승률을 만들어갔다. 어찌 보면 굉장히 지루한 타입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취향에 따라서는 경기가 매우 재미있다고 평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는 스탠딩, 그라운드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다양한 장면을 연출해내기 때문이다.

크루즈는 생 피에르처럼 재생필름을 무한반복 한다고 느낄 정도의 경기는 펼치지 않는다. 그의 경기에서는 창의적이고 신선한 움직임을 다각도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두수 세수 앞을 내다보는 뛰어난 두뇌 플레이를 앞세워 공수에서 상대를 꽁꽁 묶어버린다. 더불어 회피력이 좋은 것을 넘어 아예 공격 자체가 나올 타이밍을 끊어버리는 그의 플레이는 감탄사를 연발시킨다.

크루즈가 변화무쌍한 스텝과 경이로운 수싸움으로 상대를 잠식시킨다면 세후도는 우직하게 압박해 경기를 가져가는 유형이다. 체급내 최고 수준의 레슬링을 앞세워 상대를 쉴새없이 넘겨뜨리고 압박하는 것을 비롯 최근에는 타격까지 일취월장했다. 파워가 워낙 좋은지라 힘 싸움에서 밀리는 경우가 드물다. 기술이 아주 다양한 편은 아니지만 스탠딩, 그래플링에서 모두 부담을 줄 수 있어 매우 까다로운 파이터로 평가받고 있다.

실초와 허초를 반복하며 상대를 멘탈 붕괴 상태로 빠트리는 허허실실 신법의 크루즈와 일도양단의 기세로 폭풍처럼 상대를 삼켜버리는 세후도의 충돌은 누구의 승리로 마무리되어질까. 밴텀급 제왕을 놓고 겨룰 '왕들의 전쟁'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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