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터뷰]인니축협에 폭발한 신태용 "일일 확진자 천명인데 귀국 종용, 약속은 모르쇠"

박린 2020. 6. 1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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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니 확진자 4만명, 현지 훈련 요구
타국 전훈 요청에, 협회장 비협조적
항명한 로컬코치가 기술위원장 부임
FIFA랭킹 173위인데, 과도한 성적 기대
신태용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 감독. [중앙포토]


“인도네시아는 하루에 확진자가 1000명씩 나온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축구협회가 돌아와 현지에서 훈련을 시작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신태용(50)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 감독이 폭발했다. 17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신 감독은 “처음과 달리 말을 바꾸고 비협조적이다. 더는 못 참겠다”고 격정 토로했다.

신 감독은 지난해 12월 28일 인도네시아 축구협회와 4년 계약을 했다. 올해 1월부터 4년간 A팀, 23세 이하팀, 20세 이하 팀을 모두 맡고 있다. 중국프로축구 선전FC가 제시한 수십억원의 연봉 제의를 뿌리쳤고, 인도네시아축구협회의 전폭적인 지지 약속을 믿고 수락했다. 조코 위도도 대통령까지 나서서 “2021년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 개최국이니 잘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난 3월 인도네시아 정부는 축구대표팀 모든 활동을 멈추라고 통보했다. 인도네시아축구협회 허락을 받아 신 감독은 지난 4월4일 일시 귀국했다. 하지만 오랜 만에 만난 신 감독의 표정은 어두웠다.

신태용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 감독. [중앙포토]


-일정은 정해졌나.

“인도네시아는 하루에 코로나 확진자가 1000명씩 나온다. 그런데 인도네시아축구협회가 코치진과 돌아와 현지에서 훈련을 시작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17일 기준 누적 확진자가 4만400명, 사망자가 2231명이다. 일일 확진자수가 꾸준히 1000명 안팎을 기록해 곧 싱가포르(4만969명, 사망 26명)를 넘어 동남아시아 국가 1위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전수조사가 안돼 감염자가 더 많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다른 훈련 대안이 있나.
“지난달 중순부터 주중에 매일, 19세 대표팀 선수 40명과 영상통화를 통해 랜선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원래는 독일 전지훈련(4월) 등 2021년 5월까지 로드맵을 다 짜뒀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터졌고, 5월 5일에 인도네시아축구협회에 훈련프로그램을 다시 전달했다. 7월1일부터 한국이나 다른국가에서 소집훈련을 원했다.”

-이유는.
“셔틀런(왕복 달리기)을 하면 보통 한국선수는 60~70개를 하는데, 인도네시아 선수는 30~40개하고 포기하고 만다. 대충 흐지부지 훈련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의 위치를 알고 강하게 잡아줘야 실력이 향상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한국대표팀은 강팀과 평가전에서 깨지는 과정을 거쳐 4강에 올랐다. 지금도 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한 인도네시아에서 소집하면 상위레벨의 강팀과 대결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다른나라에서 자가격리 기간 동안 피지컬 컨디셔닝과 영양있는 식사를 하고, 6주간 훈련프로그램과 평가전을 통해 기술과 경기력을 끌어올리려 했다. 9월에 인도네시아에 돌아가 소집훈련을 하려했다.”

지난해 12월28일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 감독을 수락하는 계약서에 서명한 뒤 포즈를 취하는 신태용 감독. [연합뉴스]


-인도네시아축구협회가 비협조적인가.
“인도네시아축구협회 회장(이리아완)은 처음에는 나의 모든프로그램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준다고 현지 언론과 인터뷰했다. 난 인도네시아축구협회 비전과 가능성에 끌려 도전을 택한거다. 그러기 위해서는 함께, 단계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처음에는 다 해줄 것처럼 하더니 태도가 바뀌었다.”

-어떻게 바뀌었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인도네시아축구협회는 축구에 초점을 둬야한다. 축구가 발전한 국가들은 협회 관계자보다 국민들이 더 많은걸 알고 있다.”

신태용 감독이 지난 1월13일 자카르타 외곽 치카랑의 위바와 묵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19세 이하 대표팀 선발 첫 훈련에서 선수들을 살피고 있다. [연합뉴스]


-그래도 예를 들자면.
“인도네시아축구협회는 관계자와 정책이 자주 바뀐다. 능력이 있어 팬들에게 인기가 많던 티샤(여자) 사무총장은 4월에 갑자기 해임됐다. 협회에서 현지인 코치를 쓰라고해서 흔쾌히 수용했다. 그런데 태국 전지훈련을 마치고 로컬 코치가 공항에서 인사도 없이 집에 가버렸다. 그 다음날 미팅 때 잘못을 인정하면 수용하려 했다. 그런데 내가 뭘 잘못했냐고 따지더라. 경찰 고위간부 출신인 축구협회장이 날 불러 달랬다. 그만둔 코치는 두달 후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에 부임했다.”

-인도네시아축구협회가 요구하는 성적은.
“올해 10월 우즈베키스탄에서 열리는 아시아 19세 이하 챔피언십에서 4강 이상의 성적을 내야한다고 했다. 스즈키컵은 우승을 기대한다. 내년 인도네시아가 개최하는 20세 이하 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 통과를 넘어 8강, 4강에 바라고 있다. 내가 ‘인도네시아의 FIFA랭킹이 몇위인지 아는가. 173위다’라고 했더니, 인도네시아축구협회 고위 관계자가 불쾌해했다고 하더라.”

신태용 인도네시아 축구대표팀 감독은 4월 3일 코로나19 대처에 써달라고 2만 달러를 인도네시아 축구협회에 내놓았다. 축구협회는 해당 성금을 의료진 방호복 구매 등에 쓰기로 결정했다. 사진은 이날 신 감독(왼쪽)이 방호복을 기부받을 병원을 방문한 모습. [연합뉴스]


-연봉이 체불됐다는 현지 언론 보도가 있었다.
“임금은 50% 삭감됐지만,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하면 이해한다. 4월 월급은 보름 늦게, 5월 월급은 열흘 늦게 들어왔고, 6월은 제 때 들어왔다.”
(신 감독은 지난 4월초 인도네시아축구협회에 코로나19 성금 2만 달러, 약 2500만원을 기부했다. 의료시스템이 열악한 인도네시아의 국민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싶어서다.)

-인도네시아 축구협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내가 대표팀과 선수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면, 그걸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협력해줬으면 한다. 감독은 마술사가 아니다. 프로세스란 것이 있다. 인도네시아 축구의 비전이 이뤄졌을 때, 그 역사 안에 내가 있길 바랄뿐이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에 자카르타에서 열린 프로축구 개막전에 관중이 7만명이 몰렸다. 인도네시아 축구 열기는 대단하다. 내년 20세 이하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인도네시아 정부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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