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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6살 꼬마가 삐뚤빼뚤 쓴 배터리는 15년 만에 현실이 됐다

장민석 기자 입력 2020.06.3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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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롯데전의 원태인(오른쪽). 가운데가 포수 김민수다. / 송정헌 스포츠조선 기자

어린 시절 야구를 좋아했다면 나만의 올스타 멤버를 짜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연습장에 다이아몬드를 그려놓고 포지션 별로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를 그려 넣었던 경험 말이다.

‘야구 신동’으로 불린 원태인(20·삼성)도 여섯 살 때 그랬다. 그는 꼬마 때부터 삼성 ‘찐 팬’으로 자랐다. 대구 경복중(착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경북중이 아니라 경복중이 맞다. 지금은 협성경복중이 됐다)에서 야구 감독을 지낸 아버지 원민구씨의 영향으로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배트부터 잡았다. 삼성 프로야구 경기에 초대돼 시구를 하기도 했다.

6살 원태인이 작성한 꿈의 멤버. 포수 김민수, 1루 김상수, 2루 구자욱, 외야 이재학 등 눈에 띄는 이름들이 많다. / KBS스포츠 유튜브 캡쳐

2005년 꼬마 원태인을 다룬 TBC 프로그램을 보면 여섯 살 원태인이 작성한 나름의 올스타 멤버가 나온다. 연습장에 써놓은 이름은 모두 경복중 형들로 당시 아버지의 제자들이다.

일단 투수는 원태인. 1루에는 낯익은 이름이 있다. 김상수. 야구 팬들이 아는 삼성의 그 김상수가 맞다. 프로그램을 보면 꼬마 원태인이 경복중 형들에게 공을 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그런데 6살짜리의 공을 쳐서 담장을 넘긴 자비심 없는 형이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경복중 3학년이었던 김상수다.

6살 꼬마 원태인에게 홈런을 빼앗은 중학교 형 김상수. 오른쪽은 현재 김상수. / KBS스포츠 유튜브 캡쳐, 송정헌 스포츠조선 기자

2009년 삼성 입단 이후 곧바로 주전 유격수를 꿰찼던 김상수는 지난해부터 2루수로 변신했다. 올 시즌 김상수는 타율 0.304, 48안타 12타점으로 삼성 타선을 이끌고 있다.

원태인이 작성한 올스타 멤버엔 2루에도 익숙한 이름이 있다. 삼성 최고 스타 구자욱이다. 당시 경복중 1학년이었다. 구자욱은 대구고를 거쳐 2012년 삼성에 입단해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하고 있다. 올해는 타율 0.318, 5홈런 17타점을 기록 중이다.

유격수 자리에 있는 나준성은 고려대를 거쳐 2013년 삼성에 입단했지만 1군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2017년 유니폼을 벗었다. 3루수 권현규는 2015년 육성 선수로 삼성에 입단한 뒤 이듬해 방출됐다.

꼬마 원태인은 중견수엔 이재학을 써넣었다. 그렇다. NC 선발 투수 이재학이다. 이재학은 대구고를 졸업하고 2010년 두산에 입단했다. 신생팀 NC가 1군에 처음으로 진입한 2013년부터 4년 연속 10승을 기록하며 NC의 토종 에이스 역할을 했다.

삼성 마해영의 타격 폼을 흉내내는 꼬마 원태인. / KBS스포츠 유튜브 캡쳐

원태인은 여섯 살 때 자신이 작성한 올스타 멤버 중 현재 김상수·구자욱과 함께 뛰고 있다. 김상수는 15년 전 홈런을 때려 미안한 마음 때문인지 올 시즌 원태인이 나오는 날이면 폭발한다. 이번 달 원태인이 등판한 5경기에서 17타수 11안타를 때렸다. 원태인이 6이닝 무실점으로 4승을 거둔 지난 14일 KT전에선 구자욱이 3타수 2안타 1타점으로 활약했다.

여섯 살 꼬마가 중학교 형들과 같이 뛰고 싶다며 삐뚤 빼뚤 써 넣은 내용이 현실이 된 것.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지만 참으로 동화 같은 이야기다.

2018년 자선야구대회 당시 가오나시 분장을 하고 타격을 하는 김민수. / 유튜브 캡쳐

그리고 한 명 더. 꼬마 원태인이 쓴 종이엔 포수 자리에 ‘민수’라는 글자만 보인다. 원태인의 옷에 가려 성(姓)이 보이지 않지만 당시 경복중 2학년 포수 김민수였다.

김민수는 대구상원고, 영남대를 거쳐 2014년 한화에 입단했다. 신인 시절 김응용 감독의 신뢰를 받아 주전 포수로 기용되기도 했지만 SK와의 트레이드로 조인성이 한화로 오면서 주로 2군에 머물렀다.

2014시즌이 끝나고 상무로 간 김민수는 권혁의 FA 보상 선수로 삼성에 왔다. 김상수·구자욱에 이어 김민수까지 왕년의 경복중 멤버들이 삼성에 모인 것이다. 김민수 역시 어린 시절 대구시민운동장 근처에서 살았던 삼성 ‘찐 팬’ 출신이다.

원태인이 경북고 3학년이던 2018년, 경복중 선배인 삼성 포수 김민수가 원태인이 삼성에 곧 입단하겠다며 보낸 메시지. / 원태인 인스타그램

삼성의 백업 포수로 뛰는 김민수는 지난 26일 올 시즌 두 번째로 선발 포수로 나섰다. 선발 마운드엔 원태인이 있었다. 꼬마 원태인이 자신과 배터리를 이룰 김민수의 이름을 종이에 적은지 15년 만에 둘이 프로야구 무대에서 주전 배터리로 호흡을 맞추게 된 것. 꿈 같은 순간이었다.

원태인은 이날 김민수의 침착한 리드에 힘입어 6과3분2이닝 5피안타 1실점의 눈부신 피칭을 선보였다. 비록 승패를 기록하지 못했지만 삼성의 6대4 승리를 뒷받침하는 호투였다.

2005년 삼성 시구에 나선 꼬마 원태인. 그는 이제 삼성의 에이스로 성장하고 있다. / KBS 유튜브 캡쳐, 연합뉴스

프로 2년차인 스무 살 원태인은 올 시즌 가장 돋보이는 토종 선발 투수 중 하나다. 투수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에서 구창모(2.89)에 이어 토종 선발로는 2위(1.78)에 올라있다. 평균자책점도 2점대(2.96)다. 4승2패로 벌써 지난 해 승수(4승 8패)와 타이를 이뤘다.

무엇보다 자신이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팀에서 좋아했던 형들과 함께 뛰며 쌓아 올리는 성적이다. 원태인은 “삼성 선수란 자부심을 가지고 1구 1구를 최선을 다해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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