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팬의 운명은 8세에 결정된다 [이용균의 베이스볼 라운지]

이용균 기자 2020. 8. 3.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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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세계적인 반도체 회사를 다니는 A씨(38)는 LG 팬이다. 아들(7)과 함께 열심히 LG를 응원한다. 올시즌에도 부자가 나란히 ‘회원’으로 가입했고, 12경기 시즌권을 구매했다. 코로나19가 발목을 잡았지만 팬심마저 흔들리지는 않는다. LG의 순위가 인생의 행복도를 나타낸다. 극적인 역전 때마다 “LG 우승”을 외치고, 답답한 패배에는 “LG XX”를 부르짖는다.

메이저리그 칼럼니스트 B씨(34)는 롯데 팬이다. 롯데가 잘할 때마다 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뿌듯함이 넘쳐난다.

7월16일 한동희가 역전 스리런 홈런을 쳤을 때 다음날 SNS에 ‘콜로라도 3루수가 아레나도면, 자이언츠 3루수는 아레나동희다’라고 적었다. 22일 아침에는 ‘아침부터 막걸리가 생각날 정도로 비가 시원하게 쏟아진다. 물론 어제 롯데가 져서 그런 건 아니다’라고 적었다.

왜, 당신은 그 팀을, (때로는 아픔을 주는데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일까.

책 <모두가 거짓말을 한다>의 저자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38)는 미국의 데이터과학자다.

‘뉴욕 메츠는 내 정체성의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설명할 정도로 열혈 야구팬이다. 하지만 네 살 어린 동생 노아는 ‘야구 혐오자’에 가깝다. 같은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둘 사이에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다비도위츠는 데이터과학자답게 페이스북의 ‘좋아요’를 파고들었다.

다비도위츠는 뉴욕을 연고지로 하는 메츠와 양키스에 대해 ‘좋아요’를 누른 남성 팬들을 출생연도별로 분석했다. 양키스 팬들이 메츠 팬보다 1.65 대 1로 더 많았는데, 58세와 42세에서 그 비율이 역전됐다. 거꾸로 70세와 30세 나이대에서는 양키스 팬들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패턴을 찾는 다비도위츠는 페이스북의 메이저리그 야구팀 전체에 대해 ‘좋아요’를 누른 남성 팬들을 나이별로 분석했다. 볼티모어는 1962년생이, 피츠버그는 1963년생이 많았다. 이 패턴대로라면 LA 다저스의 팬은 1980년생이 가장 많다.

패턴은 뚜렷했다. 다비도위츠가 연구한 모든 팀의 핵심 팬층은 해당 팀이 우승한 해에 만 7~8세였다. 메츠는 1969년과 1986년에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했다. 우승 때 7~8세였던 소년들은 메츠가 ‘운명’이 됐다.

다비도위츠 역시, 1986년의 우승과 1973년의 준우승 때문에 ‘메츠가 정체성이 된 남성’이 될 수밖에 없었다. 뉴욕의 30세 남성은 6세 때부터 양키스의 ‘밥 먹듯 우승’을 쭉 지켜봤다. 당연히 양키스 팬 비율이 압도적이다. 소년 야구팬들의 운명은 만 8세에 결정된다. 하필, 그때, 우승.

그러니까, 야구는 운명이다. 서울 태생의 A씨는 1990년 LG의 우승을 지켜봤다. 8세 때였다. 4년 뒤 또 한 번의 우승은 그 운명을 강화시켰다. 이후의 암흑기는 오히려 믿음을 키우는 기간이었다. 울산 출신의 B씨는 1992년 롯데의 우승을 지켜봤다. 조금 이른 여섯 살이었지만 경험은 강렬했고, ‘롯데는 내 운명’이 됐다. 13세였던 1999년 플레이오프 기적의 승리는 계시나 다름없는 역할을 했다. 그러니까, 지금의 기쁨과 슬픔은 모두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다. ‘8세의 운명’ 때문이다.

그래서, 야구단은 적어도 30년에 한 번은 우승해야 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팀을 응원하는 것만큼 뿌듯한 일이 또 있을까. A씨의 아들은 내년에 8세가 된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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