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구의 로브렌' 자처하는 '콥' 조진우의 팬질 스토리

김정용 기자 입력 2020. 8. 4. 15:40 수정 2020. 8. 4.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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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대구FC 주전 수비수 조진우는 동료 사이에서 `콥,` 즉 라버풀 팬으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도 지금은 리버풀을 떠난 데얀 로브렌의 팬이다. 로브렌의 실력이 떨어진다고 동료 형들이 놀릴 때도 조진우는 꿋꿋했다.

K리그 상위권 팀 주전 선수의 `팬질`은 어떤 모습일까. 4일 `풋볼리스트`와 전화로 인터뷰한 조진우는 로브렌 이야기를 하자고 하자 갑자기 말이 빨라졌다. "제가 콥이고 66번이라서 트렌트 알렉산더아놀드 번호라고 생각하시던데, 사실은 로브렌을 좋아해서 단 번호예요. 로브렌이 리버풀에서도 6번이었고 지금 제니트에서도 6번이거든요. 일단 66번 달고 나중에 축구 더 잘 하면 6번으로 바꾸려고요."

로브렌은 리버풀에서 6시즌 동안 활약한 크로아티아 대표 스타지만 실력을 인정받는 쪽은 아니었다. 특히 리버풀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9/2020시즌은 후보로 밀려 있었다. 조진우에게 왜 하필 로브렌이냐고 물었다. 조진우는 "로브렌 형"이라는 표현을 쓰는, 어쩌면 전세계에 몇 되지 않는 사람 중 하나다.

"로브렌 좋아한다고 하면 다들 특이하대요. 이유는, 뭐랄까, 태클도 잘 하고 롱킥도 좋은데, 제일 중요한 건 자신감. 로브렌 형은 실수를 해도 기죽지 않아요. 자기가 최고라는 마인드가 있거든요. 계속 실수를 해도 아예 신경을 안 써요. 마이웨이 마인드 있잖아요."

조진우의 리버풀 `입덕` 시기는 중학교 때다. 스티븐 제라드의 킥 모션을 따라하려고 영상을 본 것이 계기였다. 그러다 고등학교 졸업 즈음 포지션을 센터백으로 바꿨는데, 리버풀 수비수 중 로브렌에게 빠졌다. 일본 마츠모토야마가에서 위축돼 있던 시절에는 로브렌의 `마이웨이` 표정을 보며 용기를 얻었다. 당시 팀 동료였던 고동민과 더불어 타향살이를 지탱해 준 버팀목이었다.

이제 로브렌 영상을 보는 건 조진우에게 경기 전 루틴이 됐다. "경기장 가기 전에 무조건 로브렌 스페셜 영상을 봐요. 킥이 장점인 선수라서 계속 보면 무의식적으로 제게 도움이 되죠." 조진우에게 `로브렌도 스페셜이 있느냐, 굉장히 짧은 것 아니냐`고 묻자 발끈하며 "에이 무슨 소리십니까? 저희 유로파리그(2014/2015) 8강전에서 극적인 헤딩골 넣은 게 로브렌 형이에요. 형은 세리머니도 슬라이딩 태클이에요. 무릎 슬라이딩도 아니고 그냥 슬라이딩. 그게 남자죠"라고 받았다.

동료들도 지독한 로브렌 사랑을 안다. 심지어 로브렌 생일에 조진우의 인스타그램에 축하 메시지가 올라오면, 동료들이 몰려들어 `이거 어디 선수냐` 등 놀리는 말을 줄줄이 이어 붙인다. 조진우는 `대구와 리버풀 모두 저에게는 제2의 고향입니다`라는 말을 뻔뻔하게 잘도 했다.

이번 시즌은 조진우에게 프로 첫 주전 시즌이자, 리버풀이 우승한 해다. 리버풀의 매력을 묻자 조진우가 갑자기 말투를 바꿨다. "에이, 아시다시피 세계 최고라는 거죠." 기자가 어이없는 기분에 `잘난 척이 지나친 것 아니냐`고 물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힘든 시기에 제라드 형이 지켜주셨고 지금은 세계 최고라는 게 매력이죠. 감스트 님께서 하신 그것 있죠? 리중, 그거." 기자가 `리중딱(리버풀은 중위권이 딱이야)`이라는 줄임말이냐고 확인하자 듣기만 해도 답답하다는 듯 "그런 표현, 어느 순간부터 아무도 못 쓰죠?"라고 했다.

대구의 로브렌이 누구냐고 묻자 "제가 하고 싶은데요? 판다이크는 (정)태욱이 형에게 줘도 로브렌은 제가 할게요"라고 답했다. 재차 `정태욱도 로브렌을 빼앗고 싶진 않을 텐데`라고 묻자 또 발끈했다. "네? 로브렌 되게 잘해요! 저 섭섭합니다 진짜."

로브렌의 길을 가려면 리버풀 진출이 `최종 테크트리`다. 혹시 리버풀에 진출하고 싶은 마음이 있냐는 질문에 "에이, 아직은 그냥 팬이죠. 리버풀은 거리가 너무 멀잖아요. 네? 실력이 먼 것 아니냐고요? 음, 일단 거리라고 해 둡시다"라고 답할 뿐이었다.

조진우는 그리 패기 넘치는 선수는 아니다. 이번 시즌 목표가 소박했고, 이미 이뤘다. 일본에서 2년 동안 프로 경기를 하나도 뛰지 못하고 때론 숙소 TV로 동료들의 모습을 봤다. `2019 U20 월드컵`을 함께 준비하던 친구들이 준우승하는 모습도, 자신의 처지와 너무 대조적이라 조금 씁쓸했다. 올해 대구에 입단하면서 세운 목표는 `한 경기라도 뛰게 되면 잘 준비해두기`였다. 그런데 홍정운의 부상 공백을 메울 선수로 낙점되면서 갑자기 주전이 됐다.

"뛸 기회는 얼떨결에 왔어요. 첫 경기는 너무 무서웠어요. 정식 경기가 고등학교 축구부 이후 3년 만에 처음이었거든요. 처음엔 패스 한 번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렸어요. 옆에서 형들이 잘 도와줘서 점점 시야가 열렸어요. 초반에는 마구 걷어냈는데, 막판에는 에드가 형을 보면서 그쪽으로 걷어낼 수 있게 됐죠."

그래서 축구인생의 목표도 `프로 100경기 출장`으로 정했다. 역시 소박하다. "딱 10경기 뛰었어요. 100경기가 되면 인정을 받잖아요. 그게 멋있어 보여요. 제 데뷔전 상대 성남FC에서 김영광 선수가 500경기 출장 기념식을 하셨는데, 진심으로 존경하는 박수가 나왔어요. 저도 팬들과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만큼 뛰고 싶어요."

조진우는 아직 매 경기를 즐기는 중이다. 지금 쯤이면 올림픽대표팀 발탁을 욕심낼 법도 한데 "태욱이 형과 (정)승원이 형과 같이 뛰고 싶긴 하다"고 말할 뿐,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훈련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면 리버풀 머플러와 로브렌 유니폼이 맞아준다. 조진우는 이 인터뷰의 의미를 스스로 부여했다. "저처럼 인터뷰에서 로브렌 이야기를 한 마디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전 성덕이죠." 카메라 앞에서 긴 인터뷰를 할 날이 오면, 로브렌 유니폼을 입고 만나기로 했다.

▲ 보너스 질문 - 대구 선수 중 매력 1등은?

"태욱이 형이요. 그 키와 그 몸(194cm)에도 깜찍한 면이 있거든요. 제가 이런 말 했다는 걸 알면 3대 정도 더 때리겠지만 괜찮아요. 이번 수원 원정에서 라커룸이 좁더라고요. 제가 `아, 좁네`라며 태욱이 형 무릎에 앉았어요. 형이 `네가 진짜 미쳤구나`라고 했지만 잘 받아줬어요. 승원이 형이 너무 잘 생기긴 했지만 태욱이 형만의 매력이 더 우위에 있다고 봅니다."

사진= 대구FC 제공, 조진우 인스타그램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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