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 의존 1위인데 IL은 최저.. 롯데 과학의 힘, 검진 비용 반토막 [SD 인사이드]

최익래 기자 2020. 9. 23.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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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2군의 김현종, 홍민기, 박시영, 박종무(왼쪽부터)이 웨이트트레이닝을 마친 뒤 보충제를 마시고 있다. 사진제공 | 롯데 자이언츠
쓰면 닳는다. 세상 어느 영역에서도 통용되는 간단한 이치다. 심지어 기계에도 과부하가 걸리는데, 사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올해 롯데 자이언츠는 주전 의존도가 가장 높은 팀이다. 21일까지 경기당 11.91명의 야수를 기용했다. 최다 LG 트윈스(13.81명)에 비해 약 2명, 리그 평균(12.90명)보다 1명 가까이 적다. 한 경기에 야수 2명을 덜 쓰는 것은 언뜻 크게 느껴지지 않지만, 10경기로만 확장해도 20명이나 차이가 난다. 경기에 나서는 평균 11.91명의 체력은 그만큼 소진될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부상자명단(IL) 등재는 가장 적다. 올 시즌 처음 도입된 IL에는 구단별로 평균 24명 가까이 등재됐다. 최다 1위는 삼성 라이온즈(33명)인데, 롯데(16명)는 절반에도 못 미친다. 주전들에게 부하가 가장 많이 걸리는데, 정작 쓰면 닳는다는 이론이 롯데에는 안 통한다.

● 3대 원칙, 잘 마시기! 잘 먹기! 잘 자기!

과학의 힘이다. 롯데는 지난 시즌 후 미국 메이저리그(ML) 시카고 컵스 트레이너로 있던 허재혁 팀장을 영입했다. 그러면서 기존 트레이닝 파트를 확대해 스포츠 사이언스팀을 설립했다. 허 팀장을 주축으로 KT 위즈 출신 손재원 트레이너 등 베테랑 인재를 수급했다. 이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 선수들이 100%의 컨디션으로 그라운드에 나서도록 돕는 것이다.

허 팀장이 생각하는 트레이닝의 3대 원칙은 ‘수분 섭취, 영양 섭취, 수면’이다. 야구는 축구, 농구에 비해 폭발적 에너지 소모는 덜하지만, 주 6일 경기가 있기 때문에 회복이 가장 중요하고 이를 위해선 ‘잘 마시고, 잘 먹고, 잘 자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철학이다.

롯데 홍지훈 차혜성(왼쪽부터)이 건강음료를 마시며 목을 축이고 있다. 사진제공 | 롯데 자이언츠
롯데는 허 팀장이 부임한 이후 비타민제, 보충제를 잔뜩 구비하며 마시는 습관을 심어주고자 했다. 여기에 식습관도 싹 바꿨다. 튀김 등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은 자제하고, 채소와 과일의 비중을 늘렸다. 물론 선수들이 평생 먹어온 습관이 있기 때문에 한 번에 바꿀 수는 없다. 면의 경우 밀가루 대신 호박면으로 대체하는 식이다.

수면의 질까지 바꾸고 있다. 그라운드 위에서 흥분한 상태로 숙소에 돌아오면 몸은 피곤한데 쉽사리 잠들지 못한다. 아드레날린이 잔뜩 분비된 채 3~4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밤새 잠을 설치면 그 다음날 신체 리듬이 망가진다. 이 때문에 롯데는 수면 질을 체크하는 것은 물론 이를 향상시키는 디바이스까지 구매해 선수단에 제공하는 등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금액 투자로 인한 재정적 손실은 불가피했는데, 의외로 금세 채워졌다. 롯데 구단 관계자는 “올 시즌 MRI, CT 등 병원 검진 비용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귀띔했다. 트레이닝 파트에선 선수가 간단한 통증만 호소해도 노파심에 병원 검진을 제안한다. 이를 고려해도 검진비가 예년의 50% 이하로 줄었다는 것은 실제로 아픈 선수가 그만큼 감소했다는 의미다.

● 선수단 스스로 느끼고 있는 관리의 힘

일반적으로 KBO리그에선 트레이닝의 동의어로 벌크업이 쓰였다. 우람한 근육으로 파워를 늘려 성적 향상을 이루고자 하는 게 유행처럼 퍼졌다. 그러나 그때부터 햄스트링 등 부상자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벌크업보다 중요한 회복의 중요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ML에서도 배리 본즈, 새미 소사 등 거구의 장타자가 리그를 지배하던 흐름에서 벗어나 크리스티안 옐리치(밀워키 브루어스), 코디 벨린저(LA 다저스) 등 슬림한 선수들이 홈런을 생산해내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근육을 쓰면 그 속에 피로가 쌓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이 피로를 관리하지 못하면 햄스트링 등 부상으로 이어진다. 이제는 키우는 것보다 관리하는 게 더욱 중요한 가치로 평가받는 이유다.

허 팀장은 “일단 선수들이 자신의 몸 관리에 굉장히 많은 신경을 쓴다. ML에선 트레이너가 어디까지나 돕는 사람 역할인데, KBO리그에선 경기 전후 적극적으로 선수들의 몸을 마사지하고 관리한다. 특히 롯데 선수들은 사비를 들여 개인 트레이너를 두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선수들 스스로가 몸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는 데다, 과학의 힘까지 더해지니 올 시즌 가장 적은 IL 등재라는 결과가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근육의 스트레스와 연관된 햄스트링 부상자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관리의 힘이 드러난다.

● 재활군은 막장? 가장 베테랑을 모신 이유

롯데는 재활군의 중요성도 키웠다. 일반적으로 재활군에 오래 머무는 선수는 의욕을 잃은 채 시간을 죽이기 일쑤다. 이런 선수가 늘어난다면 팀 분위기는 저하가 될 수밖에 없다. 반대로 트레이닝 파트에서는 막내급을 재활군에 배치한 뒤 차례로 승격시키는 경우도 있다. 선순환이 일어나기 힘들다.

롯데 선수단의 식단. 예년에 비해 채소와 과일의 비중을 늘렸고, 몸에 안 좋은 밀가루는 다른 요소로 대체하는 방식이다. 사진제공 | 롯데 자이언츠
롯데는 KT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손재원 트레이너를 재활군에 배치했다. 가장 중요한 위치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베테랑이 꼭 필요하다는 포석이다. 올 시즌 롯데의 재활군은 최대 5명이 한계였다. 지난해 20명 가까운 선수들이 재활군으로 출퇴근했던 것과 딴판이다. 지금도 신인인 홍민기, 김현종 두 명만 장기적인 플랜으로 몸을 만들고 있다. 선수생활의 막장이 아닌, 정말 재활을 요하는 선수가 꼭 필요한 트레이닝을 받는 곳으로, 바꿔 말하면 드디어 제 기능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롯데 주축 선수들은 대부분 30대를 넘겼다. 신체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관리 없이는 이들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려운 이유다. 올해 롯데의 변화는 확실한 과학적 근거가 뒷받침된 과감한 투자에서 시작됐다. 눈에 보이는 성적보다 더 큰 진화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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