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혁 감독' 사태로 본 히어로즈 프론트 야구의 문제

이준목 2020. 10. 9.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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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구단 운영진의 지나친 개입은 독, 현장 전문가들 고유의 영역 무시하지 말아야

[이준목 기자]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 손혁 감독이 돌연 사임했다. 히어로즈 구단은 지난 8일 손혁 감독이 성적부진에 책임을 지고 자진사퇴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손 감독은 지난 7일 고척 NC전이 끝난 뒤 김치현 단장과 면담을 갖고 사퇴 의사를 전달했고, 구단 측이 내부 논의를 거쳐 하루만에 손 감독의 자진 사퇴 의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히어로즈와의 2년 계약을 맺고 사령탑으로 부임한 이후 불과 11개월 만이다. 히어로즈는 잔여 시즌을 김창현 퀄리티컨트롤 코치의 대행 체제로 소화한다는 계획이다.

야구계와 팬들은 큰 충격과 함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갑작스러운 사임의 명분과 시기가 모두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히어로즈는 손 감독이 사퇴하기 직전까지 현재 73승 58패 1무(승률 .557)로 3위에 올라있었다. 김창현 감독대행이 이끈 첫 경기였던 8일 NC전에서 10-7로 승리하며 2위 KT를 1게임 차로 추격했다. 지난해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여 준우승을 기록했던 히어로즈는 올 시즌도 가을야구 진출을 거의 확정 지은 상황이다.

선두 추격은 멀어졌지만 플레이오프 직행권인 2위 경쟁은 충분히 가능성이 남아있다. 9월 이후 경기력이 하락세를 보이며 최근 다소 부진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손혁 감독이 올 시즌 지휘봉을 잡은 첫 시즌이라는 점, 주축 선수들의 줄부상 등 악재가 많았던 것을 감안하면 실망할 정도의 성적도 아니었다. 올해 데뷔한 신임 감독 3인방(허문회 롯데, 허삼영 삼성)중에서는 가장 최고의 성적을 기록중이다.

올 시즌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임한 것은 시즌 초반 30경기만에 사퇴했던 한화 한용덕 감독 이후 두 번째다. 이런 손 감독의 사임 명분이 성적부진이라면 올시즌 현재 히어로즈보다 못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감독들이 수두룩한 다른 구단들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다.

 손혁 감독의 '비정상적인' 사퇴 과정
 
 지휘봉을 내려놓은 손혁 키움 감독
ⓒ 연합뉴스
 
더구나 정규시즌 잔여경기가 불과 12경기(손 감독 사퇴 시점)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상식적으로 우승을 노리는 팀이라면 중요한 포스트시즌을 코앞에 두고 갑작스럽게 팀 분위기에 혼란만 줄 수 있는 감독교체라는 모험을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손혁 감독의 비정상적인 사퇴 과정은, 곧 히어로즈라는 구단이 그간 보여준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 히로즈는 2007년 현대 유니콘스를 인수하여 재창단하며 야구판에 뛰어든 이래 줄곧 예측불가능한 파격적인 행보로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모기업 지원에 의존하는 기존 야구계의 관행이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독자적이고 새로운 성공모델을 창조했다는 성과도 있었던 반면, 부정적인 의미에서는 상식과 원칙을 무시하는 구단 운영으로 야구판의 건강한 질서를 해친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잦은 감독교체를 둘러싼 잡음은 바로 후자에 더 가까운 대목이다.

히어로즈는 초대 이광환 감독을 시작으로 김시진-염경엽-장정석-손혁까지 총 5명의 감독이 거쳐 갔지만 감독교체 과정이 깔끔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성적이 기대에 못 미치면 감독이 책임을 지는 것은 다른 구단에서도 흔한 일이지만 유독 히어로즈만큼 감독을 내칠 때마다 잡음이 많았던 구단도 찾기 힘들다. 김시진 감독은 현대 시절을 포함하면 히어로즈에서만 두 번이나 경질당했고, 염경엽 감독은 임기 말년에 공공연하게 운영진과 불화설에 휩싸인 끝에 자진사임했다. 장정석 감독은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고도 성적문제가 아닌 정치적인 이유로 재계약에 실패했다. 손혁 감독의 거취 역시 구단 운영진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히어로즈가 여론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감독교체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데는 '프런트 야구'에 대한 확신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히어로즈 출범 직후 감독은 1군 경기와 선수단 운용만 전담하고, 전반적인 팀 운영은 프런트가 주도하는 시스템을 일찍부터 구축해왔다.

초기의 이광환-김시진을 제외하면 염경엽-장정석-손혁 등 프런트 출신이거나 스타플레이어와는 거리가 먼 인물들을 파격 선임하여 눈길을 끌었다. 김창현 대행 역시 구단 전력분석원을 거친 프런트 출신이다.

결과적으로 히어로즈표 프런트 야구의 성과는 지금까지 나쁘지 않았다. 가을야구 구경도 못했던 이광환-김시진 시절에 비하여 염경엽-장정석 체제에서 히어로즈는 가을야구 단골손님이자 한국시리즈에도 두 번이나 오르는 강팀으로 변모했다. 손혁 감독의 첫 시즌이었던 올해도 가을야구 진출이 유력하다. 하지만 이런 성과는 히어로즈 운영진에게는 감독의 역할을 과소평가하는 잘못된 시그널로 해석될 소지가 컸다.

히어로즈라는 구단의 특성상 운영진의 개입과 전횡이 나오기 쉽고 견제장치가 없다는 것도 우려를 자아낸다. 지금의 히어로즈를 만든 대주주이자 구단주였던 이장석 전 대표는 구단을 개인의 사유물처럼 운영하다가 결국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옥살이를 하게 되며 한국야구위원회(KBO)로부터 영구제명까지 당했다. 그뒤를 이어 현재 히어로즈 구단을 이끌고 있는 세력은 허민 이사회 의장이다.

수뇌부가 바뀌어도 히어로즈는 구단 운영진이 현장에 지나치게 개입하여 감독의 권한을 침해한다는 의혹에서 늘 자유롭지 못했다. 최근에 프런트 야구가 대세라고 해도 현장에서는 어디까지나 현장 전문가들만의 고유의 영역이 있는 법이다. 이를 무시하고 팀이 제대로 굴러가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토록 좋은 전력과 시스템을 갖춘 히어로즈가 왜 숱한 기회에도 아직 한번도 정규리그나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는지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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