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야구학] ⑧구창모는 '볼끝'이 좋은 게 아니다

입력 2020. 10. 28. 06:01 수정 2020. 10. 28.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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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KBO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투수는 NC 구창모(23)다. 전완근 염증으로 세 달을 쉰 그는 지난 24일 멋진 복귀전을 치렀다. 올 시즌 구창모는 88⅓이닝을 던지며 9승무패 1홀드, 평균자책점 1.53을 기록 중이다. 20대 에이스의 등장을 기대했던 KBO리그와 국가대표 대표팀에는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구창모의 피칭은 정말 시원시원하다. 마치 내야수가 송구하는 것처럼 빠르고 짧은 백스윙으로 힘을 모은다. 뛰어난 디셉션(deception, 투구 전 허리 뒤로 공을 감추는 동작)으로 타자가 투구를 볼 시간을 최소화한다. 그리고 채찍으로 때리듯 공을 던진다.

구창모의 공은 홈 플레이트를 통과할 때까지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타자들은 타이밍을 잡지 못한다. 그리고 대부분 투구 궤적보다 밑으로 스윙한다. 우리 세대는 이걸 “볼끝이 좋다”고 표현했다. 또는 “공의 종속이 좋다”, “공의 회전이 뛰어나다”라고도 말했다.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표현은 틀렸다는 걸 알게 됐다. ‘볼끝’이 좋다는 건 추상적인 표현이다. 또한 과학적으로 초속과 종속이 차이가 크게 날 수 없다고 한다. 무엇보다 내가 특히 놀란 건 공의 회전과 구위의 연관성이 크지 않다는 사실이다.

앨런 네이선 일리노이 주립대 물리학 교수는 ‘하드볼 타임즈’에 공의 무브먼트와 회전 효율(pitch movement, spin efficiency, and all that)이라는 글을 2018년 기고했다. 네이선 교수는 투구의 회전과 무브먼트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분이다.

메이저리그(MLB)는 2008년 광학 카메라 기반의 PITCHf/x(투구분석 시스템)를 도입했다. 2015년 이후에는 레이더 추적 기술인 트랙맨이 사용되고 있다. MLB만큼은 아니지만, KBO리그도 이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투구와 타구에 대해 세밀한 정보를 얻고 있다. 이 데이터를 이용해 선수와 코치가 추구해야 할 지향점도 좀 더 명확해졌다. 투수는 수직 무브먼트(vertical movement)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NC 구창모는 KBO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로 성장했다. 공이 빨라진 건 아니지만, 수직 무브먼트가 더 커진 덕분이다. IS포토

구창모의 공은 덜 떨어진다

내가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던 2017년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에 구창모를 선발했다. 당시 대표팀은 24세 이하, 프로 3년 차 이하 선수들로만 구성했다. 나이와 상관없이 와일드카드를 쓸 수 있었지만, 젊은 투수들에게 국제대회 출전 경험을 더 주고 싶었다.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올해 구창모의 포심 패스트볼 스피드는 평균 143.1㎞였다. 최고 구속은 150.4㎞. 3년 동안 그의 패스트볼 스피드는 큰 변화가 없었다.

성적은 완전히 달라졌다. 2018년 133이닝을 던지며 5승11패 평균자책점 5.35를 기록했던 구창모는 지난해 107이닝 동안 10승3패 평균자책점 3.20을 올렸다. 그 탄력을 받아 올해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로 성장했다.

데이터는 구창모의 피칭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이 데이터를 해석하는 게 나로서는 꽤 어렵다. 기록 업체마다 계산 식도 다르다고 한다. 어렵고 복잡하다. 그래서 여전히 공부 중이다.

먼저 수직 무브먼트의 개념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물리학 논문이 많다. 특히 일본 와세다대와 사이타마대 교수 5명이 공저한 『야구공의 회전과 투수의 퍼포먼스』를 많이 참조했다.

이 논문은 시속 144㎞의 패스트볼을 기준으로 여러 계산을 했다. 오버핸드 투수가 180㎝ 높이에서 회전 없이 던진 공은 17m쯤 비행해 홈플레이트, 즉 바닥에 처박힌다(빨간선). 현실에는 회전 없는 공이 존재하지 않는다.

같은 조건에서 던진 공이 지표면과 수평 회전축으로 분당 4200회전(rpm)을 한다면, 홈플레이트에 도착했을 때 1m 높이라고 한다. 투수가 던지는 패스트볼의 경우 보통 2000~2400rpm의 회전을 하기 때문에 4200rpm의 공 역시 상상 속 마구다. 현실적인 패스트볼 궤적은 녹색선이다. 홈플레이트에서 빨간선과 녹색선의 높이 차이를 수직 무브먼트라고 한다.

이 수직 무브먼트는 투수에게 매우 중요하다. 모든 투구는 중력의 영향을 받아 아래로 가라앉기 마련이다. 타자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투구 궤적을 기억하고 있다. 예상보다 ‘덜 떨어지면’ 공이 떠오른다고 느낀다. 라이징 패스트볼(rising fastball)은 실제 떠오르는 게 아니라, 타자의 착각이다.

트랙맨 데이터에 의하면, 구창모 패스트볼의 평균 수직 무브먼트는 지난해 42.95㎝였다. 이 정도면 KBO리그 최상위 레벨이라고 알고 있다. 올해는 45.56㎝로 더 커졌다. 수직 무브먼트가 원래 컸던 공이 1년 전보다 2.61㎝ 덜 떨어지는 것이다.

야구공의 지름은 7.2㎝다. 투구의 수직 변화가 2.61㎝ 더 커졌다면 정타가 될 타구는 파울이 된다. 공의 아랫부분을 맞힐 수 있는 타격은 헛스윙이 될 것이다. 작은 변화가 절대 아니다.

수직 무브먼트가 크다는 건 “볼끝이 좋다”, “종속이 빠르다”는 옛말을 대체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구창모의 패스트볼 위력은 수직 무브먼트로 상당 부분 설명할 수 있다. 무브먼트 값을 산정하는 방식은 리그는 물론 업체끼리도 다르다고 한다. 회전 측정법부터 같지 않다. 구장 환경, 기후, 타자의 체격 등도 계산 식에 넣는다.

산정 방식이 다르니 KBO리그와 MLB 기록을 비교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러나 같은 업체가 한 선수의 수직 무브먼트의 변화를 비교하는 건 의미가 있다. 2.61㎝의 차이는 구창모의 피칭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상승이다.

수직 무브먼트의 활용법

내가 선수로 뛸 때는 무브먼트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었다. 공은 최대한 낮게 던지라고, 스트라이크존 좌우를 잘 공략하라고 배웠을 뿐이다.

1980~90년대 투수들은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를 주로 던졌다. 타자들은 다운컷 스윙을 많이 했다. 그래서 높은 공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맞는 이론이었다.

난 선수 시절 하체를 길게 뻗어 공을 던졌다. 요즘 표현을 쓰자면 익스텐션(extension, 투수판과 릴리스 포인트까지의 거리)이 길었다. KBO리그 투수들 익스텐션이 180~185㎝라고 한다. MLB 평균은 192㎝ 정도다.

정확히 잰 건 아니지만, 젊은 시절 내 익스텐션은 2m 안팎이었다. 타자가 느끼는 구속은 실제보다 더 빨랐다고 한다.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피치 터널’도 다른 투수보다 길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폼과 전략을 끝까지 유지한 건 아니었다.

난 33세였던 1996년부터 4년 동안 일본 주니치에 입단했다. 당시에는 ‘노장’에 속했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야구를 경험할 수 있었다. 가장 큰 변화가 하이 패스트볼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일본 투수들은 우리와 달리 스트라이크 높은 코스를 잘 활용했다. 내가 아는 야구와 다른 점이었다. 머뭇거리던 나에게 야마모토 마사(山本昌広)가 이런 말로 날 자극했다.

“선상(宣さん)은 공이 빠르고, 나보다 제구력도 좋잖아요? 그런데 왜 스트라이크를 던집니까? 스트라이크와 비슷한 볼을 던져보세요.”

내 제구가 야마모토보다 좋다는 건 그의 지나친 겸손이었다. 그는 시속 130㎞대의 패스트볼로 50세까지 주니치(통산 219승)에서 활약했을 만큼 뛰어난 컨트롤을 갖고 있었다.

어쨌든 난 야마모토의 말에 용기를 얻어 피칭을 바꿨다. 초구부터 하이 패스트볼을 적극적으로 던졌다. 나이가 들어 유연성이 떨어지고, 익스텐션도 짧아진 터였다.

하이 패스트볼에 타자들은 대부분 방망이를 돌렸다. 내 공에 아직 힘이 있을 때였기에 파울이나 헛스윙이 나왔다. 게다가 하이 패스트볼은 제구가 상대적으로 쉬었다. 그래서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는 경우가 많았다.

하이 패스트볼을 본 타자들의 뇌리에는 그 공의 궤적과 스피드가 남는다. 다음에 낮은 공을 던지면 타자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덕분에 난 투구 수를 줄일 수 있었다. 그게 당시의 나에게 맞는 릴리스 포인트였고, 공 배합이었다.

내가 삼성 감독이었던 2006년 차우찬(현 LG)이 입단했다. 왼손 투수인 그는 빠른 공을 던졌다. 그러나 스트라이드가 너무 컸다. 학창 시절 익스텐션을 늘리는 게 무조건 좋다고 배운 것이다.

당시 차우찬의 상·하체 밸런스는 깨져 있었다. 신체 특성에 맞지 않게 스트라이드를 너무 넓힌 나머지, 팔 스윙이 매끄럽지 못했다. 그래서 오치아이 에이지 당시 투수코치와 상의해 그의 익스텐션을 20㎝ 정도 줄이기로 결정했다. 상당히 큰 변화를 차우찬은 잘 받아들였다. 스피드가 조금 감소했지만, 폼이 안정되면서 제구력이 향상됐다.

차우찬과 다른 경우가 조상우(키움)다. 몸이 크면서도 유연한 그는 긴 익스텐션을 활용해 체감 속도를 높이는 길을 선택했다. 조상우에게는 그게 적합하다.

지난해 172㎝ 정도였던 구창모의 릴리스 포인트는 올해 180㎝ 수준으로 높아졌다고 한다. 인위적으로 타점을 높인 게 아닐 것이다. 익스텐션을 5㎝ 정도 줄인 결과다.

모든 자세의 변화는 하체로부터 시작한다. 구창모는 익스텐션 단축→릴리스 포인트 상향→수직 무브먼트 증가로 이어지는 변화를 택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이런 피칭은 하이 패스트볼의 위력을 강화한다. 게다가 요즘 타자들의 어퍼컷 스윙을 이겨내는 데 효과적이다. 또 하이 패스트볼이라는 무기가 생기면 크게 떨어지는 변화구(커브, 포크볼)의 효용도 함께 커진다. 지난해부터 구창모의 포크볼 위력이 배가된 이유도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난 프로에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뒤 동료의 조언을 듣고 피칭 전략을 바꿨다. 구창모는 나보다 열 살 젊은 나이에 새로운 피칭을 만들었다. 기술 발달로 인해 자신의 투구를 더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보게 된 덕분일 것이다. MLB에서는 이를 피치 디자인(pitch design)이라고 한다. 트레이닝만 강조했던 시대는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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