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야구학] ⑨트레버 바우어 '공이 긁히는 날'을 만든다

2020. 11. 4.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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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수보다 중요한 건 '회전 효율'
지면과 수평축 수직 무브먼트 높여
회전 분석해 투구폼 바꾸는 사례도
데이터 해석력, 선수의 중요한 기량
탬파베이 마무리 디에고 카스티요. Gettyimages

올해 메이저리그(MLB)는 LA 다저스의 월드시리즈(WS) 우승으로 끝났다. 비교적 낯익은 다저스 선수보다 탬파베이 선수들이 눈에 더 들어왔다. 특히 탬파베이 마무리로 활약하는 디에고 카스티요(26)의 피칭이 흥미로웠다.

카스티요는 시속 150㎞가 훌쩍 넘는 빠른 공을 던진다. 포심 패스트볼 비중은 매우 낮다. 그는 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로 ‘투 피치’를 구성한다. 투심의 스피드는 포심과 거의 같다.

MLB 통계 사이트 스탯캐스트를 보면 카스티요의 패스트볼 스피드는 상위 12%(평균 시속 154.7㎞)에 해당한다. 그런데 포심 패스트볼 회전은 하위 4%(분당 1876회)에 불과하다.

스피드는 빠른데 회전이 많지 않은 공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올드보이들은 “볼끝이 나쁘다”거나 “종속이 느리다”고 할 것이다.

그 관념이 틀렸다는 걸 이제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카스티요가 올해 정규시즌 22경기에서 3승무패 5홀드 4세이브, 평균자책점 1.66을 기록한 걸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카스티요는 수직(vertical) 무브먼트보다 수평(horizontal) 무브먼트를 잘 활용하는 투수다. 포심 패스트볼 비중이 아주 낮은 그에게는 효과적인 피칭이다. 오른손 투수인 카스티요는 오른손 타자 몸쪽으로 가라앉는 투심, 아래로 떨어지며 바깥쪽으로 달아나는 슬라이더 조합을 이용한다. 강한 근력과 악력(握力, 쥐는 힘)을 갖고 있어서 가능하다.

KBO리그에서 뛰는 외국인 투수 중에도 이런 유형이 많다. 이들은 포심 스피드와 거의 같은 변형 패스트볼(투심)을 던진다. 한국 투수들의 신체 조건으로는 이런 피칭 스타일을 만들기 어렵다.

그래도 주목할 점은 카스티요가 공을 ‘때리는’ 동작이 매우 훌륭하다는 것이다. 투구 폼이 예쁘진 않지만, 힘을 모아 폭발하는 메커니즘을 잘 만들었다.

카스티요 외에도 탬파베이에는 인상적인 불펜 투수들이 꽤 있었다. 투구 폼이 참 희한했다. 공의 좌우 움직임, 즉 수평 무브먼트를 활용하는 이들이 많았다. 탬파베이의 불펜 투수들은 공통적으로 폭발적인 릴리스를 보였다. 구단과 투수코치, 선수들이 공유하는 매뉴얼이 있을 것 같다.

카스티요 같은 투심을 던질 게 아니라면, 오버핸드 투수는 기본적으로 수직 무브먼트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회전 효율(spin efficiency)이다.

수평의 축이 ‘회전 효율’ 높인다

물리학의 관점으로 피칭을 이해하려면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 개념을 알아야 피칭에 응용할 수 있다. 투수가 던진 공은 중력의 영향을 받아 아래로 떨어진다. 중력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다.

비행하는 공의 궤적을 바꾸는 또 다른 힘이 있다. 압력이 높은 쪽에서 낮은 쪽으로 휘어지는 공이 현상, 즉 마그누스 효과(Magnus effect)다. 야구공에는 솔기가 있어 투수의 의도에 따라 회전을 줄 수 있다. 회전 변화가 변화구를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투수들은 회전의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오버핸드 투수가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면 백스핀(backspin)이 걸린다. 중력의 영향을 받아 떨어지는 공의 낙폭을 강한 백스핀이 줄여준다.

백스핀의 반대가 톱스핀(top spin)이다. 공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회전을 주기 때문에 이렇게 부르는 것 같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커브가 백스핀에 따라 움직인다. 백스핀과 톱스핀은 회전 방향이 다를 뿐, 회전축이 같다. 지면과 수평을 이룬다. 톱스핀이 걸린 공은 가라앉는다. 여기에 중력의 힘까지 작용해 더 많이 떨어진다.

사이드 스핀은 회전축이 지면과 수직을 이룬다. 사이드암 투수가 던지는 공은 이 회전의 비중이 크다. 사이드 스핀에 따라 공은 좌우로 움직인다.

이 밖에 우리에게 생소한 자이로 스핀(gyro spin)이라는 것도 있다. 투구의 진행 방향과 회전축이 평행을 이루는 회전이라고 한다. 이는 총알이 날아가는 원리와 같다고 해서 라이플(rifle, 소총) 스핀이라고도 부른다.

공은 세 가지 회전이 작용해 변화한다. 회전의 종류와 원리를 이해하면 더 효과적인 공을 던질 수 있다. 피칭에 문제가 생겼을 때 회전을 점검해 원인을 파악할 수도 있다.

현대 야구는 레이더 기술을 통해 야구공의 회전을 추적한다. 회전수뿐 아니라 회전축까지 파악할 수 있다. 이를 통해 투구의 회전과 무브먼트의 상관관계를 알게 됐다. 앨런 네이선 미국 일리노이대 물리학 교수는 ‘회전이라고 해서 다 같지는 않다(All spin is not alike)’는 글을 지난 2015년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에 기고했다.

네이선 교수는 포심 패스트볼이나 체인지업에는 자이로 스핀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구종은 백스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예를 들면, 투수 A가 던지는 커브의 회전이 투수 B의 것보다 많다. 그러나 투수 B의 회전 효율이 투수 A의 것보다 크기 때문에 커브의 변화폭이 더 크기도 한다. 투수 A 공의 회전이 더 많아도 투수 B의 커브가 더 크게 떨어질 수 있다. 회전에도 품질이 있다는 뜻이다.

자이로 회전은 무브먼트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백스핀 또는 톱스핀 회전수가 중요한 걸까. 얼마 전만 해도 그게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회전수와 수직 무브먼트의 상관관계가 그리 크지 않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수직 무브먼트 크기와 포심 패스트볼의 위력이 비례한다는 사실을 지난 칼럼에 소개했다. 포심 패스트볼의 회전축이 지면과 수평을 이룬 상태에서 강한 백스핀이 걸리면, 마그누스 효과를 극대화한다. 이것이 곧 회전 효율이다.

수평 무브먼트가 필요한 투심 패스트볼은 또 다르다. 회전축이 살짝 기울어져야 투심에 효과적인 궤적을 만들 수 있다. 이 경우에는 회전수가 적은 편이 좋다고 한다. 카스티요의 회전수 적은 패스트볼이 위력적인 것은 이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트레버 바우어는 투구 회전을 분석해 효과적인 그립과 스윙을 찾았다. 또 롱토스 연구를 통해 최적의 하체 이동을 만들었다. 연합뉴스

‘안 빨라도 강한 공’을 디자인하다

2020년 MLB에서 가장 주목받은 투수는 트레버 바우어(29·신시내티)일 것이다. 단축 시즌으로 치러진 올해 11차례 선발 등판한 그는 5승4패, 평균자책점 1.73을 기록했다.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수상이 유력하다.

바우어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투수’가 된 게릿 콜(뉴욕 양키스)과 대학(UCLA) 동창이다. 아마추어 시절에는 콜보다 뛰어난 투수였다고 한다. 올 겨울 자유계약선수(FA)가 된 그는 SNS에 자기 홍보를 하는 중이다. 심지어 1년 전 콜을 사들인 양키스를 향해서도 자신을 영입하라고 주장했다.

바우어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기 생각을 당당히 밝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독특한 말과 행동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그를 괴짜라고 부른다.

올 시즌 바우어의 포심 패스트볼 평균 속도는 시속 150㎞다. 스피드만 보면 MLB 하위 23%였다. 그러나 그의 패스트볼구종 가치(wFB)는 12.7로 MLB 전체 3위(팬그래프 기준)였다.

이유가 뭘까. 구종 가치는 스트라이크와 아웃을 많이 잡을수록 올라간다. 이를 위해 여러 요소가 필요하지만, MLB 전문가들은 그의 투구 회전에 주목한다.

※무브먼트는 해당 투수의 공과 비슷한 구속(시속±3.2㎞)과 익스텐션, 릴리스 포인트를 가진 투수의 평균값과 비교해 덜 떨어지는 정도를 팬그래프가계산.

스탯캐스트에 따르면, 올 시즌 바우어의 패스트볼 회전수는 분당 2776회로 MLB 최고 수준이었다. 회전 효율도 상당히 좋다. 바우어의 포심 패스트볼은 그와 비슷한 구속, 릴리스, 익스텐션을 가진 다른 투수의 공보다 평균 9.9㎝ 덜 떨어지는(솟아오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는 올 시즌 MLB 투수 중 1위다.

바우어는 어릴 때부터 각종 투구 이론을 공부했다고 한다. 스스로 투구를 연구하고 개선하는 ‘피치 디자이너’다. 2018년에는 레이더와 슬로모션 데이터를 보고 슬라이더 회전축을 교정했다. 이후 그의 슬라이더 위력은 크게 향상됐다. 올해 바우어의 슬라이더 구종 가치는 7.6으로 MLB 전체 6위였다.

그는 2013년부터 겨울마다 ‘드라이브라인베이스볼’이라는 회사로 가서 전기자극 훈련을 한다. 또한 신체 곳곳에 센서를 붙여 투구 폼을 과학적으로 재해석한다. 그의 이런 연구 과정은 지난해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 기사로 소개된 바 있다.

평범한 체격(185㎝·90㎏)에서 나오는 바우어의 패스트볼 스피드는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키 2m가 넘는 앤드류 밀러(세인트루이스)는 “바우어는 놀란 라이언이 아니지만, 라이언처럼 던진다”고 했다. 유효 회전이 많은 패스트볼을 던지기 때문이다.

이유가 뭘까. 투구의 회전을 늘리려면 손과 공의 마찰력이 커야 할 것이다. 이는 ▶공을 잡는 그립 ▶손아귀와 손가락 힘 ▶팔 각도(arm slot) ▶릴리스 등으로 결정된다. 또 불필요한 회전을 줄이고, 회전축을 수평에 맞추면 회전 효율이 높아진다. 그러면 수직 무브먼트가 커질 것이다.

투수에게는 공이 유난히 잘 들어가는 날이 있다. 이를 “공이 손에서 긁히는 날”이라고 흔히 표현했다. 오래전부터 회전이 많은 공이 위력적이라는 걸 다들 경험으로 알았다.

스탯캐스트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자신의 투구를 인식하고 분석하도록 만들었다. 과학적인 프로세스를 통해 결점을 찾고 보완할 수 있게 됐다. ‘공이 손에 긁히는 날’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바우어처럼 강하고 효과적인 회전을 만드는 게 가능해졌다.

회전수가 많고, 회전 효율이 높으면 패스트볼 구위가 좋아야 한다. 어깨와 팔꿈치가 직선을 만들고, 릴리스 때 손바닥(회전축)이 지면과 수평을 이루면 된다. 이론적으로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 회전이 덜 걸려서 오히려 위력적인 변화구도 있고, 카스티요처럼 패스트볼 계열의 공에는 수평 무브먼트가 효과적일 수 있다. 투수의 유형과 신체, 특성에 따라 최적의 폼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기본을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자신의 특성에 맞게 응용할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선수가 공부해야 하고,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무기(폼)를 찾아야 한다.

바우어가 몸에 센서를 붙여 투구 폼 데이터를 얻는 모습. SI 홈페이지

바우어가 자신의 피칭을 설명하는 ‘MLB 네트워크’ 동영상을 봤다. 그는 “처음에 나도 큰 허리 회전(big turn)을 했다. 하지만 내 골반을 X-레이로 분석한 결과, 그건 내 몸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스트라이드에 가속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또 “롱 토스(90m 이상의 긴 거리에서 공을 던지는 훈련)에서 익힌 대로 마운드에서 내려가며 (걷는 느낌으로) 강한 회전을 만들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여기서 또 느낀 게 있다. 내가 좋은 밸런스를 찾기 위한 방법으로 권하는 스텝앤드스로(step and throw)와 바우어의 롱 토스는 개념이 다르지 않다. 투구 각도와 회전이 중요하고, 이를 위해 다양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그래도 피칭은 안정된 하체 이동에서 얻는 추진력으로부터 시작한다.

〈박스〉 바우어는 ‘파인타르’를 썼을까

트레버 바우어가 투구 회전을 연구하는 건 틀림없다. 게다가 그는 아주 좋은 피칭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2020년 그의 투구 회전이 온전히 연구와 노력 때문이었는지에 대해서는 MLB 관계자들이 의문을 가지고 있다.

지난해까지 바우어의 포심 패스트볼 분당 회전수는 평균보다 조금 높은 2300회 수준이었다. 물론 이 시기에도 바우어의 패스트볼은 뛰어났다.

2018년 그는 SNS를 통해 앙숙인 게리 콜을 저격했다. 콜이 피츠버그에서 휴스턴으로 이적한 뒤 포심 패스트볼 회전수가 급격히 증가했다는 것이다. 2017년 2277rpm에서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앞둔 2019년 2412rpm까지 올랐다. 바우어는 “공의 회전수는 인위적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내 패스트볼은 2250rpm인데 누구처럼 파인타르(pine tar, 송진)를 쓰면 400rpm을 더 올릴 수 있다”고 썼다.

파인타르는 마찰력을 높이기 위해 배트에 묻히는 물질이다. 투수는 로진백(송진가루)을 자주 이용한다. 그러나 ‘이물질’ 사용은 금지돼 있다. 파인타르는 ‘이물질’로 인식된다. MLB 투수들은 알게 모르게 파인타르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콜의 패스트볼 회전이 증가한 이유는 이 때문이라고 바우어는 확신하는 것 같다. 바우어는 올해 초 “MLB 투수들의 70%가 파인타르를 사용한다. 이건 투수가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묘하게도 올 시즌 바우어의 포심 패스트볼 회전은 지난 시즌(2412rpm)보다 364rpm 증가했다. 2년 전 그가 파인타르를 사용해 늘릴 수 있다는 회전수(400rpm)와 비슷하다. 올 시즌 그의 포심패스트볼 구속이 떨어졌지만, 구위는 향상된 이유다.

바우어는 지난 2~3년 동안 투구 회전에 대해 많이 연구했다. 그가 정말 회전수 증가과 회전 효율 향상의 비밀을 밝혀낸 걸까. 아니면 그도 파인타르를 쓴 걸까.

남들도 다 쓴다는 파인타르를 바우어도 사용했다면, 비슷한 조건에서 그가 최고의 회전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되는 걸까. 하여간 재미있는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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