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야구학 에필로그] '야구 소년'과의 1년 여정을 마치며

김식 2020. 11. 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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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2019년 7월 11일이었다. 선동열 전 야구 국가대표 감독이 목동야구장에서 기자회견을 연 날이었다. 2018년 11월 국정감사 이후 8개월 만에 공식 석상에 나타난 그는 "내년 뉴욕 양키스의 스프링캠프에 참가해 메이저리그(MLB)를 배울 생각"이라고 밝혔다.

당시 선동열 전 감독은 소년처럼 들떠 있었다. 선수로 밟지 못했던 MLB를 지도자가 되어 경험할 수 있다는 기대, 자신의 야구인생을 정리한 책 『야구는 선동열』(민음인) 발간을 앞둔 설렘으로 가득했다. 그는 "책을 쓰느라 예전 자료를 찾아봤는데, 남아 있는 게 거의 없더라"며 아쉬워했다. 기자는 "MLB 연수 땐 모든 자료를 보관하시라. 공부하는 과정이 한국 야구의 소중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동열 전 감독이 MLB를 공부하려는 이유가 몇 가지 있었다. 크게 보면 한국·일본 야구를 경험한 그의 식견을 더 높이고 싶어서였다. 미국인은 아시아인과 체격·체질이 다르다는 이유로 가졌던 거리감을 좁혀보기 위해서였다. 2015년 스탯캐스트의 등장으로 '눈과 직관으로 판단하는 야구'가 '데이터로 읽고 검증하는 야구'로 바뀐 걸 확인하고자 했다.

선동열 전 감독은 "삼성과 KIA에서 감독일 때 외국인 투수들이 내게 기술적인 도움을 자주 요청했다. '감독님은 선수 시절 슬라이더를 잘 던졌다고 들었다. 슬라이더 그립을 알려달라'는 식이다. 그래서 내 그립을 보여주면 외국인 투수들이 허허 웃더라"고 말했다.

MLB 연수가 무산되자, 선동열 감독은 지난 3월부터 스터디 그룹을 구성해 각계 전문가로부터 강의를 들었다. 사진은 재활 전문의로부터 강의를 받는 선동열 감독의 모습. 정시종 기자

그는 투수 중에서도 손가락이 짧은 편이다. 그에게 맞게 변형한 그립을 보여주니 외국인 투수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선동열 전 감독은 "체형이 우리와 다른 외국인 선수를 내가 지도한다는 건 어렵다고 봤다. MLB 경력이 있는 선수들을 내가 손댈 순 없었다"고 했다. 그는 MLB 연수를 통해 외국인 선수, 그리고 MLB에 익숙한 젊은 한국 선수들과 소통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MLB '예습'을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MLB 연수가 무산됐다. 학창 시절 깨알 같은 글씨로 야구 일기를 썼던 '야구 소년' 선동열의 학구열이 꺾일 뻔했다.

지난 10월 29일 서울대 언론정보문화 특강에 참여한 선동열 전 감독과 서울대 신입생인 김라경 투수

불현듯 찾아온 언택트 시대. 선동열 전 감독은 '온택트' 연수를 시작했다. 지난 3월부터 지인들과 야구 스터디 그룹을 구성, 매주 다양한 주제를 놓고 공부하고 토론했다. 빅데이터 전문가, 세이버메트리션, 통계학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재활의학과 및 스포츠의학 전문의, 트레이너, MLB 스카우트와 마케터 등 각계 전문가로부터 강의를 들었다. 미국의 MLB 온라인 야구 프로그램도 수강했다. 이를 또다시 정리하고, 해석했다. 선동열 전 감독은 연필과 노트, 그리고 야구 서적이 담긴 책가방을 늘 메고 다녔다.

기자도 스터디 그룹 멤버 중 하나였다. 기자는 선동열 전 감독의 공부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국보', '국가대표' 등의 권위를 내려놓고, 낯선 이론·용어와 씨름하는 그에게 "이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자"고 제안했다. '선동열 야구학'은 그가 배우는 과정을 담은 것이다.

장원철 서울대 통계학과 강의를 수강하고 있는 선동열 전 감독. 정시종 기자

일간스포츠에 연재한 내용은 기술적인 측면에 집중했다. 선동열 전 감독이 기존에 가졌던 이론을 재정립하는 게 '선동열 야구학'의 시작이었기 때문이다. 인문·의료·스카우트 등은 이번 연재 주제에서 벗어나 다루지 않았다.

연재 과정은 선동열 전 감독이 주도했다. 그의 메모와 구술을 바탕으로 기자가 글을 정리하면, 선동열 전 감독이 다시 확인하고 교정했다. 원고의 90% 이상은 그가 만들었다.

'선동열 야구학' 시즌1을 마감하는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역설했다.

"시대가 변했고, 야구를 보는 방법이 달라졌다. 그 변화를 선배가, 지도자가 받아들였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내가 후배들을 잘못 가르쳤다."

그의 말은 '선동열 야구학' 마지막, 10편의 제목이 됐다.

김식 스포츠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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