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의 화려한 포수왕국, 그 뒤를 묵묵히 받쳐준 불펜포수들[윤승재의 엔팍스토리]

스포츠한국 윤승재 기자 2020. 11. 2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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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고척=윤승재 기자] “나이스 볼!”, “볼 좋네!” NC 다이노스의 불펜장은 조용할 틈이 없다. 공이 미트에 꽂히는 소리와 함께 쩌렁쩌렁 불펜장을 울리는 불펜포수들의 고함소리는 공을 던지는 투수들의 어깨를 가볍게 만든다.

불펜포수들이 하루에 받는 공은 캐치볼 포함 약 300개. 100개를 훌쩍 넘는 전력투구 공을 매일같이 받아내고 있다. 시즌 중에는 물론, 한 시즌을 준비하는 스프링캠프 때도, 마무리캠프 때도 마찬가지. 여기에 공을 받을 때마다 쩌렁쩌렁한 고함 소리로 투수들의 기를 펴게 하거나, 공을 직접 받아보면서 투구를 판단해 선수와 코치에게 의견을 전달하는 일도 불펜포수의 일이다. 훈련 전후에는 훈련 준비와 정리도 도와야 한다. 쉴 틈이 없다.

NC 불펜포수들, 선명성-안다훈-이창진 매니저. (사진=윤승재 기자)

하지만 이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NC는 창단 첫 우승의 기쁨을 맛볼수 있었다. 19승을 기록한 외국인 투수 루친스키와 에이스로 거듭난 구창모도, 김영규, 송명기 등 어린 선수들과 김진성, 원종현 등 베테랑도 모두 이들의 손을 거쳤다. 물론, 양의지-김태군-김형준-정범모 등으로 이뤄진 '포수왕국' 포수들의 안정적인 리드도 있었지만, 묵묵히 이들의 공을 받아준 불펜포수들의 공도 빼놓을 수 없다.

한때 이들도 프로의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안다훈(27) 매니저는 원주고를 졸업하고 홍익대에 입학해 프로의 꿈을 이어갔지만, 힘든 포지션 경쟁과 슬럼프, 야구에 대한 싫증이 겹쳐 도중에 야구를 그만두기도 했다. 그러던 중 당시 장채근 홍익대 감독의 추천을 받아 NC에 지원을 하게 됐고, 2013년부터 현재까지 NC의 불펜포수로서 묵묵히 힘을 보태고 있다.

선명성(21) 매니저와 이창진(19) 매니저 역시 마찬가지. 일산 백송고를 나온 2년차 불펜포수 선 매니저는 프로의 문을 두드렸다가 실패해 다른 직업을 찾아봤지만 야구가 너무 좋아 NC 불펜포수에 지원했다. 1년차인 이창진 매니저도 군산상고 졸업 후 대학 진학 문제로 고민하다 감독의 추천으로 이 길을 택했다.

비슷한 나이의 또래 선수들이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쉬움도 있지 않았을까. 안다훈 매니저는 “처음에 들어왔을 땐 부럽기도 했다. 같이 꿈꿔 온 무대였기에 다시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내 벽에 부딪혔다고. 안 매니저는 “선수들이 뛰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였구나’라고 느꼈다”라며 아쉬운 감정을 접었다고 고백했다.

NC 공식 홈페이지에 나와있는 투수는 총 39명. 기존 포수들도 자신들의 훈련이 있기에 이들의 훈련을 모두 감당할 수 없다. 그렇기에 구단에 불펜포수의 존재는 더 중요하다. 사진은 스프링캠프 당시 불펜 피칭 장면(NC다이노스 유튜브 캡쳐)

지금은 불펜포수라는 직업 자체에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안 매니저는 “공을 하도 많이 받아보고 오래 지켜보니까, 선수의 구위나 폼이 좋은지 안 좋은지 받아보면 알 수 있다”라면서 “선수들이 우리한테 공을 던져 자신감을 갖고 실전에서 호투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고 여기에 보람을 많이 느낀다”라고 전했다.

안 매니저는 루친스키와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안 매니저는 “다른 선수들도 다 잘 던지지만, 개인적으로는 루친스키 공이 정말 좋다고 생각한다”라면서 그 이유에 대해 “엄청난 노력파다. 이른 시간에 자고 있는데 캐치볼하러 나오라고 나한테 이야기한 적도 몇 번 있어 곤란하기도 했다(웃음). 하지만 그런 노력 덕에 루친스키가 지금 잘 던지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라며 싱긋 웃었다.

선명성 매니저는 가장 보람찼던 에피소드로 투수 김진성과 있었던 에피소드를 전했다. “최근에 (김)진성이 형 공이 정말 좋아서 ‘오늘 안타 안 맞을 것 같다’고 얘기했는데, 진짜 한국시리즈에서 호투하고 내려왔다. 진성이 형이 내려오면서 ‘너 말이 맞았다’라고 칭찬해줬는데 그게 정말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라고 회상했다.

이창진 매니저는 “라이트가 10승 못하고 있을 때 자기 볼 좀 봐달라고 해서 받아준 적이 있다. 바로 다음날 10승을 하고 오더라. 라이트가 다가오더니 ‘너랑 같이 해서 10승 한 것 같다’라고 해서 기분이 정말 좋았다”라며 뿌듯했던 그때를 회상했다.

지난해 올스타전에 깜짝 등장한 안다훈(위 사진 왼쪽) 불펜포수. 이때 안다훈은 '루친불펜'이라는 모자를 쓰고 마운드에 올라 루친스키에게 '루친스키' 모자를 건네주고 내려왔다. 이 인연으로 더 돈독해졌을까. 안다훈 매니저는 쉬는 날마다 루친스키가 캐치볼하자고 불러낸다며 혀를 내둘렀다. '루틴스키'다운 에피소드였다(사진=NC다이노스)

그러나 이들 모두 나름의 고충도 있다. 꿈의 무대를 눈앞에 두고도 서지 못하는 아쉬움과 누구보다 긴 하루를 보내야 하는 고단함도 있지만, 무엇보다 불펜포수를 향한 아쉬운 직업인식과 비전문성이 아쉽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실제로 일본과 미국 불펜포수들에 비해 한국 불펜포수의 연봉은 적고 일은 더 많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최근 불펜포수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소개가 되면서 조금씩 주목을 받고는 있다. 2016년에는 SK의 이현모 SK 불펜포수가 광고에 출연해 불펜포수라는 직업이 세간에 알려지기?했고, 지난 10월에는 KIA 윌리엄스 감독이 이동건, 이진우, 목고협 세 불펜포수에게 ‘이달의 감독상’을 시상해 이들의 노고와 관심을 챙긴 바 있다.

안다훈 매니저는 “사실 불펜포수라는 직업이 진짜 야구팬이 아니면 알기 쉽지 않다. 이런 주목들이 많아져서 불펜포수라는 직업이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전했다. 선명성 매니저 역시 “불펜포수라는 직업이 전문화되고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이 돼서 보람과 책임감을 더 느낄 수 있는 자리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세 매니저는 불펜포수 생활을 통해 야구에 대해 더 알아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야구를 배워가면서 또 다른 꿈도 키워 나가고 있다고 고백했다.

안 매니저는 “지도자가 되고 싶어서 공부를 조금씩 하고 있다”라고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지도자 공부에 있어 불펜포수 생활하면서 겪었던 것들이 도움이 많이 된다고도 덧붙였다. 안 매니저는 “어린 투수들과 공을 주고받으면서 기술보다는 멘탈 케어가 더 중요하다고 느꼈는데, 지도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지금 느꼈던 것들을 잘 살려 좋은 지도자가 되는 게 내 꿈이다”라고 전했다.

선명성 매니저는 “불펜포수를 하면서 요즘 야구 데이터 분석에 푹 빠졌는데, 더 파고들어서 'KBO에서 데이터 분야 1등'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의 전문가가 되고 싶다”라고 전했다. 이어 슬쩍 “더 많이 배우고 노력해서 감독이 되는 것도 꿈이다”라는 야망을 내비치기도. 이창진 매니저도 “일단은 배우는 게 목표다. 나중에 어떤 일을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불펜포수하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다.

인터뷰 후 사진 포즈를 부탁하자, 세 불펜포수들은 망설임 없이 'V1 포즈를 취했다. 이창진-안다훈-선명성 매니저. (사진=윤승재 기자)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한국시리즈를 치르고 있는 선수들에게 응원의 한 마디를 부탁했다. 안다훈 매니저는 “다들 우리 불펜이 약하다고 하는데 아닌 것 같다. 오히려 한국시리즈라는 오직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던지다보니 안 좋았던 선수들도 다 좋아진 것 같다”라며 “누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하나로 뭉쳐 후회없는 시합을 했으면 한다”라고 응원했다.

이창진 매니저는 “형들이 1년 동안 고생이 정말 많았다. 얼마 안 남았으니 힘내서 우승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선명성 매니저는 “형들이 1년 동안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 하루 빨리 끝내서 쉬었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우승하고 웃으면서 쉬었으면 좋겠다”라며 진심 어린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다.

인터뷰 비하인드

기자 : (23일 경기 전 인터뷰)선 매니저님은 NC 투수들 중에서 누구 공이 좋다고 생각하세요?

선명성 매니저 : 저는 오늘 창모 형이 잘 던지라는 의미에서 창모 형을 꼽겠습니다. 실제로 정말 잘 던지기도 하고요.

안다훈 매니저 : 오 맞아맞아, 오늘 창모 진짜 잘 던질 거 같아. 받아보니까 좋던데.

선명성 매니저 : 제가 딱 이렇게 꼽고, 창모 형이 딱 잘 던지고.. 이렇게 될 거에요. 확신합니다.

구창모의 공을 숱하게 받아본 불펜포수들의 예상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이날 구창모는 7이닝 무실점 완벽투를 선보이며 생애 첫 한국시리즈 승리와 팀의 귀중한 3승을 견인했다.

스포츠한국 윤승재 기자 upcoming@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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