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 본고장서 NBA에 도전하는 '농구 전설'의 아들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2020. 12. 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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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경향]

데이비슨대 이현중(가운데)이 지난 1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애슈빌에서 열린 마우이 인비테이셔널 토너먼트 1라운드 텍사스대와 경기에서 상대 수비 돌파 후 슛을 시도하고 있다. 애슈빌 | AP연합뉴스


“엄마 여기 매일매일 힘들어. 나보다 강한 상대들과 연습하니 항상 긴장되고 도전하는 느낌이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발전하는 느낌도 들어서 하루하루가 너무 좋아.”

이역만리 타지에서 학업과 농구를 병행하는 아들이 걱정하지 말라며 보내온 문자에 엄마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던 미국에서의 도전. 이 위대한 도전의 주인공 이현중(20)의 활약은 한국 농구계에 큰 희망을 안긴다.

지난달 개막한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남자농구에서 한국 농구 팬들은 이현중의 이름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데이비슨대 2학년인 이현중은 지난달 26일 열린 하이포인트대(82-73 승)와 경기에서 3점슛 5개 포함 23점·9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이어 지난 1일 AP랭킹 19위의 강호 텍사스대(76-78 패)와 경기에서는 6점·3어시스트로 주춤했으나 경기 막판 자유투 연속 득점과 어시스트로 접전을 이끌었고, 2일 프로비던스대(62-63패)를 상대로는 3점슛 3개 포함 17점을 몰아넣는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지난해 5월 NCAA 남자농구 최상위 등급인 디비전 1 소속의 데이비슨대 입학 소식이 알려졌을 때만 하더라도 이현중보다는 그의 ‘농구 집안’에 더 많은 관심이 쏠렸다. 우선 어머니가 1984년 LA올림픽 여자농구 은메달 신화의 주역인 성정아 씨(55)고, 아버지 이윤환 씨(54)는 남자 농구 명문고인 삼일상고 농구부장으로 하승진, 송교창, 이대성 등 걸출한 선수들을 다수 키워낸 고교농구 감독의 전설적인 존재다. 심지어 누나 이리나 씨(24)도 한 때 농구를 한 적이 있다.

성씨는 지난 1일 기자와 통화에서 “(이)현중이가 참 대견하다. 내가 현중이 나이에 미국에 갔어도 저렇게 했을까 싶다”며 “사실 농구적인 부분은 아버지와 더 많이 얘기한다. 나까지 농구 얘기를 하면 현중이가 지칠까봐 농구 선배가 아닌 엄마의 역할에만 충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감독으로 있는 학교에서 선수로 있었으니 농구 관련 부분은 아버지가 더 잘 알 것이라는 생각이다.

지난해 데이비슨대를 방문한 이현중 가족. 왼쪽부터 어머니 성정아, 이현중, 아버지 이윤환씨. 성정아씨 제공


이현중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농구를 시작했다. 이미 5살 때부터 공을 가지고 놀더니 누나가 운동하는데까지 따라가 옆에서 농구공을 만지막거리며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농구를 시킬 마음이 부모님에게는 없었다. 두 사람 모두 농구를 해봐서 선수 생활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씨는 “어릴 때는 다 자식들이 똑똑해보이지 않나. 그래서 공부를 해서 우리와 다른 길을 걷길 바랬다”고 회상했다. 그런 부모님의 고집이 꺾인 것은 “나 공부는 열심히 할게. 하지만 농구는 포기할 수 없어. 5살 때부터 꿈을 바꾼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라는 아들의 다부진 한 마디 때문이었다.

중학교 입학 때만 하더라도 170㎝에 그쳤던 키는 쑥쑥 크기 시작해 중3 때 190㎝까지 성장했고, 고등학교 진학 후 200㎝를 넘겼다. 이내 모두가 주목하는 유망주가 된 이현중의 농구 인생에 전환점이 온 것은 2017년 6월, 미국프로농구(NBA) 아시아 퍼시픽 팀 캠프에 초청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성씨는 “그 때 NBA 아시아 부사장이 와서 NBA 아카데미에서 운동해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며 “돈 주고도 못 보내는 여건에서 먼저 제의가 왔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NBA 아카데미를 거친 이현중은 곧 미국 대학팀의 주요 스카우트 대상이 됐다. 무려 20여개 팀이 이현중에 관심을 보였다. 성씨는 “데이비슨대를 포함해 리치먼드대, 워싱턴주립대 등 스카우트 제의가 많이 왔다. 나중에 데이비슨대 진학이 결정되고 나서 리치먼드에서 방문하면 안되겠냐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데이비슨대 진학으로 이현중은 최진수에 이어 한국에서 나고 자란 비혼혈 남자농구 선수로 NCAA에 입성한 역대 두 번째 선수가 됐다.

이현중은 지난 시즌 평균 20.9분을 뛰며 8.4점·3.1리바운드, 3점슛 성공률 37.7%를 기록하며 데이비슨대가 속한 애틀랜틱10(A-10) 콘퍼런스 올 루키팀에 뽑혔다. 하지만 그를 향한 시선은 곱지 않았다. 괄목할만한 성과를 냈지만, 신장에 걸맞지 않은 체중이 문제였다. 한국에서야 이현중만한 체격을 갖춘 선수가 드물지만, 미국에서는 이현중 이상 가는 선수들이 즐비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이현중은 지난 3월 귀국한 뒤 운동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이를 바라본 성씨의 마음이 좋았을 리 없다. 성씨는 “몸에 대해 말이 많다는건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한국에 왔을 때 1주일에 4일은 계속 운동만 했다. 체중이 원래는 86~87㎏를 오갔는데 출국할 때는 94㎏정도까지 늘렸다. 여기에 근육을 키워야 해서 식단도 연어, 닭가슴살, 아보카도 같은 것만 먹고 탄산 음료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주변에서는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지만, 현중이가 지금까지 올라간 것은 본인의 노력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유전자가 좋아서 그렇다는 말들이 좋게 들릴리 없지만, 그래도 현중이는 자신에 대한 채찍질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많은 선수들이 미국 무대에 도전하고 싶어하지만, 학업과 운동의 사이에서 고민하다 꿈을 접곤 한다. 한국과는 달리 엘리트 스포츠 개념이 없는 미국은 대학에서도 운동 선수들이 학업을 병행하며 일정 수준의 학점을 유지해야 한다. 이현중의 삼일상고 후배로, 역시 한국 농구를 이끌 기대주로 평가받는 여준석(18)이 이현중과 함께 하려 했다가 끝내 포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성씨는 “한국은 올라가면 갈수록 학업과 운동,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한다. 그 부분에 많은 고민이 있어서 어릴 때부터 현중이한테 영어 공부를 많이 시켰다”며 “현중이가 영어와 수학을 잘한다. 미국의 수능인 SAT 점수도 1000점을 넘어야 한다고 했는데

현중이가 1030점인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1학년 때는 매일 시합이 끝나고 밤을 새워 리포트를 내는게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수업을 하는 것도 있고, 학점도 지난해 많이 들어 올해는 조금 덜 들어도 된다고 했다”고 대견스러워했다.

한국은 2004년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에 입단했던 하승진을 끝으로 NBA 무대를 노크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현중이 꼭 NBA에 입성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이현중이 뛰는 데이비슨대는 현 NBA 최고 3점슈터인 스테픈 커리(골든스테이트)의 모교이기도 하다. 하지만 성씨는 아직은 먼 미래의 얘기인 NBA보다 그저 아들이 자신있게 쑥쑥 성장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성씨는 “물론 미국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경쟁을 펼친다는 것이 자랑스럽다. 그래도 한국에 와서 편하게 했으면 좋을텐데라는게 엄마 마음”이라며 “마음은 뭔가 채워가는 느낌이라는 아들 얘기를 들을 때마다 흐뭇하다”고 아들에 대한 애정을 듬뿍 드러냈다.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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